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울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쉽지 않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그이의 작품을 나오는 족족 호기롭게 잘도 샀다. <사탄 탱고>, <저항의 멜랑콜리>에 이어 <라스트 울프>까지. <사탄 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 둘 다 3분의 2쯤 접어들었을 때 일단 포기. 나가떨어졌다. 쉽지 않다. 그러던 중에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라슬로의 중편 두 작품이 실린 <라스트 울프>가 나왔으니, 반가운 마음에 이 책부터 읽었다. 일단 다 읽기는 했다. 그런데 책을 내려놓으면서, 아니 읽는 내내 생각했다. ‘이것도 쉽지 않네.’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아리송하하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싶은데, 그러다가도 생각한다. 에라, 문학에 제대로 읽고 아닌 게 어디 있어,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감상하면 그만인 것을. 그런데도 궁금하다. 작가에게 묻고 싶다. “이보시오, 라슬로 양반, 당신 이거 어떤 의미로 썼소?” 표제작인 <라스트 울프>와 <헤르먼> 두 작품이 실려 있는데, <헤르먼>은 ‘사냥터 관리인(첫 번째 판)’과 ‘기교의 죽음(두 번째 판)’으로 나뉜다. 한 사건을 두 개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데, 그 관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이렇게 달라 보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라스트 울프>와 <헤르먼> 모두 사냥꾼과 사냥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군맹무상(群盲撫象), 눈먼 사람이 코끼리 만지듯 그 뜻을 파악하느라 더듬더듬 읽었지만, 그럼에도 강렬하다는 인상만큼은 지울 길이 없다.

<헤르먼>의 사냥터 관리인 ‘헤르먼’은 덫을 놓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숲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동물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위험한 동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중 정부에서는 솜씨 좋은 사냥꾼들에게 사냥을 권하게 된다. 장인의 솜씨를 지닌 헤르먼은 냉큼 이 일을 받아들이고 숲속의 야생 포식자들 퇴치에 전념을 다한다. 곧 숲은 그가 새롭게 빚어낸 질서 체제대로 잘 흘러가는 것 같다. 정부에서도 그를 기리고자 포상을 하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헤르먼은 이런 의문에 휩싸인다. 유해한 동물과 이로운 동물은 누가 나누는 것인가? 이 거대한 숲속 동물들을 그 기준으로 나눠 죽이고 살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은 아닌가. 그는 한술 더 떠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제 삶이 이제까지 ‘아주 깊디깊은 무지 속에 푹 잠겨, 쥐락펴락 남들 휘두르는 대로 마냥 복종하고’ 살아온 것 같다. ‘신성한 섭리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고, 그렇게 세상이 해로운 세상과 유익한 세상으로 나뉜다고 굳게 믿으며’(95쪽) 참 순진하게도 살아왔구나, 깨닫는다.

