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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케빈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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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보고 싶은 영화들이 꽤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래저래 스케줄이 맞지 않은 탓에, 시간이 맞는 몇 편만 보기로 했습니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리는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발>의 기간이 12월 7일까지이니 서둘러야 했지요, 일을 일찍 끝내고 , 조금 여유있게 광화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교보문고를 둘러보곤, 독립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연말을 알리는지 거리 곳곳에는 이쁘게 불빛을 반짝이며 빛을 한껏 뽐내는 옷 벗은 나무들이 어두운 거리를 조금 더 화려하게 만들어 주네요. 늘 가까이에 있는 예술영화관만 찾다보니 광화문쪽 영화관은 처음이네요. 잠시 근처에서 입구를 찾지못해 헤매기도 했지만 .. 그래도 영화 티켓을 받아들고 잠시 카페에 앉아 , 숨을 돌립니다.

 

역시 조급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2012년 예술(독립)영화 기대작들을 보기 위해 꽤나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으셨네요. (생각보다 꽤 많은 분들이 말입니다). 상영관을 들어서서 자리에 앉고 보니, 하나둘씩 빼곡히 좌석이 만석이 되어버렸습니다(헐. 매번, 썰렁한 예술영화관이, 페스티벌 덕분에 후끈하네요). 영화는 어떠한 광고, 예고편도 없이 바로 시작을 합니다.
 

 

 

우선, 이 영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흥미, 재미를 떠나서, 단 한순간도 시선을 뗄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에바(틸타 스윈톤)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녀의 기억 , 즉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며, 과거의 기억을 되집어 가지요. 그녀는 어떠한 해답을 찾으려는듯 수없이 케빈과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어느날 원치않은, 생각치도 못했던 임신으로 케빈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케빈은 유아기 때부터 에바에게 강한 반항과, 적개심을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화를 보는내내 제 머릿속에서도 쉼없이 물음표가 생겨납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이 모자 관계가 틀어진 것이였을까...? (주관적인 제 생각에는 에바가 원치않은 임신을 함으로써 , 모성애를 느끼지 않았음인지...) 여튼, 케빈은 성장해 16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에바에게는 반항심과 적개심이 꽤나 깊어 보입니다.(케빈역을 맡은 '이즈라 밀러'의 눈빛, 심리 연기가 대단하더군요)  

 

케빈의 행동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일 정도로, 에바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극에 달하는듯 합니다. 무엇이 케빈을 에바에 대한 애증과 집착을 만들었는지요. 케빈이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이며, 결국은 되돌릴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 합니다. 케빈이 에바에게 애정결핍이 생긴 자세한 이유는 저 또한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적인 문제인지, 성장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에바나, 프랭클린(남편)의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케빈의 성장에 좀더 섬세하게 관찰하고 , 신경을 썼다면 ,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지,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잠깐도 눈을 떼지 못한채, 이 영화의 결말이 궁금해 졌습니다. '도대체 왜?' 라는 끊임없이 의문에 추리하고 생각하며 , 영화를 보는 저 또한, 에바의 시선에서, 기억을 따라 함께 ,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오프닝 부터, 강렬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의 붉은 빛으로 화면을 꽉 채우며 강렬하게 시작합니다. 그 이후 심심치 않게 붉은 색상은 자주 영화 속에서 등장을 합니다, 꽤나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상인 붉은색은, 왠지 적개감과, 반항감을 표시하는듯 보입니다. 또한 영화는 많은 부분 크로즈업 기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 폭발하지 않고 절제된 감정을 그대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숨죽이고 느낄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신체의 한부분을 크로즈업 하면서,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섬세히 표현하며, 긴장감을 더욱 증가 시키기도 합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그 어떤 영화보다 연출과 구성이 정말 흠잡을 곳이 탄탄하고 훌륭합니다. 각본, 연출, 연기력, 삼 박자가 고루 잘 갖춰진 영화라고 볼수 있습니다.  단 한순간도 관객의 시야를 놓치지 않으려는듯,소소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꽤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했습니다.

