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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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얼핏 대형 서점에서 스치듯 표지만 힐끗 보곤 고개를 돌렸던 책이였고, 또 한번 찾은 서점에서는 유심히 스르륵, 넘겨 보았던 책입니다. 결국 , 잠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 끝에, 제 손에 쥐어지게 된 에세이 집이지요. 익숙한듯, 낯설은 영화평론가 이동진님의 에세이. 그렇게 첫번째 책인 <밤은 책이다>로 질긴 인연의 끈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처음엔 그닥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선뜻 손이 가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이상하게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언가 참 마음에 듭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촘촘히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책으로 둘러싸인 벽에 기대어 가만히 사색에 잠기듯, 혼자만의 그 시간을 보내는 한 남자의 모습이요. 참 무언지 모른 따스함이 몸안으로 스며드는 기분이랄까.

 

느린 책읽기의 습관이 몸에 베인 제게 , 잠시 토끼처럼 빠른 뜀박질을 보여주듯, 이동진님의 에세이는 손에 잡은지 단 이틀만에 제 손에서 다시 벗어났습니다. 오랫만이네요, 최소 일주일, 최대 한달 가까이를 늘 한권의 책을 읽기까지 지지부진하게 참 오래 품에 안고 지냈는데 이런 제게 이런 현상은 '기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요일,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 무렵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열이가 메일로 잔뜩 보내 주었던 애정스러운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플레이 하고선 말이지요.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반드시요. (웃음)

 

 

 

아,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덕지덕지 플래그잇을 붙이기도 오랫만이고요, 왠지 모를 찡함에 코끝이 시려 오기도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이 에세이는 76권의 적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책 이야기들이 짧막하게 담겨 있습니다. 인문, 교양, 예술, 문학, 과학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지요. 저와는 벽을 만든채, 친해지지 못한 분야들에게선 살짝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책 소개가 아닌, 책 속의 일부분을 이야기 하면서 그 속에서 또다시 얽힌 저자 자신의 이야기, 또는 우리들의 일상, 삶, 어쩌면 익숙한 지금의 시간 속에서 잠시 그 존재들을 잊고 사는 소소함의 어떠한 것들로부터 소중함에 있어 깨우침(깨달음)을 주고 있어요.

 

  제게 밤은 한 권의 거대한 책입니다. 곧 밝아올 새벽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짙은 어둠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은 오전 세시. 고요한 한밤의 서재에서 여러 권의 책을 뒤적이며 읽다가, 계속 미루기만 했던 이 서문을 씁니다.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장 내밀하게 이어지는 통로이겠지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된 책들은 보다가 멈추어 고개를 드는 순간 제게로 변형된 채 틈입해 들어오던 그 깊은 밤의 상념들을 이제 당신에게 보냅니다.   이 책을 읽다가 당신도, 문득, 수시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프롤로그)

 

소근소근, 자장가를 들려주듯 참 조용하고 , 속삭임 같은 같은 책입니다. 나른하게 또는 , 부드럽게 곁에서 이야기를 해주듯, <밤은 책이다>는 그런 느낌의 텍스트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프롤로그 에서처럼,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잠시 고개를 한 번, 두 번, 세 번, 어쩌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번 들기를 반복하며 단상에, 상념에 몽상에 빠져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잠이 들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유독 새벽이 길었던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 잠들지 못한채 라디오를 켜고 책에 고개를 파묻혔습니다. 문득 라디오에서는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 (am 02:00 - am 03 : 00)"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이동진님의 목소리가 왠지 참,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마지막 모습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했던 행동,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이 긴 시간 동안 마음의 우물에서 계속 울려대는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을 통과하고 있는 그때, 우리는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감사와 사랑의 말이 있다면, 가능한한 매순간 하고 살아가야 하는게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게 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존재니까요. (60쪽)

 

눈으로 음미하듯, 마음으로 다시 되새김질 하며 아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중, <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이란 소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동진님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옴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텍스트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또다시 상념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진짜의 나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302쪽. 책 속의 책 '새의선물/은희경')

