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치여자 NFF (New Face of Fiction)
사비나 베르만 지음, 엄지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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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제목인것 같습니다. <나, 참치여자>는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불완전한 사람들>에 이은 NFF(NEW FACE OF FICTION) 세번째 소설입니다. 사실 NFF 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입니다. 독특한 제목만큼, 이번 세번째 소설은 어떤 이야기 일지 내심 궁금해 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원제는 "세상의 중심으로 잠수해 들어간 여자" 라 합니다. 사실 왠지 <나, 참치여자> 보다는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의 원제인것 같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제목을 곰곰히 되집어 생각해보면 , 왜 이렇게 제목을 지었는지, 깊은 의미를 약간은 이해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유산으로 받게된 참치회사를 맡아 운영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모(이사벨)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사벨(이모)은 어느날 지하실에서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아오던 어린 카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체에 깊은 상처를 새긴채 세상과 단절되고 어두운 지하에서 살아온 카렌을 위해 이사벨은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가르치며 조금씩,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비록 자폐증이 있지만, 카렌은 몇몇 지능 분야에서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천재적인 두각을 보입니다. 카렌이 성인이 되면서, 이사벨과 함께 참치회사를 경영하며 좀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겪게 되지만, 또한 참치 회사의 경영난과, 많은 고난, 힘든 역경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독특한 (스탠더드한 인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 입니다.

 

이 소설은 카렌의 시선을,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들의 표현들을 따라 읽다보면, 비록 완벽하게 자폐증에 대해 모든것을 흡수하듯 다 알수는 없지만, 일부분(어쩌면 저에게는 아주 조금의..)은 그들의 행동 패턴과 삶을 느낄수도 있었던것 같기도 하네요. 소설 속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카렌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반감적인 의사를 표현 합니다. 꽤나 유명한 명제이지만 저는 단 한번도 그 명제에 대해 깊이 생각히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뜨문뜨문 등장하는(아니,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존재'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골똘히 생각에 잠시 잠겼습니다. 생각을 하므로써 존재한다는 그 의미가 당연한듯 받아들여지지만, 카렌에게 있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들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이렇게 되풀이 하지요 "나는 존재한다, 고로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이 의당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라면 그런 것들을 애써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 바다는 바다고, 태양은 태양이다. 그리고 나는 나일 뿐이다. 이 세상에 기적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11쪽)

 

카렌은 비유와 완곡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오롯이 보이는것 "존재"하는 것만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함일 뿐이지요. 그녀는 "스탠더드한"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지상에서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며 그 여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선 "정복"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현재의 우리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세계와 그 외부의 다른 자연적인 세계의 단절된 벽과 같은 단단한 선명한 경계선을 카렌은 허물고 싶었던 것일지도요. 카렌이 끊임없이 자연과 소통하려 하며, 스탠더드한 인간들의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해 동물을 학대하고 고통을 주며, 언어적 비유와, 폭력, 고통을 주며 인간들만의 가질수 있는 특권(?)을 누리려 함을 비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스탠더드한 인간들로 부터 언어로 인해, 모든것들이 지배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 폭력, 기계, 비유, 생각,거짓,상상 등 , 말이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딱히 틀린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의 현 자본주의 사회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말이지요.  그녀는 우리에게 이러한 "존재"와"언어"라는 올가미에 씌여, 거만해질 대로 거만해진 "스탠더드한 인간들"에게 충고를 하는 것일지도요.

 

