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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두 번째로 집어들었다. 요즘 한창 추리소설 붐이 일고 있는 이때 지인들과 고수들의 추천서에 포함되어 있는 책이기에 보관함에 고이 모셔뒀었다. 그런데 '모방범'을 읽고 나서 주저없이 그의 책을 모다 사버렸다. 그래서 읽은 것이 바로 이 '이유'란 책이다. '살육에 이르는 병'이 많이 회자되기에 기꺼이 그 책을 먼저 읽었는데 후회막급이었다.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이라고 선전을 해대기는 하는데 어째 읽고 난 다음 드는 찝찝한 마음. 한동안 추리 소설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 동안 건전하고(?) 유쾌할 듯 한 책을 읽어주다가 다시 집어든 책이 바로 이것이다. 이 소설을 단순히 '추리소설'이라고 명명하기엔 뭔가 부족할 듯 하다. 해설가도 밝혔다시피 르포르타주 형식을 빌어 사건의 발생부터 원인, 그 결과까지 서술해가는 작가의 솜씨에는 '억' 하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이다. '모방범'을 읽었을 때에도 어떻게 저런 분량의 글을 한 순간도 흐트러지거나 느슨해지지 않고 써 나갈 수 있는가 싶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책 대부분이 그러한 듯 하다. 엑스트라라고 치부할 듯도 한 사람인데 섬세하게 묘사한 그의 필치를 보면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책 속에서 허우적 대느라 곡기를 몇 번이나 놓쳤던지...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늘 그렇듯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게다가 한창 부동산 경기로 시끄럽던 일본과 한국의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주상복합지구에 있는 고급 아파트를 소유하고자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들을 그냥 사치로 치부하지 않고 가족의 의미와 연관시켜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다니... 나는 사건의 방사선 어드매 쯤 위치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해 준다.
작중 인물이 말한다.(p553)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라는 것을 야스타카는 깨달았다. 이 '과거'는 경력이나 생활 이력 같은 표층적인 것이 아니다. '피'의 연결이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누구 손에 자랐는가. 누구와 함께 자랐는가. 그것이 과거이며, 그것이 인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만든다. 그래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잘라낸 인간은 거의 그림자나 다를 게 없다. 본체는 잘려버린 과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라고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과거나 경험 따위 대충 던져버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 나의 시점에서 보면 의미 심장한 말이다. 부부의 결합을 제외하고는 가족이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부부의 결합조차 선택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구성된 가족이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구성하고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가족의 해체를 너무나 무관심하게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체된 가족을 지켜본다 하더라도 우리의, 나의 가족을 제외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존재한다.
'나는 소중하니까'라든지 '나는 나야'라는 광고 카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아이덴티티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우린 가족을, 우리의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이런 구구한 설명을 제외하더라도 미야베의 책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고 재.미.만.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