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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관념론적인 소설이 싫어졌다. 필요없는 묘사와 쓸데없는 수식으로 지면을 채우는 이야기는 이제 지루하다. 그게 작가만의 의미를 담고 있을지라도 입 속에서 맴돌뿐 몸 속으로 체화되지는 않는다. 찌꺼기 같고 글자 속에서만 뱅뱅 맴돈다. 남들이 하는 똑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한 이야기를 원한다. 문학도 흘러야 하지 않을까? 주제 넘는 생각이라고 해도, 주제 넘게 읽고 있다고 해도 요즘 내 생각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그런 소설들에 지쳐 소설에 흥미를 잃고 있었을 때쯤 광고를 빠방하게 때리는 '위저드 베이커리'를 만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게 다반사이지만 그래도 소문난 잔치를 구경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고 쪽수도 별로 안 되고 양장본에 '창비'라는 거대 출판사에 게다가 청소년 문학상까지 너무 화려하다 싶은 게 구미가 끌려서 읽게 되었다.
달콤한 케익에 끌려 결국 한 판을 다 먹고 어리둥절해져 버리는 것처럼, 정신없이 읽다보니 뭔가 다른 맛이 있었다. 고통 받는 아이 앞에 나타난 빵집. 그 빵집의 주방장. 오전에는 빵집 아가씨로 밤에는 파랑새로 바뀌는 마음 착한 빵집 누나. 빵집에 숨겨진 비밀의 방. 비밀스러운 빵들.
고통받지 않는 사람들은 없겠지. 상처받는 사람도 없을 거야. 다 크고 작은 고난과 역경쯤은 이겨내고 사니까.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라는 것이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보다 유혹에 약한지라, 좀 더 쉽게 가는 방법을 찾다보니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비밀스러운 빵과 과자들은 인간들이 애용하는 마법의 주술이 되어 버렸다. 분명, 빵을 파는 사람은 경고한다. 이 빵을 사용할 시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인간은 얼마나 단순하고도 멍청한지 눈 앞의 달콤함에 미쳐 뒤에 남을 강력한 쓴맛을 생각지 못한다. 닥쳤을 때 다시 원망의 대상이 필요하고, 그 원망이 빵을 만든 사람에게 미친다. 역시나 이기적. 이기적인 생각 앞에는 아무것도 들이댈 수 없다. 고집불통, 안하무인, 인면수심까지.
선택은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따른 고통과 불행은 외면하려 하는 우리의 모습.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도 여실하게 들어나고 있다. 새엄마와의 관계, 오해, 아빠의 치졸한 행동까지 감당해야 했던 소년. 결국 위저드 베이커리가 궁지에 몰리고 억울한 누명 때문에 뛰쳐나온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날 소년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쥐게 된다. 새엄마가 주문한 자신의 부두인형과 선물로 받은 타인 리와인더를 든채 지옥같고 무서웠던 집으로 돌아간 그가 본 아빠의 만행. 그리고, 새엄마의 절규. 그 속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시간이 왔을 때 그의 선택.
Y, N.
시간을 돌리느냐, 그 시간을 감내하고 이겨내느냐.
그것은 너의 선택이다.
개인적으로 N의 경우가 좋았다. 자신의 의지였던 아니였던 결국, 그는 평화를 찾을 수 있었고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얻을 수 있었고, 중요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살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신데렐라처럼 구박받고 살았지만, 백마탄 왕자님이 짠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사실 현실 속의 백마탄 왕자님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겠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만났던 사람들. 마법의 빵과 쿠키를 주문했던 사람들. 주방장의 삶과 이야기에서 그가 배운 것들. 그가 느낀 것들. 소년은 용기를 얻었겠지?
마법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 듯 했지만, 결국 현실이었다. 현실 속에서는 마법이 통할리 없다. 노력이 통할 뿐. 그것을 깨닫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책 속의 상징들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 희망을 말했지만, 식상한 희망은 아니었다는 게 좋다. 소년의 존재를 찾게 된 것도, 지긋지긋한 빵을 이해하게 된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