 

영화속 배경음악이 상황에 따라 부조화스런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조화스러운 음악을 넣음으로써, 그들의 심리 상태를 더욱 이해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어울리면서 어울리는, 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요. 여튼, <케빈에 대하여>는 관객들에게 마지막 답을 스스로 찾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해답을 찾았다면, 이 영화를  80%는 이해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 100% 이해를 하지 못했다 생각함은,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모두 흡수하지 못함이기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온후, 알수없는 풀리지 않은 의문 몇가지가 계속 내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았으니,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름이 있기 때문이지요, 격한 감정의 표출이 아닌, 절제되고 억제된 감정 연기가 참으로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 저에겐 올해에 본 영화들중 강한 느낌으로 남게 될 몇 편의 영화중 한 편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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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센스 - Perfect Sens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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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11월의 마지막 월요일,  유주를 만나려고 신촌으로 향합니다. 11월의 끝자락이지만 꽤나 날씨가 봄기운이 물씬 나요. 얇은 가을 외투를 걸치고, 그래도 왠지 목이 허전에 파란빛 머플러를 둘렀습니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영화관 앞. 월요일 이여서인지, 카페에도 한산함이 물씬 풍기네요. 잠시 그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으려고 일주일째 손에 잡고있는 <나, 참치여자>를 꺼내 들었습니다. 15페이지 쯔음 읽었을 무렵, 그녀가 도착했어요. 시간이 여유치 않기에 가까이 있는 분식집에서 간단히 끼니를 떼웠습니다.  오랫만에 신촌 메가박스를 방문했어요, 하지만 그날은 메가박스내 상점들이 정기휴무이네요. 허허스럽게, 참으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번 영화를 보려고도 했다가, 잠시 머뭇 거리며 고민하며,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했는데, 우연히 유주 양과 함께 보게 되었네요.(사실, 딱히 끌리는 영화도 없었고요, 서로 보았던 영화는 리스트에서 빼고 보니, 함께 할수 있는 영화의 종류가 많지가 않기도 했습니다)그래도 다행이네요. 놓칠뻔한 이번 <퍼펙트 센스>를 볼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고마워, 유주) 

 

 

전염병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 수잔(에바 그린),  요리사 마이클(이완 맥그리거), 두 사람은 각기 사랑에 참으로 냉소적이고 차갑습니다. 두사람의 사랑에는 말 그대로 '사랑' 이란 존재 하지 않지요. 수잔은 자신의 그동안 상처받은 '사랑'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듯, 매우 깊은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 역시 그에게도 꽤나 아픈 '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두 사람은 사랑을 다시 시작함에 있어 꽤나 두려움과 공포를 내면 깊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운명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듯 서로에게 끌리게 되지요. 그들은 점점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을 인류(세상)은 시샘을 한 것일까요?  세상은 알수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들이 하나씩 감각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미칠듯한 공포, 슬픔, 식욕, 분노 등, 갑작스런 현상을 일으키며 말입니다. 마이클과 수잔이 사랑하면 할수록, 그들의 감각도 하나 , 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도시는 온통, 암흑에 빠지듯 어지럽게 변해 버립니다

영화는 인류의 재앙, 감각의 상실, 공포라는 소재들을 인간의 '사랑'이라는 포괄적인 하나의 커다란 의미에 담아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퍼펙트 센스>는 단순히 사랑, 로맨스 이야기라기 보다는 ,  오히려 '감각'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애틋한 사랑 따위는 찾아볼수 없지요. 분명 그들의 애절하고 , 안쓰럽기까지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저는,이영화를 보는 마이클과 수잔의 안타깝고 애절한 사랑 보다는 감각을 잃어감에 찾아오는 공포감과 두려움을 내내 느꼈습니다 .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점점 감각을 잃어가지만  또한  천천히 그런 삶에 적응해 나가며, 또하나의 또 여러 방법, 삶의 방식을 찾아 갑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이 살아감에, 살아갈수 밖에 없는 , 삶이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였겠지요.
 

