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전장 동원
오키나와 전투에 이르는, 즉 '일본인'이 되는 도정을 여기서는 평시의 규율이 전쟁 동원의 규율로, 그리고 전장을 지배하는 군율로 전환되어 나가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규율이라는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전장과 나날의 진부한 일상에서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연결되지 않게 되는 순간, 즉 오키나와 전투에서 제일 마지막에 군율을 이탈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서 발견해야 할 그 무엇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다. 더불어 중요한 점은 오키나와로부터 남양군도로의 이민인데 이 또한 사이판에 '자살절벽'이니 '만세절벽'이니 하는 지명을 새겨놓는 '일본인'이 되는 도정이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도 조선이나 타이완과 같이 황민화정책에 따른 국민정신 총동원운동이 전개되고 이는 '생활개선'에 편중되어 진행되었다. 생활개선의 대상은 오키나와어, 오키나와 전통 장례인 센코쓰(洗骨), 오키나와식 이름, 오키나와식 복장과 음주, 젊은 남녀의 교제풍속인 모아소비(毛幼), 자비센 반주노래 등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들에 미쳤다. 이러한 항목들은 시기별 차이는 있었지만 오키나와의 근대에서 언제나 개선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생활개선이 이처럼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게 된 이유는 오키나와 노동력의 외부유출을 가져왔던 1930년대 소철지옥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생활개선운동은 일상생활의 당위적인 도덕으로서 수용되었다. 오키나와에서 생활개선을 도덕으로 수용해 간 사람들의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표준어 장려운동을 둘러싼 '오키나와 방언논쟁'이 중요하다. 특히 "올바른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 건강한 것"이라는 가치판단적인 '문화'를 주장하며 오키나와어 폐지운동을 비판하는 일본민예협회과 달리 '문화적 의미와는 별개'로 일본 또는 외지와/에서의 차별 극복을 위한 생활상의 '필요'를 주장하며 오키나와어 폐지운동을 주도하는 오키나와 출신자들의 논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표준어 장려운동 등 생활개선에서 주장된 생활도덕을 수용해서 감시와 규율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는 그 배후에 현 외부 유출과 관련된 생활의 '필요'라고 하는 사적인 의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사적 의도가 '일본'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가치합리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개선은 현 외부 유출을 매개로 하면서 오키나와의 운동뿐만 아니라 오사카, 남양군도라는 지리적으로 확장된 범위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우선 오사카의 생활개선운동은 멸시의 대상이 되어 있던 밀집지역의 일상생활에 대한 세밀한 개선항목들이, 불식되어야 할 '오키나와' '오키나와인'을 구성했다. 개선항목들은 '뒤쳐진' '낮은 수준'의 것으로서 부정적 가치를 부여받고 불식의 대상이 되는 반면, 지향해야 할 긍정적 가치로서 '일본인'이 설정되었다. 여기서 근면성이 중요한 도덕적 표지로 떠올랐고 근면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생활개선운동이 전개되었다. 여기서 다시 전환이 일어나는데 근면성을 나타내는 증거를 제시하려던 생활개선운동이 근면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오사카의 생활개선운동은 차별로부터 벗어나려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도덕적 주체로서 자기를 구성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오키나와 출신자가 훌륭한 노동자로 규율화된 주체로서 스스로 구성해 나간다고 하는, 프롤레타리아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실천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런 실천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편 남양군도로의 유출과 그 속에서 전개된 생활개선운동은 식민지 경영의 민족별 차별적 노무관리로 인하여 자기 생활과 관련되는 오키나와 문화를 뒤쳐진 것으로 불식할 뿐만 아니라, '낮은 문화수준'을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서 선주민을 설정하고 그들 위에 자리를 잡는 운동이었다. 또한 이 생활개선운동이 식민사회에서 민족별로 서열을 가르는 가운데 전개되었고, 그 서열을 뛰어넘고자 하는 오키나와 출신자의 운동 자체가 '일본인'과 선주민의 서열을 유지하고 고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생활개선운동에서 '도덕적 주체로서 자기를 구성한다는 것'은 오키나와 출신자가 노동자로서 규율화된 주체로 스스로를 구성해 나갈 뿐 아니라, 선주민을 지도하는 통치자로서 주체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예로부터 해양민족이었고 남양의 지도자로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오키나와 문화의 재평가로, 즉 '전통의 창조'로 이어졌다. 이것은 남양으로의 유출과 관련된 생활개선이 전통문화의 억압이 아니라 문화의 쇄신, 나아가 창조로서 전개되었던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저팬 카나카'로부터의 탈출(일본인이 되는 것)이란 지도자 '일본인'을 지향하는 운동인 동시에, 남양군도의 식민지 경영을 뒷받침했던 차별적 노무관리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했다. 여기서 성공을 추구하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남양의 지도자가 되게 하려 한 남양청 사이에 존재했던 사고의 틈새가 존재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꿈과 제국주의적 침략은 틈새가 생기면서도 서로 유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생활개선은 관제 운동이라기 보다는 오키나와 사람들 자신의 운동으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상생활의 향상을 염원하는 마음 속으로 제국의식(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이 스며들어왔고 지도받아야 할 타자를 계속해서 구성해 갔다. 불식해야 할 내부적 타자인 자신을 비롯하여 남양군도의 선주민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을 타자로 삼음으로써 '일본인'은 그렇게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주체화는 본토의 노동시장과 남양군도의 유출이라는 '필요'와 연관되었다. 