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야마 이치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 책의 주제는 "군사적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과거의 전장에 한정하여 모색하는 대항의 가능성이 아니라, 일상이 전장으로 만들어져 가는 현실세계 속에서 모색하는 반군투쟁의 가능성"이라고. 따라서 도미야마는 "이 가능성을 말로 사고하려 할 때 직면하게 될 안개이자 개입해야 할 상황"인 전장의 기억에 집중한다. 그러나 기억 자체는 가능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능성은 전장이 된 일상의 폭력을 예감하는 신체이며, 폭력의 예감을 어떻게든 기술하는 말(언어)이며, 말하는 기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부분은 책 제목과 같이 <전장의 기억>을 다룬다. 이 때의 전장은 일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현실세계 또한 직조하고 있는 그런 공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전장과 그와 연결된 일상의 폭력으로부터 우리가 지각하는 신체와 말을 문제 삼아 폭력의 예감을 확인하고 그 폭력의 예감으로부터 어떤 반응/말들이 나타나며/만들어지며 이를 어떻게 밀고가야 그 폭력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대항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러한 과정은 특별히 근대 일본의 '유일한' 전장이었던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 오키나와의 지식인인 이하 유후의 '말'을 중심으로 추적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인 <폭력의 예감>은 도미야마의 또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니 그 책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전장의 기억>에만 집중하여 그의 논의를 따라가도록 하자.

1장. 전장을 사고하는 것
관동군 731부대의 인체실험의 이유는 '동아의 평화'라는 낯익은 슬로건만이 아니라 '출세'라는 근대 일본이 줄곧 유지해 온 가치관이 뒤켠에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전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세계에서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전장이 비정상적인 상태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광기도 아니며 나날의 진부한 삶 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전장에 일상을 갖고 들어감으로써 일상과 동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말투를 추궁하고, 거꾸로 일상 속에서 전장을 발견해 내는 왕복운동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오키나와 전투를 주제삼아 전장의 광경을 분석적으로 이야기하고 전장의 기억을 말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류큐는 1879년 '류큐 처분'과 1898년 징병제의 시행 등의 제도적 동일화에 의해 타이완이나 조선과 달리 완전히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제도적 동일화가 곧바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일본인'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오키나와 전투를 둘러싼 전장이 중요한데, 오키나와인의 '일본인'되기는 일상생활과 전장 '동원'이라는 신체적 실천이 하나로 연출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오키나와인들의 '일본인'되기는 대동아전쟁의 패배와 오키나와출신 황군 병사의 전사로 실패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생활의 죽음이다. 하지만 생활은 8월 15일로 단절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 연속성은 생활의 죽음 가운데서 도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따라서 평시에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일상적인 삶과 맞닿아 있는 오키나와 전투를 그려내는 작업과 이 작업에 의해서 전후에 생겨난 오키나와 전투 이야기를 되묻는 일은 중요하다.
덧붙여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내부로 침투해 오는 타자에게 가위눌림을 당하면서 그 타자를 의식세계나 의미세계의 임계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타자성을 배제함으로써 일상을 구성하는 신체적 실천이 '일본인'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전장과 이어져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임계영역으로 밀려나간 타자의 행방(배제된 타자성)인데 이를 통해 균질적인 내셔널리즘으로 수렴/회수되지 않을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한지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총력전'으로서의 근대 전쟁은 전장이 일상화되고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사라져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전장 동원이 진행된다. 이때 전쟁 '동원'이란 항상 전장 동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으로의 동원을 가능케 하는 군율은 평시의 규율과 서로 공명할 것이며 이 규율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변화모습이 검토되어야 한다. 즉, 군율이 평시의 규율과 서로 공명하면서도 차츰 틈새를 벌리면서, 규율을 성립시키는 요인이 일상적 감시에서 노골적인 폭력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의지와 군율이 결정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은 죽음이 꿈을 가로막는 순간 즉, 오키나와인의 '일본인'되기가 중지되는 순간이므로 결코 죽은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자들은 죽은 자와 함께 죽음이 가로막는 순간에 발견했어야 했던 것을 아직도 계속 찾고 있고 대부분 여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다시금 과거의 시간, 죽은 자가 본 것으로 고착화시킨다. 이 점에서 전장을 둘러싼 기억/이야기는 중요하다.
전장은 진부한 일상 속에서 준비되었고 그 일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상에서 전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바로 진부한 일상의 심연에 내부의 적으로서 죽임을 당했던 타자가 발화를 봉쇄당한 채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상기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진부한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의미세계를 뒤흔들어 다른 공간과 시간을 발견해 나가는 작업이며,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영위 속에서 압살당해 온 타자가 의미를 갖고 말문을 여는 일이다. 그렇기에 전장의 이야기는 일종의 정치적 장으로서 발견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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