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짐승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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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책이다. 거칠고 투박한데도 시적이면서 아름답다. “헤엄치기보단 가라앉기가 쉽지.” 인종과 성정체성 면에서 가족은 물론 세상과 쉽게 화해하기 어려운 작가의 자전적인 성장담. 가난과 사랑, 폭력이 뒤섞인 유년 시절의 아픔과 찬란함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암전들>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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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경제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판을 읽는 경제적 사고의 힘
에릭 앵그너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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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사회는 물론 개인의 생활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다만 기승전 경제학 찬양 모드가 좀 지나치다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낙관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으로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소비 미루기(심지어 책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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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9-2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비 미룰 수 있는 건가요? :)

잠자냥 2026-09-29 10:36   좋아요 1 | URL
하루… 이틀…?! 🤣

자목련 2026-09-29 11:33   좋아요 2 | URL
미룬 만큼 더 살 것 같은데요 ㅋㅋㅋ

다락방 2026-09-29 11:54   좋아요 0 | URL
저도 미루겠습니다!

잠자냥 2026-09-30 09:55   좋아요 0 | URL
미룬 만큼 더 살 것 같은데요 ㅋㅋㅋ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권인 <게르망트 쪽>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완네 집 쪽으로>와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화자의 유년기와 첫사랑을 중심으로 프랑스 사교계의 모습, 화자의 예술과 문학에 눈뜸을 그렸다면 <게르망트>는 본격적으로 귀족들의 신선놀음을 보여준다. 6권까지가 <게르망트 쪽>이므로 이 살롱 안, 그들만의 신선놀음은 내내 이어질 것 같은데 프랑스가 그토록 사랑한 벨 에포크란 결국 귀족과 부르주아지, 그들만의 벨 에포크는 아닐까, 벨 에포크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노동자나 하층 계급에 속하는-은 분명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그들에게도 이때가 정말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대였을까? 아니 그들에게 과연 아름다운 시대가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이 더 강렬하게 든 까닭은 연휴에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 Possible Love>(2026)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창동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쓰고 씁쓸하고 마음속에는 불유쾌한 감정이 오랫동안 남는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계급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저히 서로 화해할 수도, 이해할 수도, 공존할 수도 없는 그러므로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 영화에는 두 커플이 등장한다. 해고 노동자 부부인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녀의 남편 상우(조인성). 부부 사이에서도 저마다 계급차이는 선명하다. <잃시찾>의 화자의 집안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은 ‘상우’이다. 그는 이 네 명의 등장인물 중 가장 부유하다. 그의 부와 계급은 초월적 지위를 지닌다. 극중 상우의 대사는 어떤 면에서 챗GPT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실제로 아내 예지가 “너 지금 챗GPT처럼 말한다.”라고 받아치는 장면도 있다), 영화 속 그는 여러 면에서 테크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잃시찾>의 화자의 집안은 귀족은 아니지만 부유하고 교양 있는 상류 부르주아 계층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우’가 딱 그러하다. 대대로 부유했고 그에 따라 취향도 고급스러운.





그렇다면 마땅히 아내 예지도 그래야 할 텐데 자못 간극이 있어 보인다. 서울 압구정의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지만 예지의 집안은 상우에 비해 부유하지는 않다. 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했기에 예지는 상우와 호석부부의 중간에 속하는 계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해서 유학길에 올랐고 그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덕분에 거기서 상우를 만나 결혼까지 이를 수 있었다. 상우와의 결혼으로 일종의 신분 상승을 한 속물부르주아 계급에 속한다고나 할까. 호석-미옥 부부는 예지-상우 커플에 비해 계급적으로 한참 아래이다. 철강 노동자로 입사해 열심히 일하다 운 좋게 대기업 직원이 된 호석. 그는 파업투쟁을 벌이다 해고노동자가 되지만 그래도 대기업 직원으로 일한 덕분에 자기 집도 마련했다. 그런데 미옥은 어떠한가. 가난한 집안 출신에 고등학교마저 중퇴했고, 호석과 결혼해 여전히 노동자이자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이 여자는 네 사람 중 가장 낮은 계급적 위치를 지닌다. 

