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감독 중에 루이스 부뉴엘이 있다. 부뉴엘의 영화 중 <어느 하녀의 일기>는 옥타브 미르보의 <어느 하녀의 일기>를 원작으로 한다. 사실 이 책은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보다 레아 세이두 주연의 동명 영화에 힘입어 (국내에는) 더 잘 알려진 것 같다. 영화가 개봉했던 2015년에야 원작이 번역되어 출간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원작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무려 3번이나 된다. 장 르누아르(1946)와 루이스 부뉴엘(1964)에 이어 레아 세이두 주연, 브누와 자코 감독 작품(2015)에 이르기까지.


2015년 작 <어느 하녀의 일기>가 평가에서는 가장 박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레아 세아두가 셀레스틴 역을 맡았음에도 이 2015년 작에는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앞선 두 영화에 비해 원작에 가장 충실하다고 하니, 조금 궁금해진다. 이 작품을 보기에 앞서, 원작인 옥타브 미르보의 <어느 하녀의 일기>를 읽어보는 게 좋겠지. 보통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면 영화가 원작을 망치는 일이 더 흔한데, 루이스 부뉴엘의 <어느 하녀의 일기>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물론, 내가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라 100%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루이스 부뉴엘의 <어느 하녀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때는 1930년대 프랑스. 영화가 시작하면 도회적인 느낌의 예쁘장한 한 여자가 어느 역에 내린다. 그녀의 이름은 셀레스틴(잔느 모로). 파리에서 온 이 여인은 시골의 한 대저택에 하녀로 고용된 참이다. 그녀를 마중 나온 남자는 그 집의 하인인 조제프. 그는 처음 보는 셀레스틴에게 ‘내숭이나 떤다’며 상당히 퉁명스럽고 무례하게 군다.

그녀를 태운 마차는 한참 시골길을 달려 드디어 저택에 도착한다. 그 저택에는 집주인 ‘라부르’와 그의 딸 ‘몽테일 부인’ 그리고 사위인 ‘몽테일’이 기거하고 있다. 그밖에도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들과 일꾼 조제프가 이 집안의 주요 구성원이다. 셀레스틴은 저택에 도착한 첫날부터 신경질적인 몽테일 부인과 그녀의 탐욕스러운 남편, 점잖아 보이지만 실은 기이한(?) 취미를 갖고 있는 라부르를 만나보며 당혹해한다. 게다가 자신을 시종일관 퉁명스럽게 대하는 조제프에, 몽테일과 사이가 좋지 않아 담장 너머로 쉴 새 없이 쓰레기를 던지는 이웃의 퇴역군인까지. 그녀는 이 저택에서 견뎌나가는 일이 사뭇 걱정스럽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의 기벽이 하나씩 드러난다. 몽테일 부인을 비롯하여 여자들도 어딘가 좀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누가 더 찌질한지 서로 내기라도 하듯 흉한 모습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 점잖기만 한 라부르 노인은 딸 몰래 ‘페티쉬’에 심취했고 사위인 몽테일은 사냥광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치마만 둘렀다면 침을 질질 흘린다. 그는 이 집안에서 일하는 모든 여자들을 임신시킬 기세다. 하인 조제프 또한 만만치 않다. 어린 소녀를 향해 건전하지 못한 눈빛을 보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이런 사정이니 이 남자들이 미모의 셀레스틴에게 뜨거운 욕망의 시선을 보내는 일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술 더 떠 이웃의 퇴역군인까지 셀레스틴에게 추파를 던진다. 셀레스틴은 이런 남자들의 욕망을 간파하고 그들을 서서히 조종하기 시작한다.

브뉴엘의 작품 속 상류층은 점잖은 외양과는 달리 마음속은 불건전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어느 하녀의 일기>에 나오는 이들도 대부분이 그렇다. 이 작품에서는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인간의 모습이 계급을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하인 조제프는 극우 파시스트로 입만 열면 유태인을 모조리 쏴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그의 방은 신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뽐내기라도 하듯 온갖 종교적인 장치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린 소녀를 향한 그 끈적끈적한 시선은 어찌할 것인가?

영화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적 타락과 위선을 꼬집어온 루이스 브뉴엘은 하녀 ‘셀레스틴’의 눈을 통해 비단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하층계급까지 포함한 ‘인간’의 위선과 파시스트들이 애국자로 추앙받는 프랑스 사회의 타락을 조롱한다. 브뉴엘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관객은 인간들의 비루한 욕망과 뒤틀린 성적 욕망을 엿보면서 키득키득 웃게 된다. 하녀 셀레스틴이 관객을 대신해 그들의 욕망을 조롱하고 비꼬며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쩐지 이 영화의 끝은 씁쓸하다. 영화 말미 셀레스틴이 짓던 공허한 표정이 고스란히 관객의 마음에 감정이입 되는 기분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극우 파시스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견고해서 깨뜨리기 어렵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조금은 허망하다. FIN 자막과 함께 검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친다. 오직 하늘만이 그런 인간들을 응징할 수 있단 의미일까. 



 루이스 부뉴엘, <어느 하녀의 일기>(1964), 세 가지 버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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