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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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을 줄은 몰랐다. 책이 출간됐을 때만 하더라도 솔직히 ‘응? 책까지 냈어?’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하나이다. 더욱이 나 또한 이 책에서 말하듯이 왜 네 번이나 성폭행당할 때까지 참았을까? 생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김지은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김지은과 안희정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일을 네 차례나 당할 때까지 참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책까지 내야만 했을까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난 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김지은입니다> 출간 소식이 의아했던 까닭은, 김지은 그녀 자신은 이 일을 누구보다도 잊고 싶어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일과 함께 모두가 그녀를 잊고 일상으로, 안희정에게 성폭력을 당하기 이전, 미투를 하기 이전의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지은은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2차 가해를 하는 이들 때문에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직 멀어 보인다. 김지은 편에 서서 증언을 해주었던 동료들 또한 부당한 해고나 교묘한 압력 등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 미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 그에 비해 안희정 편에 서서 증언하거나, 가해자를 편들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 이들은 그 후 빠르게 승진을 하는 등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또는 그 권력에 기생해서 보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성범죄자 안희정은 어떤가? 감옥에 갔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끝장 났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한국 사회가 보란 듯이 증언해주고 있다. 그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특별히 감옥에서 풀려나 장례를 치르고, 전직, 현직 총리부터 시작해 정치권의 여러 인사들이 조문을 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문재인은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박힌 조화를 성범죄자에게 버젓이 보내기도 했다. 대통령이 성범죄를 저질러 형을 살고 있는 이에게 조화를 보내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장례식장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자임을 과시하며 오랜만에 정치 놀이를 즐겼던 안희정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자신이 건재하다고 생각하며 이렇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치 예전에  정치자금 문제로 감옥 다녀온 것을 영웅시하고 자랑으로 여겼던 것처럼(이 책에는 그런 안희정의 태도와 그런 그를 신격화한 안희정 캠프의 분위기가 묘사되어 있다) 또 그렇게 여길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미투당한 가련한 피해자 안희정으로 정신 승리하면서, 또 그런 그를 그렇게 옹호해줄 수많은 안희정 지지자들은 그가 형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그 밑으로 속속 모여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성범죄를 저지른 자인데, 한국인들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나 지금 한국이 성범죄를 저지른 권력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안희정에 이어 오거돈, 박원순에 이르기까지 충남지사, 부산시장, 서울시장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자들의 성범죄가 잇따라 일어났다. 심지어 안희정은 1심에서 무죄를 받기도 했다. 박원순 사태를 보면 한국은 정말 가해자 천국이다.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피해호소인’이라는 참으로 신기한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가해자인 박원순의 죄를 덮어주기에 집권 여당을 비롯해 그의 지지자들까지 합쳐 모두가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하기에 정신이 없다. 미통당 성폭력특위 위원으로 이수정 교수가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는 이수정 교수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까지 그들은 마다하지 않고 있다.

나는 좀 궁금하다.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지하고, 안희정을 지지하고, 박원순을 지지한다는 그들은 무엇 때문에 문재인과 민주당과 안희정과 박원순을 지지했는가? 십대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그들의 외모와 스타성을 보고 지지하고 좋아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18세 이상의 성인이 어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그 정당의 정치인을 좋아하고 지지한다는 것은 그 정당의 이념, 기치, 그 정당에 속한 정치인의 생각, 신념, 가치관, 태도 등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이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런 정당이나 정치인이 평소 자신들이 주장한 신념이나 가치관에 어긋난 행동과 태도를 보였을 때는 마땅히 질책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애정이자 믿음이자 이성에 근거한 지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과 안희정과 박원순 같은 이른바 이 땅에서 ‘진보’라고 부르는 그들이 평소에 내세웠던 기치는 그들이 실제로 보여준 행보와 얼마나 어긋났는가? 미투를 지지한다고 말했던 안희정은 뒤에서는 김지은 뿐만 아니라 여러 여성들을 성희롱, 성추행했으며, 인권변호사이자, 누구보다 여성 인권에 더 민감했던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은 성추행으로 고소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다면 충격과 함께 실망과 배신감이 먼저 들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마땅한 감정이 아닐까? 박원순이 그럴 리가 없다고, 안희정이 그럴 리가 없다고 내내 가해자들을 두둔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은 물론 그 정치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잇따른 성범죄에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집권 여당, 그래서 이수정 교수까지 놓치고 마는 여당의 안일한 태도를 비난하고 꾸짖는 게 그 당의 지지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미통당에 합류했다고 이수정 교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아끼는 민주당의 혁신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렇게 말하면 나 또한 미통당 지지자로 몰아가겠지만 미안하다, 나는 미통당 증오하는 사람이다. 박원순의 죽음에 누구보다 심란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는 계속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숨기고 덮고, 어서 빨리 이 사태가 가라앉기만을 바라며,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기만을 바라며, 병폐의 근원을 바로잡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김지은입니다>의 김지은은 미투로 안희정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 기록을 이렇게 책으로 남겼다. 가해자의 목소리와 가해자를 편드는 수많은 2차 가해자의 목소리가 더 큰 세상에서 피해자의 이런 기록은 더없이 소중하다. 김지은의 이 기록이 없었다면 나는 안희정을 성폭력을 저지른 성범죄자로만 기억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착취와 인권침해까지 일상적으로 자행한 참으로 저열한 인간이다. 2차 가해에 동참한 이들은 김지은이 안희정을 마치 아이돌처럼 좋아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고 말한다. 모두 안희정 측이 만들어낸 유언비어이다. 오히려 안희정은 김지은을 24시간 내내 대기시키며 종 부리듯이, 사적인 일까지 아무렇지 않게 시켰다. 김지은은 안희정의 비서이자 그의 아내 민주원의 비서이기도 했다. 연예인 매니저가 집안일까지 거들거나, 그의 가족 운전기사 노릇까지 했다는 기사가 나면 사람들은 그토록 비분강개하면서 왜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일을 시키고, 아내 민주원의 운전사 노릇까지 한 김지은에게는 오히려 안희정을 좋아해서 스스로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까 이상한 여자라고 몰아세우는 걸까? 그들의 선택적 판단에는 참으로 기가 찰뿐이다.

