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전장의 기억
국민의 이야기가 상상의 공동체를 창출할 때, 거기에는 그 수다스러운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침묵해 가는 별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침묵해 가는 것은 산 자만이 아니다. '죽은 자를 대신해서 말한다'고 하는 권위주의적인 이야기 속에서 죽은 자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됨으로써 침묵한다. 침묵하고 있음을 빌미로 '아무도 모른다'고 수다스레 지껄여대는 국민의 이야기. 그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내뱉는 장을 증언의 영역이라고 하자.
국민의 이야기 아래에는 이 증언의 영역이 항상 감춰져 있다. 이 증언의 영역은 망각의 문제와 연관된다. 하지만 그저 망각에 대항해서 기억해야만 하는 영역은 아니다. 한국전쟁처럼 학살이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자연스럽게 상기되면서도 잊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 일련의 상기와 망각의 기법이야말로 국민의 이야기를 구성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해야 할지를 '대신해서 말하는', 그 이야기의 위치인 것이다. 전사자에 관한 국민의 이야기는 말하는 주체와 죽은 자 사이의 그 어떤 실천적 관계도 부인한 채 죽은 자를 인식의 대상으로 회수하고, 그 결과 죽은 자는 바로 이야기의 대상이 됨으로써 말 못하는 유골(관찰대상)이 되는 것이다.
죽은 자를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함께 어떤 시간성 속에서 대화해 나갈 수 있게 됨으로써 짜여지는 이야기를 증언이라고 한다면 이런 실천적 관계와 그 속에 이어지는 시간성을 부인하고 죽은 자를 국민의 분류대상으로 회수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자기동일성을 보증하고 우리의 시간을 표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라는 영역을 설정하자. 국민의 이야기로 완전히 회수될 수 없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증언의 영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는 실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은 파농에 의하면 어떤 이야기건 '대신해서 말하는' 행위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증언의 영역은 호미 바바가 말하듯이 '상상의 공동체'에 존재하는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으로 회수되지 않을, 불확정적이고 반복적인 '수행적 시간'을 발견해내는 그런 이야기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전쟁 체험 중 전장 체험은 전장에서의 죽음이라는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성한다. 특히 전장 기억을 체험의 특권화로 연결시키지 말고 분절화하여야 하는데 이는 국민적 기억으로는 회수될 수 없는 흔적, 즉 증언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전장의 기억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事象에 집착하는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체험으로서는 존립하지 않는다. 즉 체험으로 말할 수 없는 '공백'이 드러난다. 이 '공백'은 아무런 전제 없이 말할 수 없는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고 하는 실천 속에서 설정된다. 따라서 체험을 말하면 말할수록 그 구체적 체험이 구성되는 의미의 연관을 모두 소멸시켜 버리는 영역이 그 배후에 다가오는데 이 영역이 '공백'이다. 결국 전장의 구체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하면 말할수록 개별적 영역이 해체되고 마는 불안정한 발화를 통해 혼란스러운 시간의식을 창출하는 공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전장 체험이라는 불안정한 이야기의 영역은 전사자 '대신에' 의미를 확정하려고 하는 역사주의적 국민의 이야기를 갖고서는 독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전장 체험이라는 불안정한 이야기를 말하는 실천이란 증언의 영역에서 개인을 해체시켜 나가는 작업인 동시에, 이 증언의 영역이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재정의라는 극히 정치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전장 체험 이야기 속에서 전후의 일본 좌익적 담론이 민족으로 재정의되어 가는 과정에서 오키나와는 중요한 지점이다. 좌익의 오키나와 '귀환'운동처럼 오키나와는 전후 일본의 영토의식 속에 있어야 할 본래의 영토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역사지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를 반환하라'고 하는 주장은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의 중요한 요소이다. 오키나와 전투라고 하는 전장의 기억을 통해 성립된 이 내셔널리즘은 바로 '순국한' 사자들에 의해 구성된 영토 획득운동이었다. 특히 '히메유리'로 대표되는 오키나와 전투 이야기는 순국한 '일본인'을 칭송하는 일종의 야스쿠니신사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사회에서는 반전 평화의 슬로건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희생자' 담론이라고 하는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의 재구축 논리가 존재한다.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전범이라는 외부를 만들어 내어 가해자를 일부분으로 한정시키고, 천황을 포함한 모두가 스스로를 전쟁의 희생자로 연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더불어 오키나와의 비극을 자기 일처럼 애통해하는 가운데 자신을 희생자로 구성해 냈던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의식의 강조는 평화주의로 연결되고 가해자 의식의 망각은 전전 대동아의 꿈을 연명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시아라는 타자를 망각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일본'으로 확정할 수 없는 이질적 존재까지도 망각하고 있는 점이다. 즉 희생자 공동체로서 다시 '일본인'이 구성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증언의 영역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 증언의 영역은 단순히 전쟁 가해자라는 자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불협화음을 상기하고 국민의 이야기로 포섭되지 않을 이질적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아시아를 상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발화의 가능성, 새로운 분절화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전장 동원의 장에서 살펴본 오키나와처럼 생활개선을 추진하고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던 '지도자' 데루야 다다히데는 오키나와 전투 중에 일본군의 '스파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이 사건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일본군의 군율로부터 이탈하게 만들었으며 단순히 도주만이 아니라 반군의지까지 야기시킨 촉진제였다. 