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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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연예인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명예나 돈도 탐나긴 하지만 정말 탐나는 것은, 그들은 드라마에서 주어진 역할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들의 인생은 리허설 천지인 듯 싶습니다.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때로는 넘치는 스릴감을 즐기는 스파이로, 때로는 엄청난 모험을 즐기는 도둑으로, 시한부생을 살아가는 환자로, 또는 입으로 담기 힘들 만큼 천박한 요부로도 살아보며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과거 역사 속의 인물로도 살아보니 말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그들만큼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하기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책읽기란 그러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창구입니다. 요즘 이런 나의 눈에 책과 관련된 제목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순례자의 책(김이경)’, ‘책의 세계(강유원)’, ‘탐독(이정우)’,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브루케)’, ‘서재 결혼시키기(앤 패디먼)’,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게이 핸드릭스, 잭 캔필드)’, ‘한국의 책쟁이들’에 이르기까지. 요즘 출판계의 트랜드라고 해야 할까요? 아님 뭔가 음모이론이 있는 것일까요? 여튼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내용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책도 있었지만, 여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한국의 책쟁이들’입니다. 책 때문에 아파트가 무너질까 걱정하는 인물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또는 책으로 만든 세상 속에서 침잠하는 연구자들까지 참으로 많은 고수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은 총 5부작으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꿈꾸는 자들의 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통해 욕망에 이르고 있는 ‘성수선’씨를 보면서는 설레었고,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결국 만화 때문에 세상과 격절하게 된 만화 마니아 ‘박지수’의 이야기에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만을 하고 살아가기에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나 무겁기만 하니 말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2부는 ‘사람을 읽다 책을 살다’라는 내용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 중 저의 눈길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책 중간상 김창기씨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책은 물건이다. 그 물건은 펼쳐져 읽힐 때 책이 된다. 마지막 장이 덮이면 책은 다시 물건이 된다. 책이 책됨은 무척 짧다. 책은, 책으로서보다 책이 되려는 기다림으로 존재한다. 책은 곧 그러함일 터이다.”(p117-책 중간상 김창기)
 
   

책 욕심이 많은 저로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가 책 중간상이기에 더욱 저러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나 책에 대한 집착이 넘치는 이즈음의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했다고나 할까요? 저에게 속한 책들이 물건이 아닌 책이 될 수 있도록 저만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 합니다. 
  3부는 “배움의 즐거움”입니다. 이 장에서는 종이에 인쇄된 활자만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것이 책이라는 가르침이 고수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군요. 저자거리가 책이고 사람들이 책이었어요.(p159-목재상 김태석)"

“앉아서 책읽기보다는 골목에서 뛰어노는 게 낫습니다. 삶은 상상이 아니라 몸으로 살기 때문이죠.(p183-재밌는 글쓰기․책읽기 가르치는 선생님 윤태규)
 

 
   

  4부는 “진리를 찾아서”라는 내용으로, 5부는 “사회를 생각한다”라는 내용으로 묶여 있었는데 솔직히 앞 부분보다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이야기와 웅대한 이야기가 많아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상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알게 되었고,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이렇게나마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세상은 요즘 책 읽히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처럼 일사불란하게 다들 “읽자, 읽히자”라며 난리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밥이 있고, 책 속에 모든 것 다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어쩌다 논술이 되어 논술 준비 책이 따로 마련되고, 직장인들을 위한 처세술과 외국어 관련 책이 널려있는 세상, 모든 독자들을 돈방석에 앉히고자 미친 듯이 팔리는 경제 관련 책들이 넘쳐나는 현실입니다.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하고 88만원 세대를 양산한 시대에 분괴해야 하는 세상.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원작을 읽기에 바쁜 사람들. 늘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스테디셀러가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럼 정말 책만 읽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일까요?