<나, 참치여자>는  책장이 잘 넘어가는듯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심심치 않게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흥미와 재미를 떠나서, 조금은 쉽게 읽히기도 ,때로는 읽히지 않을수도 있기도 하고요, 어쩌면 조금은 난해하다(?)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다양하게 느낄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은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완벽히 100% 이 소설의 이야기(의미)를 흡수하진 못한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카렌의 시선에서, 그녀가 모든 감각으로 느끼며 풀어나간 이야기가 독특했습니다. 자폐증이라는 세상속 편견과 난관을 이겨내며 '그녀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저도 느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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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센스 - Perfect Sens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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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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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 월요일,  유주를 만나려고 신촌으로 향합니다. 11월의 끝자락이지만 꽤나 날씨가 봄기운이 물씬 나요. 얇은 가을 외투를 걸치고, 그래도 왠지 목이 허전에 파란빛 머플러를 둘렀습니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영화관 앞. 월요일 이여서인지, 카페에도 한산함이 물씬 풍기네요. 잠시 그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으려고 일주일째 손에 잡고있는 <나, 참치여자>를 꺼내 들었습니다. 15페이지 쯔음 읽었을 무렵, 그녀가 도착했어요. 시간이 여유치 않기에 가까이 있는 분식집에서 간단히 끼니를 떼웠습니다.  오랫만에 신촌 메가박스를 방문했어요, 하지만 그날은 메가박스내 상점들이 정기휴무이네요. 허허스럽게, 참으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번 영화를 보려고도 했다가, 잠시 머뭇 거리며 고민하며,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했는데, 우연히 유주 양과 함께 보게 되었네요.(사실, 딱히 끌리는 영화도 없었고요, 서로 보았던 영화는 리스트에서 빼고 보니, 함께 할수 있는 영화의 종류가 많지가 않기도 했습니다)그래도 다행이네요. 놓칠뻔한 이번 <퍼펙트 센스>를 볼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고마워, 유주) 

 

 

전염병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 수잔(에바 그린),  요리사 마이클(이완 맥그리거), 두 사람은 각기 사랑에 참으로 냉소적이고 차갑습니다. 두사람의 사랑에는 말 그대로 '사랑' 이란 존재 하지 않지요. 수잔은 자신의 그동안 상처받은 '사랑'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듯, 매우 깊은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 역시 그에게도 꽤나 아픈 '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두 사람은 사랑을 다시 시작함에 있어 꽤나 두려움과 공포를 내면 깊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운명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듯 서로에게 끌리게 되지요. 그들은 점점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을 인류(세상)은 시샘을 한 것일까요?  세상은 알수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들이 하나씩 감각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미칠듯한 공포, 슬픔, 식욕, 분노 등, 갑작스런 현상을 일으키며 말입니다. 마이클과 수잔이 사랑하면 할수록, 그들의 감각도 하나 , 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도시는 온통, 암흑에 빠지듯 어지럽게 변해 버립니다

영화는 인류의 재앙, 감각의 상실, 공포라는 소재들을 인간의 '사랑'이라는 포괄적인 하나의 커다란 의미에 담아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퍼펙트 센스>는 단순히 사랑, 로맨스 이야기라기 보다는 ,  오히려 '감각'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애틋한 사랑 따위는 찾아볼수 없지요. 분명 그들의 애절하고 , 안쓰럽기까지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저는,이영화를 보는 마이클과 수잔의 안타깝고 애절한 사랑 보다는 감각을 잃어감에 찾아오는 공포감과 두려움을 내내 느꼈습니다 .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점점 감각을 잃어가지만  또한  천천히 그런 삶에 적응해 나가며, 또하나의 또 여러 방법, 삶의 방식을 찾아 갑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이 살아감에, 살아갈수 밖에 없는 , 삶이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였겠지요.
 

 

 

 

지독히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 임에도,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뗄수 없을 정도로, 강한 몰입을 하며 보았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영화가 끝난후, 꽤나 두통이 심하게 찾아왔습니다) 너무 사소한 , 너무 당연한  '감각' 이였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겠지요, 신체의 모든 감각들을 잃어 버린다는것이 이토록 두렵고,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신체의 감각 뿐 아니라, 감정의 감각들 조차 모두 사라져 버린 인류는 과연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있다고 할수 있을지도요! 무섭습니다. 당연함을 소중함으로 인식하지 못한채,  당연히 누릴 권리라 치부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인간이란 가지지 못함에, 더욱 간절히 원하듯 사랑도 그렇습니다. 점점 무감각해질수록 서로를 더없이 원하게 되는 것처럼!

