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 「맑스의 위기론과 노동 사회 벗어나기」,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도서출판 이후, 2009.

  

 

 

 

 

 

 

홀거 하이데는 머리말에서 우선 맑스의 위기 개념을 상업공황에 따른 혁명의 전제 조건으로 정식화한 것을 언급하고 노동 개념을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창조하고 나아가 (신처럼) 자기 자신마저 창조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현재 사회를 일종의 ‘사회적 상흔 후 증후군’의 노동 사회라고 규정하며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자본에 속박해 버렸는가?” “자본과 결별하는 일은 왜 어려운가?” “노동운동이 숱한 경험과 좌절을 겪은 뒤 이제 맑스의 위기(공황) 이론은 앞의 질문들을 답하는 데 과연 유용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맑스의 위기(공황) 이론을 적대주의에 관한 이론으로 포착하여 자본에 결박되어 있는 인간과 인간의 노동, 그리고 노동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정치경제 비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신분석적인 차원까지 끌어들여 논의를 전개한다. 덧붙여 노동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이끌어낼 반란 그 자체, 즉 “파괴에 대항해 생명력을 뿜어내는 일”은 이론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제 하이데가 주장하는 맑스의 위기 이론의 적대주의 이론으로의 포착으로부터 자본에 의한 인간의 두려움과 그에 대한 자기 내면화 과정 및 사회화(집단적 상흔)를 살펴보고 결국 자본주의 내부의 개혁으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그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맑스의 위기(공황) 이론에 대하여 

맑스의 위기 이론이 1850년에 언급한 “새로운 혁명은 오로지 새로운 위기가 와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말과 그 이후 맑스의 위기 인식은 상당히 달랐다. 이 때문에 그 뒤의 맑스주의자나 비맑스주의자들은 맑스의 불분명한 저작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다양한 이론들을 펼쳤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이론들은 근본적으로 적대주의라는 일반 이론의 다른 관점에 불과하며 이 적대주의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맑스는 이를 자본에 내재적인 적대 관계의 토대로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자본은 노동자로 하여금 필요노동을 넘어 잉여노동을 하도록 강제한다. 자본은 그렇게 해야만 증식할 수 있고 잉여가치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자본이 스스로 그 고유한 한계를 정립하는 동시에 역시 그 한계를 넘어가려고 발버둥치는데,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모순이다.”(정치경제학요강)

문제는 맑스가 요강에서 다루는 이 “법칙”이 그의 사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일단 이 법칙은 위기론과 결부되어 있고 이 위기론은 이윤율의 주기적 요동 운동과 관련 있는바 이에 대한 대처는 두 가지 동기에서 나온다. 첫째는 주기적 순환을 피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a자본주의를 안정화하기 위해/ b노동계급에 대한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이며 두 번째는 주기적 순환을 혁명을 위해 활용하는 방도를 찾기 위해서이다. 첫 번째는 경제 정책의 일반론으로 a는 케인스 이론이며 b는 사민주의 방책인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 정책이다. 두 번째는 처음에 언급한 맑스의 위기 이론으로 위기와 혁명과의 관계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맑스 사후 엥겔스를 비롯한 맑시주의자들이 “법칙”을 다루는 방식을 두 번째의 방식으로 순진하게 경제주의적이고 객관주의적으로 신비화해 버린 것은 아닌가? 더 큰 문제는 “법칙”을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노동자의 주체성을 간과하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여기서 하이데는 케인스 이론에서 위기가 바로 혁명으로 직결되지 않는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 케인스 이론(포디즘 포함)은 잘 알다시피 자본주의 축적 과정과 생산과정을 별 탈 없이 잘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산노동과 그에 대한 파괴(노동계급의 끊임없는 자본 외부로의 지향) 사이의 싸움인 적대 관계를 생산물 분배 싸움으로 전화시켜 내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본이 노동계급을 적극적 행위자로 인정하되 자본의 품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케인스에게 “위기나 계급투쟁 속에서 발전 동력을 만들어 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동계급을 자본의 품 안에 품어 주기적 순환을 평탄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위기 자체를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특히 노동자의 주체성과 관련하여 1960년대 포드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다음의 슬로건은 자본 자체의 파괴를 상정하지 않으면 위기 자체를 세상에서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우리는 모든 것을 원한다!”, 그리고 “절대로 노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순진하게 포디즘의 위기 또는 케인스주의의 실험이 끝장났다고 단정내리지 말라!!! 이 지점에서 포디즘의 가능성을 다시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자본은 “위기 없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내색하면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의 입장에서 문제는 내재한 기본 모순의 “외부화”에 놓여 있다. 즉 저항이 거센 곳에서 빠져나와 저항이 별로 없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경쟁 세계에서 자본이 결코 자립적이지 못하고 부단히 생명력을 흡입해야만 살아갈 수 있음을, 그래서 그 힘을 부단히 새 영역으로 확장해야 함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위기란 것이 본질적으로 자본의 적대 관계 속에 내재하는 이상 위기는 순환성을 회피함으로써 극복될 수 없다. 따라서 산노동은 자본의 시각에서 낯선 것, 위협적인 것이지만 불행히도 자본은 자기 증식을 위해 그러한 산노동을 전적으로 의존한다. 바로 이 때문에 항상 어떤 인격체가 이를 대변하는 자본은 노동에 의해 지양될까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본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주체성을 얻게 될까?