한데 이 전혀 어울릴 일 없을 것 같은 네 사람이 어떻게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감독인 예지는 대기업 해고 노동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찍고자 하고, 그러다 보니 ‘호석과 미옥’ 부부를 촬영하면서 만남이 잦아지게 되는 것이다. 출신과 배경, 처지 등이 서로 너무 다름에도 만남이 잦아지다 보니, 서로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게 되고 그 욕망은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그중 가장 선명하게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은 ‘미옥’이다. 무뚝뚝하고 거친 호석을 10대 때 만나 그대로 죽 살아온 미옥에게 상우는 처음 마주한 세상이다. 저 매끈한 손, 매끈한 얼굴, 매끈한 몸, 매끈한 매너, 매끈한 취향…. 모든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미옥의 저 욕망은 한 번도 속해보지 못한, 가져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욕망한다고 해서 과연 가질 수 있을까? 한편 미옥은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있으며 고집스럽기도 하고 자기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잃시찾>의 하녀 ‘프랑수아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하기는 했지만 미국 유학파인 예지는 어쩌다 노동자를 카메라에 담게 되었을까? 촬영팀 동료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예지는 말한다. 상우와 카타르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 인공 도시가 그토록 아름답게 깨끗하게 굴러갈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지금도 계속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시의 존재가 가능한 것이라는 상우의 말에 영감을 얻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세계’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무려! 카타르 여행에서! 챗GPT 같은 남편의 말에 영감을 얻어! 영화를 찍게 된 감독! 예지! 이런 그가 카메라에 담는 영상은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 아니, 진실에 가닿기나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정욕구는 있어서 “지금 나 잘하고 있지?” 묻는 예지에게 상우는 인상적인 대답을 한다. “그럼, 너 지금 메소드 연기 잘하고 있어.”라고 칭찬한다. “너와 그들은 다른 사람”인데도 이해하는 척 그들이 아픔을 다 아는 척 메소드 연기 참 잘하고 있다고 나름 격려한 것이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한 예지는 자신은 지금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호석-미옥 그 부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 사랑이라…. 사랑일까? 그 사랑이 가능할까?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아니 이해는커녕 연민조차 느낄 수 없을 텐데 사랑이 가능할까? 예지는 자기의 영화 소재로서, 대상으로서만 그들에게 다가서기에, 그녀에게는 영화를 잘 찍고자 하는  제 자신의 욕망만 존재하기에 이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 <가능한 사랑 Possible Love>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두 부부가 함께한 식탁의 ‘달 이야기’도 인상 깊다. 호석과 미옥이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가 불쑥 튀어나온 달 이야기. 가진 것도 없고 앞날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 도착한 곳은 인천 월미도의 바닷가이다. 그 바다에서 한없이 바라본 달. 이 달 이야기를 받아서 예지는 시카고 유학 생활 중 차가 끊겨 집까지 걸어가면서 바라본 달 이야기를 한다. 그때 정말 무서웠노라고…. 미옥과 예지는 그때 우린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같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라며 깔깔 웃지만, 아무도 그 달이 같은 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조차도.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 뻔한 이들이 막막한 심정으로 바라본 인천 월미도의 달과 미국 유학생이 바라본 시카고의 달이 같을 리가.

그런 의미에서 <가능한 사랑>의 ‘달’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려지는 벨 에포크 시대와 같다. 화자를 비롯해 화자와 신분이 비슷하거나 비슷하게 부를 소유한 계급, 또는 게르망트 대공네처럼 귀족인 그들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그들만의 이 벨 에포크가 끝이 날까? 나는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살롱에 앉아 날마다 차를 홀짝거리고 샴페인과 와인을 즐기면서 사교계의 이 사람이 어떻고 저 사람은 어떻고 연일 뒷공론이며 정치가 어떻고 음악이 오페라가 미술이 연극이 문학이 어쩌고저쩌고 예술을 논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 끊임없는 유희는 속물스럽기 짝이 없고 공허의 절정을 보여주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지치게 만들고 화자 또한 언젠가는 그 허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또한 환멸을 맛보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깨달음 속에 화자가 자신의 사랑은 내내 실체 없는 허상을 쫓은, 제 자신의 망상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질베르트-(사랑은 아니지만 예찬하는) 오데트-게르망트 공작부인에 이르기까지 본인은 ‘사랑’이라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지 자신에게 낯설거나 결핍된 것을 향한  욕망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과연 그러할지는 6~13권까지를 마저 읽어야 알 수 있으리라. 