  글쎄요. 이건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책쟁이 고수들도 말합니다. 책보다는 세상살이가 더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고 말이지요.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책으로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이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며, 또 여타의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세상을 보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책일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초보 독자인 저로서는 책이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똑똑한 척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럴 듯한 지위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며 악다구니를 떨지 않기 위해서 잠시 입을 닫고 눈을 열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새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을까요? 입보다는 귀가 먼저인 세상, 눈이 보배인 세상은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 같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랍니다. 독서의 계절을 정해서 독서를 시켜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책을 천대하고 있기에 만들어진 말인 것만 같아 입맛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독서에 좋은 계절이라면 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따뜻한 봄에도 더운 여름에도 선선한 가을에도 차가운 겨울에도 다 나름의 장점이 있는 계절인 만큼 각 계절 뿐 아니라 각 시간별로 즐길 수 있는 독서를 나름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필자가 말합니다. “돈과 이름값에 오로지 미친 세상에서 책에 미친 미련퉁이들이 있어 더불어 살 만하다.”고 말입니다. 정말 백배 공감입니다. 약삭 빠른 이들이 외치는 무엇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 책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적 없는 글읽기가 생활화되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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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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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한 권의 책이란다.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나는 단편 소설보다 장편소설을, 장편소설보다는 대하소설을 선호하곤 한다. 사람의 다양한 굴곡을 이야기하기에는 단편은 너무 찰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처럼 찰나의 묘사에 매혹되어 한참을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 소설을 선택한 것은 오롯이 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당연히 장편이려니 생각한 나의 착각이 이 책을 사게 한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작가 '김연수'에 대한 믿음일 테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난 이전의 내가 아닌 것이 되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이 책을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다를 터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라는 작품으로 작가 '김연수'를 처음 만났다. 그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역 앞 빵집이라는 배경에서 많은 군상을 바라보던 겉늙은 아이의 시선과, 추억은 항상 즐거운 쪽으로 예감은 항상 불길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라던 그의 문장 정도가 전부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심 나는 다음에는 이 작가를 피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것은 책에 대한 막연한 나의 기대가 깨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나보고 그와 같은 작품을 쓰라면 나는 한 자도 쓰지 못할 테지만 독자로만 여러 해를 살아온 나만의 안목으로는 그의 글이 나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김연수'를 나의 독서 목록에서 완전히 제명시키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은, 특히 작가들의 어제와 오늘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나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접한 책이 <여행할 권리>라는 책이었다. 너무나 많은 곳을 다니는 그의 삶이 부러웠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써내려간 그의 글이 사무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밤은 노래한다>라는 글과 이상문학 수상집에 실린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라는 글까지. 내가 집어든 김연수의 작품은 그야말로 연타석 홈런이었다. 이제 두근두근해 하면서 그를 기다리게까지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난생 처음 저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을 예약 구매하기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이 책이 누구에게 갈지 알지도 못하고 쓴 사인일 테지만 동그란 ‘ㄴ’ 받침으로 쓴 ‘이천구년’과 단호하게 꺾어진 듯하면서도 여지를 둔 각진 ‘ㄴ’이 들어간 ‘김연수’라는 이름에 혼자 미소까지 지어보았다. 다름 아닌 그의 글씨이기에... 서두가 길었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감상평은 대만족이다. 각각의 단편들이 장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러하다. 작품 내내 흐르는 순간적인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들, 남의 고통과 소통하는 순간 그 고통은 이미 이전의 고통과는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는 그의 말이, 크나 큰 불행 속에 허우거리다 다시 살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것이라는 소설 속 인물 ‘해피’의 전혀 해피하지 않은 말들이 내 마음 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p27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 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p179

나의 삶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나만이 느꼈다고 생각했던 뭔가를 또 다른 누군가도 봤으리라고 짐작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깨닫게 됐다.
 
   

작가는 말한다. 나만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받는 위로에 대해.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부여잡고 있는 마지막 위안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제 정신이 아닌 한 여인이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기에 죽은 아이를 부여잡고 울던 여인을 안타까이 지켜보던 이웃들은 그녀에게 근방에 이름난 성인(聖人)이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도움을 청해 보라고 뀌띔해 준다. 이름난 성인이 말했다. 사람이 한 명도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 하나를 얻어오면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그러자 이 여인은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혹 누군가 죽은 사람이 있느냐고, 없다면 겨자씨를 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겨자씨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없다. 발 아프게 돌아다니며 그녀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한 집도 없다는 사실,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 역시 그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크게 깨우쳐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던가.-<티베트의 즐거운 지혜>에서 읽은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라 적어 본다.- 이렇듯 고통이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망각한다. 나만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삶을 두렵게 만드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소통이 부재하는 현재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행복의 나라로 가자는 터무니 없는 선동이나 환타지가 아니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일 것이다. 그 통로에서 더러는 주저앉기도 하고 엉엉 울어보기도 하며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이전에 느낀 그런 고통은 아닐 것이다. 

