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괴짜들 - 무턱대고 나서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국경없는의사회 이야기
신창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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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고 싶어! 난, 세계 평화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것은 둘째치고 그 하얀 조끼가 너무 탐나! 그 조끼를 입고 세계 위험지역을 다니며 구호활동을 벌인다면 얼마나 신나겠어. 허락해줘!"

라고 말한다면.

 

"니가 뭘 잘못먹어도 한참 잘못먹었구나! 그렇게 그 조끼가 입고 싶으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지, 날 죽이고 가라! 세계 평화? 어려운 사람 돕기? 좋아하네. 니 가정이나 잘 돕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지. 이게 어디 헛바람이 들어가지고!"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남들이 하는 일은 대단해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 무언가를 하겠다면, 세계 평화는 둘째치더라도 나의 심적 평화를 공격하는 거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며,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난관과 현실적 제약들을 벗어던져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주변 사람부터 설득해야 하는 일. 그 중 하나가 국경없는의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국경 없는 괴짜들>을 쓴 이 작가는 그 많은 것들을 돌파하고 '국경없는의사회'로 돌진했다. 그것도 하얀 조끼를 입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고 싶다는 황당한 이유로 말이다. 스펙도 나름 훌륭해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던 사람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결혼할 여인을 설득해 국경없는의사회로 취직하겠다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해외경험도 유학과 몇 번의 여행이 전부, 구호활동을 해본적도 없고, 하얀조끼를 입고 폼나게 살고 싶다는 마음만 충만한 이 사람이 말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던 이 지원서가 통과되어 얼떨결에 국경없는의사회 교육을 받으러 갔다. 청운의 품을 꿈고 도시로 상경한 청년의 각오로, 하얀조끼와 위험지역에서 활동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말이다.

 

 

처음 발령 받은 지역은 파키스탄. 이슬람 국가로, 서방 국가들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외국구호단체들조차 적으로 간주하기에 하얀조끼는 물론 옷도 요란하지 않게 입어야 하는 나라. 하얀 조끼를 입고 싶다는 꿈은 저멀리 날라가고, 동료들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는 작가.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부티크를 아내에게 넘기고 우울해하다가 할 일 없어서 국경없는의사회로 오게 된 리카도르.

은행에 다니던 한 가족에 가장이 아이들이 재미없게 산다고 한 말에 충격받아 지원했다는 드니스,

국경없는의사회 벨기에 대표인 남자친구를 따라온 오드리, 사람을 돕고 싶다면서 하이힐이 더러워진다고 차에만 앉아있던 수옹누,

비만 오는 오스트리아의 겨울을 피하기 위해 지원했다는 루드빅.

 

 

그의 황당한 동기만큼, 국경없는의사회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모두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처 박사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 그들에게도 각자의 생각과 삶이 있고, 충동적이지만 자신만의 적절한 이유도 있으니. 작가만 괴짜인 줄 알았더니, 단체에 모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대충대충 설렁설렁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남들은 생전 올 생각도 안 하는 위험천만한 지역으로 발령받길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지만, 각자의 즐거움도 지키려 하는 그들은 술이 반입되지 않은 파키스탄에서 몰래 반입한 술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하며. 개성만점 옷차림으로 검문소에 걸려 진땀 흘리기도 한다. 병원은 한국에선 창고 수준도 안 되는 곳이지만, 병들고 아픈 이들은 그곳을 찾는다. 탈레반의 테러에 언제나 마음 졸여야 하고, 혹여나 폭탄이 병원 안으로 들어올까 금속탐지기를 설치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여자용을 따로 구비해야한다는 황당한 조건도 들어줘야 했다.

 

 

예멘으로 발령 났을 때는 퍼세식 화장실에 기겁을 했고, 하늘로 쏴올린 총알 때문에 사람들이 병원에 실러오기도 했고,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고용해야 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대처 훈련 덕에 시체실에서 누워 있는 소름끼치는 일도 있었다.

정부 없는 소말리아는 전기 요금, 인터넷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쌌고, 사람을 돕겠다고 설치한 난민캠프조차 단체에서 월세를 내야한다는 터무니없는 요구도 들어줘야했다. 단체들끼리는 구호 활동을 경쟁처럼 벌였으며, 그 경쟁에 화가난 난민들이 소동을 벌여 피해를 입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그가 소말리아에 승인 없이 갔다는 이유로, 그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일들은 그가 국경없는의사회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해도 무척 소중한 일들 중 하나이다. 작가는, 심각한 일에 처해도 유머러스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것에 분명하다. 물론, 경험했을 그 상황에서는 무척 심각했을 것이며, 공포에 질리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을 것이다. 황당해서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을 것이고,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을 것이다. 예측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 살아온 모든 경험과 감각을 동원해도 상상하지도 못한 일에 맞닥뜨리며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 모든 심각함을 즐겁게 이야기한다. 객관적 시선으로 보기에는 상상하기도 싫으며, 심각할지 모르지만 경험한 그의 시선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어떤 딱딱하고 재미없는 말로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놨다면 '아! 이 단체는 이런 일을 하는가 보군. 뭔가 무척 위험하고 할 게 못되는 일이군'이라고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석구석 녹아있는 그의 유머에 웃게 되고, 그가 이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는 괴짜들만 모인 이 단체에 매료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시종일관 심각하고, 진지해야 한다면 불안하고 두려움 가득한 곳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나 있었을까?

 

 

폼나게 살고 싶어 떠난 그 마음. 아직도 간직하고 있겠지?

그는 꽤 괜찮은 보물섬을 발견한 것 같다.

 

 

 

 

경없는의사회 한국 www.msf.or.kr

국경없는의사회 (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는 독립적인 국제 의료 구호 단체로 60여 개국에서 분쟁, 질병, 영양실조, 자연 재해, 인재에 고통 받는 사람들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긴급구호를 하고 있다. 1971년 나이지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의사와 언론이 힘을 합쳐 설립했고, 긴급 의료 구호에 초점을 맞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구호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독립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3만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27개의 지부에서 현장활동가 모집,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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