여기서 일관되게 '일본인'이고자 했던 한 인간이 타자(=적)로서 살해된 죽음을 어떻게 상기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알다시피 전장에서의 죽음과 그 기억은 두말할 나위 없이 내셔널리즘의 가공할 원천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인'으로서의 죽음으로의 동원과 '스파이'(=적)으로서의 학살이라는 두 가지 죽음으로 찢겨진 주체의 잔여 부분이다. 이 잔여야말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을 상기할 때 내셔널리즘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잡음의 근원이며, 역으로 내셔널리즘은 이 잔여의 망각과 회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인'으로서 동원되면서 타자(=적)로서 살해당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조국 복귀'가 정치 일정으로 가까워짐에 따라서 일본군에 대한 원한에서 '핵도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 현'이라는 반전 복귀의 운동방침과 공명하며 상기되고 이야기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학살사건이 르낭이 말한 '동포 살해'로서 상기된다는 점이다. 일본군에 대한 원한이 '동포 살해' 속에 갇히면 갇할수록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하는 기억이 각인된다. 결국 반전과 내셔널리즘이 일체화되는 가운데서, 즉 반전 복귀의 깃발 아래서 학살이 이야기된다. '일본군'에 대한 증오라는 기억은 반전 복귀라는 정치 주체의 헤게모니로, 또 조국을 위해 죽는다고 하는 강렬한 내셔널리즘으로 이어졌지만, '일본인임을 잊었던' 기억(오키나와인을 재정의한 기억)은 정치 주체로서는 발설되지 않는 기억으로 방치되었다. 그렇다면 '복귀'를 기점으로 해서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축소되어 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태'라고 하는 전장의 표상에 의해서 일상의 진부한 정경과 전장은 드디어 단절되었다. 이제 망각과 침묵의 시작이다.
데루야 다다히데의 죽음은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난 뒤에 내셔널리스트로 상기되면서 선양의 대상이 되었다. 이 상기와 선양은 보상을 요구하고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정치적 주장과 맞물려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데루야가 '스파이'로 학살당했다고 하는 전장의 기억을 일상과는 무관한 전장으로 봉인하여 상기를 금지하고 망각을 강요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망각할 수 없는 기억은 스스로를 봉인하고 침묵해 간다. 그렇더라도 내셔널리즘은 과거를 발명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대신 '절멸 전쟁'의 '망각'이야말로 '국민 창조의 본질적 인자'다. 그렇다면 국민의 이야기 속에서 전장의 기억은 끊임없이 잔여를 산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전장이란 결코 담론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약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비약에는 폭력이라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결국 전장이란 사후적으로밖에 상기될 수 없는 것이다.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조국 복귀'를 하나의 매듭으로 해서 전개된 정치적 헤게모니 속에서 상기되고 이야기되었다.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면 담론 공간을 재편성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며, 그 작업은 과거의 기억의 상기라는 영역에서 진행된다. 또 상기라는 과거의 기억의 담론 공간에 대한 반역은 새로운 헤게모니의 가능성을 창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기한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분절화'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결국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국민의 이야기 속에서 상기되는 가운데 그 잔여는 축소되고 혼란을 겪으면서 침묵해 갔다. '자신이 일본인임을 잊어'버리고 만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은 국민의 이야기가 성립하는 가운데 봉인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잔여의 기억의 봉인이야말로 정치적 행위의 문제로서 다시금 발견되어야 한다. 이 봉인되어 간 침묵이 깨질 때, 죽은 자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부활할 것이다.
4장 기억의 정치학
전장과 분리된 일상은 여전히 전장과 연결하는 매개를 이미-항상 지니고 있다. 예의 하얼빈 할아버지의 의미화되지 못한 일본어 발화는 발화한다는 실천 가운데 관동군의 만행이나 731부대로 이어지고 전장은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또 다른 예인 오쿠자키의 집요한 개입은 스스로 아직 전장에 있다는 것과 상대방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을 끝까지 들이대며 전우관계를 오싹하게 하고 해체시키며 재구성한다. 이처럼 하얼빈의 할아버지이건 오쿠자키이건 모두 전후 일본 사회 속에서 너무도 당연한 듯이 진부한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던 실천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이 전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진부한 일상을 다시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익숙해져 있는 신체의 도식이 지금도 아직 전장에 있음을 상기하는 것은 그 신체의 도식이 싫든 좋든 변용되어 버릴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이 묘사한 식민지 공간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나 여기서 줄곧 살펴본 오키나와의 사례는 모두 이러한 신체 변용의 실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불안정한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전장을 상기하는 것, 즉 일상 속에서 계속 전장을 상기하는 것은 이런 나날의 실천(신체 변용의 실천)이 전장의 몸짓임을 확인하는 일이며 신체화된 실천을 전장이라는 장에서 재구성해 나가는 일인 것이다. 구축된 실천으로부터 다른 구축의 가능성이 부상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장을 상기한다고 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 상기한다고 하는 작업은 신체적 변용으로서 시작되는 것이다. 기억은 담론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체와 실천을 구성하는 정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