 

자본과 두려움

정치경제학적 범주인 “자본”을 인간과 사회적 관계 및 인간의 사회화 과정의 학습과 연결하여 분석한다면 “가치”형태로 사물화된 것을 표상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모두 다 가치(죽은 사물) 지향성을 갖게 되면 모든 참여자에게는 개별 행위와는 독립적인, 가치의 지배 현상이 나타난다. 즉 죽은 사물인 가치가 생동하는 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맑스의 표현으로는 “죽은 노동이 산노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맑스는 죽은 노동을 자본이라고 하였기에 자본은 어떤 죽은 것이며 일종의 허구이면서 실재다. 그런 자본이 살기 위해서는 아니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행위를 하는 인간의 산노동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 스스로(사회 속에서나 개인 속에서) 적대 관계를 한몸에 품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는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인 동시에 다른 한편에는 그 자신에 의해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되며 앞의 생명력을 흡입하고 파괴하는 자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대 관계의 핵심은 분열이다. 사회적으로는 계급 간 분열로 나타나며 개인들에게는 에고와 자아 사이의 분열로 나타나는데 결국 에고가 자아를 지배하는 자아 지배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의 본질적 부분마저 “희생”시키기도 하며, 물질적인 떡고물을 조금 받는 대신 스스로를 팔아넘기기도 한다. 바로 이 “자기 착취”로서의 자아 지배야말로 외적 지배 및 외적 착취의 토대다. 여기서 인간이 자각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란 것이 자본의 구조적 원칙으로 작동한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배우며 또한 두려움을 억압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두려움은 우리의 생동하는 삶을 방해하는 파괴력을 지녔다. 이 두려움의 결과는 바로 복종심, 경쟁심, 폭력성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 역사적 뿌리는 무엇인가?

 

노동 사회에서 폭력의 역할

“문명화 과정”은 “적응”을 위한 지속적 과정이 아니라 부단한 폭력의 역사였다. 수백 년간의 폭력적인 “유혈 입법”과 교육적 처벌, 노동 학교나 실업학교, 교도소 노동, 그리고 정신병원 등에 의해 규율 잡힌 노동자 계급의 탄생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규율 잡힌 새로운 사회가 탄생했다. 이 새 사회는 총체적으로 노동에 토대하는데, 그것은 노동의 필연성 자체에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사회다. 여기서 “노동할 권리”라는 슬로건이 나오며 그리하여 외적 강제가 마침내 자기 강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임노동 뿐만 아니라 이것은 사람들끼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지는 생동적이고 창의적 활동(고전적 의미나 맑스적 의미에서 “생산적 노동”과 거리가 먼 활동)이 일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노동”으로 변환되었다. 이제 이 피하기 어려운 집단적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자.

 

폭력의 결과로서 집단적 상흔

심대한 상처를 주는 공격 앞에서 심적으로 견디기 힘든 희생자가 이를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막대한 힘 앞에 ‘공격자와 동일시’를 하며 스스로 굴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자와의 동일시가 진행될수록 그 사람 내부의 자아는 분열된다. 외적 정체성이 내부화될수록 그 외적인 욕구가 마침내 원래의 자기 욕구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결국 자신의 욕구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만약 그러한 상처들이 특정 개인에서가아니라 전쟁 또는 다른 익명의 대량 학살과 같은 경험에서 온 것이라면 익명의 거대한 힘이 문제가 된다. 이제 “공격자와의 동일시”는 체제와의 동일시가 되며 그 체제의 패러다임이 사람의 내면으로 주입된다. 이런 과정은 다음 세대에게도 영향을 주는데, 사회화란 일종의 누적 과정으로 그것은 모든 경험들이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항상 새로운 폭력이 등장할 때마다 거의 항상 “적응”만 강조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개인적 상처의 결과, 중독

우리가 사는 현실적 삶의 고통을 솔직하게 느끼지 않으려 헛수고하는 과정이 곧잘 중독으로 나타난다. 중독이란 일종의 반응 행위로서, 뭔가 참을 수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에 대한 자기방어 행위다. 사람들은 중독 행위를 통해 자기 고유의 느낌, 생각, 행위를 조작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내면의 느낌과 정직하게 접촉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것은 환상 속에서만 포근함을 만들어 내며 지속적으로 자기를 파괴한다. 또한 근본에 깔린 두려움이 솔직함을 억압하거나 지속적 고립을 조장하고 탈연대화로 이어진다. 저항이 일어난다 해도 이는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분노가 앞설 때뿐이다. 분노를 키우는 방법은 피해 의식으로 무장하는 길이며 투쟁이나 파업, 저항 등을 새롭게 전개하려면 부단히 불의에 토대한 분노를 자극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중독 사회로서의 자본주의 논리 속에 머무는 것이다. 또한 이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내면의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기의 중독 행동을 자꾸 통제하려는 시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바로 이 강박증과 통제주의 환상도 중독의 매개물이자 중독적 행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노동 사회 탈출