 

<밤은 책이다> 이 에세이는 많은 분야의 책들을 소개하고 이야기 하지만, 전혀 지루함이나, 지겨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힘이 되었고 비타민이 되었던 것 같아요.  편향 되어있는 저의 책읽기에 작은 기틀을 만들어준 셈이죠. 참으로 세상에 다양한 책이 있음을 새삼 느끼기도 했고요, 살며시 책 속의 책들을 가만히 메모해 놓기도 합니다. 영화평론가 이면서도 책에 관한한 이동진님의 박학다식함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진정으로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깨알만큼 알수 있었고요.

 

이 책은 잠이 오지 않는 늦은 새벽의 시간과,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함께 , 살며시 천천히 읽으시길 권해 드리고 싶답니다. 그래야 책 속의 오묘한 그 맛을 느낄수가 있거든요. 시끄러운, 혼잡한 곳에서 읽는다면, 오롯이 텍스트를 눈으로 훑어 내리는 행위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러면 또한 감흥도 당연히 느낄수 없는 것이겠지요. 참으로 오랫만에 두고두고 , 가끔씩 들춰보고 싶은 에세이가 한권 생겼습니다. 덕분에 저의 Wish List는 조금 더 풍성하게 빵빵해 졌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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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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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의 첫 번째 소설 <변호 측 증인>을 집어 들었습니다. 1월 1일의 시작과 함께한 책이지요. 하지만 이제서야, 열흘이 가까워지는 지금에서야, 책의 마지막장을 겨우 덮고,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보다 발빠르게 읽으신 분들의 단평들을 보면 하나같이 "대단하다" 라는 호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완벽하고 철저하게 속을 수밖에 없는 '반전' 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심심치 않게(하지만 제겐 가끔)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즐기는 저이기에, 매번 이렇게 서술트릭으로 오묘하게 독자를 속이는 소설들을 제대로 한번도 통쾌하게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번 소설에서도 크게, 꼭 반전을 확실히 맞추겠다는 강한 의욕 보다는, 그냥 물 흐르듯이 소설 속 이야기에 파묻혀 읽어나가야지, 하며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재벌가의 방탕한 외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스트립 댄서 미미 로이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위해, 그리고 남편의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며느리이자 가족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하면서 지극히, 소소한 그녀의 꿈은  시아버지가 살해되면서 철저히 짓 밟히고 말지요.  시아버지가 살해 되던  그날 밤, 결혼을 반대했던 시아버지에게 남편은 폭언을 내뱉고. 남편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 어쩌면 용의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위증을 하게 됩니다.

 

늘 그렇지만, 트릭이 있는 소설을 읽을때면 다른 책을 읽을때와는 다르게 2배는 더 집중하며, 텍스트 하나하나를 세심히 , 집요하게 읽어가는것 같습니다. 가볍게 읽어야지 마음을 비웠으면서도, 읽은 독자인 저에게는 내심, 약간의 승리욕구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소설 역시, 늘 그랬듯, 책의 내용 보다는 우선 "서술 트릭"이란 점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물 흐르듯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이하게 흘러가는 소설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어찌보면 타 추리 ,미스터리물에서 볼수있는 복잡하고, 각종 장치, 또는 화려한 스토리로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 반면, 이 소설은 그에 비해 참으로 단순함이 느껴지지요, 살인이 일어났고, 범인들이 지목되고, 취조를 하고, 아주 고전적인 형식으로 하나씩 범인을 추스려 갑니다.

