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일서 4장 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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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불법침입 및 절도, 동물보호법 위반혐의로 체포합니다.”

  조형사가 문을 향해 가는 기범을 잡고 수갑을 꺼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사람은 제 매니접니다.”

  그 사이에 일행 쪽으로 온 한석민이 수갑을 든 조형사의 팔을 잡는다. 어느새 복도에는 여기저리서 몰려온 사람들이 정민과 석민의 일행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안되겠다. 조형사, 먼저 황순경한테 연락해서 사람들 우리 쪽으로 보내 달라고 하고. 한석민씨, 어디 가시는 길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더 일을 만드신다면 한석민씨한테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민아. 너, 저 친구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 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여긴 병원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바리를 꼭 좀 봐야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전처럼 진료실 문을 쉽게 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바리야.”

  순식간에 일이었다. 채희가 의사를 밀치고는 진료실 문을 열었다. 순간 바리의 모습이 기범의 눈에 들어왔다. 진료실 중앙에 놓은 큰 스텐 수술대 위에서 전신을 축 늘어뜨린 채 가늘 게 몸을 떨고 있는 바리. 바리는 너무 추워보였다.

  “바리야……. 흑흑……. 바리야, 왔어. 오빠 왔어.”

  채희가 바리를 만지려고 손을 뻗지만 까치발을 해도 손이 닿지 않는다. 그 때 채희의 어깨 너머로 큰 손이 바리를 향해 다가 온다.

  “바리야.”

  기범이 바리를 부른다. 그리고 바리의 눈동자 가득 기범의 모습이 들어온다.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굵은 눈물방울이 바리의 눈가를 적신다. 기범이 바리의 젖은 눈을 자신의 소매 자락으로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닦아준다. 가늘게 떨리는 손이 바리를 쓰다듬는다. 바리의 눈가를, 머리를, 등을, 그리고 발을. 그리고는 그가 바리를 들어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안는다. 바리에게 얼굴을 파묻은 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미안하다, 바리야. 미안해……. 미안해, 바리야.”

  그가 바리를 부르며 목 놓아 운다.

  “울지 마. 울지 마.”

  채희가 기범의 다리를 안고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울지 마, 오빠. 울지 마.”

  얼마나 지났을까? 채희가 힘주어 안고 있던 남자의 다리를 놓고는 뒤에 서 있는 정민을 본다.

  “갔다. 바리 갔어, 아저씨. 흑……. 이제 봤으니까. 목소리 들었으니까. 흑흑……. 안아줬으니까. 바리 갔어.”

  기범의 다리가 쓰러질 듯 꺾이더니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가 품속에 안겨있는 바리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바리의 모습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마치 그날 밤 저녁에 기범의 품에서 잠이 들었던 그 때처럼.

  “바리야……. 바리야. 일어나야지. 응? 바리야. 바리야. 눈떠, 바리야. 집에 가자, 응? 집에 가야지, 바리야.”

  기범이 바리를 조용히 부른다. 잠든 아이를 깨우는 것처럼 어루만지고 달래면서 일어나라고 집에 가자고 말한다.

  “안 와. 바리 안 온단  말이야. 그러게 왜 그랬어? 왜 그랬냔말이야? 어어엉”

  남자는 바리를 안고 울고 아이는 그런 남자를 안고 운다.

  “채희야.”

  아이를 부른 정민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그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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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 예레미야 23장 2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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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0인의 만화가가 내게 하는 말, 길들여지지 않는”

- 십시일反을 읽고 -


  십시일反의 주인공은 나다. 이 책은 내가 우리나라 땅에 살면서 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 애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나 자신을 들쳐보게 해준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가슴이 탁 트이기는커녕 오히려 답답해져 온다. 이유는 하나다. 도대체 이 세상이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도무지 내가 달라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보자.