우리가 자본주의를 단지 생산의 무정부성, 무계획성, 주기적 위기 대처의 무능함 등을 들먹이며 비판하는 것은, 마치 자본주의를 색다른 조직 형태로만 바꾸면 될 것 같은 착각을 초래한다. 그리고 사회 현실의 중독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징후만 치료하면 될 것이라고 하는 생각 또한 아무 근본 변화를 이룰 수 없으며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생동성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 심층부의 두려움을 깨고 생동하는 과정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서 만들어 내야 한다. 분노를 통한 방법은 승리하더라도 근본적 중독 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실패하면 좌절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다시 적응하며 현실로 복귀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그 체제 내부의 불의를 시정하려 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하며 적대 관계를 지양하려는 싸움이 결국 분배 정의를 위한 싸움으로 끝나고 만다. 즉 맑스의 표현대로 “기존 사회가 부여한 속에서 또 그 사회가 제공하는 수단으로만 성취 가능한, 즉 그러한 조건들과 수단의 재생산에 단단히 결박된 그런 사적 이해”를 발달시키며 이 체제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 내야 한다. 우리가 겪는 그 어떤 두려움도 회피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인정하고, 동시에 분노나 일, 소비 따위의 중독물을 통해 자기를 기만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가지 유의할 점

이상의 주장은 윤리적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예가 의미 있을 것이다.

*1868년 5월 프랑스에서의 구호 “절대로 노동하지 않을 것!”

*독일에서 정보 기술 영역의 고숙련 노동자 8백여 명이 상호 교류할 수 있는 내부 통신망을 구축하여 노동과 관련된 존재론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회사에 대응 행동을 조직한 것

*독일의 ‘2005 백수 연합’의 “행복한 백수들”이라는 구호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박탈되고 파괴된 창의적이고도 신바람나는 잠재력을 부활시키려면, “대안의 실험”이란 것도 동시에 분석적 성찰(“이론”이 아님)과 더불어 진행되어야 한다.

 

맑스의 위기 이론, 그 후

맑스의 위기 이론은 없으며 맑스는 자본의 보편적 적대 관계를 규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맑스의 위기 이론은 부단히 반복되는 “자본주의는 결국 곧잘 돌아간다는 것”과 “자본주의는 어쨌든 우리 삶을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신화화의 논리를 깨뜨릴 수 있게 돕는다. 그것은 “자본”이 우리 현실의 비참함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넘어, 우리 자신도 자본의 재생산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까지 책임성 있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맑스의 분석은 자본주의가 죽음의 논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며 온갖 개량주의 또한 죽음의 논리로부터 근본적 탈출을 방해하고 지연시킴을 드러냈다. 그러나 저항의 행위 그 자체, 해방의 과정 등은 결코 이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론이란 물화된 것을 폭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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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거 하이데는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문제를 지적한다. 특히 근대와 자본이 폭력을 통해 내면화한 인간의 신체 저 깊숙한 곳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두려움은 언제나 '중독'을 통해 표상화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내면화한 '두려움'과 대면함으로써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노동의 중단'이라고 하는 죽은 노동(자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를 그쳐야만 산노동을 끊임없이 포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본의 시대는 끝장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자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동의 '중단'과 같은 방법 이외 어떤 방법도 결국은 자본의 신화화에 기여하는 점임을 천명하고 있다. 

