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가 곧 영화로 개봉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예전에 짧게 써둔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아, 이런 내용이었지- <체실 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읽은 책이었다. 처음 읽은 책은, 이언 매큐언의 단편을 모은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었다. 사람들은 <속죄>가 무척 좋다고 하던데 <속죄>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 <어톤먼트>가 솔직히 너무 별로여서 읽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던, 그래서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이언 매큐언은 인간의 병적인 증세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가 싶었다. '성장'에 두려움을 겪는 주인공을 묘사하거나, 스스로 성장해가면서 자기만의 유년 시절을 파괴하는 인물을 그리는 등 성장통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전체적으로 조금 기괴한 느낌도 든다. 그의 작품은 읽고 나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체실 비치에서>도 그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그들은 이제 갓 결혼한 부부이며,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다. 그런데 행복으로 가득찬 신혼여행이어야 할 텐데, 그들의 얼굴엔 언뜻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플로렌스는 그녀대로, 에드워드는 그대로 ‘첫날밤’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쪽이 더 심한 듯하다. 연애를 하면서도 에드워드와의 키스나 신체 접촉에 늘 망설이던(혹은 혐오감을 드러내던) 그녀는 드디어 첫날밤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치르려니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 한편 에드워드는 1년을 기다려 드디어 플로렌스와 함께 밤을 보낼 그 순간이 왔는데,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할 텐데’라는 부담으로 숨이 막힐 지경.

요즘은 어떻게 보면 이렇게 첫날밤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생소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그럴 법하다. ‘그 시절은 성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공포의 순간은 다가왔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플로렌스가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그들은 신혼 첫날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들을 퍼부으며 그날 밤으로 헤어지게 된다. 첫날밤에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런 문제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을까 좀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단순히 섹스 문제가 아니라 ‘첫날밤’이라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중 하나를 포기하고 달아난 플로렌스와 그런 그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에드워드를 통해 결국 ‘인간이 어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의 어려움, 또는 공포’ 이런 것들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 작품을 두고 무척 아름답다, 서정적이다 이런 칭찬도 많던데,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언 매큐언은 나랑은 좀 잘 맞지 않는 작가인 듯. 뭐 이런 결론을 내리며 책장을 덮은 기억이 난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영화는 어떻게 그려질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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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18-09-1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잠자냥님. 음... 잠자냥님 리뷰에 적힌 내용만 봐선 영 제 취향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네요. 그냥 안 읽어야겠어요. 영화는 궁금해서 나중에 볼 지도 모르겠지만.

잠자냥 2018-09-12 18: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상하게 이언 매큐언은 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이 책 읽은 뒤로 <토요일>,<암스테르담>, <시멘트 가든>까지는 읽어봤는데...그냥 읽고 나면 기분 나쁘고 뭐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최근에 나온 <넛셀>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냥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어요. 하하하...

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닥 마음이 가지 않는 작가가 있는데, 이언 매큐언하고 필립 로스가 저는 영.... ㅎㅎ

영화 <어톤먼트> 보셨어요? 그 영화도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데 저는 그 영화의 진짜 주인공 ‘브라이오니‘(저는 광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ㅋㅋㅋ) 캐릭터가 너무 싫어서;; 도저히 감정 이입이 안 되더라고요. 원작인 <속죄>는 안 읽어봤지만 캐릭터를 그렇게 생생하게 만든 게 이언 매큐언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요? ㅎㅎㅎ

케이 2018-09-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좋아하던 남자에게 성폭행범 누명을 씌운단 영화 소개를 읽고 이 이야기를 직접 보면 너무 짜증나겠구나 싶어 아직도 안 보고 있습니다. ㅋㅋ 속죄는 개뿔. 그런 미친 짓은 하나님께도 용서받지 못할 짓이에요!! 흠.. 근데 저는 전쟁 중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는 약간 회의적인 거 같아요. 진짜 전쟁은 영화 ‘그을린 사랑‘ 이나 ‘풀메탈자켓‘ 에서 보여주는 모습 이상으로 지옥같을텐데, 남녀 사랑 이야기를 첨가하여 가끔 전쟁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좀 불만이기도 하고요.

잠자냥 2018-09-13 10: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 인물이 바로 광년이 ㅋㅋ ‘브라이오니‘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이 나중에 ‘속죄‘하는 방법도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민폐인 캐릭터. 그런데 그 인물 말고도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으로 헤어지는 두 남녀(영화 속에서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사랑도 저는 공감이 안 가더라고요. 저도 아마 전쟁 중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더 애틋해지는(?) 사랑이 엄청 나이브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전쟁 문학이나 전쟁 영화가 보통 너무 뻔한 스토리로 전개되는 것도 좀 그렇고요. ㅎㅎ

Falstaff 2018-09-1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속죄>는 아예 영화를 안 보시고 읽는 편이 좋았을 듯합니다.
영화 먼저 보신 분들이 책까지 덩달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은‘ 보다 조금 더 좋은 책인데요. ^^;
<어톤먼트>는 한 영문학자가 뽑은, 원작을 가장 망해먹은 영화들 가운데 꼭대기에 있더랍니다. ㅎㅎㅎ

잠자냥 2018-09-13 15:06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원작을 가장 망해먹은 영화 ㅋㅋㅋㅋ
영화의 무지막지한 잔상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책은 영원히 안 읽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