 

 

 

지독히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 임에도,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뗄수 없을 정도로, 강한 몰입을 하며 보았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영화가 끝난후, 꽤나 두통이 심하게 찾아왔습니다) 너무 사소한 , 너무 당연한  '감각' 이였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겠지요, 신체의 모든 감각들을 잃어 버린다는것이 이토록 두렵고,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신체의 감각 뿐 아니라, 감정의 감각들 조차 모두 사라져 버린 인류는 과연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있다고 할수 있을지도요! 무섭습니다. 당연함을 소중함으로 인식하지 못한채,  당연히 누릴 권리라 치부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인간이란 가지지 못함에, 더욱 간절히 원하듯 사랑도 그렇습니다. 점점 무감각해질수록 서로를 더없이 원하게 되는 것처럼!

 

이렇듯, 인류의 삶은 계속 되겠지요. 우리는 늘 급변하는 세상에, 그리고 처해진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동물일 뿐입니다. 새삼, 누릴수 있는 그 '당연함'에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지만, 단순히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제게 다가온 <퍼펙트 센스>에 대한 임펙트는 꽤나 강하네요.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고 계속 영화속 이야기들과 장면들이 마음을 갑갑하게 조여 오는듯, 후유증이 꽤나 심했습니다. 단순히 로맨스 영화라 단정하기에는 , 또한 한편의 인류를 다룬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도 , 두 가지 소재는 뚜렷한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분들이라면 공감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망각 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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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비밀 - Secrets, Object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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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가끔은 , 평점보다는 영화의 줄거리를 보고 끌릴 때가 있습니다. 비록 큰 호평을, 흥행을 노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 이 영화는 한번쯤 꼭 보고 싶다' 라는 영화가 있기 마련이지요, 제게는 <사물의 비밀> 이 그랬던것 같습니다. 영화의 평도 호불호가 강한평이라 어느 분의 평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주관적인 평일뿐, 그들이 느낀 것들을 고스란히 제 것으로 만들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요, 그렇게 저는 이 영화를 아무런 생각없이 단지 '끌림'만으로 선택했습니다. 날씨가 급격히 추운 월요일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극장도 한산하고, 휑한 상암CGV의 밤거리는 더욱 마음을 시리게 만들더군요.

 

아무래도 꼴라쥬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이다 보니, 관객은 10명 남짓 이였습니다. 늘 , 맨 끝줄의 사이드에 자리는 저의 지정석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저와 같은 줄에 앉은 몇분의 50대 전후반의 중년 아주머니와 아저씨 3~4분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러 오셨더군요, 하지만 그분들은 마냥 자신들의 집에서 티비를 보듯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까지 깔깔대고 스크린을 가리키며 내내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끊임없이 수다를 하십니다. 참으로 미간에 내천(川)자가 생기지 않을수 없습니다. 집중은 이미 흐트러질 때로 흐트러진채, 말이지요.웃어야할 포인트가 아님에도 그분들은 끊임없이 깔깔대며 추임새 넣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 정말 해드폰을 쓰고 싶을 정도였어요) 여튼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채 스크린에 시선을 묻어버렸습니다.

 

 

혼외정사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사회학과 교수인 마흔살의 혜정, 그녀는 남편과 별거중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들, 즉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 가식적인, 가면을 쓴 행복한 모습을 한 부부의 모습만을 보여주려 하지요, 그러던 어느날 스물한살의 청년(우상)이 나타나게 되지요,우상은 그녀의 논문을 돕는 보조 학생일 뿐입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진행됩니다. 1부는 '복사기'의 시각으로 혜정을 관찰하는 , 대변하는 역할이지요, 그리고 2부는 '디카'의 시각으로 '우상'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혜정은 자신도 모르게 20살이나 어린 우상에게 끌리지요, 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라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다독이고, 그리고 결국 포기하려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짊어질 '상처'가 스며듦이 무서웠고 두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괴롭습니다. 자신의 나이가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그런 혜정과, 감정을 알수없는 우상,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롯이 바른 이미지에, 늘 곧은 모습을 보이기만 합니다 그런 우상을 디카의 시각으로 비추어 주는 것이지요. '사물들만이 아는 그들의 비밀' 이라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관객들은 말합니다. 이 영화는 3~40대 여성들이 보면 꽤 공감할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30대 이긴 하지만,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과연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중년의 여성들이 일탈, 방황? 꿈꿀수 있는지도요, 문득 어느 한 장면에서 15세 어린 연하의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래서 외도를 하는 한 여인이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상하리 만치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롯이 결혼 유무를 떠나서,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는 거에요! 아!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외도가 그래서 부정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도요. (그렇다고 외도가 정당화 될수는 없습니다)

