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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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에서 이덕무를 만났다. 또 한 번 <책만 보는 바보>에서 이덕무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덕무를 사랑하게 되었다. 왜 그가 좋았느냐고 묻자면, 우직하고 바보같은 모습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책만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한시나 옛글을 읽다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이덕무의 글들은 더더욱 그렇다. 돌베개에서 나온 이덕무 선집에 실린 글들은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가난
가장 뛰어난 사람은 가난을 편안히 여긴다. 그 다음 사람은 가난을 잊어버린다. 가장 못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해 감추기도 하고, 남들에게 자신의 가난을 호소하기도 하고, 그 가난에 그대로 짓눌리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가난에 부림을 당하고 만다. 이보다도 못난 사람이 있으니, 바로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 그 가난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다. 

가장 큰 즐거움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 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는지.

그의 소박한 마음이 잘 들어난 글들이었다. '돈'이 최우선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경시되는 지금 다시 한 번 되새겨볼만한 말들이었다. 그는 지독히도 가난했다. 구들이 움푹 움푹 파인 집에서 책을 읽으며, 눈이 녹아 떨어지는 물에 손님들이 놀라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책이 전부였고, 책읽기가 그의 낙이었다.
박제가와는 지기였는데, 아홉살이나 어린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이덕무는 그의 친구가 되었다.
서얼 출신인 그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는 책을 읽으며 세상의 시름을 잊었고, 책을 읽으며 배고픔을 잊었다. 책을 읽으며 추위와 슬픔조차 잊었다. 그는 정말로 간서치(看書癡)였던 것이다.
하나밖에 모르는 그의 성정을 사랑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런 그와 우정을 나누며 기쁨을 누리는 이도 있었다.
멀티미디어가 되어야하는 이 시대에 하나밖에 모르는 그가, 바보같지만 우직해서 사랑스럽다.
또한, 그는 유머와 농담도 아는 이였다.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
아름답게 솟은 푸른 봉우리와 선명하고 짙은 흰 구름을 한참동안 부러워하다가 한 손에 움켜다 모두 먹어 봤으면 하고 생각했더니 어금니에서 벌써 군침 도는 소리가 들렸다.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 중에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이덕무의 상상력이 느껴지는 글이다.
먹을 게 없어서 책을 팔고 서글펐지만, 그는 자신을 위안한다.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술책일 뿐이요,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 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서글픈 그의 심정이 짙게 배어 있지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글을 읽는 일로 부귀를 얻는 것보다 마음 맞는 지기와 책에 대해 논하는 게 더 좋았던 그는, 가난하긴 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고 풍요로웠던 사람인 듯하다.

가끔은 짜증이 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 사실 이덕무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다. 그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부끄럽다.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살고 싶다는 그의 솔직함. 그 발끝을 어떻게 따라갈까 싶지만, 그래도 조금 닮아보고 싶었다.

닮고 싶은 그, 이덕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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