자본의 내면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그 논리 전개에서 생각해 볼 지점이 분명히 있다. 특히 사회학자(?)이기 때문인지 자본의 내면화가 개인의 일이지만 사회화를 통해 집단화되고 이것이 다음 세대에 전승된다고 하는 점은 분명히 의미있는 지점일 것이다. 집단적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라카프라가 <<치유의 역사학으로>>에서 911사건이 미국인들에게 어떤 집단적 트라우마를 형성시켰는지를 설명하면서 언급하였는데 역시 의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현재까지의 저항은 두려움을 극복한 상태에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현재의 저항은 두려움의 또 다른 중독 현상인 분노와 분노의 조장을 통해 전개되는 것이며 이러한 저항은 여전히 자본의 생명력을 연장시킨다고 하는 지점도 새겨볼만하다. 분노는 불의로부터 나오는데 불의는 해결된다고 해도 그저 개혁에 그치는 것으로 근본적인 변화(자본으로부터의 탈출)가 아니다. 그 때문에 저항이 승리하더라도 자본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연장시킨다. 물론 저항이 실패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우울증과 고통에 빠질 것이고 더욱 더 자본에 적응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의 논의 중에서도 결론부분은 힘이 빠지는 면이 없지 않다. 자본으로부터의 탈출을 노동의 중단으로 설정하고 있는 지점이 그러한데, 단순히 노동의 중단이라는 선언에만 그친다면 중단 이후의 삶에 대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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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전장의 기억
국민의 이야기가 상상의 공동체를 창출할 때, 거기에는 그 수다스러운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침묵해 가는 별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침묵해 가는 것은 산 자만이 아니다. '죽은 자를 대신해서 말한다'고 하는 권위주의적인 이야기 속에서 죽은 자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됨으로써 침묵한다. 침묵하고 있음을 빌미로 '아무도 모른다'고 수다스레 지껄여대는 국민의 이야기. 그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내뱉는 장을 증언의 영역이라고 하자.
국민의 이야기 아래에는 이 증언의 영역이 항상 감춰져 있다. 이 증언의 영역은 망각의 문제와 연관된다. 하지만 그저 망각에 대항해서 기억해야만 하는 영역은 아니다. 한국전쟁처럼 학살이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자연스럽게 상기되면서도 잊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 일련의 상기와 망각의 기법이야말로 국민의 이야기를 구성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해야 할지를 '대신해서 말하는', 그 이야기의 위치인 것이다. 전사자에 관한 국민의 이야기는 말하는 주체와 죽은 자 사이의 그 어떤 실천적 관계도 부인한 채 죽은 자를 인식의 대상으로 회수하고, 그 결과 죽은 자는 바로 이야기의 대상이 됨으로써 말 못하는 유골(관찰대상)이 되는 것이다.
죽은 자를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함께 어떤 시간성 속에서 대화해 나갈 수 있게 됨으로써 짜여지는 이야기를 증언이라고 한다면 이런 실천적 관계와 그 속에 이어지는 시간성을 부인하고 죽은 자를 국민의 분류대상으로 회수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자기동일성을 보증하고 우리의 시간을 표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라는 영역을 설정하자. 국민의 이야기로 완전히 회수될 수 없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증언의 영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는 실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은 파농에 의하면 어떤 이야기건 '대신해서 말하는' 행위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증언의 영역은 호미 바바가 말하듯이 '상상의 공동체'에 존재하는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으로 회수되지 않을, 불확정적이고 반복적인 '수행적 시간'을 발견해내는 그런 이야기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전쟁 체험 중 전장 체험은 전장에서의 죽음이라는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성한다. 특히 전장 기억을 체험의 특권화로 연결시키지 말고 분절화하여야 하는데 이는 국민적 기억으로는 회수될 수 없는 흔적, 즉 증언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전장의 기억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事象에 집착하는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체험으로서는 존립하지 않는다. 즉 체험으로 말할 수 없는 '공백'이 드러난다. 이 '공백'은 아무런 전제 없이 말할 수 없는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고 하는 실천 속에서 설정된다. 따라서 체험을 말하면 말할수록 그 구체적 체험이 구성되는 의미의 연관을 모두 소멸시켜 버리는 영역이 그 배후에 다가오는데 이 영역이 '공백'이다. 결국 전장의 구체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하면 말할수록 개별적 영역이 해체되고 마는 불안정한 발화를 통해 혼란스러운 시간의식을 창출하는 공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전장 체험이라는 불안정한 이야기의 영역은 전사자 '대신에' 의미를 확정하려고 하는 역사주의적 국민의 이야기를 갖고서는 독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전장 체험이라는 불안정한 이야기를 말하는 실천이란 증언의 영역에서 개인을 해체시켜 나가는 작업인 동시에, 이 증언의 영역이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재정의라는 극히 정치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전장 체험 이야기 속에서 전후의 일본 좌익적 담론이 민족으로 재정의되어 가는 과정에서 오키나와는 중요한 지점이다. 좌익의 오키나와 '귀환'운동처럼 오키나와는 전후 일본의 영토의식 속에 있어야 할 본래의 영토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역사지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를 반환하라'고 하는 주장은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의 중요한 요소이다. 오키나와 전투라고 하는 전장의 기억을 통해 성립된 이 내셔널리즘은 바로 '순국한' 사자들에 의해 구성된 영토 획득운동이었다. 특히 '히메유리'로 대표되는 오키나와 전투 이야기는 순국한 '일본인'을 칭송하는 일종의 야스쿠니신사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사회에서는 반전 평화의 슬로건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희생자' 담론이라고 하는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의 재구축 논리가 존재한다.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전범이라는 외부를 만들어 내어 가해자를 일부분으로 한정시키고, 천황을 포함한 모두가 스스로를 전쟁의 희생자로 연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더불어 오키나와의 비극을 자기 일처럼 애통해하는 가운데 자신을 희생자로 구성해 냈던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의식의 강조는 평화주의로 연결되고 가해자 의식의 망각은 전전 대동아의 꿈을 연명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시아라는 타자를 망각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일본'으로 확정할 수 없는 이질적 존재까지도 망각하고 있는 점이다. 즉 희생자 공동체로서 다시 '일본인'이 구성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증언의 영역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 증언의 영역은 단순히 전쟁 가해자라는 자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불협화음을 상기하고 국민의 이야기로 포섭되지 않을 이질적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아시아를 상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발화의 가능성, 새로운 분절화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전장 동원의 장에서 살펴본 오키나와처럼 생활개선을 추진하고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던 '지도자' 데루야 다다히데는 오키나와 전투 중에 일본군의 '스파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이 사건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일본군의 군율로부터 이탈하게 만들었으며 단순히 도주만이 아니라 반군의지까지 야기시킨 촉진제였다. 여기서 일관되게 '일본인'이고자 했던 한 인간이 타자(=적)로서 살해된 죽음을 어떻게 상기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알다시피 전장에서의 죽음과 그 기억은 두말할 나위 없이 내셔널리즘의 가공할 원천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인'으로서의 죽음으로의 동원과 '스파이'(=적)으로서의 학살이라는 두 가지 죽음으로 찢겨진 주체의 잔여 부분이다. 이 잔여야말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을 상기할 때 내셔널리즘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잡음의 근원이며, 역으로 내셔널리즘은 이 잔여의 망각과 회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인'으로서 동원되면서 타자(=적)로서 살해당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조국 복귀'가 정치 일정으로 가까워짐에 따라서 일본군에 대한 원한에서 '핵도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 현'이라는 반전 복귀의 운동방침과 공명하며 상기되고 이야기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학살사건이 르낭이 말한 '동포 살해'로서 상기된다는 점이다. 일본군에 대한 원한이 '동포 살해' 속에 갇히면 갇할수록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하는 기억이 각인된다. 결국 반전과 내셔널리즘이 일체화되는 가운데서, 즉 반전 복귀의 깃발 아래서 학살이 이야기된다. '일본군'에 대한 증오라는 기억은 반전 복귀라는 정치 주체의 헤게모니로, 또 조국을 위해 죽는다고 하는 강렬한 내셔널리즘으로 이어졌지만, '일본인임을 잊었던' 기억(오키나와인을 재정의한 기억)은 정치 주체로서는 발설되지 않는 기억으로 방치되었다. 그렇다면 '복귀'를 기점으로 해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축소되어 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태'라고 하는 전장의 표상에 의해서 일상의 진부한 정경과 전장은 드디어 단절되었다. 이제 망각과 침묵의 시작이다.