김지은은 권력에 도취된 자들, 대통령을 만들려고 모였다는 이들, 대통령 캠프라는 이름 아래, 불공정함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정과 불의를 폭로하기도 하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사로운 사건으로 치부된다. “너희들은 대통령을 만들러 온 거야, 원래 정치권은 이래”라며 폭력은 묵인되고, 또 그들 자신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노래방에서 여자 후배를 옆에 앉혀 술을 따르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머리나 뺨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고, 볼을 비비거나 껴안기도 한다. 술자리를 지키라며 새벽까지 집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며 신사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을 홀렸던 안희정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만 만들면 이 모든 폭력과 부정과 불의는 다 묵인해도 되는 일일까?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매뉴얼을 알게 되고 매우 놀랐습니다. 거의 24시간 대기 업무에 문자와 카톡으로 지시를 하고, 높은 신뢰 관계를 요구하는 비서에게 업무 이후에 온갖 개인적인 심부름을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며 성폭력까지 일삼았다는 것은 공공기권의 기관장으로서 도덕성은 물론 인간성까지 파괴한 끔찍한 처사입니다. (<김지은입니다>, 140쪽)


안희정 캠프에서 일하며 그의 권력에 취해 또 다른 작은 권력자들이 된 그들은 김지은의 미투가 있은 뒤에는 거짓이야기를 만들어 유포하는 데 앞장선다. 2차 피해의 대표적 가해자 23명 중에는 현직 국회의원 보좌진, 안희정 지지 페이스북 운영자, 안희정 경선 캠프의 전 온라인 담당자도 포함되어 있고, 그들 중에는 실형을 선고 받은 이도 있다. 그런데 안희정 사건이 후로도 박원순의 성추행 추문에 또 다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차 가해자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거나 피해자 변호인단이 의도가 있어서 꾸며낸 일이라는 둥 온갖 유언비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기록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 측은 성범죄 사건을 ‘합의에 의한 관계’ ‘불륜 관계’로 정의하면서 ‘법적 문제’에서 ‘도덕적 문제’로 전환시키고, ‘꽃뱀’ 담론을 끌어와 생존자를 가정 파탄을 초래한 ‘가해자’로 안희정과 그의 주변 사람들을 피해자로 이미지화 했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페미니즘 담론을 재해석하여 성폭력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전략을 취하며 성폭력 문제를 개인화했다. 가해자의 가족, 특히 아내들은 적극적으로 2차 가해에 동참한다. 한국 사회는 오직 가족과 관련해서 의리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여성의 명예와 평판은 여전히 정상가족을 잘 유지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에게 친엄마가 나서서 침묵을 종용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안희정의 아내 민주원은 대표적인 2차 가해자이다. 민주원은 상화원의 부부 침실에 김지은이 들어왔다고 위증하며 김지은을 이상한 여자로 몰아갔으나, 그날 상화원의 숙소 옥상에서 안희정은 다른 여성을 만났다. 안희정이 미처 착신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 여성이 보낸 “옥상에서 2차를 기대하고 있어요”라는 문자가 김지은의 수행폰으로 연동되어 날아 온 것이다. 실제로 검찰 조사와 재판 중 안희정은 그날 밤 그 여성을 옥상에서 만나고 돌아왔다고 진술했고, 전화 내역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민주원은 안희정과 계속 같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안희정이 옥상에서 다른 여성을 만나고 온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 김지은은 이 책에서 위증한 이들도 처벌받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나 또한 그렇다. 민주원의 위증은 그냥 그렇게 조용히 파묻고 말 것인가?