 

이렇듯, 인류의 삶은 계속 되겠지요. 우리는 늘 급변하는 세상에, 그리고 처해진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동물일 뿐입니다. 새삼, 누릴수 있는 그 '당연함'에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지만, 단순히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제게 다가온 <퍼펙트 센스>에 대한 임펙트는 꽤나 강하네요.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고 계속 영화속 이야기들과 장면들이 마음을 갑갑하게 조여 오는듯, 후유증이 꽤나 심했습니다. 단순히 로맨스 영화라 단정하기에는 , 또한 한편의 인류를 다룬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도 , 두 가지 소재는 뚜렷한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분들이라면 공감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망각 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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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 50/5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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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리뷰 ::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잦은 약속에, 점점 늘어나는 작업실의 일의 양이 많아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말보다 평일이 더 바쁜 '나' 이기도 합니다. 되도록이면 영화는 평일 , 퇴근시간 이후에 보려고 하지만, 요즘 같은 나날들을 보내면서 조금의 시간도 여유를 주지 않는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차일피일 미루던, 영화를 주말(토요일)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북적이는 홍대, 낮 시간에 말이지요. 역시 북적입니다. 하지만 , 영화를 봐야겠다는 강한 끌림을 뿌리칠수는 없으니 , 사람 많음을 개의치 않기로 합니다. 11월의 끝자락을 향해가고 있지만 요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 연말의 기운을 물씬 느끼지 못해 안타깝기도 합니다.(사실 저는 겨울을 미친듯 싫어하니, 오히려 따스한 나날이 더욱 저에겐 행복의 하루하루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 추위를 엄청나게 타선.. -)

그렇게, 3시쯔음의 상영 영화를 보았습니다. 역시 맨 끝자리, 사이드에서의 영화관람은 방해를 받지 않기에 참으로 좋은 자리이지요. 홍대 롯데시네마 건물이 새롭게 탄생한듯 , 많은 매장과, 볼거리, 구경거리, 먹거리, 등등 많이 들어와 있네요. 그동안 매 층마다 , 아무런 상점이 들어서질 않아, 휑하다 싶었는데, 말입니다. (이러다간 이 건물 아예 없어지는게 아닌가..) 여튼, 한동안 홍대 롯데는 잘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종종(자주) 갈 듯하네요. (지하에 '리브로' 서점도 생겼어요!)  


 

 

영화 <50/50>은 27세의 혈기 왕성한 아담(조셉 고든 레빗)이 어느날 희귀성 암인 '척추암' 판정을 받습니다.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며,  꾸준히 운동하던 아담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수 없지요. 만약 여러분이 이와같이 지독히 공포스러운 결과를 듣게 된다면 , 어떠한 삶을 살아갈수 있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자신의 미래가 캄캄할 뿐이겠지요. 그래요. 영화는 이렇듯 아담이 척추암에 걸린 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꽤나 무겁고, 묵직하고, 어둡고, 고통스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할수도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 하지만 영화 <50/50>은 오히려 반대의 흐름을 선택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벼운 웃음과 그들의 밝은 모습들을 끊임없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억지스러운 신파적인 흐름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더욱 현실적인 , 사실적인 이야기에 더 많이 공감을 할수 있었던 것일지도요.  50 대 50.. 이 단어의 뜻은 희망과 좌절의 경계선 일까요?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은 제목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생존률이 50/50의 난치병이란 이야기를 듣는다면, 희망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지요? 아니면 좌절과 공포, 불안한 미래가 먼저 떠오르는지요? 아마 대부분 희망보다는 어두운 자신의 불안한 미래가 먼저 떠오를 겁니다. 하지만 아담은 참 ,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듯 합니다. 어쩌면 암에 걸린 이후, 자신에겐 누군가가 소중히 남고, 누군가는 떠남에 있어, 뚜렷히 선이 그어지는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믿었던 여자친구는 , 아담이 암에 걸린 후, 바람을 피우며, 오히려 자신의 힘들었음을 아담에게 토해내지요. 또한 절친한 친구 카일은, 그렇게 병에 걸린 자신을 이용해 여자를 꼬시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런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도 불평이나 불만을 토하지 않습니다. 지독한 병에 걸린 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지요. 

