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3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해미시에게 여자들의 육탄공격이 이어지는 사이에 그와 프리실라의 관계는 어찌되려는지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일어나는 사건은 양념일뿐? ㅎㅎ 참, ‘외지인의 죽음’ 편은 다 읽고 나서 보면 표지 그림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지 못해 드디어 이북리더기(크레마 사운드)를 마련했다. 사둔 종이책이 많아서 그것부터 읽느라 이북리더기에 이렇다 할 작품을 구매해서 다운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처음으로 산 책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다. 전자책 시장은 종이책에 비해 아직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서 사고 싶은 책이 드문데, 다행히 열린책들 세계문학시리즈에서는 좀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더라.

이북리더기로 한참 재미나게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읽고 있을 때였다. 3분의 2쯤 읽었을 때였나? 그러니까 거의 발단-전개-위기를 지나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이었는데, 책을 읽던 중 잠시 딴 짓을 하다가 다시 리더기를 집어 들었더니, 기계가 화면 보호 상태에서 멈춰버렸다. 단추란 단추는 모두 눌러보면서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려고 온갖 애를 썼는데도 먹통이다. 아아아아- 이것이 바로 시스템 다운이란 말인가.

리셋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바늘이 필요했다. 아주 작은 그 구멍 안에 바늘을 집어넣어야만 했다. 아니, 그런데 집에 바늘이 없다! 아아아아.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날 밤 나는 리셋 버튼을 누르기 위해, 그리하여 굳게 봉인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절정에 다시 접속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궁금증을 가득 안은 채 잠들어야만 했다. 내일 꼭 바늘을 준비하리라…….

다음날, 옷핀을 구해서 리셋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크레마 사운드가 다시 작동한다. 자, 이제 다시 읽어볼까! 기쁜 마음으로 읽던 페이지를 찾는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기가 읽던 페이지를 찾아가는가 싶더니 배터리가 0%라면서 아예 전원이 나가고 말았다. 화면 보호 상태로 밤새 켜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하아. 거참, 나는 이북리더기를 충전하느라 몇 시간을 또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까닭은, 바늘을 찾고, 충전하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절정, 드디어 진실에 닿을 무렵, 잘 작동하던 기기가 난데없이 다운되고, 가까스로 리셋에 성공하니, 이제는 충전을 해야만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태. 바로 이 상황이 혹시, 이 책, 이 작품의 진실에 닿지 못하게 하려는, 아니면 그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려고 하는 어떤 거대한 세력이 기획한 하나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진실에 닿기까지 ‘아직 10여 쪽’- 그런데 그걸 이 지구의 어떤 거대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력이 방해하는 것이다.

망상이 지나치다고?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흠뻑 이야기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세상이 끝나기까지 아직 10억년>이 바로 그런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몰두하던 천문학자 말랴노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일이 시작된다. 아침부터 전화가 계속 잘못 걸려오고, 주문하지도 않은 식료품이 배달되지를 않나, 급기야 아내의 친구라면서 낯선(그렇지만 미모의) 여인이 찾아오기도 한다. 게다가 그 여인은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로도 모자라, 이웃에 살던 스네고보이가 말랴노프를 만난 뒤로 시체로 발견된다. 이런 모든 정황은 말랴노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형사는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 분위기이다. 그런데다가 이게 웬일인가?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여인, 아내의 친구는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운 나쁜 어느 하루의 해프닝일까? 만일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독하게 운이 나쁜 하루, 그렇지만 결국 다 좋게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혹시 이 모든 게 모종의 세력이 당신에게 가하고 있는 암묵적인 협박이라면?

동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진실에 점차 다가가는 말랴노프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4차원 문명이 오래전부터 말랴노프를 비롯해 바인가르텐, 구바르, 스네고보이, 글로호프 등을 관찰(명백히는 감시)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문학자, 정밀 공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등등 그들 모두는 ‘학자’로 지적 업무에 종사하면서 모두 현재 어떤 중요한 실험이나 발견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4차원 문명은 그들의 연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봐왔다.

그들의 연구가 어떤 지점에 이를 것 같으면(그러니까 절정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도출할 과정에 다다를 즈음이면!), 4차원 문명은 그 연구를 저지하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바인가르텐에게는 어느 날 문득 연구소 소장 자리가 제의되거나 연구소에서 바캉스 스캔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의 주의를 흩트리기 위해 희귀한 동전이 담긴 동전함의 발견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4차원 문명이 정한 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4차원 문명은 그들이 만일 협조한다면 모든 속물적 욕망을 기꺼이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면서 당장 바인가르텐에게 선물을 주는데, 그것은 직업 우표 수집가가 아니면 가치를 상상도 못할 정도로 희귀한 우표가 가득 담긴 꾸러미였다.