 

 

 

영화에선 말합니다. 마흔살의 나이이지만 그녀도 여자이고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요, 나이를 먹어도 역시 '여자'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 그들의 사랑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타인에게는 손가락질 당하는 '사랑'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단지 '사랑'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과 혜정의 이야기를 각기 사물이 대변해 나레이션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꽤나 심도깊게 그려진 영화라 생각했는데 , 그건 아니였던 것 같네요. 내면이나 심리를 깊이 다룬다기 보다는, 꽤나 가볍게(?) 느껴짐이 많은 영화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사물에 비추어 끌어가고자 함이 제게는 잘못된 선택이 아니였을까 ..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감독의 심오한 뜻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게 느껴졌던건, 뚝뚝 끊기는 알수없는 이야기의 흐름과 겉으로만 보여지는것 같은 두사람의 감정의 표현이였습니다. 왠지 그들의 사랑이 진실하고 애절하게 보인다기 보다는, 자꾸만 강요스럽게 관객에게 주입시키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웃음 포인트도 중간중간 가볍게 들어가 있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그 웃음포인트가 적절치 못한 부분에 배치되어 있음에,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듯 합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 이 영화의 어떠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봐야하는지 갈팡질팡 서성거린 기분이 드네요.  진중함인지 가벼움인지 말입니다. 비록 저의 생각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던 영화의 흐름에 다소 실망하기도 했지만, 꽤나 그녀들(혜정만이 아닌, 그 외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많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저도 같은 여인이기도 하겠지만, 푸릇푸릇한 20대가 아닌 또다른 세대를 살아가고 나이를 먹어감에 메말라 버린듯한 감정과 감성을 이 영화가 대변해 주는듯 하기도 했으니까요. 영화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제 것으로 흡수하지 못했지만, 알수없는 뭉클함에 서러움이 느껴지는건 왜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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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 Guzaaris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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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제가 자주 이용하는 상암CGV에서 <청원>시사회를 한다해서 신청했습니다. 영화 '세얼간이' 이후, 오랫만에 보는 인도 영화이기도 했고, 세얼간이를 본 제게는 인도영화가 낯설지도 않았지만, 꽤나 흥미롭고 기대이상으로 즐겁게 보았던 터라 이번 <청원> 시사회에도 조금은 기대를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네영카(http://cafe.naver.com/movie02)' 의 초대로 , 덕분에 좋은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네요. 포스터가 왠지 뮤지컬을 연상케 하기도 했지만, 인도영화 <블랙>을 잇는 감동 스토리라는 문구가 더욱 눈에 띄기도 했지요, 블랙은 루즈한듯 평범한  앞이 보이지 않는 한 소녀의 삶의 내면을 잘 그려낸 영화였습니다. 꽤나 Ending 이 제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 <청원>에서는 전신마비인 마술사 '이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4년전 마술 공연중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이튼은 그 이후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늘 이튼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12년간 그를 보살피고 간호해 주는 간호사 '소피아'가 있지요, 대저택에서 남 부러울것 없이 지내는 이튼은 전신마비 이후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이 되어주는 라디오 DJ로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좌절이나 고통은 찾아볼수 없었지요.그의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은 모두 그를 통해 희망을 얻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그는 자신의 변호사 친구를 통해 자신의 안락사를 '청원' 하게 되지요 


 