 

 

 

영화는  희극과 비극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억지스럽게  비극으로 몰아넣음이 아닌, 현실적이고 객관성을 띄고 있어서인지, 아담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유머러스하고 저속한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도 마냥 웃을수 없는 묘한 영화입니다. 문득 영화를 보는 동안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 그 사람 역시 암환자 이지만, 전혀 자신의 암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건강했던 자신의 그 전 삶과 다름없는 ,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오히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주변 지인들에게 "너, 괜찮아?" 라는 말을 듣는게 정말 싫습니다" 그냥 아무말 없이 평소처럼 자신을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는 암이란 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일 뿐이라고 말합니. 어쩌면 우리들도 이러한 모습을 보였겠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 이라는 병에 대해선 긍정적인 생각보단 먼저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생각을 하는것일까요? 우리의 삶 속에는 늘- 확률이란 것이 존재하지요. 이 영화 제목처럼 '50/50'처럼 말입니다. 

 

아담의 처한 상황, 그의 삶을 통해, 또다른 주변을 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제 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또한 그 모습이 어쩌면 현실적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0%의 삶,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문득 영화속 '카일(세스 로건)'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웃음), 정말 그런 친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 입니다.(영화를 보신분들만 이해하시려나?) 영화를 보는내내 어둡고 비극적인 소재이지만 참 , 잘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평이 좋았던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지 못했는데, 이번 <50/50>을 보면서 '조셉 고든 레빗'에 반해 조만간 꼭 챙겨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겐 참으로 많은 의미와 생각의 변화를 안겨준 영화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해 드리고 싶기도 하네요. (시간 되시면 한번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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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비밀 - Secrets, Object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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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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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 평점보다는 영화의 줄거리를 보고 끌릴 때가 있습니다. 비록 큰 호평을, 흥행을 노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 이 영화는 한번쯤 꼭 보고 싶다' 라는 영화가 있기 마련이지요, 제게는 <사물의 비밀> 이 그랬던것 같습니다. 영화의 평도 호불호가 강한평이라 어느 분의 평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주관적인 평일뿐, 그들이 느낀 것들을 고스란히 제 것으로 만들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요, 그렇게 저는 이 영화를 아무런 생각없이 단지 '끌림'만으로 선택했습니다. 날씨가 급격히 추운 월요일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극장도 한산하고, 휑한 상암CGV의 밤거리는 더욱 마음을 시리게 만들더군요.

 

아무래도 꼴라쥬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이다 보니, 관객은 10명 남짓 이였습니다. 늘 , 맨 끝줄의 사이드에 자리는 저의 지정석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저와 같은 줄에 앉은 몇분의 50대 전후반의 중년 아주머니와 아저씨 3~4분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러 오셨더군요, 하지만 그분들은 마냥 자신들의 집에서 티비를 보듯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까지 깔깔대고 스크린을 가리키며 내내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끊임없이 수다를 하십니다. 참으로 미간에 내천(川)자가 생기지 않을수 없습니다. 집중은 이미 흐트러질 때로 흐트러진채, 말이지요.웃어야할 포인트가 아님에도 그분들은 끊임없이 깔깔대며 추임새 넣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 정말 해드폰을 쓰고 싶을 정도였어요) 여튼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채 스크린에 시선을 묻어버렸습니다.

