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가 곧 영화로 개봉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예전에 짧게 써둔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아, 이런 내용이었지- <체실 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읽은 책이었다. 처음 읽은 책은, 이언 매큐언의 단편을 모은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었다. 사람들은 <속죄>가 무척 좋다고 하던데 <속죄>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 <어톤먼트>가 솔직히 너무 별로여서 읽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던, 그래서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이언 매큐언은 인간의 병적인 증세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가 싶었다. '성장'에 두려움을 겪는 주인공을 묘사하거나, 스스로 성장해가면서 자기만의 유년 시절을 파괴하는 인물을 그리는 등 성장통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전체적으로 조금 기괴한 느낌도 든다. 그의 작품은 읽고 나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체실 비치에서>도 그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그들은 이제 갓 결혼한 부부이며,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다. 그런데 행복으로 가득찬 신혼여행이어야 할 텐데, 그들의 얼굴엔 언뜻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플로렌스는 그녀대로, 에드워드는 그대로 ‘첫날밤’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쪽이 더 심한 듯하다. 연애를 하면서도 에드워드와의 키스나 신체 접촉에 늘 망설이던(혹은 혐오감을 드러내던) 그녀는 드디어 첫날밤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치르려니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 한편 에드워드는 1년을 기다려 드디어 플로렌스와 함께 밤을 보낼 그 순간이 왔는데,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할 텐데’라는 부담으로 숨이 막힐 지경.
요즘은 어떻게 보면 이렇게 첫날밤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생소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그럴 법하다. ‘그 시절은 성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공포의 순간은 다가왔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플로렌스가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그들은 신혼 첫날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들을 퍼부으며 그날 밤으로 헤어지게 된다. 첫날밤에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런 문제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을까 좀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단순히 섹스 문제가 아니라 ‘첫날밤’이라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중 하나를 포기하고 달아난 플로렌스와 그런 그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에드워드를 통해 결국 ‘인간이 어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의 어려움, 또는 공포’ 이런 것들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 작품을 두고 무척 아름답다, 서정적이다 이런 칭찬도 많던데,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언 매큐언은 나랑은 좀 잘 맞지 않는 작가인 듯. 뭐 이런 결론을 내리며 책장을 덮은 기억이 난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영화는 어떻게 그려질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