그는 더 나아가 실제로 이 ‘양쪽 카테고리가 다 똑같이 극악무도하고 무자비한 참학(慘虐)에서 기원한 것을, 둘 다 깊은 곳에 지옥의 빛이 도사린 것’을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부서지기 쉬운 평화도 아니고’, ‘심장이 내리는 진정한 분부’도 아님을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은 그저 핏빛 혼돈에 뒤엉킨 대중’을 가리는 투명한 막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자 묘한 반발심이 인다. 인간의 법을 충실히 지키고자 자연 세계를 인위적으로 재배열하는 일에 앞장섰던 그는 이런 깨달음과 함께 이제껏 노예처럼 맹목적으로 인간의 법칙을 따랐던 자기에 강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계산을 넘는 더 높은 법칙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영원히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경계’를 넘어버리고 만다. 유해한 포식 동물을 측은히 여기는 사냥터 관리인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그 고립을 완성하고자 생각지 못한 방법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사냥감을 쫓던 사냥꾼에서 또 다른 사냥꾼(다른 인간들, 인간이 만든 사회와 법 체계 등)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스스로 사냥감이 되어 숲에서 고독히 은신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이전의 사냥꾼 시절보다 해방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헤르먼의 이 반란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표제작인 <라스트 울프>와 <헤르먼> 사이에는 인간과 동물, 자연과 인간 사회, 문명과 반 문명, 사냥꾼과 사냥감의 대립 등의 유사성이 있다. <라스트 울프>보다 <헤르먼>을 먼저 소개한 까닭은 사냥꾼 ‘헤르먼’이 <라스트 울프>의 마지막 늑대, 잡히지 않은 그 늑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라스트 울프>는 한 늙은 철학자가 술집에서 푸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때 교수님이라 불리던 그는 이제 하릴없이 아침부터 베를린의 한 싸구려 술집에 앉아서 딱히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헝가리 바텐더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 작품은 이 남자의 길고 긴 넋두리가 마침표 없이 쉼표로 죽 이어지다가 맨 끝에 가서야 드디어 마침표를 맺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을 조롱하듯 내뱉는 그 넋두리의 주된 내용은 그가 한 재단으로부터 스페인의 ‘엑스트레마두라’로 초청받고 그곳에 다녀온 이야기이다. 그는 초청을 받았을 때부터 정말 자기를 부른 게 맞나 두려워할 정도로 의아해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 재단은 그를 교수님이라 깍듯이 부르면서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 한때 역사적인 황무지, 수 세기 동안 견뎌온 인간 궁핍의 보금자리’가 새 출발하는 ‘엑스트레마두라의 개화기’에 관해 무엇이라도 좋으니 글을 써주기만 한다면 스페인의 체류와 두둑한 원고료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는 자신이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의심하고 고민하는 끝에 마침내 스페인으로 건너가고, 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는 스스로 엑스트레마두라에 있는 동안 그 고장에 대해서 어떤 것도 쓸 수 없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사람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혐오를 느끼고 ‘사기를 당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지막 늑대 이야기를 접하고는 그 늑대에 관한 기록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렇지만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던 바텐더도 ‘늑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큼은 관심을 보인다. 늑대들로부터 위협을 받던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늑대 소탕 작전을 벌이고, 이제 한두 마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늑대는 사살되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늑대를 쫓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이 마지막 늑대는 잡혔을까 아닐까?

책을 읽다 보면 <헤르먼>의 ‘헤르먼’도 <라스트 울프>의 마지막 늑대도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이 두 작품의 동물을 쫓던 사냥꾼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쫓는 동물을 닮아가고 제 스스로 동물과 자신 사이,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늑대’는 인간에게는 어쩌면 이 황무지 같은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게끔 하는 희망 또는 이토록 덧없는 삶을 살도록 부추기는 열정과도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낙오자처럼 느끼고 살아가던 철학자가 늑대 이야기를 듣고 한 가닥 열정의 불꽃을 일으키는 점, 마지막 늑대를 제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내내 쓰고 또 쓰고 뭔가를 쓴다는 행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더 굳어진다. ‘생각 없는 삶’ 가운데서도 그는 그 늑대로 말미암아 무언가를 쓸 수 있게 되었지 않은가.


비록 엑스트레마마두라에 가느라 잠시 떠났던 데로 그가 돌아오긴 했어도 그에게 남은 것은 생각 없는 삶이다, 다른 말로 슈파쉬바인의 죽음처럼 메마른 황무지, 이런 춥고, 텅 비고 허허로운 광장, 그리고 그가 요청받은 대로 일을 해주고 일금 얼마얼마 유로를 벌지 못하긴 했어도, 대신에 엑스트레마두라를 그 자신의 춥고 텅 비고 허허로운 가슴에 담아두고서, 그 이후로 늘 그 끝을 만지작거리며, 바로 여기서, 매일매일 그는 머릿속에 호세 미구엘 이야기의 끝을 쓰고 또다시 쓰고 있다고.(《라스트 울프》,77쪽)


늑대의 출현에 사람들은 당연히 두려움에 떤다. 그런데 늑대를 직접 눈앞에서 봤기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늑대가 거기 있을 때 가장 절실히 두려운 게 아니라, 아직 도달하기 전의 시간이 두렵다”고. “늑대들이 내려와 도착할 조용한 사잇길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두렵다고. 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어쩌면 인간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마지막 늑대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쫓을 대상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허무를 견딜 수 없기에, 그렇지 않아도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어서 무언가 쫓을 대상이 있어야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만든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자연으로 돌아가 영원히 자연과 하나 되기를 꿈꾸는 사냥꾼 헤르먼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을 찾아 끝없이 열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1-12-03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사탄 탱고> 책 디자인, 제목, 폴스타프님 별 다섯 보고 사 둔 책인데 잠자냥님이 나가떨어졌다니 ...어렵군요.
심지어 작가 이름도 어려워요.🤨
그래도 2/3 읽으셨으면 마저 읽으셔요. 아까워요.