 

 

혼외정사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사회학과 교수인 마흔살의 혜정, 그녀는 남편과 별거중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들, 즉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 가식적인, 가면을 쓴 행복한 모습을 한 부부의 모습만을 보여주려 하지요, 그러던 어느날 스물한살의 청년(우상)이 나타나게 되지요,우상은 그녀의 논문을 돕는 보조 학생일 뿐입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진행됩니다. 1부는 '복사기'의 시각으로 혜정을 관찰하는 , 대변하는 역할이지요, 그리고 2부는 '디카'의 시각으로 '우상'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혜정은 자신도 모르게 20살이나 어린 우상에게 끌리지요, 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라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다독이고, 그리고 결국 포기하려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짊어질 '상처'가 스며듦이 무서웠고 두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괴롭습니다. 자신의 나이가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그런 혜정과, 감정을 알수없는 우상,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롯이 바른 이미지에, 늘 곧은 모습을 보이기만 합니다 그런 우상을 디카의 시각으로 비추어 주는 것이지요. '사물들만이 아는 그들의 비밀' 이라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관객들은 말합니다. 이 영화는 3~40대 여성들이 보면 꽤 공감할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30대 이긴 하지만,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과연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중년의 여성들이 일탈, 방황? 꿈꿀수 있는지도요, 문득 어느 한 장면에서 15세 어린 연하의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래서 외도를 하는 한 여인이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상하리 만치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롯이 결혼 유무를 떠나서,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는 거에요! 아!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외도가 그래서 부정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도요. (그렇다고 외도가 정당화 될수는 없습니다)

 

 

 

영화에선 말합니다. 마흔살의 나이이지만 그녀도 여자이고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요, 나이를 먹어도 역시 '여자'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 그들의 사랑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타인에게는 손가락질 당하는 '사랑'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단지 '사랑'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과 혜정의 이야기를 각기 사물이 대변해 나레이션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꽤나 심도깊게 그려진 영화라 생각했는데 , 그건 아니였던 것 같네요. 내면이나 심리를 깊이 다룬다기 보다는, 꽤나 가볍게(?) 느껴짐이 많은 영화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사물에 비추어 끌어가고자 함이 제게는 잘못된 선택이 아니였을까 ..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감독의 심오한 뜻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게 느껴졌던건, 뚝뚝 끊기는 알수없는 이야기의 흐름과 겉으로만 보여지는것 같은 두사람의 감정의 표현이였습니다. 왠지 그들의 사랑이 진실하고 애절하게 보인다기 보다는, 자꾸만 강요스럽게 관객에게 주입시키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웃음 포인트도 중간중간 가볍게 들어가 있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그 웃음포인트가 적절치 못한 부분에 배치되어 있음에,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듯 합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 이 영화의 어떠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봐야하는지 갈팡질팡 서성거린 기분이 드네요.  진중함인지 가벼움인지 말입니다. 비록 저의 생각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던 영화의 흐름에 다소 실망하기도 했지만, 꽤나 그녀들(혜정만이 아닌, 그 외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많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저도 같은 여인이기도 하겠지만, 푸릇푸릇한 20대가 아닌 또다른 세대를 살아가고 나이를 먹어감에 메말라 버린듯한 감정과 감성을 이 영화가 대변해 주는듯 하기도 했으니까요. 영화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제 것으로 흡수하지 못했지만, 알수없는 뭉클함에 서러움이 느껴지는건 왜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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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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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부진하게  한권의 책 읽기가 참으로 어렵고, 더디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나날들입니다.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며 방황하던 저의 손끝들에서, 이 에세이 또한 한참 긴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읽히지 않음에, 재미없음에, 흥미없음이 아니였어요. 단지 책이란 자체가 제게는 요즘 이상하리만치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우연히 SNS 이벤트 응모에서 당첨된 책이기도 해요, '위로'라는 책 제목이 왠지 삶에 지쳐있는 제게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신청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서른살을 넘어서면서 헛헛해진 마음에 그리고 점점 위축되어가는 제 스스로의 삶에 한번쯤 돌아볼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도, 뒷걸음질 치기에도 고민스럽고 갈피를 못잡는 방황하는 내 발걸음에 용기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득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 스스로 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어쩌면 제가 이 에세이를 읽음으로 해서 조금은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참으로 얇고, 얇은 책이네요, 활자들도 많지 않지만, 그림으로 온통 책 한 페이지를 빼곡히 장식하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니, 집중만 한다면 한시간내에 몽땅 읽을수 있는 분량 입니다.<연탄길>로 유명한 작가 이철환님이 직접 그림까지 그리셨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잘 그린 그림이 아니지만, 참으로 몽환적이면서도 강한 색채감, 그리고 알록달록 무지개빛 느낌의 그림들이 단순한 그림이 아닌 어떠한 메세지를 전해주기 위함으로 비쳐 집니다. 이야기는 반쪽 붉은 나비가 되기 위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마음속에 핀 꽃을 따 먹은 파란나비 '피터'의 여정을 그린 것입니다. 파란나비 피터는 그토록 원하던 '붉은나비'가 되지만, 그의 생각만큼 그를 대하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 그리고 친구들은 그를 비난하고 그를 멀리 하지요, 그는 그래서 더욱 외롭고 , 우울했고, 괴롭습니다. 그는 그런 괴로움의 고통을 떨쳐 버리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많은 생명들을 만나지요. 사마귀, 판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키 큰 나무, 분홍나비 등, 말이에요. 피터는 그들을 만나고 헤어짐을 순간순간 겪으면서 조금씩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건 '비교'야. 나를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 하거든... , 네가 무엇을 하든, 네 모습이 어떻든, 너를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마. 네가 아름다운 날개를 갖는다 해도, 너는 더 아름다운 날개를 갈망하게 될 거야. 비교는 아래쪽을 바라보지 않고 항상 위쪽만 바라보려고 하니까... 너의 아픈 그늘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을 향한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거야. (76쪽)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 너도 내가 두 얼굴을 가진 욕심 많은 나비라고 생각하니? 착각 하지 마. 너희들 모두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존재의 욕망을 이해할수 없다면, 존재를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존재의 이중성을 이해할 수 없다면, 존재를 이해할수 없는 거라고.(표범나비)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피터)/우리의 욕망이나 이중성을 함부로 깔보지 말라는 뜻이야. 욕망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이중성이 없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해질지도 몰라. 욕망이나 이중성을 깔보는 것들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자신에게도 욕망이 있고 이중성이 있는데, 남의 욕망이나 이중성을 깔본다는 건 말도 되지 않잖아... 내 말 이해할 수 있겠니?(피터, 96쪽)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때가 많대.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그렇게 변덕스러울 리 없잖아..(144쪽)