또 작가는 말한다.

   
 

p316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그래 이게 핵심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전제 조건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단언하기 전에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즉,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만 우리도 비로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수줍게 고개를 들면서 말해봐야 한다. 나는 너를 잘 모른다고. 그렇기에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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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만족이시군요.
우선 담아갑니다.~

sokdagi 2009-09-18 08:43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취향인지라... 부디 님도 맘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늘 좋은 시간 보내세요~~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류시화.김소향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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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요즘 연타석 홈런을 친 듯한 기분이다. 손에 드는 책이 족족 맘에 든다. 알라딘 독자들의 평가지수를 십분 참조해 산 책들이 다들 좋다. 입말이 제격인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도 재미났고,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도 유쾌했으며, 이번 '티베트의 즐거움' 또한 너무나 잔잔히 나의 가슴을 울린다. 읽는 내내 뭔지 모르게 나에게 평화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류시화시는 일 년에 명상 서적 두 권 번역을 업으로 삼는다고 했던가? 여튼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참으로 존경스럽다. 린포체가 알려주는 명상법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들려주는 그의 성의가 몸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잔잔한 책의 내용이 끝에는 조금 반복되는 듯이 느껴져 별 하나 뺀다. 그러나 정말 읽어볼 만한, 읽어봐야만 할 책이었다. 맘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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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류시화.김소향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7월
일시품절


누군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충고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그건 단지 너의 생각일 뿐이야. 생각을 바꾸면 상황도 달라질 거야."-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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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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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나를 부르는 숲'이란 책의 판매 부수가 높지 않다면 그것은 모두 책 표지의 뜬금없고 허술한 디자인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책 내용을 고려할 때 필자에게 '곰'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알겠으나 그래도 이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도감도 식물도감도 아닌 듯한 어정쩡한 저 디자인이라니... 차라리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지도-책 속에 나오는 조악했던 지도라도-를 표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고심하여 책 표지를 디자인한 분께는 더없이 죄송한 말씀이긴 하나 좋게 말하면 책 내용이 정말 최고였다는 말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그래도 아쉬운 맘에 한 마디 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이 제목으로 얼마나 많은 판매 부수를 갱신했는지 기억한다면 이 책의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더 참신하게 바꾸어 보기를 동아일보사에 권해보는 바이다. 내가 이 책을 보며 깔깔거릴 때마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표지는 전혀 재미없을 것 같은데?" 물론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용에 맞는 형식까지 만난다면 더아니 좋을쏘냐!)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란 한비야식 세계일주도 나름 흥미진진해 보이긴 하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소재로 한 이 책은 그야말로 뭐라 말할 수 없이 좋다. 장엄함과 유쾌함, 엄숙함과 경박함, 광대무변함과 변화무쌍함을 모두 뭉뚱그린 이야기를 이 책은 들려주고 있다. 일명 종합선물세트라고나 할까? 

 초반에 등장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서도 온갖 볼행한 상상을 하며 떨고 있는 소심한 필자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 그 자체였다. 

   
 

p15 

사실 숲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방울뱀, 물뱀, 독사, 살쾡이, 곰, 코요테, 늑대, 야생 멧돼지, 거기다가 거친 곡주를 너무 많이 마셔 약간 돈 산사람과 스컹크,너구리, 다람쥐, 무자비한 불개미, 흑파리,독이끼와 독참나무, 옻나무, 불도마뱀...... 그뿐만이 아니다. 양순할 것으로 아는 사슴들도 뇌에 기생충이 파고들어 정신이 돌 경우에는 사람들을 향해 마구 돌진한다." 

 
   

  그야 말로 실상을 반영하고 있는 모습인 동시에 코미디 그 자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결심했으면서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모든 상황을 떠올리는 그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에 쓰는지도 모르는 채 장비만은 최고급으로 구입하곤 하는 어수룩한 그의 모습-초보들이 늘 그렇듯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은 그의 여행 동반자인 카츠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만 보더라도 당신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지 기대가 마구마구 커질 것이다.  