그는 왜 갑자기 자신의 안락사를 법원에 청원을 하게 된 것일까요? 이야기는 이렇듯 이튼의 안락사 청원을 시작으로 그의 내면속 이야기와, 자신의 화려했던 마술사 최고의 명예인 '멀린'의 위치에 올라있던 삶을 , 현재와 과거의 반복 속에 보여줌으로써 , 이튼의 전신마비 이후 고통스러운 현재의 심리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갑작스런 안락사 청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하는가, 단지 자유롭게 움직일수 없는 몸 때문인것일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그런 생각은 어쩌면 저처럼 평범한 정상인들에게는 받아 들이기 힘든 , 이해 불가능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있어 그런 몸의 장애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수 없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어쩌면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삶을 살던 이튼과 같은 사람에게 갑작스런 이런 사고는 한순간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그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는 그에게 삶의 모든 희망을 완전히 앗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평범한 삶이 아닌 '최고'였기에 더욱 더 좌절감이 컸을지도요, 숨을 쉬고 있지만,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지만, 아무것도 할수없는 자신의 몸은 그에게 지옥과 같은 삶이 였을 것입니다. 숨이 막히는 감옥 속에 갇힌채 답답함과 괴로움을 흠씬 안고서 14년이란 세월을 견뎌 왔을테지요.
 

 

이튼으로 인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었던 청취자들과 팬들은 그의 안락사에 대해 모두 반대를 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튼'의 삶의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오롯이 생명의 존귀함만을 내세웠을 뿐이지요, 그래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다가도 , 다른 한편으로는 삶을 포기하려는 그를 이해할수도 없을 뿐입니다. 또 하나, 과연 누가있어 이튼의 삶과 죽음에 있어 결정하고 판단하는데 권한이 있고 권리가 있을까요? 오롯이 자신의 인생이고 삶일 뿐인데, 누군가에 의해 그 삶과 죽음이 결정지어진다는 것 자체에 잠시 실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 <청원>은 이렇게 짐짓 무거운 소재인 '안락사'의 논쟁을 중심으로 흐르지만, 오히려 인도 특유의 음악, 춤, 즐거움이 조화롭게 섞여 보는 관객들에게도 , 무게가 느껴지는 짓누름이 아닌 , 편안함을 주는 오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마술이라는 환상적인 볼거리와, 웃음 포인트 또한 적절히 녹아 들어 있지요. 하지만 , 왠지 그것들이 완전히 조화롭게 이루어져 잘 버부려진 느낌이 들진 않았습니다. 아직 인도영화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함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상황에 맞지않은 음악 삽입이라든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조금은 부자연스러운듯한 연기라든지 말이지요, 제게는 관람하는 내내 걸림돌처럼 불편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완전히 이튼의 고통을 이해하기에는 , 그리고 안락사 청원을 도와주는 변호사 친구의 입장 또한 그녀의 입장을 , 그리고 생각을 이해 하기에는 부족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튼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부르던 "What A Wonderful World"를 들을 때는 정말 표현 할수 없을 만큼 묘하게 가슴 아림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참 훌륭한 영화임에도 ,저는 영화 속에서 전달하는 감동, 고통, 슬픔, 행복, 희망 등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모두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함이 못내 아쉽게 느껴질 뿐입니다.하지만 왠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한번 Replay 해보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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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 The Help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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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보름남짓 , 참 오랫만에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네요. 저에게 보름만의 영화는 참, 가끔 있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10월에는 미친듯 8편이상을 보더니 11월에는 모든게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져서인지, 영화에 흥미를 살짝 잃었습니다. 11월의 어느 주말, 오랫만에 긔요운 한샘 양과 상암CGV를 찾았어요. 오랫만이라 그런지 이미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를 갈팡질팡 자리를 찾지 못하는 계절에서 모든 나무들의 말라버린 나뭇잎들을 힘겹게 늦가을을 보내기 싫은지, 꼭 쥐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답니다. 문득 '아, 조금 일찍 집을 나서 근처 공원이라도 산책할껄 그랬나? ' 하는 아쉬움이 한아름 이기도 했고요, 그렇듯 11월의 차가운 바람을 느낄수 없는, 그래서 연말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어색하고 생소하게 와닿는 지금, 오랫만에 아주 긴 - 가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의 책을 쥐는 시간도 잉여생활과 함께 점점 소원해 지고 있기도 하고요 (웃음))