  내가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했는가? 아니다. 하지만 어두운 골목길에서 백인이 아닌 검은 피부색의 외국인과 마주친다면 백인과 마주쳤을 때보다는 배나 놀라고 또 그 배의 배나 경계할 것이다.

  내가 세금을 안 내거나 혹은 납부를 안 하려고 기를 쓴 적이 있나? 없다. 하지만 복지를 운운하며 올라가는 세금에 배가 아프다. 나는 따뜻한 방에서 밥 세끼 다 먹고 사지 멀쩡하게 밖을 돌아치면서도 속으로는 ‘내 복지나 좀 생각해 주지’한다.

  또 내 주위에 누군가가 커밍아웃(coming out)을 선언한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그 사람과 의절하겠는가? 그렇지 않을거다. 하지만 전과 같은 시선으로 그 사람을 대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마지막으로 난 여자이면서 여자여서 할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지어 스스로 날 묶어 놓고는 내가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남자이기 때문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똑같이 강요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녀평등은 나에게 유리한 부분에서만 적용되며 분리하다 싶으면 언급하지 않는 이상이다.

  이게 나다.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나도 차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서 주인공으로 때론 조연으로 그도 아니면 방관인인 제 3자로 등장하는 나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떳떳하지 못하지만 나도 하고 싶은 말은 있다. 나를 만드는 것이 어디 나 혼자뿐이던가? 내가 대학교 때까지 봤던 영화의 모든 영웅은 백인이었고 킹목사를 제외하고는 교과서의 참고사진에서조차 빈민, 테러, 범죄와 연결되지 않은 검은 피부색의 사람을 본적이 없다. TV를 봐도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것보다는 따뜻한 손길로 도와주는 소수의 사람들의 애기가 훨씬 많은 비중으로 반영되는데 어디 뒤집힌 비율로 언론에 보도되는 게 이 하나뿐이겠는가?

  이렇듯 사방이 확 트인 공간에서조차 길은 앞과 뒤에만 있다고 배우고 전진과 후진에만 길들여진 내가 어떻게 회전을 알겠는가? 어떻게 보면 나도 사회구성원의 하나로서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일 뿐이다. 그냥 하는 말로 내가 꽃을 꽂고 아무나 보고 웃으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누가 나의 사고에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런데 여기, 이런 나를 향해서 나의 사고가 잘못됐다고 외쳐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그냥 잘못됐다고만 외쳐댄 게 아니다. 잘못된 사고를 가르친 세상에 반(反)하라고, 그리고 그렇게 사고하는 나 자신에게 반(反)하라고 십시일反의 십 인이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결코 길들여지지 말라고. 나의 사방은 트여있다고.

  사실 내 속을 다 보인 것 같은 부끄러움 때문에 화살을 나와 사회 사이에 놓았지만 실상 내가 사는 이 사회를 누가 만드는가? 바로 나다. 그리고 또한 당신이다.

  확실히 십시일反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서 책 속에서 희망을 찾아보는 것은 조금 힘들다. 하지만 십시일反이 나왔다는 것에서, 그리고 내가 십시일反을 읽었다는 것에서, 또한 다른 누군가가 십시일反의 책장을 넘긴다는 것에서부터 난 이미 우리 속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를 만드는 것도, 내가 사는 이 사회를 만드는 것도, 그리고 그 속에 희망을 키워나가는 것도 바로 나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신, 바로 나! 그리고 바로, 당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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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어요
원래 유명하다는 베스트셀러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삐닥한 사람이라^^
좋은 말씀들이 많은 책인가 봅니다.

아라 2005-11-06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으면 좀 갑갑하긴 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부분은 정말 암울하죠. ^^;; 책에서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개를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에서 참 많이 울었어요. 중간에 개가 도망칠 수 있었는데 자기를 나무에 매달고 막 때리던 주인이 몽둥이를 뒤로 숨기고 부르니까 다시 주인에게로 발걸음을 돌리더군요. 개가 그런 건 멍청해서도 아니고 길들여져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야 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전 그만도 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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