데루야 다다히데의 죽음은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난 뒤에 내셔널리스트로 상기되면서 선양의 대상이 되었다. 이 상기와 선양은 보상을 요구하고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정치적 주장과 맞물려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데루야가 '스파이'로 학살당했다고 하는 전장의 기억을 일상과는 무관한 전장으로 봉인하여 상기를 금지하고 망각을 강요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망각할 수 없는 기억은 스스로를 봉인하고 침묵해 간다. 그렇더라도 내셔널리즘은 과거를 발명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대신 '절멸 전쟁'의 '망각'이야말로 '국민 창조의 본질적 인자'다. 그렇다면 국민의 이야기 속에서 전장의 기억은 끊임없이 잔여를 산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전장이란 결코 담론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약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비약에는 폭력이라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결국 전장이란 사후적으로밖에 상기될 수 없는 것이다.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조국 복귀'를 하나의 매듭으로 해서 전개된 정치적 헤게모니 속에서 상기되고 이야기되었다.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면 담론 공간을 재편성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며, 그 작업은 과거의 기억의 상기라는 영역에서 진행된다. 또 상기라는 과거의 기억의 담론 공간에 대한 반역은 새로운 헤게모니의 가능성을 창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기한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분절화'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결국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국민의 이야기 속에서 상기되는 가운데 그 잔여는 축소되고 혼란을 겪으면서 침묵해 갔다. '자신이 일본인임을 잊어'버리고 만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국민의 이야기가 성립하는 가운데 봉인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잔여의 기억의 봉인이야말로 정치적 행위의 문제로서 다시금 발견되어야 한다. 이 봉인되어 간 침묵이 깨질 때, 죽은 자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부활할 것이다.

