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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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팟캐스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중앙대 김누리 교수님의 독일 관련 강의를 듣고 독일 통일, 68혁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책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창비에서 <베를린, 베를린>이란 제목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책이다!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독일과 우리나라가 분단의 아픔이라는 역사를 공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특히나 독일의 통일이 우리에겐 희망이자 가능성의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얻는 확실한 결론 한 가지는 우리와 독일은 많이 다르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독일은 분단된지 50년이 채 안 돼서 통일이 될 수 있었지만, 우리의 통일은 훨씬 더 어렵고, 요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나는 우리도 독일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대신 절망감을 느꼈다.

통일이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겐 '빌리 브란트'와 같은 정치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브란트는 서베를린 시의회 의장이었다가 나중에 서독 연방정부 수상이 되어 사실상 독일 통일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물론 자유를 희망하는 동베를린, 동독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시민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원칙과, 대립과 갈등 속에서 최소한의 합의라도 이끌어내야 한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던 브란트가 없었다면, 통일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잇따랐을 것이다.

우리에겐 왜 브란트와 같은 정치인이 없을까. 왜 우리 곁엔 자신 혹은 자기가 속한 정당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협상 무효'를 불사하며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정치인만 수두룩한 걸까. 자한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과 그걸 지지하고 나선 사람들이 너무나 한심하고 꼴사납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원칙'과 '소신'을 남발하지만, 대체 그 원칙과 소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꼭 하나가 되는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통일보다는 평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베를린, 베를린>의 저자가 제기하는 '분단이 완전한 차단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통일을 이야기 할때 흔히 경제 논리를 앞세우고,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 1국가 체제의 형태를 생각하지만, 양보 없이 통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조금씩의 교류와 관계 개선 없이 급작스런 통일은 더욱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서독과 동독은 분단이 된 상태에서도 교류와 왕래가 이루어졌고, 특수한 위치의 '베를린'이 있었기에 양측 정부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분단된 이래로 민간인의 서신 왕래나 교류가 허용된 적이 한번도 없었고, 베를린과 같이 분단된 정부의 접점이 되어줄만한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과 우리가 이렇게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동독 양측 정부가 분단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 있어서는 흔들림이 없었다는 사실은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브란트가 훌륭한 정치인이기는 했지만, 그를 수상으로 선출하고 그의 신동방정책을 지지해준 것은 수많은 독일 시민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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