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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광대 이야기 -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청춘스럽게
우근철 글.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2년전 <어느 젊은 광대 이야기>라는 에세이가 출간되었을 당시, 꽤나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출간 당시 몇 몇곳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도 응모를 해보았지만 저와는 인연이 없었는지,계속 미끄럼을 줄기차게 탔던것 같네요. 결국, 이 에세이는 나와는 인연이 없나보다 하며 마음에서 잠시 비워 두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라고 어렴풋이 마음의 작은 기억상자에 담아 두었었지요. 그리고 얼마전 우연히 친구따라 방문했던 카페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카페 주인님에게 살포시 빌려 오게 되었습니다. 2권짜리 소설을 지지부진하게 끌며 읽기를 마친 후, 곧 도착할 서평 도서를 기다리며 ,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다 이번 에세이를 집어들었습니다. 이틀, 삼일 정도 계획하고 집어 들었던 책인데,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습니다. (웃음)
오랫만에 집어든 여행 에세이는, 한동안 잠잠했던 제 심장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늘 비슷비슷한 여행이야기, 늘 독자들에게 해주는 그들만의 일기같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젠, 지겹고, 진부하다고 생각할만도 한데, 왜이리 제게는 질리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갈증어린 두 손을 내밀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것이 제가 하지 못한, 겪지 못한, 소심하고 당당하지 못한 성격 덕분에 여행자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는지도요,
그는(우근철), 대학 졸업후 1년이 조금 넘는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날, 불현듯 자신의 찌들고 피폐한 모습을 거울속에서 발견하고, 느닷없이 떠납니다. 오랫동안 계획한 것이 아닌, 우발적(?)이였을지도 모를 그 결심이 확고해지자, 2년동안 모으던 적금 160만원과 게임기 , 자전거등을 팔아 9만원을 모았습니다. 돼지 저금통을 털어 8마넌을 토해내게 했고요, 그의 여행지의 목표와 목적은 '산티아고 순례자' 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하염없이 걷는 길을 따라가면 마지막엔 세상의 끝을 볼수 있다" 라는 글귀와 함께 실려있는 어느 순례자의 사진을 우연히 보았던 그날.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서도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 최소한의 여행 준비로 시작한 순례자의 길.
첫 해외여행이 순례자 라니, 한편으로는 그의 무대뽀 정신에 감탄했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결단력과 정신력에 놀랍기도 했습니다. 혼자였지만 자신이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는 순례여행은 그 길을 함께 내딛고 있는 또다른 순례자라는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혼자가 돼서야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립기만 한 오늘, 이라는 그의 단상 속에서 내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무엇인가가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결국, 지독히 모자랐던 여행 경비마저 똑 떨어져 앞으로의 여정이 까마득히 , 암흑으로만 보일 때, 그는 여행준비를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에 챙겨 넣었던 분장 크림통을 꺼내 들었습니다. 구걸 할수도 없었고, 그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 조차 없었던 그에게 최선의 선택이였던 것이지요. 꽤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희귀한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서 어쩌면 아무도 봐주지 않을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공연을 할수 있을지, 심장이 터질듯한 긴장과 떨림은 그는 힘겹게 거리로 나와 판토마임을 시작하며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모자에 동전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근근히 힘든 순례여행길. 어느날, 그런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어느 한 봉사자가 그에게 써준 편지 한장, 어떤 내용인지 알수 없었던 그는, 이 편지로 인해, 그는 조금은 편한 여행을 하기도 했지요. 그는 여행을 하면서,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리고 낯선 여행자들에게서 뜻밖의 자신의 틀에 박혀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얻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둘이 만나 아무것도 모른채 함께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둘은 조심스레 서로를 경계하는 대신 같은 길을 걷는 동행이 되기도 했다. 내일은 북쪽의 맥그로드 간즈에 가자고 동의하고 기차표를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 어둑하고 눅눅한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곤은 그제야 내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는 음식을 삼키며 무심하게 말하길.
"별로 중요한건 아니지만 내 이름은 곤이 아니라 론이야.
직업과 나이와 결혼유무 등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때, 비로소 우린 여행자로 떠도는 거야." (174쪽).
그에게 이번 순례여행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긴 해도, 자신과 함께 그 끝을 향해 걸어가는 낯선자가 곧 피를 나눈 진한 형제와 같은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서투른 영어로, 온몸으로 표현을 해도, 알아듣고 함께 웃어주는 여행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힘겨울때 , 부족하지만 선뜻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친절함과 다정함이 있기도 했고요. 힘겹고 고난한 순례여행을 하는 그들을 위해 앞서 떠난 많은 순례자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숙소에 남겨두는 배려심도 있었습니다. 우유와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경비를 아끼고 아끼는 그에게 , 선뜻 음식을 내어주던 어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도 있었고요, 또한 기타연주를 하던 어느 악사옆에서 판토마임 공연을 하던 그에게 다가와 자신이 오늘 벌었던 전부를 그의 모자 속에 쏟아붓고 그를 살며시 안아주며 "Buen Camino"(좋은 여행이 되길, 축복받은 순례길이 되길.. )라고 말하던 악사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 여행의 길에서 어쩌면 모든것을 홀가분히 털어버리고 , 싶은 마음에 고통스럽고 힘든 여행길을 선택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 오히려 이번 순례여행은 깨달음과, 많은 여행자들, 친구들, 추억들, 그리고 틀에박혀있던, 자신의 고정관념적인 생각들을 모두 깨울수 있었던 아주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지 않았나 싶네요.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화살표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일말의 의심없이 화살표를 따라 걸을수 있다면 순간순간 갈피를 못잡고 고민하며 방황하지도 않을 거고, 인터넷 창만 열었다 닫았다 하며 무의미하게 하루를 낭비하지도 않을 텐데.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위안 삼는 비겁하고 나약한 나와 마주하진 않을 텐데.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이쪽이 더 좋은 길인지, 지금 내가 제대로 가긴 하는 건지, 언제나 갈림길 앞에서 주변을 살피고 망설이며 주저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다수가 걷는 길을 쫄레쫄레 뒤쫓게 된다.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며 바른 길로 간다는 건, 내 발걸음을 믿어야 하는 건데, 나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믿어보지 않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여행의 갈증이 더욱 깊어갔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설레임보다는, 다시 보지 못할지라도, 그 순간 함께 하고 , 추억을 나눌수 있는 여행길에서의 여행자들을 만나는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기도 했고요, 문득 . 내 스스로에게 가슴 답답함의 조여옴을 느껴집니다. 수순대로 나의 삶을 돌아보지 않은채 , 안정된 길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끝없이 이어져 있는 그 곧은 길에서 잠시 옆을 돌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늘, 그렇지 못함은 아마 두려움과 소심함이 먼저 내 가슴을 옥죄고 있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발 한발 내딛는 지금의 내 삶, 인생의 길을 제대로 선택한 것인가, 문득 두려움이 급습하기도 하고, 망설이다 끝끝내 손을 놓아버린 몇번의 인생의 어느날의 후회도 스물스물 떠오르던 1월의 끝자락에서 쓴웃음만 ,
그는 말합니다. 가장 좋은 때는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때다. 20대든, 30대든, 40대든, 50대든, 내가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가 이팔청춘이다. 무모하고 대책 없던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무작정 배낭을 들춰 멜 수 있는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