 

그렇게, '혼자'가 아닌 '둘' 이라는 주말이 문득 즐겁기도, 합니다. 이제 겨우 개봉한지 일주일 정도 지난 영화인데 벌써 상영관 수가 많이 줄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시간대 역시 선택의 폭이 많이 줄기도 했고요, 워낙 영화는 개봉과 함께 1~2일 내로 보는 성격이다 보니, 이렇게 개봉된지 일주일 넘은 영화를 보는것도 참, 무언가 때늦은, 혹은 뒤늦은 게으름(?)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하고, 영화를 보고싶다는 흥미, 관심도도 부쩍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보게 되서인지 , 설레임보다는, 무심함이 더욱 크게 적용되는것 같네요.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헬프>를 소장하고 있지만, 역시나 읽어보지 못한채 지내다보니 결국 영화가 개봉하고 말았네요, 워낙 사랑받은 원작이라 그런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컸던것 같습니다. 영화의 이야기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잭슨 흑인 가정부는 백인 주인과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다?!  아무도 가정부의 삶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녀가 책을 쓰기 전까지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정원과 가정부가 딸린 집의 안주인이 되는 게 최고의 삶이라 여기는 친구들과 달리 대학 졸업 후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역 신문사에 취직한 ‘스키터(엠마 스톤)’. 살림 정보 칼럼의 대필을 맡게 된 그녀는 베테랑 가정부 ‘에이빌린(바이올라 데이비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다른 인생은 꿈꿔보지도 못한 채 가정부가 되어 17명의 백인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사고로 잃은 ‘에이빌린’. ‘스키터’에게 살림 노하우를 알려주던 그녀는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자신과 흑인 가정부들의 인생을 책으로 써보자는 위험한 제안을 받는다. 때 마침 주인집의 화장실을 썼다는 황당한 이유로 쫓겨난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가 두 여자의 아슬아슬하지만 유쾌한 반란에 합류한다. 차별과 불만을 이야기 하는 것조차 불법이 되고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되는 시대에,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하는 ‘에이빌린’과 ‘미니’. 그녀들의 용기 있는 고백은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책을 탄생시키는데..(네이버제공) 

 
 

 

불과 멀지않은 50여년전, 미국의 인종차별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들의 인종차별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 영화속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다보면, 과연 이 이야기가 정말 불과 50여넌전의 이야기 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여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오롯이 유색인종을 같은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닌 '가정부'에 불과합니다. 백인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흑인들에게 있어 자신의 미래와 또다른 삶은 없는 것이지요,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삶에 그들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보면 그녀들은 딱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정적이거나,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처럼 가슴으로 많은 사랑을 주지요. (비록 자신의 아이는 백인들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해도 말입니다).

 

영화 자체는 130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그리고 참 찬잔한 드라마 장르임에도 지루함을 느낄수는 없습니다. 어찌보면 남자가 아닌 여자들의 삶이라 그런지 '인종차별'이란 여타 꽤나 충격적이고 강한 , 충격의 소지를 다분히 줄수있음에도, 영화 <헬프>는 오히려 웃음과,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지요, 하지만 단지 이야기가 그런 느낌만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치밀어오르는 강한 분노보다는 잔잔하게 슬며시 베어나오는 분노를 느끼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흑.백의 삶이 참으로 확연하게 선명한 선이 그어지듯 뚜렷함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부분을 직접 느끼거나 , 경험해 보지 못함이어서 인지 이들의 이야기가 공감 백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문득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나는 이 영화속 유색인(가정부)들 처럼 미래의 삶이 자신의 의도와 뜻과는 상관없이 올가미처럼 옭메여 있는 것도 아닌,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대로, 꿈꾸는 대로 살수있는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어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늘, 내 삶에 있어서 이렇게 무관심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말이지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니, 참으로 허영스러운 인생을,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기도 하네요. 이 또한 , 이런 생각 또한 잠시잠깐 이겠지만. 말입니다.

 

  * 문득, 한 구석에 파묻혀 놓았던 <헬프>를 원작으로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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