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6
리처드 예이츠 지음, 이삼출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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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이 이어져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아니, 이 작품을 쓴 리처드 예이츠가 바로 그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보물의 발견, 그 시작은 이렇다. 나는 좀 나이 들었을 때의 케이트 윈슬렛을 좋아한다. <타이타닉>을 찍었을 무렵이 아니라, <이터널 선샤인>이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이 두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부터의 케이트 윈슬렛. 이런 류의 행복하지 않은, 비극에 가까운 인물을 연기할 때 그 피폐한, 그늘진 얼굴과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가 주연으로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2008)도 보았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작품의 원작인 리처드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출간 되었을 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굳이 읽어야 하나? 볼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문학은 영화와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읽기를 선택했는데, 세상에나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을 내가 왜 여태 안 읽었던가. 탄식하고는 그이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장바구니에 담았다(아니나 다를까 국내에선 인기가 참~~ 없었던지 대부분 다 판권 소멸로 절판 상태라 중고로 구매. 그런데 중고 책도 많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줄거리는 딱히 크게 소개할 것이 없다(만 흥미진진하다). 1960년대 미국 교외의 중산층 마을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20대 초반에 만나 그야말로 불꽃 같은 사랑에 빠지고 곧 결혼해 이제 뉴욕시 외곽 지역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 프랭크와 에이프릴- 두 사람 다 주변에서 칭송할 만큼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데다가 귀여운 딸 하나, 아들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한데 왠지 그들의 결혼 생활은 시들대로 시든 듯한 느낌이다. 함께 생활한 지 몇십 년이 지난 커플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나이는 이제 20대 후반. 결혼한 지 7~8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 주변에 흐르는 이 무거운 공기는 무엇 때문일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엔 별 의미 없어 보이던 이 작품의 시작 부분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시작한다. 이 마을 구성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취미 삼아 연극 공연을 준비한다. 프랭크의 아내인 에이프릴도 이 모임의 구성원으로 이번 연극에서 무려 여주인공을 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프릴은 프랭크와 결혼하기 전, 한때 배우 지망생으로 뉴욕에서 알아주는 극예술 대학교를 다녔다. 에이프릴은 자못 연기에 자신감이 넘치고 그녀의 이력을 알고 있는 마을의 몇몇 사람들도 공연을 지켜보면서 “저 여자는 꽤 잘하는데.”라고 속삭이며 짐짓 아는 체를 한다. 스물아홉 살, 잿빛이 도는 금발에 훤칠한 그녀는 아마추어의 서투른 조명 아래서도 기품 있는 미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주위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연극은 혼자만의 모노드라마가 아니다. 거기서 불협화음이 시작된다. 상대역을 맡은 남자 주인공도 있으며 이런저런 어설픈 연기자들(이웃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한때 배우지망생이었던 에이프릴 혼자 아무리 기를 쓴다고 연극이 성공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지 않은가? 아뿔싸, 상대역의 남자 배우가 대사를 잊어서 버벅대기 시작하고 그 후로 연극은 엉망진창, 관람 온 여타 마을 사람들은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꿈지럭꿈지럭 하품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공연이 완전 실패했음을 객석에 앉아 아내의 연기를 지켜보던 프랭크 또한 안다. 그는 이미 마음이 불편하다. 공연이 끝난 후 에이프릴의 기분을 달래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하다. 아니나 다를까 연극이 끝나도 분장실에 홀로 남아, 돌아갈 생각이 없는 에이프릴- 사실 공연 후엔 늘 어울리던 이웃의 캠벨 부부와 한 잔 하기로 이미 약속했는데 아니 저 여자가 왜 갈 생각을 안 하는지?! 답답한 마음에 분장실로 찾아간 프랭크는 싸한 분위기에 좌불안석인데 결국 에이프릴의 심기를 건드려 두 사람은 폭발하고 만다.

상상하기 쉬운 장면이다. 한때는 배우를 꿈꾸던 여자, 옛 시절을 그리며 비록 비전문 배우들로 이루어진 극단에서 아마추어들의 연극이지만 무대 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자신만은 남들과 다르다는 평을 받으리라 기대했으나 별반 다를 바 없음을 확인 후 비참한 기분에 젖어 있는 여자. 남편은 아내의 그런 예민한 기질을 알기에 남편 된 도리로 달래줄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뭔가 울컥 짜증이 치솟고…. 그렇지만 사람들, 그러니까 이웃들 앞에서 좋은 남편으로 보여야 하므로 성실하고 다정다감하고 가정에 충실한 남편의 모습으로 한껏 연기하며 아내를 달래보지만, 아내는 이미 남편이란 작자의 본질을 십여 년 가까이 지켜봐 왔으므로 그의 서툴기만 한 연기가 역겨워 폭발하고 마는 그런 장면. 물론 모든 부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부부의 삶, 부부의 연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프랭크와 에이프릴 이 부부의 각본 없는 연기 또한 그렇게 흘러간다. 

에이프릴의 과거는 그렇다 치고 프랭크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2차 세계 대전 막바지 프랑스 전선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으며 명문대학을 나온 자신을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한 지식인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세상에 이렇게 멋진 놈이 또 없어! 단지 어쩌다 보니 가정을 꾸리기 위해 로봇처럼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뿐…. 비록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이사와 이 마을에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나가고는 있으나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 마을의 머저리들 대다수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믿는다. 한때 배우를 꿈꾸던 자신을 잊지 못한 채 자기는 여느 가정주부들과 다르다고 믿고 살아가는 에이프릴과 똑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들 앞에서는 좋은 이웃-성실하고 모범적이며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을 연기하는 데 진심이다. 이상적인 부부로 보이고자 전력을 다하면서 속으로는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자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다른가? 