안희정은 감옥에 가 있지만 그의 권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에 따르면 미투 이후 모든 과정은 위력 그 자체였다. 안희정은 전지적 상사로, 그가 누군가를 자를 때는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한마디면 됐다. 별정직은 도지사에게 절대적인 채용과 면직 권한이 있었기에 지사의 말 한마디면 바로 해고 할 수 있었다. 안희정은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지위를 갖고 있었다. 안희정은 30대에 대통령을 만들었고, 이후 재선 도지사, 유력 대선 후보로서 권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친분 관계를 맺어왔다.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촘촘했다. 관계가 곧 권력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안희정은 도지사직을 내려놓았지만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안희정의 증인으로 나섰던 일부 사람들의 직급이 급상승했다. 오랜 시간 대의라는 명분으로 뭉쳐 주류로 살아온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과 관계 맺은 광범위한 사람들이 건재한 이 사회에서 김지은 같은 피해자가 기댈 곳은 정의롭게 나서주는 소수의 몇 사람뿐이다.


상사에게서 교수에게서 선배에게서 힘의 작동 원리에 따라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함께 적용되는 것이 위력이다. 위력의 무서운 점은 위협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굽혀진다는 것이다. 위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다.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 무형적인 힘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경우는 물론,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사를 제어할 경우도 포함된다. (<김지은입니다>, 174쪽)


최초 언론 고발 이후 안희정은 합의되지 않은 관계였음을 인정했고,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으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범죄에 사용한 휴대폰을 파기했다.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고, 증거를 스스로 없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 심문을 하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 재판부가 김지은에게 했던 것처럼 안희정에게도 16시간을 질문했다면 1심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안희정의 권력은 그렇게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처음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선 김지은의 선배는 지속적으로 압박과 위협을 받았다. 정치권의 의원들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종용받았고, 또 다른 선배 역시 자녀의 어린이집에 누군가 접근해 오는 일을 겪어 경찰에 신고했다. 증언을 한 후배는 모해위증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나중에 무죄 받음). 그리고 지금까지도 불이익과 부당함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성폭력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권력자이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 편에 서는 일은 쉽다. 잃을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해자와 연대하기보다는 가해자 편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를 한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 (<김지은입니다>, 296쪽) 


사람들은 김지은에게 묻는다. 꼭 얼굴을 드러냈어야 했느냐고, 김지은은 말한다.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 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문제 제기를 한 후 그녀가 조용히 묻히고 사건도 사라지는 것이었다고. ‘나’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또 다른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는 결과가 가장 두려웠다고. 왜 네 번이나 당했느냐고도 묻는다. 김지은은 이렇게 묻고 싶다고 말한다. “왜 직접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가?” “왜 세 번이나 입장을 번복하였는가? 일관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검찰 출두 직후 휴대폰을 파기했는가?” 왜 법원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가해자 안희정에게 이렇게 묻기보다는 피해자에게 힐난하듯이 질책하듯이 비난하듯이 질문하는 것일까? 피해자는 모든 것을 잃는 싸움을 하고도 만신창이가 되는 반면 가해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여성들은 김지은의 모습으로 살아가곤 한다. 성폭력을 일상폭력으로 불러야 할 만큼 직장에서, 가정에서, 연인관계에서, 학교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김지은입니다>는 그런 모든 이들을 위한 용기 있는 기록이다. 가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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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10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수정 교수 욕하는 글들을 보고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이수정 교수가 그간 쌓아온 업적이 ‘미통당의 성폭력대책 특별위원회에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아닌게 되더라고요. 순전히 자기 노력과 실력 경험으로 또 여성을 비롯한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보를 이어간 사람인데, 그런 분이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에 들어가게 된건 당연한 처사 아닌가요. 그 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정치인이 되지는 않을거라는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가 계속 실려야 하다니...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어요.

잠자냥 님의 이 책에 대한 리뷰 기다렸는데 읽게 되어 너무 좋네요.
왜 네 번이나 참았냐, 왜 그토록 오래 말 안하고 있었냐 등의 말들을 하는 2차가해자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입니다. 잠자냥 님과 함께 더불어 권합니다.

