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외 지음, 홍은택 외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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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점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으나 사서보기는 살짝 부담스럽고(책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덜컥 샀다가 후회하는 일 생길 까봐)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생각으로 기다렸던 책인데, 여차저차 하다 보니 결국 이제야 읽게 되었다. 참 잘 만든 책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예전에 이 책을 보고 블로그 이웃님이 책을 쓰고 사진을 찍은 사람도, 번역한 사람들도 모두 공을 들인 티가 난다고 했었는데, 딱 그 말이 맞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 아닌 타인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궁금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 같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 내가 먹은 것, 남들이 먹은 것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텔레비전은 온통 먹방 프로그램들로 넘친다. 나도 이따금 다른 집 식구들은 뭘 어떻게 먹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상류층으로 그려지는 가정의 식사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정말로 실제로 존재하는 상류층 가정에서는 저렇게 먹을까? 어떤 브랜드의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 이 책은 이런 호기심을 계급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물론 이것이 곧 계급적 차원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에서 다룬다. 전 세계 24개국을 돌며 총 30가족을 만나 그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모든 먹거리와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취재하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대륙의 가족이 소개된다. 새로운 가족이 소개될 때마다 그들이 먹는 일주일 분량의 음식 사진이 소개가 되는데, 이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일단 대단하다. 사진의 다음 페이지에는 육류는 어떤 종류로, 몇 그램에,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큼의 양인지 등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한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양과 먹는 종류를 취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쉽지만, 그 안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 풍속, 먹는 것에 담겨진 사회 계급적 문제 등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의 장점은 그저 그런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음식이 낭비되어 버려지는데, 어느 곳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굶어 죽고 있다.’라는 식의 주장을 저자들이 하지 않는다. 그저 기록을 통해 이런 사실을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게 한다.


이런 현실은 서유럽이나 일본, 미국과 같은 선진국 가정의 식탁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가정의 식탁 사진을 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는 문제다. 일주일 동안 식품에 지출하는 비용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사진과 저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더 잘살게 될수록 스스로 몸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유럽, 일본, 미국과 같은 나라일수록 가공식품이나 육류의 섭취가 더욱 늘어난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서유럽의 일부 가족은(예를 들면 프랑스 같은)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중요해, 덜 가공되고, 더 자연 친화적이며, 식사 시간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장의 현장으로 중요한 의미를 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완전히 부유해진 나라는 이제 건강에 신경을 쓰고, 이제 막 잘살게 된 나라는 건강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일단 풍요롭게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 것(이런 가족일수록 육류 섭취가 많고,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도 무척 많이 마신다)이 중요하고 그것도 아닌 최빈국은 그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반긴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대륙별로 선호하는 음식도 무척 다르고, 전통적인 음식도 참 다르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 엄청나게 재미있던 것은 그린란드 가족을 인터뷰한 장면이다. 가족 구성원 중 소년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더니 ‘북극곰’이라고 대답한 것- 그리고 바다표범 어느 부위가 맛있다고 했는데….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답이 그린란드 소년의 입에서는 일상처럼 나온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북극곰’이라고…. 이런 재미를 이 책에서는 흠뻑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아울러, 내 가족의 식탁, 나의 식탁은 어떤지 생각해 보게 된다. 좀 더 몸에 좋은 음식, 환경이나 지구에 덜 나쁜 영향을 주는 음식, 그런 것들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출간된 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10년 동안 세계 곳곳, 가정마다 식탁의 변화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느 지역에서는 틀림없이 10년 전에 비해 유전자조작 식품(또는 그 가공식품)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침투해 있을 것이다. 10년 뒤인 오늘날 식탁의 모습은 어떨지도 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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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11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넘 좋아합니다. 부부가 이런 멋진 작업을 하다니 남다른 부부같아요.

잠자냥 2017-07-11 14:02   좋아요 0 | URL
네, 부부가 정말 의미있는 작업을 함께한 것 같습니다. ㅎㅎ
 
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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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 국외자들, 뿌리가 뽑힌 채 흔들리고 떠도는 이들에 대한 따뜻하고 연민어린 시선.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놓치지 않고 되짚어보는 묵직한 시선.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문화적 소재들을 매개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엮어 나가는 상상력 등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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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 - 정원 아래서 외 5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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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은 <권력과 영광>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책을 읽다 보면 첫 작품만으로도 홀딱 반하는 작가가 있는데 그레이엄 그린이 바로 그랬다. <권력과 영광>은 무척 독특하다. 배경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로, 황량한 멕시코를 중심으로 그 장소보다 더 황량한 인물이 나온다. 이른바 ‘위스키 사제’라는 인물로 그는 위스키에 절어 사는 '타락한' 신부이다. 이 작품이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에 반한 나는 그 뒤 <제3의 사나이>를 통해 그레이엄 그린을 다시 만났다.