4장 기억의 정치학
전장과 분리된 일상은 여전히 전장과 연결하는 매개를 이미-항상 지니고 있다. 예의 하얼빈 할아버지의 의미화되지 못한 일본어 발화는 발화한다는 실천 가운데 관동군의 만행이나 731부대로 이어지고 전장은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또 다른 예인 오쿠자키의 집요한 개입은 스스로 아직 전장에 있다는 것과 상대방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을 끝까지 들이대며 전우관계를 오싹하게 하고 해체시키며 재구성한다. 이처럼 하얼빈의 할아버지이건 오쿠자키이건 모두 전후 일본 사회 속에서 너무도 당연한 듯이 진부한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던 실천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이 전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진부한 일상을 다시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익숙해져 있는 신체의 도식이 지금도 아직 전장에 있음을 상기하는 것은 그 신체의 도식이 싫든 좋든 변용되어 버릴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이 묘사한 식민지 공간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나 여기서 줄곧 살펴본 오키나와의 사례는 모두 이러한 신체 변용의 실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불안정한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전장을 상기하는 것, 즉 일상 속에서 계속 전장을 상기하는 것은 이런 나날의 실천(신체 변용의 실천)이 전장의 몸짓임을 확인하는 일이며 신체화된 실천을 전장이라는 장에서 재구성해 나가는 일인 것이다. 구축된 실천으로부터 다른 구축의 가능성이 부상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장을 상기한다고 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 상기한다고 하는 작업은 신체적 변용으로서 시작되는 것이다. 기억은 담론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체와 실천을 구성하는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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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전장 동원
오키나와 전투에 이르는, 즉 '일본인'이 되는 도정을 여기서는 평시의 규율이 전쟁 동원의 규율로, 그리고 전장을 지배하는 군율로 전환되어 나가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규율이라는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전장과 나날의 진부한 일상에서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연결되지 않게 되는 순간, 즉 오키나와 전투에서 제일 마지막에 군율을 이탈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서 발견해야 할 그 무엇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다. 더불어 중요한 점은 오키나와로부터 남양군도로의 이민인데 이 또한 사이판에 '자살절벽'이니 '만세절벽'이니 하는 지명을 새겨놓는 '일본인'이 되는 도정이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도 조선이나 타이완과 같이 황민화정책에 따른 국민정신 총동원운동이 전개되고 이는 '생활개선'에 편중되어 진행되었다. 생활개선의 대상은 오키나와어, 오키나와 전통 장례인 센코쓰(洗骨), 오키나와식 이름, 오키나와식 복장과 음주, 젊은 남녀의 교제풍속인 모아소비(毛幼), 자비센 반주노래 등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들에 미쳤다. 이러한 항목들은 시기별 차이는 있었지만 오키나와의 근대에서 언제나 개선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생활개선이 이처럼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게 된 이유는 오키나와 노동력의 외부유출을 가져왔던 1930년대 소철지옥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생활개선운동은 일상생활의 당위적인 도덕으로서 수용되었다. 오키나와에서 생활개선을 도덕으로 수용해 간 사람들의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표준어 장려운동을 둘러싼 '오키나와 방언논쟁'이 중요하다. 특히 "올바른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 건강한 것"이라는 가치판단적인 '문화'를 주장하며 오키나와어 폐지운동을 비판하는 일본민예협회과 달리 '문화적 의미와는 별개'로 일본 또는 외지와/에서의 차별 극복을 위한 생활상의 '필요'를 주장하며 오키나와어 폐지운동을 주도하는 오키나와 출신자들의 논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표준어 장려운동 등 생활개선에서 주장된 생활도덕을 수용해서 감시와 규율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는 그 배후에 현 외부 유출과 관련된 생활의 '필요'라고 하는 사적인 의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사적 의도가 '일본'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가치합리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개선은 현 외부 유출을 매개로 하면서 오키나와의 운동뿐만 아니라 오사카, 남양군도라는 지리적으로 확장된 범위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우선 오사카의 생활개선운동은 멸시의 대상이 되어 있던 밀집지역의 일상생활에 대한 세밀한 개선항목들이, 불식되어야 할 '오키나와' '오키나와인'을 구성했다. 개선항목들은 '뒤쳐진' '낮은 수준'의 것으로서 부정적 가치를 부여받고 불식의 대상이 되는 반면, 지향해야 할 긍정적 가치로서 '일본인'이 설정되었다. 여기서 근면성이 중요한 도덕적 표지로 떠올랐고 근면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생활개선운동이 전개되었다. 여기서 다시 전환이 일어나는데 근면성을 나타내는 증거를 제시하려던 생활개선운동이 근면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오사카의 생활개선운동은 차별로부터 벗어나려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도덕적 주체로서 자기를 구성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오키나와 출신자가 훌륭한 노동자로 규율화된 주체로서 스스로 구성해 나간다고 하는, 프롤레타리아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실천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런 실천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편 남양군도로의 유출과 그 속에서 전개된 생활개선운동은 식민지 경영의 민족별 차별적 노무관리로 인하여 자기 생활과 관련되는 오키나와 문화를 뒤쳐진 것으로 불식할 뿐만 아니라, '낮은 문화수준'을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서 선주민을 설정하고 그들 위에 자리를 잡는 운동이었다. 또한 이 생활개선운동이 식민사회에서 민족별로 서열을 가르는 가운데 전개되었고, 그 서열을 뛰어넘고자 하는 오키나와 출신자의 운동 자체가 '일본인'과 선주민의 서열을 유지하고 고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생활개선운동에서 '도덕적 주체로서 자기를 구성한다는 것'은 오키나와 출신자가 노동자로서 규율화된 주체로 스스로를 구성해 나갈 뿐 아니라, 선주민을 지도하는 통치자로서 주체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예로부터 해양민족이었고 남양의 지도자로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오키나와 문화의 재평가로, 즉 '전통의 창조'로 이어졌다. 이것은 남양으로의 유출과 관련된 생활개선이 전통문화의 억압이 아니라 문화의 쇄신, 나아가 창조로서 전개되었던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저팬 카나카'로부터의 탈출(일본인이 되는 것)이란 지도자 '일본인'을 지향하는 운동인 동시에, 남양군도의 식민지 경영을 뒷받침했던 차별적 노무관리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했다. 여기서 성공을 추구하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남양의 지도자가 되게 하려 한 남양청 사이에 존재했던 사고의 틈새가 존재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꿈과 제국주의적 침략은 틈새가 생기면서도 서로 유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생활개선은 관제 운동이라기 보다는 오키나와 사람들 자신의 운동으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상생활의 향상을 염원하는 마음 속으로 제국의식(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이 스며들어왔고 지도받아야 할 타자를 계속해서 구성해 갔다. 불식해야 할 내부적 타자인 자신을 비롯하여 남양군도의 선주민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을 타자로 삼음으로써 '일본인'은 그렇게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주체화는 본토의 노동시장과 남양군도의 유출이라는 '필요'와 연관되었다. 그리고 차별에서 탈출하려는 생활개선운동은 주체화를 두 가지 방향으로 이끄는데, 하나는 '자유롭지 않은 노동'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노동'의 세계로 이행하려는, 즉 본토의 노동자화 즉 프롤레타리아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롭지 않은 노동'의 세계 속에서 향상을 추구하려는, 즉 남양군도의 통치자가 되려고 하는 방향이다. 이 두 가지 방향은 모두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에 놀랍도록 서로 공명하면서 일체가 된다. 그렇다면 근대사회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계기인 프롤레타리아화 속에서 제국의식이 함께 양성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방향이 전자로부터 후자로 진행/창출해 나가는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자기를 '이화(異化)'시켜 '도덕적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과 '이화'의 내용을 타자에게 실체화시키는 것은 일련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한편 '자유로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를 '도덕적 주체'로 구성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도덕적 범죄자(=일탈자)'라는 위협 아래 매일 감시받고 규율화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자유롭지 않은 노동자'는 자기를 구성하는 방식과 상관없이 지배당할 수 있음을 뜻하며 이것은 곧 강제이며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과정 속에서 노동자가 된다는 것과 통치자가 된다는 것의 일체화는 감시를 받는 주체와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라는 두 가지 방향의 일체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주체화는 국가의 안과 밖이라는 문제로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감시를 받는 국내의 주체는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고 또 폭력이 자신을 유린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시를 받는 주체에 의해서 형성된 시민사회와 제국이 공존할 수 있으며, 제국으로의 참여가 시민사회로의 참여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국가의 두 얼굴이 한 인간의 주체화라는 문제로 합치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바로 병사다.
그렇다면 감시를 받는 주체는 과연 국가의 폭력을 행사하거나 거꾸로 그 폭력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특히 국내가 전장이 되는 오키나와 전투와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군율이 주민에게 확대되고 급기야 파탄에 이르는 문제를 살펴볼 영역이 여기에 존재한다.

