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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 지음, 이재경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히틀러가 집권한 나치 시절, 한스 숄, 조피 숄, 잉겔 숄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어떻게 이러한 정부가 우리나라에 등장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가난에 시달렸기 때문이지."
아버지는 이어서 설명해 주셨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떤 시대를 겪어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처음엔 전쟁, 그리고 곧 전후의 인플레와 극심한 빈곤으로 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를 메우게 됐단다. 그리고 원래 사람이란, 아무런 희망도 바랄 수 없는 벽에 부딪히면 나약해지기 마련인데, 누군가 감언이설로 장래를 약속한다면 속아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 약속을 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실업자를 구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도 핵심을 따져보려 하지 않았단다. 히틀러가 실업을 어떻게 몰아냈는가를 말이다. 그가 일으킨 것은 바로 전쟁 산업이었다. 곳곳에 병영을 만들고...... 너희들 이런 종류의 산업이 어떻게 끝나는지 아니? 그는 전쟁 산업이 아닌 평화 산업을 지향하는 노선을 취했허야만 했어. 실업자를 없앤다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는 매우 쉬운 일이야. 하지만 우리는 결코 먹이만 던져 주면 좋아서 만족하는 짐승이 아니지 않니? 물질적인 보장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단다. 우리는 최소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냐? 그런데 여기에 문제점을 갖고 있는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어떻게 존경을 받을 수가 있겠니....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나치와 히틀러에 강력하게 저항한 한스 숄, 조피 숄 그리고 그들과 같은 활동을 했던 '백장미단'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수세적 저항으로만 일관했을 뿐인데 '저항' 자체가 금기되었던 시절에는 '저항' 자체만으로도 사형이 될 수 있었다. 갓 스물을 넘긴 그들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은 국가와 자유와 민족을 위한 명분이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국가와 독재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지, 국민을 존중하라. 국민을 속이지 말고, 진실되게 행동하라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결국, 국가는 그들이 두려웠던 것이고, 그들의 행보가 속고 있는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 역시 우민한 독재자는 시대를 넘나들어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 또한 비슷한 행동으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제멋대로인데. 백장미단의 활동과 정부가 대처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들의 희생이 히틀러가 무너지게 된 것에 작은 불씨가 되었음은 명백하다. 어떠한 저항도 헛된 것은 없다.
우리는 침묵을 거부한다.
우리는 바로 당신들의 양심이다.
백장미를 따라 분연히 떨쳐 일어나자!
독일 국민에게 독재 정권을 자각하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체제를 부정하자고 했던 백장미단. 촛불을 들었던 우리 모두가 백장미단이었다고 말하면 과장된 것일까? 국가의 간섭이 심해지고, 부당함이 심해지면서 피부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치 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백장미단의 편지에 노자(老子)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아! 진실로 행복은 연민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연민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질서는 무질서에 의해 유린되었고, 선은 악에 의해서 유린되었다. 그로 인해 국민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현상은 사실 오래 전부터 일상적으로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리해 성인(聖人)이란 모가 났지만 남을 찌르지는 않는다. 그는 똑바로 서 있지만 결코 가파르지 않다. 그는 밝지만 결코 빛을 발하지 않는다.
국가를 지배해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 세계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자들이 자기 목표를 한번도 달성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 자체가 그들의 전부인 것이다.
국가는 살아 있는 유기체(有機體)와도 같다. 진실로 국가는 창조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와 국가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그 국가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은 앞으로 전진한다. 또 다른 자는 그들을 뒤쫓아간다. 어떤 자는 따뜻함을 느끼고 어떤 자는 차가움을 느낀다. 어떤 자는 강하고 또 어떤 자는 약하다. 어떤 자는 만족을 얻고 또 다른 자들은 실망한다.
그리하여 성인들은 과도하게 추구하지 않으며 불손하지 않고, 그리고 간섭을 하지 않는다.
아! 우리 시대에 어떤 성인이 나타나 국가의 작용이 제대로 되게 할 것인가.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으며, 자꾸 우리나라가 처한 시점과 국가의 대표로 서 있을 뿐인 그를 생각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 시대에도 벌써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이 죽었고, 너무 많이 희생되었다. 그 끝을 한스 숄과, 조피 숄은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