<제3의 사나이>는 동명의 영화로 매우 유명하다. <제3의 사나이>에서는 ‘위스키 사제’와 견줄만한 또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바로 ‘해리 라임’이라는 인물인데, 그 또한 ‘위스키 사제’ 못지않게 복잡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작품 또한 특유의 우수에 찬 황량함, 그러면서도 묘하게 낭만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굉장히 이질적이다. <권력과 영광>은 타락한 신부-그러나 그 타락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의 고뇌와 방황을 쫓는 순수문학에 가깝다면 <제3의 사나이>는 하나의 추리소설로, 장르 소설을 읽는 대중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문학성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레이엄 그린의 단편 모음집인 <정원 아래서 외>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다른 두 장편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단편집은 저 두 장편의 모든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장장 930페이지, 총 52편의 단편 가운데 어떤 작품들은 <권력과 영광>계열의 작품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고뇌와 고통, 공포 또는 두려움을 담아 인간 실존의 문제를 그려냈다. 또 다른 한 축에는 <제3의 사나이>계열로, 스릴러 같은 재미와 반전을 담았으면서도 그 안에서 마찬가지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담고 있다. <정원 아래서 외 52편>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아, 이런 단편들을 쓰면서 <권력과 영광> 또는 <제3의 사나이> 같은 장편을 썼겠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권력과 영광> 및 <제3의 사나이>도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열린책들'과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전부이다. 좀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싹트는 시점에 바로 이 엄청난 단편집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단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올해 1월) 정말이지 소름이 돋았다. 곧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꼬박 반년이 걸렸다. 한꺼번에 다 읽기는 뭐해서 하루에 두 편씩 읽기로 계획을 세웠다. 중간 중간 다른 책도 읽다보니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읽은 보람이 있다. 어떤 단편은 필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리 저쪽’ ‘파괴자들’ ‘8월에는 저렴하다’ ‘남편 좀 빌려도 돼요?’ ‘정원 아래서’ 등이 먼저 떠오른다. 그레이엄 그린 자신은 ‘다리 저쪽’을 가장 잘 쓴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지는 않았던데 나는 사실 이 작품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의 52편의 단편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꿈속에서 꾸는 꿈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꿈은 몽환적이다. 모호하다.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도 때때로 앞뒤 연결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그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춘다. 꿈속의 인물들이 하는 행동에는 ‘왜?’라는 질문에 어떤 동기랄까, 그 인과를 좀처럼 뚜렷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 속 인물들이 그렇다. 그들은 경계가 모호하다. ‘신부’라는 고결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락의 상징인 ‘위스키’에 취해 사는 ‘위스키 사제’처럼(사실 이 사제에게는 숨겨놓은 딸이 있다. 이 딸은 어쩌면 그의 원죄이리라), 선악의 경계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렇기에 행동의 동기도 애매하다. 때로는 그 자신의 정체성도 모호하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뚜렷하게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 ‘파괴자들’의 소년들은 이유 없이 마을 영감의 집을 부순다. 파괴적인 그 행동에는 딱히 꼬집어 정의 내릴만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소년들은 부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그 행동의 동기는 딱히 설명할 수 없어도, 계획만큼은 치밀하다. 소년들의 이런 파괴적인 행동에 영감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소년들은 그런 영감을 보며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저 재미로 그랬다고 하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집요하고, 어떤 물질적 이득을 바랐다고 볼 수도 없다.

여기 오기 전에는 다리를 건너면 인생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색과 태양 빛 그리고 – 내 생각으로는- 사랑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거라곤 밤새 내린 비로 웅덩이가 괸 널따란 진흙 길, 지저분한 개들, 침실에서 나는 냄새와 바퀴벌레뿐이었다. 사랑 비슷한 게 있다면 상업학교의 열려 있는 문 정도였다. 거기에선 예쁘장하게 생긴 혼혈 여자애들이 오전 내내 앉아서 타이핑 교육을 받았다. 타닥 타닥 타다닥. 아마 그 애들 또한 꿈을, 다리 저쪽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는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생이 훨씬 더 호화롭고 세련되고 즐거우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그레이엄 그린, '다리 저쪽', <정원 아래서 외>,134쪽