이제 일상생활의 규율이 전장의 군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이를 위해 오키나와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에 전개된 생활개선이 전장 동원에 필요한 군사적 요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군은 우선 생활개선운동과 동일하게 오키나와 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이를 전장 동원상의 '필요'와 결부시켰다. 특히 방첩과 관련해서 '저급한 문화'의 사례인 오키나와어 같은 것들이 군사능력의 표지로 이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스파이'라고 하는 일탈에 대한 공갈이 집단 내부의 규율을 군율로 이행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전장 동원이 지향됨에 따라 지도자도 도덕적 지도자와 함께 재향군인이 방첩활동의 지도자로 새롭게 포함되었다. 이처럼 전장 동원은 군사적 요청에 입각하여 군에 의해 위로부터 강제적으로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시의 심성과 서로 공명하면서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의 규율이 그대로 군율로 전환된 것은 아니다. 일상세계를 전장으로 변모시켜 나가는 데에는 병사 경험이 있는 재향군인을 지도자로 영입하고 '도덕적 범죄자'를 '스파이'로 탈바꿈시키다고 하는 비약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반대로 군율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된 일상생활에서의 규율로부터도 이탈하는 주체를 창출하게 된다. 전장이란 군율이 지향되는 장인 동시에 주체의 결정적 이탈을 낳는 장이기도 했다.

오키나와 전투가 본격화 되는 전장에서 지도자가 감시 지도한 '도덕적 범죄'가 '스파이'로 이어지고 그 '스파이'가 도리어 이민 경험이나 미군과의 접촉 때문에 이번에는 지도자 자신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규율 또는 군율에 복무하는 주민의 참여도 엿보였으며 그들은 이 과정 속에서 고뇌하였다. 여기서 군율은 평시의 규율과 공명하면서 확실하게 주민에게 확대되어 갔으며 동시에 규율로부터의 이탈(오키나와어의 세계, 지도자층의 이탈)을 창출하였다. 나아가 군율로부터의 이탈은 스스로의 과거와 직면하면서 생기는 타자에 대한 분노와 함께 과거의 자신에 대한 격렬한 내적 성찰인 '원한'과 직면한다. 내적 성찰이 마주하는 과거란 현존했던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에 발견되고 구성된 과거다. 따라서 과거를 어떻게 떠올리는가 하는 것은 현재와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처럼 오키나와 전투에서 군율이 붕괴되어 나가는 과정은 군율로부터 사람들이 이탈해 갔을 뿐만 아니라 이런 '원한'을 수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장에서는 새로운 주체가 발견되었으며 '원한'과 함께 과거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획득된 것은 오키나와어이며 '오키나와 민족'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지금까지의 실천이 전장에서 '원한'을 갖고 반추되고 과거를 돌이켜보는 그 마음속에서 오키나와어가 갑자기 등장했다는 점이다. 전장에서의 원한과 오키나와어는 근대의 감시와 폭력을 거부하는 주체로서 발견된다. 이것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공동성'으로부터 이탈한 새로운 '공동성'의 사상적인 내용 규정 그 자체을 말한다. 새로운 공동성은 근대를 염원해 왔기 때문에 발견되고 구성된 과거이며 과거의 기억이다. 또한 그것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만들어낸 폭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의 공동성을 확보하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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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야마 이치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 책의 주제는 "군사적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과거의 전장에 한정하여 모색하는 대항의 가능성이 아니라, 일상이 전장으로 만들어져 가는 현실세계 속에서 모색하는 반군투쟁의 가능성"이라고. 따라서 도미야마는 "이 가능성을 말로 사고하려 할 때 직면하게 될 안개이자 개입해야 할 상황"인 전장의 기억에 집중한다. 그러나 기억 자체는 가능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능성은 전장이 된 일상의 폭력을 예감하는 신체이며, 폭력의 예감을 어떻게든 기술하는 말(언어)이며, 말하는 기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부분은 책 제목과 같이 <전장의 기억>을 다룬다. 이 때의 전장은 일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현실세계 또한 직조하고 있는 그런 공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전장과 그와 연결된 일상의 폭력으로부터 우리가 지각하는 신체와 말을 문제 삼아 폭력의 예감을 확인하고 그 폭력의 예감으로부터 어떤 반응/말들이 나타나며/만들어지며 이를 어떻게 밀고가야 그 폭력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대항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러한 과정은 특별히 근대 일본의 '유일한' 전장이었던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 오키나와의 지식인인 이하 유후의 '말'을 중심으로 추적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인 <폭력의 예감>은 도미야마의 또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니 그 책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전장의 기억>에만 집중하여 그의 논의를 따라가도록 하자.