혹시 이런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난다면 어떨까? 당신이 하는 어떤 일을 누군가가 내내 감시하다가, 그 일을 견제하기 위해 당신의 온갖 속물적인 욕망을 채워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하던 그 위대한(?) 일을 계속해나갈 것인가 아니면, 속물적 욕망이 가득 채워진 안락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에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선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미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그들’의 협박에 굴복해 속물적인 욕망을 받아들이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인물도 있다. 여전히 눈앞에 펼쳐진 그런 유혹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인물도 있고, 끝까지 그들에게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 인물도 있다.

그렇지만 그 4차원 문명,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존재했던 ‘9인 연합’이라는 존재에 맞서 싸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인류의 모든 과학 업적을 수집하여 자신들이 지배’하고 ‘인류가 과학 기술의 진보를 자기 파괴의 목적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일에 목적이 있는 그 전지전능한 이들에 맞서 싸우기는 쉽지 않다. 말랴노프의 말처럼 ‘만일 그들이 어떤 전투적인 외계인이거나 아니면 4차원의 세계로부터 온 흡혈귀 같은 침략자들’이었다면 상황은 훨씬 편했으리라. 그러면 ‘적어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였을 테니까. 그러나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철저하게 혼자서 파멸할 운명이다.
 
때문에 4차원 문명에게 항복하고 ‘변절자’와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한 인물에게는 비난의 감정보다는 연민이 든다.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항복한다는 것은 과히 유쾌한 일이 아니죠. 과거에 사람들은 항복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을 택했죠. 무슨 고문이나 감방 생활, 아니면 처형당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수치스러워서 그랬지요.’라고 말하는 그. ‘용감한 자들 가운데서 자기만이 비겁한 게 수치스러’워서 다른 이들도 모두 똑같이 비겁하길 바라는 그. ‘자신의 추한 모습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는’ 그. 하지만 그가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서진 육체, 부서진 영혼…….

거의 모든 SF 작품이 그렇듯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또한 SF 외피를 입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소련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행되는 감시와 처벌. 체제에 위협이 되는 학자나 과학자 같은 지식인 무리, 협박과 회유. 그 속의 변절자 등등. “우리 앞에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야. 그들의 무기는 은폐야. 그러므로 우리의 무기는 폭로야.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동포들에게 이 사건을 폭로하는 거야. 우리의 말을 믿을 정도로 상상력이 있고 또 한편 학계의 고위층 간부들을 설득할 만한 권위가 있는 동료들을 먼저 선정해야 해.”라는 베체로프스키의 말은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전지전능한 우주의 어떤 존재와 나약한 지구인의 싸움이 아니라, 공고한 체제와 그 체제를 위협하는 인물들과의 싸움임을, 그것의 은유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류는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 미지의 4차원 문명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4차원 문명의 영역으로까지 침범했고, 따라서 그들은 인류의 진보를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모두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로 태어났는데, 대개의 인간이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다 죽고 마는 것은 모두 저 거대한 우주. 4차원 문명, 9인 연합이 그려놓은 ‘큰 그림’의 하나가 아닐까. 우주의 항상성을 지키기 위해 보통의 인간들은 소시민으로 살다 죽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의 이쪽 편에 남아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맥주와 보드까를 섞어 마시’며 ‘승진이나 소문 등에 관해 주절거리고, 자동차를 사기 위해 저축을 하고, 가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 따분하고 시시한 공식 연구에 손을 대며’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 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말랴노프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이르까’와 토끼 같은 자식 ‘보브까’가 있고 그의 그런 소시민적 선택으로 아이는 무사히 자랄 것이다. 그러나 말랴노프가 생각하듯이 아이는 절대로 그가 바라던 유형의 청년으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에겐 이미 ‘자식이 그래 주길 바랄 권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시민으로서 살게 될 자신을 그리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랴노프의 마지막 말은 무척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절대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중대한 발견을 할 수도 있었지만 너를 위해서 ....... >한 아빠일 것이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이 2018-09-14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 1년 고민하고 크레마 사운드 구매했어요. 전자책이 가벼워서 정말 좋긴한데 말씀하신 것 처럼 작동이 멈추는 일이 엄청 자주 생긴답니다. ㅜㅜ 그래서 저는 리셋버튼용 클립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녀요. 안정적으로 작동하진 않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지금은 전자책 구매량이 실제책 구매량보다 훨씬 많아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억년‘ 은 학자들끼리 대화할 때 학자들 속마음 유추할 수 있게 서술된 부분이 재밌었어요. 술 다 떨어져서 아쉬워 하는 장면 특히 좀 기억에 남아요. 온 우주가 저지할만큼 대단한 학자인데도 너무나 소심한 밀랴노프한테도 좀 정이 갔고요.
저는 공상과학영화를 무지 좋아하는데, 결국 내가 봤던 무수한 영화도 이런 소설같은 훌륭한 선행 텍스트(?)가 있어서 탄생했구나... 란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억압된 체제에서도 많은 소련 예술가들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 활동인 ‘창작‘ 을 했구나!! 란 생각에 잠시 좀 가슴이 벅차기도 했어요. (ㅋㅋㅋ 너무 거창해버려)