<다리 저쪽>의 한 구절이다. 백만장자로 짐작되는 한 남자가 볼품없는 잡종 개와 함께 멕시코 한 국경 지역 마을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그는 아마도 유럽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나 숨어 지내는 신세인 것 같다. 이 멕시코 지역에서는 뇌물을 잔뜩 주면 신분을 숨기고 잠시나마 머물 수 있다. 그는 다리 저쪽,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숨어 지내는 이 지역보다는 좀 더 나아 보이는 다리 저쪽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마치 그곳이 자신이 떠나온, 실제 인생, 즉 화려하고 즐겁고 온갖 멋진 일들이 일어나는 진짜 삶이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그의 곁을 지키는 볼품없는 개 한 마리는 늘 그에게 발길로 걷어차인다. 그를 찾아왔던 형사들은 개가 불쌍해서인지, 또는 그가 다리 건너 저쪽 미국땅으로 오도록 유인하기 위함인지 그가 없는 사이, 개를 데리고 ‘다리 저쪽’으로 건너가 버린다. 전에 키우던 개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잡종이라면서 구박하던 그의 개, 그는 자신의 개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국경을 넘어 ‘다리 저쪽’으로 건너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가 ‘다리 저쪽’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훨씬 더 호화롭고 세련된, 진짜 삶이 존재하는 그런 곳일까? 그는 툭하면 발로 걷어차던 그 개를 무사히 찾았을까?

이 작품에는 인생의 온갖 쓸쓸함과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리 저쪽 사람들은 이쪽을 동경하고, 또 이쪽에서는 다리 저쪽을 동경한다. 마치 서로 그곳에 진짜 삶이, 멋진 삶이 있으리라고 상상하면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멕시코와 미국, 완전히 다른 나라이지만 사실 그 마을들은 크게 차이가 없다. 그저 국경 지대의 낡고 쇠락한 마을일뿐이다. 어쩌면 인생이 그렇듯이 말이다. 또 다른 단편 ‘8월에는 저렴하다’에서도 이런 인생의 비애와 쓸쓸함은 고스란히 재현된다. 8월, 절정의 여름휴가 기간이 끝난 뒤에, 모든 것이 저렴해진 어느 휴가지에 한 노인과 남편을 집에 두고 홀로 여행을 온 중년의 여인. 그들이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예기치 않은,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 순서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8월에는 모든 것이 저렴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 쓰레기도 치웠지만, 다 줍지는 못해서 바닷가에 굴러다니고 있는 바랜 쓰레기들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한없이 남루하다.

그레이엄 그린의 단편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실제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또 자기가 그렇듯이 상대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때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마저 제대로 알지 못한다(‘남편 좀 빌려줄래요?). 그들은 그렇기에 사랑에 곧잘 실패하고, 부부관계를 비롯한 가족,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종교적 믿음마저도 온전히 갖출 수 없으며, 일에 실패하고, 단 한 순간의 욕망(일회성 만남 같은)이나 아주 작은 소망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달음질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모두 그렇지 않은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런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빚어내는 일들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없이 슬프기도 하며, 때로는 악의로 가득 차기도 한다. 그런 인물들이 마치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레이엄 그린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극심한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이미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과 의사는 치료의 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우울증과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절망의 결과물들이 바로 이 찬란한 작품들이다. 고통에서 빚어낸 결과물. 그렇기에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진실’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작품에서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피츠제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때로는 헤밍웨이나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의 작품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단, 그 모든 작품들을 꿈속에서 읽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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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7-07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다양한 독서 세계를 알려주시니
제 독서 시야가 넓어지려 하네요.^^

잠자냥 2017-07-07 10:56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아닙니다. 저는 거의 소설에만 빠져 있는걸요. 암튼 감사합니다. ^^

nama 2017-07-07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영미소설시간에 읽은 <사건의 핵심>을 아직도 마음 속에 품고 있답니다. 그레이엄 그린 셰계에 일단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죠.^^

잠자냥 2017-07-07 14:1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더 많은 독자들이 그레이엄 그린의 마력에 빠지기를 바라며.. ^^

cyrus 2017-07-0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 그린이 했던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글쓰기는 치료의 형태이다.” 그린은 언행일치를 보여준 훌륭한 작가였습니다. ^^

잠자냥 2017-07-07 15:2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정말로 그레이엄 그린에게 글쓰는 훌륭한 치유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린에게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글쓰기가 그렇겠지요. ㅎㅎ
 