 

그렇게 이야기의 전개는 어찌보면 진부하고 식상한듯 하지만, 묘하게 끌림이 있습니다. 자꾸만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은 은근한 충동이라고 해야 할지요, 쉽게 읽히기에 그리고 이 평이한 이야기를 가지고 어떠한 결말을 안겨줄지에 대한 오묘한 기대감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책의 텍스트를 따라, 시선도 함께 그 뒤를 쫓다보니, 어느덧 결말 부분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지요, 하지만 오히려 저는 , 도대체 어느 부분이 반전이라는 말인지,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그냥 책을 읽었을뿐, 옳곧은 방향으로  결말이 된 이 소설이 어디서 반전인건가요? 다른 독자분들의 호평속에서 "속을수 밖에 없다"라는 단평들을 보며 , 잠시 제가 이 소설의 반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당황스러움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당황스러움은 다른 분들의 서평을 잠시 읽어보면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독자들이 착각 할수 있는 트릭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서 있는그대로 보았나 봅니다.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이 소설의 결말을 보고도 무덤덤히 책 장을 덮었던 이유도, 이 소설을 읽은 다른 독자분들처럼 앞 페이지를 다시 뒤적여 보지 않았던 것 또한, 텍스트들이 그려주고 있는 그림을 그대로 보았던 때문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하~! 저에게 이런 경우도 있네요, 이 소설 뒷부분에 있는  소설가 미치오 슈스케의 해설을 읽다보니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그 그림은 당신 자신이 그린게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서도 알수있듯, 소설을 읽다보면, 그 상황들을 머릿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로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밑그림을 그린후, 점점 또렷한 색채를 넣고, 그리고 완성해 갑니다. 결국 어떻게 그림의 기초를 잡느냐에 따라 독자는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거지요.

 

결국 <변호 측 증인>은 저에게 단순히 법정 스릴러, 추리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지지부진 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가벼운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한듯 하네요. 1963년 이란 50여년전에 출간된 고전 추리라는 점을 고려해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이 얼마나  디테일 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잘 쓰였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많은 양의 책을 읽은 것도, 더욱이 추리 분야를 많이 접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서술 트릭면에서 가장 감탄했던 소설은 아마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이 아니였나 생각이 듭니다. 그에비해 <변호 측 증인>은 어떠한 대단한 반전이나 감탄을 느낄 정도로 쾌감을 느낄 수 없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소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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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여우 발자국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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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 단정짓고 읽는 고전동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 <모던 팥쥐전>은 제가 조선희님의 소설을 처음 접한 첫번째 이야기 였습니다. 그 단정이라는 것이, 가끔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하고, 뜻밖의 이야기의 흐름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아마 <모던 팥쥐전>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고전동화를 현대 소설의, 현대물로 조금의 변화를 주었을 뿐일 거라며, 책을 펼치기도 전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내용의 소설은 정말 때로는 섬뜩함과, 때로는 뒷골이 땡기는 전율을 제게 주었지요, 극도의 공포심도, 흥분의 스릴감도 아니였지만, 스물거리며 올라오는 찌릿한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을 잊을수 없어, 조선희님의 두번째 소설을 집어 들었습니다. 유난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조선희님의 판타지는 또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줍니다. 그녀만의 매력적인 오묘한 소설의 이야기가 제 눈을 즐겁게 해주니 말이지요. 이번 소설 역시 판타지의 느낌이 다분이 들어가 있지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음에, 아주 재료들이 잘 섞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 대로 믿을래? 들은 대로 믿을래?  소설이 시작되기 전,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이 문구는 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어떠한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수 있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는 30년차를 둔 과거와 현재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반복되듯 교차되며 보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현실이 아닌 환상속 이야기를 현실로 불러내는 묘한 목소리를 가진 여인 우필과, 실체를 환상으로 , 환상을 실체로 보는 태주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발자국'이란 공통된 의문을 가지고 있지요.