잠자냥 2018-09-14 15:4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옷핀을 크레마 사운도 보관하는 가방에 넣어두었습니다. ㅋㅋ
전자책은 무엇보다 밤에 불끄고도 읽을 수 있어서 편리하더라고요. 암튼 저도 야금야금 전자책을 사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보관과 휴대가 편해서 ㅎㅎ

말랴노프 참 인간적이라서 저도 정이 가더라고요. 마지막 선택도 짠하고... 맞습니다. 억압된 체제에서도 소련 예술가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창작 활동을 했지요! ㅎㅎㅎ


희선 2018-09-15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기까지 이런저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도 끝까지 보셨으니 누군가의 방해는 물리쳤네요 누군가는 누굴지... 어떤 책은그 책과 비슷한 일을 일어나게도 하지 않나 싶어요 그건 그저 우연이고 잠깐 기계가 잘못 움직인 것일 뿐이겠지만... 오싹한 일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을 돌려줬는데 그게 처리가 안 된 적 있어요 그 책에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 그 책에는 이 책을 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쓰여 있기도 해요

많은 사람이 4차원 문명, 9인 연합을 안다면 함께 싸우기라도 할 텐데, 몇 사람만 감시 당하고 하던 걸 그만둬야 한다면 힘들겠습니다 동료 찾기 어렵겠지만 아주 없지 않겠지요 소련에 살던 지식인이나 예술가 살기 어려웠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사람, 인류한테 중요한 게 뭔지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잠자냥 2018-09-15 10:02   좋아요 1 | URL
네, 하하하. 끝까지 무사히 잘 읽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도서관에 반납한 책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일 왠지 오싹하네요. 심지어 그 책에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니 더... ㅎㅎ 말씀하신 대로 책에 몰입하다 보면 정말로 그 책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는 것처럼 착시효과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것도 다 독서병의 하나일까요? ㅎㅎ

진지하게 써주신 댓글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감독 중에 루이스 부뉴엘이 있다. 부뉴엘의 영화 중 <어느 하녀의 일기>는 옥타브 미르보의 <어느 하녀의 일기>를 원작으로 한다. 사실 이 책은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보다 레아 세이두 주연의 동명 영화에 힘입어 (국내에는) 더 잘 알려진 것 같다. 영화가 개봉했던 2015년에야 원작이 번역되어 출간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원작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무려 3번이나 된다. 장 르누아르(1946)와 루이스 부뉴엘(1964)에 이어 레아 세이두 주연, 브누와 자코 감독 작품(2015)에 이르기까지.


2015년 작 <어느 하녀의 일기>가 평가에서는 가장 박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레아 세아두가 셀레스틴 역을 맡았음에도 이 2015년 작에는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앞선 두 영화에 비해 원작에 가장 충실하다고 하니, 조금 궁금해진다. 이 작품을 보기에 앞서, 원작인 옥타브 미르보의 <어느 하녀의 일기>를 읽어보는 게 좋겠지. 보통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면 영화가 원작을 망치는 일이 더 흔한데, 루이스 부뉴엘의 <어느 하녀의 일기>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물론, 내가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라 100%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루이스 부뉴엘의 <어느 하녀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때는 1930년대 프랑스. 영화가 시작하면 도회적인 느낌의 예쁘장한 한 여자가 어느 역에 내린다. 그녀의 이름은 셀레스틴(잔느 모로). 파리에서 온 이 여인은 시골의 한 대저택에 하녀로 고용된 참이다. 그녀를 마중 나온 남자는 그 집의 하인인 조제프. 그는 처음 보는 셀레스틴에게 ‘내숭이나 떤다’며 상당히 퉁명스럽고 무례하게 군다.