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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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으로 처음 읽은 책이다. 그 뒤로 그의 작품을 야금야금 찾아 읽게 되었으니,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나를 로베르토 볼라뇨로 이어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제는 꽤 지난 일이긴한데, 로베르토 볼라뇨가 국내에 처음 출간될 즈음 열린책들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666원짜리 버즈북도 발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어떤 작가이기에 이토록 크게 알리는 것일까 궁금해서 살짝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내 흥미는 사그라졌다. 볼라뇨는 칠레 출신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바로 그 수식어 때문에 나는 흥미가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라틴아메리카나 스페인어권 문학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든지 ‘환상문학’ 등등의 수식어가 이쪽 문학에 많이 붙던데 내가 그런 문학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칠레’ 출신 ‘마르케스’ ‘보르헤스’의 뒤를 잇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의 작품은 몇 년 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변에서 누군가가 추천하기에 그럼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심정으로-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는데……. 어라? 재미있네? 작품이 워낙 잘 읽히기도 해서 금세 읽었다. 책장을 덮었을 즈음에는 볼라뇨의 다른 작품도 웬만하면 다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을 다 마련하고 싶은 욕심까지 들었달까.

이 작품은 사실 환상문학, 마술적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 <아이스링크>를 받아 들었을 때는 추리소설인가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추리소설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추리 형식을 빌려왔지만 그 얼개 안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소외받은, 평범한 이들의 삶, 주변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볼라뇨 문학의 특징은 독자 흥미를 끌고자 ‘추리’ 비슷한 구조를 빌려와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런 형식을 통해 전하려는 주제는 주로 주목받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이들의 삶이다.

이야기는 한 저택의 아이스링크와 관련 있다. 무대는 스페인 Z시로 스페인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누리아’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Z시 공무원 ‘엔리크’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엔리크는 누리아를 보고 반해 그녀만을 위해 아이스링크를 짓는다. 물론 공무원 신분을 남용해 아무도 모르는 대저택에 문제의 아이스링크를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아이스링크는 엔리크와 누리아만의 공간이 될 수는 없다. 그 비밀을 아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엔리크와 모란, 가스파르 세 남자의 시점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며 ‘아이스링크’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화자가 되기에 한 사건을 보고 서술하는 내용은 제각각이고 관점도 다르다. 이런 방식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장치를 통해 주변부의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면서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게 보여준다.

<아이스링크>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데뷔작이다. 아주 놀랄 만큼 대단한 명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이스링크>이후 작품들을 궁금하게 하는 힘은 분명 지녔다. 굉장한 대작이라고 일컫는 <2666>도 있던데, 이 작품까지도 언젠가는 읽어볼 생각이다.


내가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 해도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독서의 폭을 넓히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 '환상문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개인적인 거부감 때문에 이 작품을 계속 읽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원히 로베르토 볼라뇨를 모르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 책을 권한 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볼라뇨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암튼, 우연한 기회에 독서의 지평선을 넓히는 일은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는 드문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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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7-0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볼라뇨 작품 세계에 빠져보려고 두권 구입했는데 자꾸 미뤄지네요.
리뷰 읽다보니 얼른 읽어야겠어요.^^

잠자냥 2017-07-06 11:07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을 사셨는지 궁금하네요. ^^

yamoo 2017-07-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폴스타프 님 서재에서 자주 뵙게되더라구요~ 인사를 해야될거 같아서뤼^^;; 근데 볼라뇨 소설이 재밌단 말씀이지요.. 하~ 고것참 고민되네요. 바르가스 요사 작품들을 모으는 중인데 벌러뇨가 재밌는 작가라면..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사재기를 해야 할 듯해서요. 이 작가 작품도 많더라구요..ㅜㅜ

잠자냥 2017-07-06 11:17   좋아요 0 | URL
하하하. 안녕하세요. 네 제가 폴스타프 님 서재를 애정해서 가장 많은 하트와 댓글을 남기는 서재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 암튼 반갑고요. 네 이 작가 작품수도 많죠... 심지어 열린책들에서 전집도 뽀대나게 나와있습니다. ^^;; 그거 사고 싶지만 참고 있는 중이에요... ㅠㅠ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386543
 

어릴 적 나는 사회과부도와 지리부도 보는 걸 좋아했다. 지구본을 들여다보며 어떤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아했다. 사회과부도를 보며 특히 좋아했던 일은 각 나라의 국기와 수도를 외우는 거였다. 지도 보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혼자 퀴즈를 내고 혼자 푸는 놀이를 즐겨했다. 예를 들면 ‘캐나다의 수도는? 오타와! 딩동댕’ 이런 식. 이런 취향 때문이었는지 세계사나 세계지리 같은 과목을 중 고등학생 때 꽤 좋아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수능에 세계사나 세계지리 문제는 고작 몇 문제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은 확 줄어들었다.

