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알았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작가들이 있다. 카릴 처칠(Caryl Churchil)도 그런 이들 중에 한 사람이다. 1972년 <소유자들(The Owners)>로 런던에서 극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처칠은 1970~1980년대 작품들로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 극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전쟁, 혁명, 환경, 여성, 노동, 신자유주의, 팔레스타인 문제 등 국제 이슈와 역사적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 <넘버>를 비롯해 <미친 숲>이 지만지 희곡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는데, 사실 나는 이 두 작품보다 과거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클라우드 나인>과 <최고의 여성들> 같은 작품이 더 궁금하다. 터무니 없는 가격에 중고로 판매되고 있던데 그걸 사볼 생각은 없고 지만지 같은 곳에서 다시 나온다면 바로 사서 읽으려고 한다.
<넘버>는 2002년 발표한 매우 짧은 희곡으로, 배우도 딱 두 사람만 필요하다. 아버지와 아들, 그런데 이 아들은 한 배우가 세 명의 아들을 연기해야 한다. B1, B2, 그리고 마이클. 한 배우가 세 아들을 연기해야 하는 까닭은 아들 B1은 오리지널이지만, B2와 마이클은 B1의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희곡을 보면 세 아들은 생김새는 똑같아도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이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처칠이 이 극을 발표한 2002년 영국에서는 인간 복제 문제에 대해 찬반 논쟁이 뜨거웠고, 카릴 처칠은 시의적절하게 그 주제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넘버’라는 말과 함께 극이 시작하면 아버지 ‘솔터’와 아들 ‘버나드’(B2)가 등장한다. 무대는 솔터의 집. 아버지는 60대 초반이며 아들 버나드는 35세. 그들은 서로 무뚝뚝하게 대화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아버지는 엄마 없이 이 아들을 혼자 온갖 애정을 주며 길러온 것 같은데, 지금 아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병원에서 자신과 똑같은 존재들을 맞닥뜨리고 온 것이다. 자기가 유일한 아들이라고 믿고 살아온 그는, 자신은 오리지널의 복제품일 뿐이며, 게다가 자신을 닮은 여러 명의 버나드, 그러니까 B3, B4, B5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더 있음을 알게 되고 충격과 혼란에 빠진 상태이다.
아버지 또한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자신이 원한 것은 B2 아들 하나뿐인데, 더 많은 복제인간, B3, B4, B5……가 존재하다는 것을 그 또한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충격 받은 아들에게 말한다. “그건 계약에 없었어. 그들은 너 하나만 만들기로 했어. 그런 다수의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고 그들이 훔쳤어. 우린 이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해.” 그러니까 솔터는 애초에 아들 하나만을 복제하길 바랐는데, 그들이 계약을 어기고 수많은 복제인간 그러니까 ‘숫자’로 명명할 수 있는 인간들을 더 만들어 낸 것이다. 솔터는 그들에게 소송을 할 뜻을 밝힌다.
그런데 이쯤에서 독자는 궁금해진다. 독자뿐만 아니라, 복제인간인 아들 버나드(B2)도 궁금하다. 그렇다면 원본, 오리지널 아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솔터는 아들 B2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아들은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를 대체하고 싶었기에 B2를 복제했노라고 말한다. “그냥 또 다른 애를 하나 더 가지기 보다는 꼭 그 애를” 갖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 말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의심이 든다. 그 첫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런데 그 바로 뒤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네 엄마도 죽었으니까.” 오호, 뭔가 이상한 느낌이 온다. 원본인 아들도, 그리고 그 엄마도 사고로 죽었다는 그의 말은 왠지 진실이 아닐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죽었다고 하던 그 첫 아들이 살아서 등장한다. 그가 곧 원본, 오리지널 아들 B1이다. 이 B1은 복제한 아들 B2와 달리 사납고 공격적이며 분노에 휩싸였고, 아버지 솔터에게 무척 적대적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신이 살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복제인간 B2에 대한 질투로 비뚤어져 있다. B2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는 있지만 아버지를 사랑하고, 온순하며 공격성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정서를 갖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에도 자라온 환경, 양육 환경에 따라 이토록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 원본 아들 B1은 왜 이토록 아버지를 적대시하며, 죽었다던 솔터의 말과 달리 어찌하여 살아 있는 것일까? 그리고 솔터의 아내이자, B1의 엄마는 어떻게 된 것일까? B2 또한 그 엄마의 존재가 궁금한데, 이어지는 솔터의 고백, “네 엄마 엄마에 관한 것 한 가지, 엄마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어. 엄마는 아주 행복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 엄만 자살했어.”라는 고백으로 그가 그의 첫 번째 가족(오리지널 아들 B1과 그의 아내로 이루어진) 사이에서는 그다지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작가는 이렇게 <넘버>에서 복제인간 문제를 논하면서도 그 안에서 사라진 어머니(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서 생명과 양육, 본성과 양육 문제를 돌아본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희곡은 꽤 많다. <오이디푸스 왕>, <햄릿>,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작품들이 쉽게 떠오른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오늘날의 이 희곡에서 아들은 복제인간이다. 이 설정부터가 신선하다. 그리고 이 복제인간 아들은 순종적이지만 무기력하다. 원본인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아버지는 물론 복제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런 데다가 여기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 그동안 남성 작가들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부자 관계 극을 창조해왔다면 처칠은 그런 관계를 여성의 눈으로 그린다. 그러면서 극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역할을 오히려 두드러지게 연출한다.
사라진 어머니는 권위적인 가부장 ‘솔터’에 의해 불행한 결혼 생활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보여주면서 첫째로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폭로한다. 또한 어머니 없이 황폐한 가족의 모습(솔터와 아들 B1의 가정)과 어딘가 정서적 결함이 있는 가족(솔터와 아들 B2의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성이 배제된 세계에서의 비극과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아들 B2와 또 다른 복제 아들인 ‘마이클’의 탄생 과정을 통해,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의 기능으로만 그 존재 가치가 있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오리지널 아들을 제외하고는 ‘복제’ 기술로도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여성의 몸이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쓰이지 않아도 인류의 지속은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리모라든가, 자궁이 대여의 기능으로만 축소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솔터는 혼자 아들 B1을 키운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아들 B2는 다른 방식으로 키우는 데 얼마쯤 성공한다. 이런 설정으로 양육과 돌봄은 과연 여성만의 의무인지, 정녕 그들만의 특화된 영역인지 묻기도 한다. 작가가 어디에 더 방점을 두었을지 판단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