그녀를 태운 마차는 한참 시골길을 달려 드디어 저택에 도착한다. 그 저택에는 집주인 ‘라부르’와 그의 딸 ‘몽테일 부인’ 그리고 사위인 ‘몽테일’이 기거하고 있다. 그밖에도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들과 일꾼 조제프가 이 집안의 주요 구성원이다. 셀레스틴은 저택에 도착한 첫날부터 신경질적인 몽테일 부인과 그녀의 탐욕스러운 남편, 점잖아 보이지만 실은 기이한(?) 취미를 갖고 있는 라부르를 만나보며 당혹해한다. 게다가 자신을 시종일관 퉁명스럽게 대하는 조제프에, 몽테일과 사이가 좋지 않아 담장 너머로 쉴 새 없이 쓰레기를 던지는 이웃의 퇴역군인까지. 그녀는 이 저택에서 견뎌나가는 일이 사뭇 걱정스럽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의 기벽이 하나씩 드러난다. 몽테일 부인을 비롯하여 여자들도 어딘가 좀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누가 더 찌질한지 서로 내기라도 하듯 흉한 모습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 점잖기만 한 라부르 노인은 딸 몰래 ‘페티쉬’에 심취했고 사위인 몽테일은 사냥광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치마만 둘렀다면 침을 질질 흘린다. 그는 이 집안에서 일하는 모든 여자들을 임신시킬 기세다. 하인 조제프 또한 만만치 않다. 어린 소녀를 향해 건전하지 못한 눈빛을 보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이런 사정이니 이 남자들이 미모의 셀레스틴에게 뜨거운 욕망의 시선을 보내는 일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술 더 떠 이웃의 퇴역군인까지 셀레스틴에게 추파를 던진다. 셀레스틴은 이런 남자들의 욕망을 간파하고 그들을 서서히 조종하기 시작한다.

브뉴엘의 작품 속 상류층은 점잖은 외양과는 달리 마음속은 불건전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어느 하녀의 일기>에 나오는 이들도 대부분이 그렇다. 이 작품에서는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인간의 모습이 계급을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하인 조제프는 극우 파시스트로 입만 열면 유태인을 모조리 쏴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그의 방은 신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뽐내기라도 하듯 온갖 종교적인 장치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린 소녀를 향한 그 끈적끈적한 시선은 어찌할 것인가?

영화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적 타락과 위선을 꼬집어온 루이스 브뉴엘은 하녀 ‘셀레스틴’의 눈을 통해 비단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하층계급까지 포함한 ‘인간’의 위선과 파시스트들이 애국자로 추앙받는 프랑스 사회의 타락을 조롱한다. 브뉴엘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관객은 인간들의 비루한 욕망과 뒤틀린 성적 욕망을 엿보면서 키득키득 웃게 된다. 하녀 셀레스틴이 관객을 대신해 그들의 욕망을 조롱하고 비꼬며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쩐지 이 영화의 끝은 씁쓸하다. 영화 말미 셀레스틴이 짓던 공허한 표정이 고스란히 관객의 마음에 감정이입 되는 기분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극우 파시스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견고해서 깨뜨리기 어렵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조금은 허망하다. FIN 자막과 함께 검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친다. 오직 하늘만이 그런 인간들을 응징할 수 있단 의미일까. 



 루이스 부뉴엘, <어느 하녀의 일기>(1964), 세 가지 버전 포스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가 곧 영화로 개봉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예전에 짧게 써둔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아, 이런 내용이었지- <체실 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읽은 책이었다. 처음 읽은 책은, 이언 매큐언의 단편을 모은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었다. 사람들은 <속죄>가 무척 좋다고 하던데 <속죄>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 <어톤먼트>가 솔직히 너무 별로여서 읽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던, 그래서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이언 매큐언은 인간의 병적인 증세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가 싶었다. '성장'에 두려움을 겪는 주인공을 묘사하거나, 스스로 성장해가면서 자기만의 유년 시절을 파괴하는 인물을 그리는 등 성장통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전체적으로 조금 기괴한 느낌도 든다. 그의 작품은 읽고 나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체실 비치에서>도 그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그들은 이제 갓 결혼한 부부이며,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다. 그런데 행복으로 가득찬 신혼여행이어야 할 텐데, 그들의 얼굴엔 언뜻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플로렌스는 그녀대로, 에드워드는 그대로 ‘첫날밤’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쪽이 더 심한 듯하다. 연애를 하면서도 에드워드와의 키스나 신체 접촉에 늘 망설이던(혹은 혐오감을 드러내던) 그녀는 드디어 첫날밤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치르려니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 한편 에드워드는 1년을 기다려 드디어 플로렌스와 함께 밤을 보낼 그 순간이 왔는데,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할 텐데’라는 부담으로 숨이 막힐 지경.