1장. 전장을 사고하는 것
관동군 731부대의 인체실험의 이유는 '동아의 평화'라는 낯익은 슬로건만이 아니라 '출세'라는 근대 일본이 줄곧 유지해 온 가치관이 뒤켠에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전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세계에서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전장이 비정상적인 상태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광기도 아니며 나날의 진부한 삶 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전장에 일상을 갖고 들어감으로써 일상과 동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말투를 추궁하고, 거꾸로 일상 속에서 전장을 발견해 내는 왕복운동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오키나와 전투를 주제삼아 전장의 광경을 분석적으로 이야기하고 전장의 기억을 말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류큐는 1879년 '류큐 처분'과 1898년 징병제의 시행 등의 제도적 동일화에 의해 타이완이나 조선과 달리 완전히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제도적 동일화가 곧바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일본인'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오키나와 전투를 둘러싼 전장이 중요한데, 오키나와인의 '일본인'되기는 일상생활과 전장 '동원'이라는 신체적 실천이 하나로 연출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오키나와인들의 '일본인'되기는 대동아전쟁의 패배와 오키나와출신 황군 병사의 전사로 실패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생활의 죽음이다. 하지만 생활은 8월 15일로 단절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 연속성은 생활의 죽음 가운데서 도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따라서 평시에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일상적인 삶과 맞닿아 있는 오키나와 전투를 그려내는 작업과 이 작업에 의해서 전후에 생겨난 오키나와 전투 이야기를 되묻는 일은 중요하다.
덧붙여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내부로 침투해 오는 타자에게 가위눌림을 당하면서 그 타자를 의식세계나 의미세계의 임계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타자성을 배제함으로써 일상을 구성하는 신체적 실천이 '일본인'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전장과 이어져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임계영역으로 밀려나간 타자의 행방(배제된 타자성)인데 이를 통해 균질적인 내셔널리즘으로 수렴/회수되지 않을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한지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총력전'으로서의 근대 전쟁은 전장이 일상화되고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사라져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전장 동원이 진행된다. 이때 전쟁 '동원'이란 항상 전장 동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으로의 동원을 가능케 하는 군율은 평시의 규율과 서로 공명할 것이며 이 규율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변화모습이 검토되어야 한다. 즉, 군율이 평시의 규율과 서로 공명하면서도 차츰 틈새를 벌리면서, 규율을 성립시키는 요인이 일상적 감시에서 노골적인 폭력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의지와 군율이 결정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은 죽음이 꿈을 가로막는 순간 즉, 오키나와인의 '일본인'되기가 중지되는 순간이므로 결코 죽은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자들은 죽은 자와 함께 죽음이 가로막는 순간에 발견했어야 했던 것을 아직도 계속 찾고 있고 대부분 여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다시금 과거의 시간, 죽은 자가 본 것으로 고착화시킨다. 이 점에서 전장을 둘러싼 기억/이야기는 중요하다.
전장은 진부한 일상 속에서 준비되었고 그 일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상에서 전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바로 진부한 일상의 심연에 내부의 적으로서 죽임을 당했던 타자가 발화를 봉쇄당한 채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상기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진부한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의미세계를 뒤흔들어 다른 공간과 시간을 발견해 나가는 작업이며,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영위 속에서 압살당해 온 타자가 의미를 갖고 말문을 여는 일이다. 그렇기에 전장의 이야기는 일종의 정치적 장으로서 발견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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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임지현.이성시 엮음,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기획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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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는 '국사'라는 교과서의 기술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국사'가 가지고 있는 근대 국민 국가 권력의 역사 왜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사'의 탈피를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을 집필한 연구자들의 소개글이다.
우리에게 '국사(國史)'는 억압이며 배제이며 은폐입니다. 국사는 역사를 일국사라는 하나의 틀 안에 가둬버림으로써 밑으로부터의 역사상을 매몰하고, 역사적 상상력의 결핍을 불러오게 됩니다. - 이성시(와세다대, 한국고대사)
'국사'의 해체는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대한 동경, 제국과 근대에 대한 욕망을 버림으로써 '길들여진 타자'인 주변부 역사학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동아시아 차원에서 남.북한-중국-일본의 국가 권력을 잇는 '적대적 공범관계'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 임지현(한양대, 동유럽사)

적절한 문제제기와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대안의 부재와 이러한 운동이 한국에 한정된 점은 근본적으로 이 '운동'의 한계와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이영호 선생의 이 연구성과에 대한 비판이다. 한번 되새겨볼만한 지적이라 생각된다.

"민족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국사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제국주의와 식민지 모두에 그 정신사적 배경이 있음을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현실적인 국제관계는 그러한 지향에 적합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어디에 있는가? 애국주의에 기초한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 일본의 군사 대국화, 중국의 티베트 탄압과 러시아의 체첸 탄압 등 적대적 공범관계의 전형적이고 전세계적인 지배의 청산을 촉구하는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궁극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당연히 국민(민족) 국가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해체를 지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이러한 비판과 논의는 위험스럽고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든다. 임지현 선생의 "'해체한 다음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준비된 답변이 없다.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동아시아 역사포럼'의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말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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