 

발자국은 다른 발자국을 끌어들이지. 뒤따르는 발자국이 오면 이야기는 앞으로 나가는 법이야. 발자국을 따라와, 그럼 다음 이야기를 들려 줄게.(304쪽) / 자기가 남긴 발자국을 돌아보는 사람은 드물어. 아마 다들 자기가 발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을걸.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이상하다고 여길 필요 없단 거야. 어쩌면 그건 발자국이 아니라 책장을 넘기는 손자국일수도 있지. 우리 눈은 언제나 합리성에 근거해 착각을 일으키니까. 땅바닥에 있어야 하는 건 손자국이 아니라 발자국이어야 하거든 (314쪽) /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너의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 들이지 (315쪽)

 

두 사람의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다다라, 모호한 경계선에서 교차되면서 소설을 읽는 저에게까지 혼란을 안겨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허구와 현실을 가려내려고, 이야기속에 스며들어, 판가름을 하려 부단히 신경을 곤두 세우고 읽어내려 갔습니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의 마지막쯔음 다다르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러한 노력과 생각들이 허무감으로 변해 버립니다.

 

소설은 어떠한 해답을 명백히 드러내기 보다는, 독자에게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것은 역시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생각으로 이 소설을 읽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지기 떄문이지요. 현실과 허구의 판가름의 중요함보다는 , 어쩌면 지금 자신의 삶 또한 어느 한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며칠전 보았던 영화 <래빗 홀>이 생각 났습니다. 평행우주란 세계에서 현실의 나 처럼, 또다른 내 자신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던 그 한 장면이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도, 각자의 삶에서 , 스스로가 세상에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그렇듯 세상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니 말이지요.

 

마지막의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소설 속, 때로는 영화 속 등장 인물에게, 배우들에게 자신을 살며시 대입해 보며, 어쩌면 소설과 영화속의 이야기들을 환상으로, 상상으로 만들어가며 이야기 자체 속으로 자신을 개입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또다른 자신만의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지요. 책을 덮으면서 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 어떻게, 어떤 평범하고, 루즈하고, 단순한, 어쩌면 보편적인 스토리로 마침표를 찍을지 말입니다. (웃음).

 

<거기 여우 발자국> 이 소설은 참, 잘 읽힙니다. 물 흐르듯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 몽환적인 판타지 요소를 담고있으면서도 독자들의 시선을 오묘히, 은근히 놓치지 않으려는 매력적인 끌림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벼운 소름을 느낄수도 있고, 때로는 기묘한 목소리 , 어쩌면 모호한 음성을 가진 우필의 음성이 실제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 발자국을 따라가면 그 끝은 어디일지, 궁금증이 과하게 증폭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마침표는 독자의 몫일 뿐입니다. 저 또한 이렇듯 확실한 결말을 내리지 못했지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 졌는지,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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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벰버 레인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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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그녀에게서 이 소설을 선물 받은지 딱 한달 만에, 나는 이제야 리뷰를 쓰려고 합니다. 사실, 책을 집어든지 2주, 그리고 한 페이지도 들춰보지 못한 채, 2주가 지난 어느 휴일, 가벼운 열감기와 함께, 침대속에서 잉여스럽게 이 책을 집어든채, 꼼짝없이 모든 텍스트를 읽어 내려 갔습니다. 마냥 이재익 이라는 이름이 반가웠을뿐, <압구정 소년들>이후, 두번째 내게 읽힌 소설, 그 뿐입니다. 단지 '몰입이 강한 그의 문체에 반했을 뿐이다.' 라고 하면 .. 이유가 되는지요. 어찌보면 도톰해 보이지만, 책 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사진들이 ,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동안 속도를 배가 시켜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첫 장을 넘기기 전 , 표지 뒷면에 적혀 있는 카피글이 강한 유혹과 의문을 만들어 냅니다. "한 여자와 두 남자, 그리고 작은 방에 관한 이야기 . - 사진이 있는 연애소설" 이 카피글을 보면서, 오롯이 저만의 상상만으로, 책 속을 빼곡히 채우는 이야기를 만들어 봅니다. 그렇지만 한 여자, 그리고 두 남자, 작은방... 이란 단어들의 부조합스러움에 결국, 짧은 단상은 사라져 갑니다. 첫 페이지의 프롤로그 . 그녀가 단지 '프롤로그'만을 쓴채 더이상  채우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들을 이재익 작가는 , 고스란히 그녀의 기억과 추억을 대신해 한권의 책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이렇듯 텍스트로 써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요?)그 미련이, 그 추억이 그렇게, 미친듯 그리웠는지요.