지성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문제들을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처리하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시내에 나가 죽을 만큼 따분한 일을 하고 또 죽을 만큼 따분한 교외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이 이런 일보다 훨씬 더 부조리하고 더 큰 문제들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먹고사는 것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것이었다.(p.40)



프랭크는 지독하게 따분한 일을 하면서, 지독하게 따분한 교외에서 그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는 것’,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실체가 잘못 알고 있던 모습이거나 또는 도달하고자 꿈꾸는 초상이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비록 지금이라도 그런 자기 자신을, 자기의 참모습을 되찾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잊고 지낸 자기의 본모습을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연극이 끝난 후 말다툼을 하고는 내내 냉랭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이 퇴근 한 프랭크에게 한없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이상하다 이거 참, 뭔가 꿍꿍이가 있을 텐데, 프랭크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하다. 지난 며칠 동안 그토록 쌀쌀맞기 그지없던 아내가 내 생일이라고 이렇게 돌변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폭탄 발언을 한다. 프랭크! 우리, 이 기만적인 삶을 접고 파리로 떠나요..... 아니 뭐라고? 여기서 겨우 자리 잡았는데 모든 걸 다 버리고 파리로?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무작정 파리로 떠나자고? 여행아 아니라 완전한 이주를 제안하는 에이프릴. 프랭크는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유럽으로, 파리로 떠날 수 있을까? 가서 무엇을 하며 먹고사느냐고 묻는 프랭크에게 에이프릴은 이렇게 답한다. 


“모르겠어요? 그게 이 계획의 핵심이란 걸 모르겠어요? 당신은 칠 년 전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는 거죠. 당신 자신을 찾는 거예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생각하는 거죠. 시간을 갖는 거예요. 당신은 평생 처음으로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겠죠. 그리고 그걸 찾아냈을 때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적 여유도 갖게 되는 거란 말이에요.” 



먹고사니즘에 갇혀 하릴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직장-집-직장만 오가던 남자에게 아내가 파리로 떠나자고, 이젠 자기가 일할 테니 당신은 진짜 하고 싶던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덜컥 그 제안을 물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의 삶이 안온하다면, 따분하고 무료할지언정 뭔가 잡힐 듯한 기회가, 성공이 눈에 보인다면, 바로 저 앞에서 유혹한다면 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문제이다. 애초에 찾고자 하는 자기 자신이 가짜였다면? 존재하지도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찾을 것인가.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곳인들, 파리인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절망적일 정도로 가망 없는 그 공허함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그러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허한 인간들, 그저 남들이 사는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까. ‘여느 다른 가장들처럼 자신도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독하게 따분한 직장에 취직’하고, ‘단정하고 건강한 삶의 중요성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비싼 중산층 아파트로 이사’하고 ‘첫째 아이가 실수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둘째를 낳았고, 그다음 단계로서 합리적이고 또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교외에 집을 마련’하며 입증하고 입증하며 살아온, 그리고 ‘지금 이 여자와 결혼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pp.84~85)이라 고백하는 프랭크 휠러- 이렇게 타인에게 입증하기 위해 살아온 공허한 존재가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레볼루셔너리 로드>에는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만이 아니라 그들 주변의 이웃 대다수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이 잘살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살아가고 또 그게 잘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자위하면서 살아간다. 속은 다들 썩어문드러지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연기를 한다.  ‘집에서는 미치광이 아들이 장광설을 늘어놓고 기물을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해도 저녁이면 스프링쿨러는 잘만 돌아가고 텔레비전은 모든 집구석 거실을 같은 목소리로 울려 댄다. 한 여자의 하나뿐인 아들이 미쳐서 집으로 돌아오고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슬픔과 죄의식과 고뇌를 엄마에게 쏟아붓는다. 그런데 그 엄마는 건축 규제 위원회 활동이라든지 좋은 이웃 만들기 운동에 참여한다든지 마분지 상자에다 화초를 담아 나른다든지 하는 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타락도 이런 타락이 없어.” (p.105) 프랭크는 짐짓 자신은 다른 척 중얼거리지만 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라는 기만극의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이 기만극의 실체를, 이 연극의 끝을 지켜보고 있는 독자 자신의 삶도 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연극은 언제고 끝난다. 무대는 텅 비고 자기만 홀로 남는다. 그런데 그 자기가 가짜였음을 깨닫는다면 텅 빈 무대는 더 쓸쓸하지 않겠는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2008)의 프랭크와 에이프릴-


이 장면만 보면 참 행복해 보여.... 그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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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2-2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으면서 혹시 <배빗>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ㅎㅎㅎ

잠자냥 2026-02-23 16:29   좋아요 0 | URL
네 비슷합니다! 근데 전 이게 좀 더 좋았어요! ㅋㅋㅋㅋ

Falstaff 2026-02-23 16:3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4월 27일에...

잠자냥 2026-02-23 16:40   좋아요 2 | URL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Falstaff 2026-02-23 16:40   좋아요 2 | URL
넹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