비단 대학입학 시험에 나오는 비중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나라에서 세계사나 세계지리 를 홀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게 있어 세계란 곧 미국, 아니면 일본, 더 확장한다면 중국이나 북한 정도인 듯하다. 텔레비전 뉴스를 봐도 그렇고 신문의 국제란을 봐도 그렇고, ‘세계’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은 참으로 미미하다. 오로지 국가나 민족뿐이다. 그렇게도 글로벌을 부르짖는데, 우리에게 세계란 고작 미국 아니면 일본이다. 대미, 대일 의존도가 높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과연 이런 현상이 옳을까?

전에 읽었던 르 몽드 관련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 신문의 제호는 르 몽드(Le Monde, 세계)이지 라 나시옹(La Nation, 국가 또는 민족)이 아닙니다.’ 라는. 한편으로는 신문이나 언론, 방송이 궁극적으로 나아갈 길은 국가나 민족 자기 안의 일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관계 전문시사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의 ‘르몽드 세계사’는 세계 = 미국, 일본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반면 세계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쉽게 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시리즈는 일단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다. 각 주제에 대한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심층적이다. 무엇보다 지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도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도 반짝반짝 빛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설명한 것의 부록 느낌으로 지도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 그 자체가 이미 독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다루고 있는 이슈도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핵심적인 일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환경,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 기아와 부채에 시달리는 남반구 대륙들의 문제점, 물질적인 면에서는 풍요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붕괴되고 있는 서구 사회의 문제점, 경제적인 성장을 부쩍 이뤘지만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 아시아의 국가들, 그리고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들의 이야기까지.

특히 한국의 위치가 지금 어떤지 가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한국은 여전히 국제 사회에서 주요 분쟁 지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인 지뢰 생산을 중단했는데도, 한반도에서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여전히 대인지뢰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으며, 수도권에서는 물을 펑펑 쓰는데 알고 보면 한국은 전 지구적으로 물 스트레스 국가에 속한다는 사실도 또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여전히, 대미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깨달으면서 굴욕적인 감정이 들기도 했다. 거의 뭐 친미국가로 표기되어 있는 지도를 보니 뭐랄까... 정말 주권이 없는 국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소말리아 인근 해협에는 해적이 날뛰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말리아 위쪽으로 독립을 했으나 아직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소말릴란드’가 존재한다는 것 알게 되었고(소말릴란드 뭔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나라 같다;). 캐나다는 원주민인 이누이트에게 땅을 많이 되돌려 주어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고,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원주민과 함께 하는 나라들이 속속 캐나다의 사례를 본 받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감동을 받기도 했다. 분쟁 지역의 원인을 보면, ‘인간의 탐욕(권력에 대한 욕심, 천연 자원에 대한 욕심, 땅에 대한 욕심)’ 때문인 경우가 허다한데 인간이 이렇게 욕심을 조금 줄이면 ‘모두가 평화로운’ 상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책값이 좀 부담스러워서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빌려 읽을까 싶었는데, 두고두고 보면 좋을 것 같아 책을 샀다.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이렇게 개괄적으로 읽고 난 뒤 책꽂이에 꽂아두고 궁금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찾아보기에도 딱 좋은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1권에서 끝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난 그 책들도 하나씩 사들여놨다. 그리고 흥미롭게 읽은 뒤, 필요할 때마다 또 꺼내보곤 한다. 아무리 출판 불황이라고 해도, 좋은 책, 잘 만들어진 책은 결국 빛나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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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7-07-04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권을 다 모셔오던 날 무지 뿌듯했었죠. 물론 아직도 완독을 못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남경태님의 <종횡무진 서양사>부터 읽고 기초지식 쌓은 다음에 이 시리즈로 좀더 심화학습 해봐야지 싶습니다. ^^

잠자냥 2017-07-04 18:0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있는 것만 봐도 어쩐지 배가 부른 시리즈라고 할까요? ㅎㅎ
가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럴 땐 막 안타깝더라고요. 이 책은 두고두고 봐도 좋은데 왜 팔았을까!! 이런 생각에서 말이에요. ㅎㅎ

보빠 2017-07-04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나랑 취미가 같네요...사회과부도 저도 엄청 좋아했는데....괜히 엄청 반갑네요

잠자냥 2017-07-05 09:50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군요. 참 재미난 취미죠? ㅎㅎ 어린 시절 보던 사회과부도 버리지 말걸 그랬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