잠자냥 2020-08-10 14:20   좋아요 0 | URL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민주당에 독이 된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렇게 무턱대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암튼 요즘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행태는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책을 뒤늦게라도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책 보내 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저도 어쩌면 은근한 가해자 시선을 거두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끔찍하기도 합니다.

독서괭 2020-08-1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읽고 있는데 잠자냥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잠자냥 2020-08-11 12:30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끝까지 잘 읽으시고 주변 분에게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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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 이 책을 잡는 순간 이 기막힌 스토리에 누구라도 마지막 페이지를 보지 않고서는 책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 소름끼치도록 잘 짜여진 이야기. 그저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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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9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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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드렁한 게으름뱅이 해미시가 로흐두 마을 사람들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드러난 에피소드이자, (독자들이) 해미시가 가장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닐지. 암튼 여름에는 코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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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대산세계문학총서 159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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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진짜 있을까 말도 안돼..하며 읽다가도 너무나 바보 같이 순수한 ‘가스통’의 삶에 나도 모르게 뭉클해진다.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구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엔도 슈사쿠의 세계관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무신론자인 나조차도 신을 믿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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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8-0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사 놓았는데, 기대 만발입니다.

잠자냥 2020-08-07 13:58   좋아요 0 | URL
넵 역시 좋았습니다!
 
맥티그 을유세계문학전집 102
프랭크 노리스 지음, 김욱동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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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소설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거의 알고 있을 김동인의 <감자>에서 그려지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돈과 성(性) 같은 욕망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다 마침내 타락하고 마는, 심지어는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타락의 끝판을 보여주는 인간군상들. 김동인이라는 작가 자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이 짧은 단편의 자연주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자연주의의 대가인 에밀 졸라의 수많은 작품들, <루공마카르 총서> 시리즈의 내용들도 하나 같이 이야기를 달리 할뿐 주인공들은 환경이 나빠지거나 좋지 못한 유전적 기질, 지나친 탐욕과 성적 욕망 등으로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에밀 졸라를 매우 좋아했고, 그의 작품을 본보기처럼 삼았던, 그래서 미국의 에밀 졸라로 불리는 ‘프랭크 노리스’의 <맥티그>에는 이런 자연주의 모든 특성이 담겨 있다. 주인공 ‘맥티그’는 폴크 거리에 기거하는 가난하고 투박한 치과 의사로 아주 커다란(동물처럼 느껴질 정도의) 덩치에 아둔한 머리, 타인 앞에 내놓기도 부끄러운 천박한 취향 등등 도저히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다. 여성은 물론이려니와 남성 사이에서도 그다지 친구로 삼고 싶지 않은 그런 인간 유형이랄까. 그런데 그토록 아둔하다는 이 인간이 어쩌다 치과 의사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는 정식으로 치의학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어릴 적에 어쩌다가 치과 일을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냈고 그 곁에서 이른바 ‘야매’로 치과 일을 익혔을 뿐이다. 얼마나 무식한(?) 치료법인지, 짐승 같은 엄청난 힘을 자랑하면서 이를 손으로 뽑아내기도 한다.