상상병 환자(feat. 몰리에르), 화자가 그토록 쉽게 질베르트에 이어 게르망트 공작부인 등에게 빠지고 마는 것은 그의 생활이 한없이 권태롭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그의 집 하녀인 프랑수아즈처럼 연일 바쁘게 노동해야 한다면 그녀들을 향한 그토록 수많은 망상과 집착을 할 여력이 과연 있을까? 혼자 열망하고 혼자 사랑하고 질투하고 혼자 이별하고…. 그에겐 놀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 많다. 자기가 만든 공상과 환상 속에서 놀 시간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흥미롭게도 <가능한 사랑>의 미옥도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유가 생기면서 자기 욕망을 직시하게 된다. 생전 처음 떠난 휴가다운 휴가지에서 자기의 욕망-상우와 상우로 상징되는 계급에 대한 욕망-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그 실체 없음이 환멸과 쌍을 이룰 수밖에 없음은 예정된 수순이 아닐까. 

<가능한 사랑>도 그렇지만 <기생충>(72회 칸 황금종려상), <슬픔의 삼각형>(75회 칸 황금종려상), <아노라>(77회 칸 황금종려상) 등등 계급 문제를 다룬 영화가 최근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연달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방증일 텐데, 계급 격차는 더더욱 커질 뿐. 그들 사이의 사랑은커녕 이해조차 도무지 불가능한 시대. 그 오래전의 벨 에포크도 우리 시대의 벨 에포크도 가진 자들만의 것일 뿐. 이제 노동자들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저들의 아름다운 시대를 위해 오늘도 손발이 닳도록 뛰어다닐 것이다. 화자의 충실한 하녀 프랑수아즈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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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9-2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휴에 가출해서 저 영화 보고 왔는데.. 씁쓸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이렇게 이어졌군요. 부르주아의 귀족에 대한 선망과 긁힘?이 많이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잠자냥 2026-09-28 15:27   좋아요 1 | URL
보람찬 가출이었군요! ㅋㅋㅋㅋ 이창동 영화 정말 늘 씁쓸하죠. 전 아주 오래전에 뭣도 모르고 무려 새해 1월 1일에 <박하사탕> 보고 그해 내내 개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 돌아갈래~~~!! ㅋㅋㅋㅋㅋ

지금 문득 생각하니 영화에서는 그 선망과 긁힘(?)이 미옥이 예지가 입은 옷 얼마냐고 물어보는 장면과 오버랩 되는 것 같네요. ㅎ

유부만두 2026-09-2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선생님… 우와…..

잠자냥 2026-09-28 16:37   좋아요 0 | URL
😹😸

coolcat329 2026-09-29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가능한 사랑>을 보고 왔어요. 2시간 40분 동안 초집중해서 봤더니 관람 후에는 뒷목이 다 뻐근하더라고요. 잠자냥님 글 첫 문단을 읽자마자 자연스레 오늘 본 영화가 떠올랐는데, 바로 그 이야기가 이어져서 ‘역시!‘ 싶었습니다. 😉 <가능한 사랑>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깊이 있게 연결 지은 이 글은 여기서만 보기 아깝네요. 신문 문화면에 실려도 손색이 없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6-09-29 10:19   좋아요 0 | URL
2시간 40분이 훌쩍 가기는 하더라고요. 조만간 넷플릭스에서도 하겠지만 극장에서 보는 게 더 좋은 영화 같습니다.

