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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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진정 이성적인 것일까? 과학에 맹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뜨겁게 끓어오르다가, 쉽게 식어버리고, 과학을 이벤트성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태도. 어떤 사건에 대해서 성찰하거나, 통찰력있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언론에 이끌려, 하나의 문제로, 단면적이고 단편적인 시선으로 보는 우리의 모습. '과학적'이라는 말에 홀려 '이성적'이 되지 못한 문명의 관객들은 바로 우리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다이어트 방식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광고에 열광하며, 값비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덜컥 홀려버리고도 그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정상적'인 체중을 가진 이도, '비만'을 만들어버리는 모호한 그 '과학적 기준'이 진짜인 것처럼 비판적 사고 전에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사고'가 먼저 튀어나간다.

'성형'으로 이루어지는 정형화된 美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학적 사고와 불합리한 시스템은 애써 외면한다. 나를 '성형'해주는 이는 '의사'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의사'는 신이 아닐 것인데, 그 '의사'가 행하는 의료행위는 모든 것이 완벽할 것이라는 믿음이 앞서나가는 것이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일반화 되어가고, 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과학'이라고 믿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무런 비판의식도, 아무런 성찰도 없이 말이다.

황우석의 줄기세포,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모두 이벤트였다. 물론, 조류독감과 광우병 공포까지도 말이다.줄기세포에 감춰진 이면, 우주인 이벤트에 숨겨진 정치적 효과, 봉사와 감동으로 본질이 흐려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결국 과학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철저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우리가 진정 원한 '과학'은 무엇일까? 되묻게 된다.

'과학적 열광'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집단적인 열광은 위험할 정도로 극에 달한다. 조류 독감으로 죽는 사람보다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외면한채 다른 확률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이익을 창출하는 이들의 배를 불려주는 게 옳은 일일까? '과학'이라는 명목하에 '인체의 신비전'에 아이들의 손을 잡아 끄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남들이 하기에, 남들이 열광하기에, 남들이 좋다기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포장될라치면, 다른 것보다 100배 1000배쯤 더 열광한다.

비단, 과학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치, 예술, 문학. 어떠한 사건. 그 이면에 감추려하는, 감추어진 것들을 억지로라도 끌어내 다른 시선으로 봐야하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반성과 성찰없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있던가? <문명의 관객>은 믿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믿어도 제대로 믿으라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학'이 '이성'으로 포장되어, 본질을 흐릴 수 있으니,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 본질을 찾아내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많은 정보를 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도 전에 흡수되고 만다. 그 '흡수'의 방식이 바뀔 수 있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말이다. 멈추어버린 뇌는 슬프다. 작동하는 뇌에서 우리는, 진정한 정보와 올바른 과학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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