어쨌든 야매일지언정 치과 의사 기술을 갖춘 그는 크게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간다. 딱히 취향도 없어서 유일한 휴식이라는 게 그저 싸구려 음식을 먹고 스팀 맥주를 마시고 콘서티나를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로맨스가 찾아온다. 친구 ‘마커스’가 이가 아픈 자기 사촌 ‘트리나’를 맥티그에게 보낸 것이다. 무엇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 아둔한 남자는 ‘트리나’라는 존재에도 처음에는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왠지 귀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치과 치료라는 것이 어찌 보면 은근히 남의 속살(?)을 보고 만지게 되는 작업이라 이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에 맥티그는 트리나의 여성적인 매력에 서서히 굴복해간다.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 트리나가 매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맥티그를 도저히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 이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게다가 트리나와 마커스는 사촌이면서도 남들이 보기에는 공식적인 연인이나 마찬가지 사이다. 마커스도 트리나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맥티그 같은 사람이 그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있으랴. 그럼에도 사랑에 달뜬 맥티그는 마치 사자가 구석에 몰린 쥐 한 마리를 꿀꺽 집어 삼킬 듯한 태도로 트리나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이 끔찍한 남자의 고백에 낭만은커녕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트리나는 덜덜 떨면서 빨리 치과를 벗어날 생각만 한다. 그 이후로도 맥티그를 생각할 때면 큼직하고 각진 머리, 두드러진 턱, 금발 머리카락다발, 둔하고 느릿한 몸, 잘 돌아가지 않는 아둔한 지능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치료를 하러 치과에 자주 찾아갈수록 그의 육체적인 힘에는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끌려가는 것이다. 정말 동물적인 본능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에 이르는데,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더욱이 결혼과 동시에 트리나는 놀랍게도 복권이 당첨되어 5천 달러라는 큰돈이 생긴다. 트리나 같은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은커녕 로맨스도 꿈꾸지 못했던 맥티그가 결혼에 이어 아내가 복권에 당첨되어 5천 달러라는 돈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 앞에 펼쳐질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자연주의’에 근거한 소설이다. 그들은 애초에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으로 착각한 동물적 본능으로 결합한 부부이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이 두 가지 사실만 봐도 두 사람의 인생이 순탄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더라도 딱히 행복하지는 않을 것임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마커스’라는 인물도 존재한다. 그는 트리나를 선뜻 맥티그에게 ‘양보’하지만 트리나가 복권에 당첨되어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속으로 자신의 그 양보의 미덕을 크게 후회한다. 트리나를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저 5천 달러는 내 손에 있을 텐데!(대체 왜 부인의 돈을 자기 돈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하며 그 날아간 기회를 몹시 안타까워하고, 그런 질투와 시기는 급기야 맥티그를 향한 증오로 변한다. 맥티그가 마커스 그 자신이 누려 마땅했을 행운을 모두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주어진 5천 달러에 맥티그-트리나-마커스라는 기묘한 삼각관계는 이 세 사람의 인생을 예상 밖으로 이끌어 간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트리나는 희생양인가 싶지만, 트리나라는 인물도 두 남자와 견주어 별다를 바 없는 인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결 더 기이하다. 5천 달러라는 돈이 생겼다면 마땅히 좀 더 누리고 살 것 같은데, 그녀는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늘 돈을 아끼는 구두쇠이긴 했지만 복권에 당첨되고 나서는 특별히 더 인색해진다. 그녀는 그 엄청난 행운이 그들을 타락시키고 낭비벽에 빠지게 만들까봐 두려운 나머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버린다. 5천 달러는 돈은 신탁으로 맡겨두고 이자만 받아서 살아가면서 전보다 더 전전긍긍하며 궁핍하게 살아간다. 그런 아내를 맥티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서서히 그녀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트리나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러할 거 같다.


"아, 사랑스러운 내 돈, 사랑스러운 내 돈!” 그녀가 속삭였다. “널 너무 사랑해! 모조리 내 것이야. 동전 한 푼까지. 그 누구도 절대로 네게 손댈 순 없어. 절대로. 내가 널 얻으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노예처럼 일해서 너를 모았는데! 더 모아야지, 더, 더, 더 많이 모을 거야. 매일매일 조금씩.” (354쪽)


여기에 또 다른 기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마리아’와 지독한 구두쇠인 유대인 노인 ‘저코우’ 커플이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는 조금 특이한 취미가 있었으니, 그녀는 늘 자신이 오래 전에 아주 호화롭게 살았으며 자기 집에는 황금 식기 세트가 있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다. 저코우 노인은 마리아에게 늘 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더니 어느새 가까워져 마리아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가 반한 것은 결코 마리아가 아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황금 식기 세트에 홀딱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이 기괴한 부부의 인생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다. 어차피 그 두 사람은 있지도 않은 황금식기에 미쳐 있기 때문이다.

<맥티그>에는 “이 모든 사건이 있지도 않은 황금 식기 세트 때문에 일어났다니.”라며 트리나가 한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있지도 않은 마리아의 ‘황금 식기 세트’는 트리나, 맥티그 부부 사이에도 존재한다. 5천 달러를 가졌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 큰돈. 그 돈 앞에서 맥티그와 트리나, 마커스 이 세 사람은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며 파국으로 치달아 간다. 좋지 못한 유전적 기질, 그런 이들에게 주어진 뜻하지 않은 큰돈, 인간의 끝을 모르는 탐욕. 나날이 나빠지는 생활환경. 그런 상황 안에서 인간은 얼마나 밑바닥으로 타락해 갈 수 있는지 <맥티크>는 섬뜩하게 그려나간다. 프랭크 노리스는 서른둘이라는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만일 그가 한 삼십년만 더 살았더라도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에 버금갈 작품을 여럿 남기지 않았을까 섣불리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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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0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멋진 리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하는 책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리뷰를 보고
나니 굳이 읽...

암튼 낭중에 중고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구요.

잠자냥 2020-08-05 14:15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이야기 초반에 속할 뿐입니다~ ㅎㅎ
나중에 중고로 나오면 꼭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