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고층 창문 밖으로 무언가를 들고 있는 손이 보인다. 검은 빛만 돌던 하늘에 조금씩 짙은 푸른색이 번져 나오면서 어둡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질 때쯤 한참을 부들부들 떨리던 손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 순간 다시 떨어뜨린 것을 잡으려는 듯 손이 황급히 허공을 움켜쥔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진 듯 잠시 동안 허공만 꼭 쥐고 있던 손은 금세 아파트 안으로 사라졌다.


  “은아, 걱정하지 마. 그냥 잠깐 물어볼게 있어서 그런 거야.”

  어제 밤부터 시작한 실랑이는 해가 다시 중천을 넘어간 다음 날이 돼서도 끝나지 않았다. 고반장은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주택가 담벼락 모퉁이에 서서 아직도 딸을 설득 중이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는 계속 같은 말만 한다.

  “약속했단 말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하다 보니 아빠한테 끌려 학교까지 오게 됐지만 아이는 끝까지 말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보다 못한 정민이 고반장한테 한 소리한다.

  “영감, 애 좀 그만 괴롭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냥 가자고. 못 찾아도 그만이지. 다른 건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그깟 개새끼 한 마리 때문에…….”

  고방장은 은이를 마주보며 무릎을 끊는다.

  “은아, 너도 뉴스 봤지? 만약에 너 그 개가 우리 청이라면…….그래도 너 아빠한테 말 안 해줄거니?”

  고반장이 기어이 참았던 말을 하고야만다.

  고개를 숙인 은이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마침 모퉁이를 돌아 아이 하나가 세 사람을 지나쳐가고 고반장이 아이를 피해 허리를 펴고 옆으로 지나치는 순간 잠시 고개를 들던 은이와 아이의 시선이 마주친다. 순간 은이가 당황한 듯 다시 고개를 숙인다.

  “젠장”

  아이가 험한 말을 내뱉고는 뛰기 시작했다.

  “정민아.”

  고반장이 정민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정민이 아이를 향해 뛴다. 아이가 제법 날쌔게 달리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정민의 손에 목덜미를 잡힌다. 정민이 아이를 뒤에서부터 끌어안고는 고반장과 은이에게로 온다.

  “놔, 놓으란 말이야. 너 이 계집애, 약속했잖아. 말 안한다고 했잖아.”

  아이가 은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정민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자 아이가 쓰고 있던 남색 모자가 벗겨지면서 제법 긴 머리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어, 여자애잖아! 은아, 남자아이라며?”

  이때까지 멍하게 보고만 있던 은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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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Remake Album - Neo Classicism
박효신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내 잘못을 탓하는 것이라면 돌아온 후에도 늦지 않아. 아직 시간이 있는데 네가 떠난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을 거야 더 이상 거짓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진 않아 처음으로 사랑을 알았어 다시 널 찾을 거야 이제야 너를 위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았어”


  처음 듣는 노래들이 아닌데도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롭고 신선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의 장르나 편곡에 따라서 자신의 음색에 맞게 바꾸거나 반대로 본인의 음색을 조금 변화시키면서 부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 음반을 듣는 내내 ‘가수 <박효신>은 참 독특한 음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폭 넓게 음색을 변화시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7월 초 내내 이 음반에 노래들이 어떤 건 날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주고 어떤 건 반대로 조금은 밝게 만들어 줘서 눅눅하고 습기 찼던 장마를 지루하지 않게 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넌 언제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가사랑 가수의 음색도 잘 맞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마도 나는 다시 돌아오라고도 머물러 있을 거라고도 다시 찾을 거라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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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5월
구판절판


"당신 말이 맞아. 나,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고……. 내가 한 여자의 쓸쓸함을 모조리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아.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는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 날 빈소에서, 나 나쁜 놈이었어요. 내내 당신만 생각났어. 할아버지 앞에서 공진솔 보고 싶단 생각만 했어요. 뛰쳐나와서 당신 보러가고 싶었는데…….정신 차려라. 꾹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395-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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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사람은 …….




내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아침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 불러주며

이불속 따뜻한 손끝으로 잠든 날 깨워주고


일 나가는 출근 길 꽉 잡은 깍지 손 마지못해 놓고서는

사람들 인파속 내 뒷모습 배웅해주는 당신,


내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집에 가는 퇴근 길 노을 지는 골목길서 

날 반기며 내민 등 뒤 지친 내 몸 안아주고

 

한밤에는 곱게 펴진 베개 두개 금침 안

곁으로 다정히 내민 팔 위 내 머리 눕혀주는 당신,


내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내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에 날 사랑하는 바로 한 남자, 당신.


내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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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무게가 다시 늘었다. 봄이라서 입맛이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왕성했던 식욕을 억제하며 5kg이나 살을 뺏건만 어느새 빠진 것만큼 다시 채워 나가고 있는 나의 신체 회복력. 참 대단하지 아니하다 할 수 없다.

  뭐 어차피 태어 날 때부터 3.4kg의 우량아로 태어나 아직까지 아기살이라고 우기는 나의 모든 살들을 다 떼어 내고 청순가련형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지언정 사실 통통한 몸에 비해 가는 발목이랑 허리는 오래 앉아 있는 일을 하는 내게 좀 부담이 된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시 원상복귀다. 절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입을 옷도 없는데 …….’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좀 있으면 오빠 결혼식도 있는데 사진도 예쁘게 나와야하고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 앞에서 조금은 가늘어진 내 모습을 보여주자. 이제 아기살이라고 우길 나이도 지났다.’

  새로운 각오로 집근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퇴근하자마자 옷 갈아입고 산에 오르기를 일주일. 산을 오르면서는 등에 있어 보이지 않던 달이 내려오면서는 내 앞에서 환하고 밝은 빛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추고 있다. 처음에 산에 오르고 내려 온 날은 가는 초승달이었는데 어느새 반쪽에 조금 더한 반달 모양이 제법 풍성해 보인다.

  이상하게 마음이 뿌듯했다. 그냥 1시간 열심히 운동하고 집에 가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일주일동안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산에 오르던 운동은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튼튼한 내 몸과 마음을 위해서 하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되어있었다.

  마치 가는 초승달 모양이 점점 차고 차서 풍성한 보름달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내 안에 부족한 어떤 부분이 채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땀에 적은 운동복을 벗고 샤워를 하고는 거실에 앉았다.

  부스럭~~~ 부스럭~~~

  “야, 너 다이어트 한다며? 근데 오자마자 단팥빵이냐?”

  오빠가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본다.

  “그나마 운동하고 먹는 거잖아? 안하고도 먹었을 텐데. 그것보다는 났지 않겠어? …….암! 그렇고 말고.”

  이미 단팥빵을 반 정도 먹은 내 입가가 저절로 벌어진다.

  오빠는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맛있다.”

  만족스러웠다. 방금 씻은 몸은 너무 상쾌했고 몸과 마음도 차고 그리고 배도 차고 있었다.

  “아! 좋다.”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운동했더니 피곤하다, 자야지. 오빠도, 잘 자.”  

  오빠한테 밤 인사를 하고는 일어선다.

  어버버……. 어버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 오빠, 그냥 입을 다문다.

  ‘고마워, 오빠.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들었으면 편히 못 잤을 텐데…….’

  고마운 마음으로 내 방에 들어와 이불을 폈다.


  다시 시작하는 하루, 오늘도 난 정발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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