 

서른살의 그녀(준희)는 한번도 자신의 애인에게서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순간도 설레임이 그녀에겐 없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말입니다. 준희는 우연히 혼자 하게 되었던 싱가포르 여행에서의 또다른 인연. 4살 연하의 희준에게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속 북소리를 듣지요, 둥둥둥.... 어찌해야 할까요... 준희, 그녀 말입니다. 준희, 희준 . 두 사람의 사랑은 짧은 인연으로 스치듯 끝날줄만 알았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불륜을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단 한번도 '불륜'이란 단어를 끄집어 내지 않습니다. 오롯이 준희와 희준의 사랑을 , 맑은듯, 순수한듯 , 그렇게 포장하고 표현하고, 이야기 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설속 이야기라고만 치부 하기에는(실화라는 이야기에 더더욱 그럴지도요) 제 마음의 그릇이 아직 텍스트를 그대로 고스란히 흡수하지 못함에 , 그리고 그 두사람의 사랑에 공감 하기에도, 제 마음은 그리 녹록지 못함에 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하면서도 , 꼭 소설속 이야기만이 아닌, 어쩌면 또다른 그녀들, 또는 그들이 자신의 반려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비난과 비판이 아닌, 왠지모를 그들만의 사랑에 마음이 동요 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수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그 뿐입니다. 단지 그뿐! 저의 생각와 심장은  두 갈림길에서 각기 다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머리속 생각은 이해는 하지만 , 마음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벽을 쌓고 있으니 말이지요.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며 영화 <사물의비밀>에서의 자신의 불륜을 지독했던 사랑이라 이야기 하던 어느 한 여인과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의 수애와 김래원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는 과연.. 그러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을까.. 하는 의심의 마음은 늘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말입니다.) 그 이유가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 속 한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책을 읽다 멈칫 떠오른 한 사람의 흐릿한 그림자는 다시금 조용히 저 깊은 어둠속 깊은 유리 파편 같은 조각이 된채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심장 깊게 새겨진 생채기는, 기나긴 시간과 함께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 더욱 차갑고 단단한 심장을 갖도록 만들어 버렸는지도요.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느끼지 못했던 , 결국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그들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이해 하지 못함에 있어, 망상이였고, 모순이라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그들에게는 애틋하고 , 순백같은 사랑이였을지라도, 저에겐 단지 , 받아 들일수 없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더이상은 흡수하지 못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만약, 실화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오롯이 소설속 그들이였다면, 조금 더 있는 그대로 , 그들만의 사랑 방식을 이해 할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답게 꾸며졌으나, 결국은 두 사람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였고, 두 사람만의 애절한 마음이였을 뿐입니다.  분명히 가독성은 있지만, 책을 덮은후 무언가 모를 공허함이 찾아오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메마른 가을날의 낙엽처럼, 더이상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하는 저의 심장이 문제 였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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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케빈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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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리뷰 ::

 

보고 싶은 영화들이 꽤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래저래 스케줄이 맞지 않은 탓에, 시간이 맞는 몇 편만 보기로 했습니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리는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발>의 기간이 12월 7일까지이니 서둘러야 했지요, 일을 일찍 끝내고 , 조금 여유있게 광화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교보문고를 둘러보곤, 독립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연말을 알리는지 거리 곳곳에는 이쁘게 불빛을 반짝이며 빛을 한껏 뽐내는 옷 벗은 나무들이 어두운 거리를 조금 더 화려하게 만들어 주네요. 늘 가까이에 있는 예술영화관만 찾다보니 광화문쪽 영화관은 처음이네요. 잠시 근처에서 입구를 찾지못해 헤매기도 했지만 .. 그래도 영화 티켓을 받아들고 잠시 카페에 앉아 , 숨을 돌립니다.