   
 

p41 

카츠는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몸집이 훨씬 더 불어나 있었다. 과거에도 항상 큰 몸집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불편한 밤을 보내고 난 오슨 웰스를 연상시켰다. 조금 절뚝거리는데다가 20미터를 걸어온 사람치고는 너무 심하게 숨을 내쉬었다.  

"여보게, 배고파." 

그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 뒤 나보고 자신의 가방을 들게 했다. 너무 무거워 내 팔이 바닥으로 푹 처졌다. 

"여기에 뭐가 들었니?" 

헐떡거리면서 내가 물었다. 

"아, 테이프 몇 개 하고 등산에 필요한 것들. 이 근처에 던킨 도넛 가게 없나? 보스턴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이후로 아무것도 먹질 못했어." 

"보스턴? 보스턴에서 온 거로구나." 

"그래, 나는 한 시간 간격으로 뭔가를 먹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뭐라 부르지, 발작을 일으켜." 

"발작이라고?" 

이건 내가 그려본 재회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쓰러뜨려도 금방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원기왕성하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뛰어다닐 줄 알았다.  

"10년 전쯤 좀 상한 약을 먹고 난 뒤로 그래. 도넛 몇 개, 아무튼 뭔가를 먹으면 괜찮아져." 

"이봐. 우리는 사흘 안에 산으로 들어가게 돼. 거기에는 도넛 가게가 없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다 생각을 해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니커즈가 잔뜩 들어있는 그의 가방을 의기양양하게 가리키던 '카츠'의 천진난폭한 모습이라니! 배낭 여행은 정다웁던 친구 사이도, 달콤하기만 하던 연인 사이도 갈라놓는다고들 한다. 여행이란 짧은 단거리 경주와 다른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저런 친구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시도하다니... 나는 결코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카츠의 등장은 나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웃을 일 전혀 없는 요즘의 나에게 미소도 아닌 박장대소할 만한 일들만 가득 선사했다는 말이다. 카츠는 무거운 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정말 중요한 물품을 산 속에 버리기도 하고, 늘 숨을 헐떡대며 뒤쳐지길 밥 먹듯 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데에도 선수이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늘 그와 함께였다. 뒤쳐진 카츠를 데리러 걸어온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피곤에 지쳐 기신기신 널부러진 카츠를 위해 대신 텐트를 쳐 주기도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던 빌 브라이슨도 분명 카츠와의 여행을 즐거워했음이 분명하다. 왜냐 하면 그가 쓴 문장의 곳곳에 카츠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들이 메인주 마운틴 캐터딘을 보지 못하고 트레일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모습은 괜시리 나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p405  

"집으로 돌아가고 싶니?"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응,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도 그래." 

그래서 우리는 트레일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우리가 산사람인 것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  

 
   

트레일을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다 지친 카츠가 집으로 가고 싶어 할 때 말없이 그의 뜻을 따라준 빌 브라이슨. 물론 그 역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카츠의 뜻에 따른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이 비록 마운틴 캐터딘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혹한 속에서도, 돌풍 속에서도,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말이다. 그곳을 걸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도 가야할 곳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까지 마운틴 캐터딘이 그들을 기다려 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사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글 가운데 운동을 위해 차를 모는 어리석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p204  

그러나 여기에, 내가 말하려는 포인트가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거의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간에 아무데도 걸어 다니려 하지 않는다. 500미터 떨어진 직장까지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을 알고 있다. 400미터 떨어진 대학 체육관에서 러닝 머신에 올라타기 위해 차를 몰고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다고 심각하게 열을 내는 여자를 알고 있다.(그건 나도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차라리 체육관까지 걸어가서 러닝 머신을 5분 정도 덜 타는 게 어떠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내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서 "러닝 머신에는 내게 맞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진정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등산화조차 없는 내가 자꾸만 트레일을 종주해보고 싶다는 망상을 하게 되었다. 곰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두려워하면서도, 빌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하며 산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픈 마음. 이것은 이 책을 읽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책은 정말 시시때때로 폭소를 자아낼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눈물을 찔끔거렸던지 모른다.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그 곳은 부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산 속이나 대청마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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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2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정판이 나왔군요.
전에 구입했다가 읽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책인데.. 담아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나무가 보이는 시원한 대청마루에 엎드려 읽으면 더 좋을까요?

sokdagi 2009-08-29 21:23   좋아요 0 | URL
혹 그런 대청마루가 있다면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