요즘은 어떻게 보면 이렇게 첫날밤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생소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그럴 법하다. ‘그 시절은 성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공포의 순간은 다가왔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플로렌스가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그들은 신혼 첫날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들을 퍼부으며 그날 밤으로 헤어지게 된다. 첫날밤에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런 문제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을까 좀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단순히 섹스 문제가 아니라 ‘첫날밤’이라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중 하나를 포기하고 달아난 플로렌스와 그런 그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에드워드를 통해 결국 ‘인간이 어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의 어려움, 또는 공포’ 이런 것들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 작품을 두고 무척 아름답다, 서정적이다 이런 칭찬도 많던데,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언 매큐언은 나랑은 좀 잘 맞지 않는 작가인 듯. 뭐 이런 결론을 내리며 책장을 덮은 기억이 난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영화는 어떻게 그려질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볼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이 2018-09-1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잠자냥님. 음... 잠자냥님 리뷰에 적힌 내용만 봐선 영 제 취향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네요. 그냥 안 읽어야겠어요. 영화는 궁금해서 나중에 볼 지도 모르겠지만.

잠자냥 2018-09-12 18: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상하게 이언 매큐언은 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이 책 읽은 뒤로 <토요일>,<암스테르담>, <시멘트 가든>까지는 읽어봤는데...그냥 읽고 나면 기분 나쁘고 뭐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최근에 나온 <넛셀>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냥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어요. 하하하...

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닥 마음이 가지 않는 작가가 있는데, 이언 매큐언하고 필립 로스가 저는 영.... ㅎㅎ

영화 <어톤먼트> 보셨어요? 그 영화도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데 저는 그 영화의 진짜 주인공 ‘브라이오니‘(저는 광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ㅋㅋㅋ) 캐릭터가 너무 싫어서;; 도저히 감정 이입이 안 되더라고요. 원작인 <속죄>는 안 읽어봤지만 캐릭터를 그렇게 생생하게 만든 게 이언 매큐언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요? ㅎㅎㅎ

케이 2018-09-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좋아하던 남자에게 성폭행범 누명을 씌운단 영화 소개를 읽고 이 이야기를 직접 보면 너무 짜증나겠구나 싶어 아직도 안 보고 있습니다. ㅋㅋ 속죄는 개뿔. 그런 미친 짓은 하나님께도 용서받지 못할 짓이에요!! 흠.. 근데 저는 전쟁 중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는 약간 회의적인 거 같아요. 진짜 전쟁은 영화 ‘그을린 사랑‘ 이나 ‘풀메탈자켓‘ 에서 보여주는 모습 이상으로 지옥같을텐데, 남녀 사랑 이야기를 첨가하여 가끔 전쟁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좀 불만이기도 하고요.

잠자냥 2018-09-13 10: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 인물이 바로 광년이 ㅋㅋ ‘브라이오니‘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이 나중에 ‘속죄‘하는 방법도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민폐인 캐릭터. 그런데 그 인물 말고도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으로 헤어지는 두 남녀(영화 속에서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사랑도 저는 공감이 안 가더라고요. 저도 아마 전쟁 중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더 애틋해지는(?) 사랑이 엄청 나이브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전쟁 문학이나 전쟁 영화가 보통 너무 뻔한 스토리로 전개되는 것도 좀 그렇고요. ㅎㅎ

Falstaff 2018-09-1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속죄>는 아예 영화를 안 보시고 읽는 편이 좋았을 듯합니다.
영화 먼저 보신 분들이 책까지 덩달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은‘ 보다 조금 더 좋은 책인데요. ^^;
<어톤먼트>는 한 영문학자가 뽑은, 원작을 가장 망해먹은 영화들 가운데 꼭대기에 있더랍니다. ㅎㅎㅎ

잠자냥 2018-09-13 15:06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원작을 가장 망해먹은 영화 ㅋㅋㅋㅋ
영화의 무지막지한 잔상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책은 영원히 안 읽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변화와 발전(때로는 한계점)을 강준만 특유의 온갖 자료 섭렵 생생 성실한 글쓰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다른 100자평 읽다보니 강준만도 ‘오빠‘아니냐며 여자의 말할 권리조차 오빠 지식인이 빼앗는다고 비판하는데..글쎄 이 책 읽어보긴 한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