 

역시 조급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2012년 예술(독립)영화 기대작들을 보기 위해 꽤나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으셨네요. (생각보다 꽤 많은 분들이 말입니다). 상영관을 들어서서 자리에 앉고 보니, 하나둘씩 빼곡히 좌석이 만석이 되어버렸습니다(헐. 매번, 썰렁한 예술영화관이, 페스티벌 덕분에 후끈하네요). 영화는 어떠한 광고, 예고편도 없이 바로 시작을 합니다.
 

 

 

우선, 이 영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흥미, 재미를 떠나서, 단 한순간도 시선을 뗄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에바(틸타 스윈톤)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녀의 기억 , 즉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며, 과거의 기억을 되집어 가지요. 그녀는 어떠한 해답을 찾으려는듯 수없이 케빈과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어느날 원치않은, 생각치도 못했던 임신으로 케빈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케빈은 유아기 때부터 에바에게 강한 반항과, 적개심을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화를 보는내내 제 머릿속에서도 쉼없이 물음표가 생겨납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이 모자 관계가 틀어진 것이였을까...? (주관적인 제 생각에는 에바가 원치않은 임신을 함으로써 , 모성애를 느끼지 않았음인지...) 여튼, 케빈은 성장해 16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에바에게는 반항심과 적개심이 꽤나 깊어 보입니다.(케빈역을 맡은 '이즈라 밀러'의 눈빛, 심리 연기가 대단하더군요)  

 

케빈의 행동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일 정도로, 에바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극에 달하는듯 합니다. 무엇이 케빈을 에바에 대한 애증과 집착을 만들었는지요. 케빈이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이며, 결국은 되돌릴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 합니다. 케빈이 에바에게 애정결핍이 생긴 자세한 이유는 저 또한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적인 문제인지, 성장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에바나, 프랭클린(남편)의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케빈의 성장에 좀더 섬세하게 관찰하고 , 신경을 썼다면 ,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지,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잠깐도 눈을 떼지 못한채, 이 영화의 결말이 궁금해 졌습니다. '도대체 왜?' 라는 끊임없이 의문에 추리하고 생각하며 , 영화를 보는 저 또한, 에바의 시선에서, 기억을 따라 함께 ,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오프닝 부터, 강렬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의 붉은 빛으로 화면을 꽉 채우며 강렬하게 시작합니다. 그 이후 심심치 않게 붉은 색상은 자주 영화 속에서 등장을 합니다, 꽤나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상인 붉은색은, 왠지 적개감과, 반항감을 표시하는듯 보입니다. 또한 영화는 많은 부분 크로즈업 기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 폭발하지 않고 절제된 감정을 그대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숨죽이고 느낄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신체의 한부분을 크로즈업 하면서,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섬세히 표현하며, 긴장감을 더욱 증가 시키기도 합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그 어떤 영화보다 연출과 구성이 정말 흠잡을 곳이 탄탄하고 훌륭합니다. 각본, 연출, 연기력, 삼 박자가 고루 잘 갖춰진 영화라고 볼수 있습니다.  단 한순간도 관객의 시야를 놓치지 않으려는듯,소소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꽤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했습니다.

 

영화속 배경음악이 상황에 따라 부조화스런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조화스러운 음악을 넣음으로써, 그들의 심리 상태를 더욱 이해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어울리면서 어울리는, 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요. 여튼, <케빈에 대하여>는 관객들에게 마지막 답을 스스로 찾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해답을 찾았다면, 이 영화를  80%는 이해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 100% 이해를 하지 못했다 생각함은,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모두 흡수하지 못함이기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온후, 알수없는 풀리지 않은 의문 몇가지가 계속 내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았으니,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름이 있기 때문이지요, 격한 감정의 표출이 아닌, 절제되고 억제된 감정 연기가 참으로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 저에겐 올해에 본 영화들중 강한 느낌으로 남게 될 몇 편의 영화중 한 편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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