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경제학 - '슬로 라이프'의 제창자 쓰지 신이치가 들려주는
쓰지 신이치 지음, 장석진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풍요 속의 행복 빈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 어쩌면 이미 더 이전에 논의되어야 했을 이야기이다. 부강한 나라는 무엇일까?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다. 돈이 많은 나라가 강한 나라인 것일까?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과연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뽑은 '경제 대통령'은 우리의 행복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경제적으로 어느 선에 도달하고 나면,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떠난다. 도시의 생활을 버리고 전원생활을 찾아 떠나기도 하거나, 한적한 나라를 찾아 노후를 보내러 떠난다. 자꾸만 떠난다. 그렇다면, 자꾸만 떠나게 하는 사회는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나는 종종 "돈만 있으면, 우리나라는 천국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대접을 받는다, 돈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다 라고 말하는 게 공공연해졌다. 어린 아이들마저 돈을 벌기 위해 학습 된다. 인생에서 돈은 '절대적'이며, 편하고 즐겁고 떳떳하게 살기 위해 필요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수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돈은 갖을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겠지. 하지만 나라가 돈을 많이 벌수록 국민의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행복의 경제학>에서는 시종일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은 개개인의 노력과 희생이다. 경제의 속도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시간 중 대부분을 경제에 내놓아야만 한다. 그런 시간의 희생이 뒤따라야 경제의 성장률을 올릴 수 있다. 그렇다고, 시간의 희생이 경제 성장률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 성장은 어떤 문제로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희생된 개인의 시간은 돌려받을 수 없다. 

사실, 행복의 조건은 국가의 경제 성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경제 성장은 이미 많은 이들의 행복을 빼앗아 가며 이루어진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경제 성장을 빌미로 희생된 많은 사람을 기억하라. 우리는 경제 성장이라는 최면에 빠져, 희생된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경제 성장'의 망령은 다시 사람들을 부추긴다. 잠깐, 눈감고 잠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우리 모두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성장'이라는 '발전'이라는 단어 속에 감춰버린 많은 고통들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무를 베어 장작으로 태우거나 건축 자재로 이용하여 집을 짓는다. 이것을 나무의 '발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숲을 벌채하여 길을 닦는 것을 숲의 '발전'이라고 하지 않으며, 호수를 메워 공업단지를 만드는 것을 호수의 '발전'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60년 사이에 이러한 일들이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엄청난 기세로 행해졌다. 자연이 파괴되었을뿐더러 문화가 파괴되고 몇백 년 전부터 내려온 기술이나 음악, 언어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것도 대개의 경우 '발전'이라고 하는 한마디 말로 정당화되었다.
- 118p

'발전' 때문에 많은 것이 파괴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때문에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문화가 파괴되며, 삶의 터전이 파괴된다. 단적인 예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는 '멧돼지의 공포'는 우리가 '발전'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되돌아온 문제이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겼던 '발전' 때문에, 자연이 역습한다. 당장은 행복해 보였지만, 결국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공포가 농촌 경제에 불행과 개인의 불안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것은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빈곤을 낳는 것, 그것은 바로 자연을 자원으로, 또한 착취의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방패로 하여 자연을 언제나 충분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고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을 동원하여 온갖 기술을 낳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테크놀로지들은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사람들에게 한층 심각한 빈곤을 안겨주었다. 즉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보다는 거꾸로 결핍을 만들어 내고 늘려왔던 것이다."
- 인도의 사상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의 말 - 160p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강대국들은 약한 나라의 자원을 착취하고, 심지어 인간의 생명마저도 경시했다. 그들이 그렇게 이루어낸 경제 발전은 권력과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끝도 없는 욕망은 결국, 만족과 행복을 방해한다. 무엇을 원하느냐가 분명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거대한 덩어리로 합리화되기도 한다. 선진국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선진국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을지 모른다. 경제 성장과 발전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행복지수
"경제적인 대차대조표 대신 국민들의 행복도를 기준으로 나라의 발전도를 측정하겠다."
-1973년 부탁의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국왕 대관식

"국가의 목표나 개인적 만족을 단순한 경제적 성장에서 찾을 수는 없다. GNP는 삼나무 숲의 파괴와 호수의 죽음, 네이팜 탄과 미사일과 핵무기의 생산으로 증가한다. GNP는 가족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포함하지 않는다.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의 가치, 우리의 유머나 용기, 지혜와 가르침, 자비나 헌신을 측정하지 않는다. GN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측정한다."
- 1968년 미국, 캔자즈 대학, 로버트 케네디

성장의 희생에 내몰리면서 개인은 시간을 반납하고, 개인의 행복을 반납한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성장일까? 우리의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겠다고 연일 떠드는데 왜 우리의 국민들은 행복해하지 않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행복의 경제학>이 말해준다. 쓰지 신이치는 부드럽지만 충격적이게 말한다.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얻기 위해 증거 자료와 다른 이들의 말을 빌려 '성장'이라는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행복의 정의와 왜 우리가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지에 대해 말한다.

'풍요' 의존증에 중독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소비하는 생활에 내몰려 있고, 소비를 하는 것만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임을 주입받는다. 경제 발전과 경제 성장은 '소비'에 의해 이루어진다. 결국 물리고 물리고 물리고 쳇바퀴 돌듯 멈출 수 없는 것이 '발전'이고 '성장'이며, '풍요'다. 여기서부터 끝. 이만하면 성장했다. 이만하면 발전했으니 그만하자. 라는 것은 없다. 지속적이고 끝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끝없이 반복되는 파괴와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점점 눈을 뜨고 있다. 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행복은 극히 적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만의 행복을 창조하는 집단도 생겨나고 있다. CC(Cultural Creatives), 자신의 만족감에 무게를 두며 사회적 지위와 부보다는 내면적인 성장과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사람들. 시간을 돈보다 중시하며 환경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이미, 우리는 '성장'에 지쳐 있다. '성장'이라는 사슬이 개인의 행복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적극적으로 돌파하는 사람이 있다.
젊을 때는 앞만 보며, 돈만 좇아 살아오다 나이가 들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여유와 행복을 찾아 삶의 행로를 바꾸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한 '성장'에 지쳐버린 몸부림이 아닐까? 무엇을 희생에서 얻는 것은 행복이 아닐 것이다. 곧, 내가 희생될 수도 있으니.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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