 

사실, <위로>에 이런 동화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조금더 내면 깊숙히 감성적인, 조금은 어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읽혀지길 , 그리고 좀더 짙은 감성의 표현들을 원했던 것인지도요. 첫 페이지를 넘기며, 동화책의 삽화들을 보면서 저는 단정을 지었던 겁니다.'아, 유치하고 재미없는 짧막한 메세지들이구나' 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 또한 저의 고정관념 그리고 '생각의 차이'가 아니였을까요? 슬슬 가볍게 읽어내려 가려던 저의 시선이 조금씩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꽤나 더딤을 느꼈습니다. 문장 , 문구, 피터와 대화하는 모든 생명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글귀의 의미가 무엇인가 곱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떠한 부분에선 아찔할 정도로 마음에 콕 와닿는 메세지도 있었고요,

 

네, 저에겐 단지 모든 사물과 모든 생각과 모든 판단, 그리고 마음의 잣대가 모두 저의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롯이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것들을 판단했으며,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이 차이가 꽤나 크다는걸 말이지요.그래서 어쩌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지도 모르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피터도 자신이 소유하지 못함에 그들을 우러러 보며 부러워했겠지요, 하지만 화려함으로 보여지던 붉은 나비는 그만의 고통와 시련과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였던 것이지요.

 

동화스럽게 파란 나비 피터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긴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생각과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피터의 여정을 따라 말입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그렇지 않다는게, 눈으로만 읽는다면 쉽게 읽히긴 하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읽혀진 <위로>는 어느 독자에겐 여느 평범함으로 치부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에세이는 꽤 가볍게 보이지만 , 여러번 곱씹어 읽어야 마음에 담을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기도 해요. 갑작스런 추위에, 더욱 몸은 움츠려 들고,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겨울날, 여러분에게 조금더 따스하게 다가갈수 있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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