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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당신의 우아한 거짓말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누군가를 외롭게 하는, 고립되게 하는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우아한 방관을 정당하다고 합리화한 것은 아닌가요?
이야기는 천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천지는 아침부터 MP3 타령이다. 엄마는 보증금을 올려줘야 할 처지라 애먼 소리 하지 말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타박이다. 이상하다. 천지는 막무가내로 조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천지는 참았고, 착했고, 인내하는 아이인데 오늘따라 이상하다. 언니 만지도 엄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다' 이상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천지가 털실에 목을 감고 죽어버렸다.
자살이다. 자살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자살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물론 자살이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사건만 따지자면 분명 천지는 자살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살이 아니다. 자살이라고 볼 수 없다.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자살을 택했다면, 그것은 이유가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진실이 모두 진실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강요된 자살이다.
자, 이제 진실을 알아야할 시간이다. 진실을 알고 싶은 만지와 엄마. 그리고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운 직접적 가해자 화연. 진실과는 동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간접적 가해자인 미라. 진실로 다가가려고 할수록 물러서는 이들,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은 이 아이들도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천지가 죽고, 엄마와 만지는 이사를 한다. 천지가 죽었는데도 엄마와 만지는 표면적으로 명랑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한 맺힌 엄마의 모습이라곤 찾을 수 없다.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누구보다 고통스럽지만, 만지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엄마는 천지의 죽음, 그 내막에 둘러싸인 진실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다. 만지는 내일을 준비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왜 죽었을까?
화연, 그녀의 우아한 거짓말, 아니 잔혹한 거짓말은 천지를 좀먹기 시작한다. 천지의 정신이 감정이 화연에게 휘둘린다. 화연은 지능적으로 천지를 괴롭힌다. 한마디로 천지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생일파티는 2시인데 일부러 천지에게만 3시에 오라고 한다. 그리고 천지만 뒤늦게 자장면 한 그릇을 먹게 한다. 천지의 아버지는 사고로 죽었는데도 화연은 천지의 아버지가 자살로 죽은 것처럼 떠든다.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아이들은 '힘'에 의해 조종된다. 화연은 아이들에게 물질적으로 어필한다. 사실 그들도 그 말이 진실이 아닌 것을 알고, 화연이 하는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모두 침묵한다. 그것은 '남'의 일이고 말려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중학생이 되고 천지도 조금씩 달라진다. 자기한테 쩔쩔매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독자노선을 걷는 것이다. 아이들의 반응도 조금씩 바뀐다. 화연은 그 상황이 싫다. 천지는 겉으로는 태연해졌다고 하지만, 아픈 감정들을 이겨낸 것도 치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천지가 국어 수행평가 발표를 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잡한 말이 뭉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예비 살인자는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명확한 글은 자살을 암시했고, 경고했다. 화연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지만 태연하게 군다. 하지만 천지가 죽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비밀이 있다. 천지와의 또 다른 약속.
만지와 엄마, 천지 그들은 화목한 가정이다. 하지만, 서로에 관해 잘 몰랐다. 천지의 속이 곪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엄마이지만, 딸이 죽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만지는 화연이와 천지가 단짝인 줄만 알았지 화연이가 천지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몰랐다. 만지는 동생의 흔적을 밟아가며 단짝 친구 미란의 동생 미라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로 천지의 고통을 희미하게 알게 된다. 하지만, 미라도 어쩌면 간접적인 가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미라는 사회 전체의 사람들을 대변한다. 무관심 나와 상관없는 일에 간섭하고 싶어하지 않는 행동. 만지는 천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남과 동시에 무관심한 사회와 사람에게 화가 난다. 결국, 지능적인 거짓말과 회피가 천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한 것이다.
화연은 화연대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자신의 행동에 후회라기보다는 천지의 죽음에 대한 원망이다. 그것은 또 부모에 대한 분풀이로 표출된다. 변명을 만들고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솔직해지지 못한다. 자신이 해왔던 거짓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화연의 탓은 아닐 것이다.
천지는 다섯 개의 실에 메시지를 남긴다. 실은 결국, 하나다. 엄마, 만지, 화연, 미라, 그리고 또 하나의 메시지. 천지는 살고 싶다는 흔적을 여기저기 여러 번 남겼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게 슬픈 현실이다. 죽기 전에 들어주는 이 없고, 죽고 나자 들어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모순의 끈, 언제쯤 끊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아이들의 시기와 질투, 무관심이 어떻게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인가를 보여준다. 또한,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한 아이의 고민과 근심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실은 자꾸 뒤로 물러나고 조작된 거짓말이 진실로 받아들여질 때 사람들은 자살을 한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많이 봐왔다. 학생, 가장, 경제인, 연예인, 심지어 대통령도 자살에 이르렀다. 상황, 소문, 말들이 퍼져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지 봐왔다.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큰일이며 너무 깊은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