그리고 차별에서 탈출하려는 생활개선운동은 주체화를 두 가지 방향으로 이끄는데, 하나는 '자유롭지 않은 노동'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노동'의 세계로 이행하려는, 즉 본토의 노동자화 즉 프롤레타리아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롭지 않은 노동'의 세계 속에서 향상을 추구하려는, 즉 남양군도의 통치자가 되려고 하는 방향이다. 이 두 가지 방향은 모두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에 놀랍도록 서로 공명하면서 일체가 된다. 그렇다면 근대사회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계기인 프롤레타리아화 속에서 제국의식이 함께 양성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방향이 전자로부터 후자로 진행/창출해 나가는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자기를 '이화(異化)'시켜 '도덕적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과 '이화'의 내용을 타자에게 실체화시키는 것은 일련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한편 '자유로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를 '도덕적 주체'로 구성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도덕적 범죄자(=일탈자)'라는 위협 아래 매일 감시받고 규율화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자유롭지 않은 노동자'는 자기를 구성하는 방식과 상관없이 지배당할 수 있음을 뜻하며 이것은 곧 강제이며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과정 속에서 노동자가 된다는 것과 통치자가 된다는 것의 일체화는 감시를 받는 주체와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라는 두 가지 방향의 일체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주체화는 국가의 안과 밖이라는 문제로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감시를 받는 국내의 주체는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고 또 폭력이 자신을 유린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시를 받는 주체에 의해서 형성된 시민사회와 제국이 공존할 수 있으며, 제국으로의 참여가 시민사회로의 참여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국가의 두 얼굴이 한 인간의 주체화라는 문제로 합치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바로 병사다.
그렇다면 감시를 받는 주체는 과연 국가의 폭력을 행사하거나 거꾸로 그 폭력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특히 국내가 전장이 되는 오키나와 전투와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군율이 주민에게 확대되고 급기야 파탄에 이르는 문제를 살펴볼 영역이 여기에 존재한다.

이제 일상생활의 규율이 전장의 군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이를 위해 오키나와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에 전개된 생활개선이 전장 동원에 필요한 군사적 요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군은 우선 생활개선운동과 동일하게 오키나와 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이를 전장 동원상의 '필요'와 결부시켰다. 특히 방첩과 관련해서 '저급한 문화'의 사례인 오키나와어 같은 것들이 군사능력의 표지로 이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스파이'라고 하는 일탈에 대한 공갈이 집단 내부의 규율을 군율로 이행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전장 동원이 지향됨에 따라 지도자도 도덕적 지도자와 함께 재향군인이 방첩활동의 지도자로 새롭게 포함되었다. 이처럼 전장 동원은 군사적 요청에 입각하여 군에 의해 위로부터 강제적으로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시의 심성과 서로 공명하면서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의 규율이 그대로 군율로 전환된 것은 아니다. 일상세계를 전장으로 변모시켜 나가는 데에는 병사 경험이 있는 재향군인을 지도자로 영입하고 '도덕적 범죄자'를 '스파이'로 탈바꿈시키다고 하는 비약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반대로 군율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된 일상생활에서의 규율로부터도 이탈하는 주체를 창출하게 된다. 전장이란 군율이 지향되는 장인 동시에 주체의 결정적 이탈을 낳는 장이기도 했다.

오키나와 전투가 본격화 되는 전장에서 지도자가 감시 지도한 '도덕적 범죄'가 '스파이'로 이어지고 그 '스파이'가 도리어 이민 경험이나 미군과의 접촉 때문에 이번에는 지도자 자신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규율 또는 군율에 복무하는 주민의 참여도 엿보였으며 그들은 이 과정 속에서 고뇌하였다. 여기서 군율은 평시의 규율과 공명하면서 확실하게 주민에게 확대되어 갔으며 동시에 규율로부터의 이탈(오키나와어의 세계, 지도자층의 이탈)을 창출하였다. 나아가 군율로부터의 이탈은 스스로의 과거와 직면하면서 생기는 타자에 대한 분노와 함께 과거의 자신에 대한 격렬한 내적 성찰인 '원한'과 직면한다. 내적 성찰이 마주하는 과거란 현존했던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에 발견되고 구성된 과거다. 따라서 과거를 어떻게 떠올리는가 하는 것은 현재와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처럼 오키나와 전투에서 군율이 붕괴되어 나가는 과정은 군율로부터 사람들이 이탈해 갔을 뿐만 아니라 이런 '원한'을 수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장에서는 새로운 주체가 발견되었으며 '원한'과 함께 과거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획득된 것은 오키나와어이며 '오키나와 민족'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지금까지의 실천이 전장에서 '원한'을 갖고 반추되고 과거를 돌이켜보는 그 마음속에서 오키나와어가 갑자기 등장했다는 점이다. 전장에서의 원한과 오키나와어는 근대의 감시와 폭력을 거부하는 주체로서 발견된다. 이것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공동성'으로부터 이탈한 새로운 '공동성'의 사상적인 내용 규정 그 자체을 말한다. 새로운 공동성은 근대를 염원해 왔기 때문에 발견되고 구성된 과거이며 과거의 기억이다. 또한 그것은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만들어낸 폭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의 공동성을 확보하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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