그나저나 과찬 감사합니다. 서재가 알라딘 신문 문화면이 아니겠습니까!? ㅎㅎ

다락방 2026-09-30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다가 의식의 흐름이 저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읽다가 같은 시기의 노동자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귀족들 말고, 부르주아 말고, 그리고 부르주아가 보는 돈 욕심 내는 노동자들 말고, 실제 노동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화자 쓸데없는 망상 계속하는 거 보면서 진짜, 노동해라!! 했으니까요.

올려주신 이야기 읽으면서, 미옥이 고운 남자 상우에게 빠져드는게 인상깊은데 그런데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저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처지의 사람에게 색다른 매력에 이끌리는 걸로 친다면, 미옥이 상우에게 빠진 것처럼, 근육질의 육체 노동자 마틴 에덴 에게 빠져버린 부자 여성이 있었죠! 그러나 결국은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돈이 사랑에 아주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계급은 곧 돈이니까요.

언제나처럼 멋진 글입니다!

잠자냥 2026-09-30 10:03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의 의식은 귀족들의 벨 에포크를 헤매고
화자의 의식은 망상 속 여인들을 헤메고
잠자냥&다락방의 의식은 노동자들의 벨 에포크를 헤매고
미옥의 의식은 상우의 매끈함을 헤매고
다락방의 또 다른 의식은 근육남의 전완근을 헤매고...... ㅋㅋ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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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에포크는 결국 귀족들만의 그것이 아닐까 씁쓸한 기분. 화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잃어버린 시절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여인들을 향한 사랑, 그 노스텔지어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그리고 화자가 나이 든 연상의 여인에게 빠져드는 것은 결국 일종의 모성애에 대힌 갈망?(엄마 뽀뽀바라기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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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평등 -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지음, 장경덕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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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임금뿐만 아니라 최고 임금의 한도도 정해야 한다.”(피케티) 소득과 부의 재분배(평등)뿐만 아니라 “존엄성 지위 존중 인정 명예 등의 범주에서도 평등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샌델). 학력주의/능력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도 귀 기울여야 할 내용. 그런데 인간의 이기심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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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9-23 10: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샌델 : 설사 완벽하게 실현되었을지라도 능력주의에는 어두운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는 공동선을 부식시키지요. 왜 그런가 하면, 능력주의는 성공한 사람들이 그들의 성공을 그들 자신이 이룬 것으로 보고, 자신의 성공을 너무 깊이 받아들이며, 성공에 이르는 길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준 행운과 요행을 잊어버리고, 당신이 묘사한 것처럼 그들이 성공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도록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낸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능력주의를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위험한 것으로 보았지요. 그 위험은 정확히 이런 겁니다. 능력주의는 승자들뿐만 아니라 패자들 사이에서도 성공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키워 우리를 분열시킵니다. 능력주의는 승자들에게는 오만을, 뒤처진 이들에게는 수치심을 키워주지요.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들의 실패와 고투가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아마도 그렇게 설득될 겁니다. (p.68)

바람돌이 2026-09-23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케티는 안 읽어봤어요. 이 사람 21세기 자본도 읽을만할까요?
샌델의 능력주의 비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보다도 능력주의 신화가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제 주변도 마찬가지인걸요. 이 신화는 너무 강고해서 바뀌기가 어쩌면 자본주의보다 더 어려울것도 같던데요. 에휴....
어쨌든 잠자냥님, 머리 아픈 건 잠시 잊고 편안한 명절 보내세요.

잠자냥 2026-09-23 11:54   좋아요 3 | URL
<21세기 자본>은 저도 다 읽지는 않고 앞부분만 좀 읽었는데요, 도표도 많고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근데 피케티 이 사람... 이 책 읽으면서 참 신기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지구촌의 부자들이 진짜 너무 미워할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은 정말... 능력주의/학벌주의 깰 수 없을 거 같아요. 저도 샌델처럼 능력주의 비판하는 글 읽으면 맞아 그래 끄떡끄떡 하다가도.... 얼마나 거기에 젖어있는지 이 책에서 샌델이 비판하는 바로 그 행동/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더라고요. 에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님도 편안한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