잠자냥 2021-12-03 13:08   좋아요 4 | URL
내용보다도 문장이... 하하하하하하. 제 취향이 아니어서 그랬던 거 같은데요, 이거 읽었으닏 다시 도전할 생각이 듭니다요.

독서괭 2021-12-03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어렵다고 하시니 안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내용을 보니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침표가 끝에 하나 있다구요?😐음….. 왜 어렵다 하셨는지 알 것 같….

잠자냥 2021-12-03 14:08   좋아요 4 | URL
이 작가 작품이 대체로 문장이 아주 길어요. ㅋㅋㅋㅋ 쉼표, 쉼표로 이어짐. 그런데 <라스트 울프는> 단 한 문장으로 이뤄진 작품. ㅋㅋㅋㅋㅋ 문장 따라가다 보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앞으로 올 때 많아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1-12-07 12:42   좋아요 2 | URL
이런 문체라면 제가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지금 제가 잠자냥의 요구에 힘입어 천자만자 평이 아니라 100자 평을 위해 트위터를 켜가면서 고심하며 애를 쓰고 있긴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오긴 했지만서도 역시 저는 천자만자 투머치 토커 투머치 인포메이션 투머치투머치 한 사람으로서 점하나를 딱찍어버리면 그 글이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거니와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이 쓰고 있지만 그걸 왜 이렇게까지 쓰느냐 역시 점을 딱 찍는 법을 몰랐던 걸까.

독서괭 2021-12-07 14: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쟝쟝님은 길어도 재밌으니까 괜찮아요!!

잠자냥 2021-12-07 14: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쟝쟝은 길어도 긴 줄 모르는 재미. 그래도 쟝쟝 점 찍는 법을 배워보아요. ㅋㅋㅋ

골드문트 2021-12-03 13: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쿨캣님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일단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딱 제 취향입니다. 기가 막히다니까요.
<라스트 울프>의 늑대도 꼭 진짜 늑대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언덕 위 성에 사는 인물일 수도, 갑자기 들이닥쳐 요제프 K를 잡아갈 요원일 수도 있고, 새벽같이 들이닥칠 빚쟁이일 수도, 저 광야 멀리 이젠 무너져 없는 종탑에서 들리는 종소리일 수도? ㅋㅋㅋㅋ

잠자냥 2021-12-03 14:09   좋아요 3 | URL
네, 저는 그 늑대를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골드문트 2021-12-03 14:16   좋아요 3 | URL
윽, 고도요? 와와..... 백점 만점에 120점!! 역시 잠자냥님!!! ㅋㅋㅋ

mini74 2021-12-03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도 어렵고 내용도 어렵고 그런데 다들 좋다 좋다하시니 ㅎㅎㅎ 귀가 팔렁팔랑 합니다 ~

잠자냥 2021-12-03 17:00   좋아요 2 | URL
팔랑귀 한번 열어보세요~ ㅎㅎㅎㅎㅎ

2021-12-05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05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12-05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책은 질렀습니다.

근데 읽을 책들이 많아서
일단 뒤로 밀리게 되었네요.
빨랑 닐거 보겠습니다.

잠자냥 2021-12-05 11:47   좋아요 2 | URL
네~ 매냐 님은 어찌 읽으실지 기대해보겠습니다!

FLAKSUIT 2021-12-19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글을 보고 읽어보니 짧지만 강렬합니다.

잠자냥 2021-12-19 12:23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FLAKSUIT 2021-12-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2021-12-19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9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FLAKSUIT 2021-12-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대부분 문학사상사판으로 읽으시나봐요.답변감사합니다.밀어두고 밀어둔 책인데 이제 읽으려고요

잠자냥 2021-12-19 22:35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수정을 해서 달았습니다. 아무튼 즐겁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FLAKSUIT 2021-12-19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