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내일 - 1차세계대전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아이들의 전쟁 일기
즐라타 필리포빅 지음, 멜라니 첼린저 엮음, 정미영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전쟁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아이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더 꿈꿔야 할 나이에 아이들은 공포를 느끼고, 절망과 슬픔을 맛본다.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꿈꾸고 즐거워야 할 나이에 가족을 잃고, 굶주림과 상처에 감정이 메말라간다. 모든 것을 누려야 할 나이에 불행과 아픔을 먼저 알아버린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빼앗긴 내일>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유태인 대학살, 베트남 전쟁, 보스니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전쟁 속에 살았던 아이들의 일기를 묶은 책이다. 순진한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적의 죽음도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죽음의 위험이 눈앞에 도사리는데도 희망을 품는 이유는 아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안네의 일기를 읽었지만, 그때는 숨어 산다는 의미도 몰랐다. 또한, 전쟁과 학살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가슴으로 느끼지도 못할 때였다. 그녀가 쓴 일기가 세상에 나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경악했던가? 하지만, 알면서도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던가.

우리가 단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전쟁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산다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이다. 디지털 시대, 정보화 시대, 물질이 풍족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구 어디에선가는 끔찍하게 살해당하며 죽어가는 이들이 있고, 전쟁의 공포 속에서 꿈을 꾸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계속 되풀이되고, 끝날 줄 모르며 어디선가 시작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일상을 폭탄 테러의 공포에 빼앗겨 버린 시란 젤리코비치, 그녀는 이스라엘인이다. 팔레스타인이기 때문에 전쟁의 공포와 누군가의 죽음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메리 해즈보운 그녀는 팔레스타인이다. 두 나라가 벌이는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 분쟁 속에서 공포에 떨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공포에 못 이겨 나라를 등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개개인에게는 조국과 국가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조국과 국가가 없다는 것은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황당한 상태가 된다. 또한 뿌리에 대한, 나를 형성한 모든 것에 대한 부재. 내 존재가 흔들린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내 국가를 지키기 위한 것일까? 내 국가를 강하게 하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전쟁을 하면 배부른 이들은 무기상, 검은 거래를 하는 정치인, 권력자들. 전쟁을 하면 배고프고 고통받는 이들은 아이들, 국민, 군인들. 다수의 고통과 소수의 이익을 아무렇지 않게 맞바꾸는 것도 전쟁이다.

클라라 슈왈츠는 2차세계대전 동안 홀로코스트(대학살)가 횡횡했던 그때, 살아남기 위해서 지하실에 숨어 지낸다. 다행히 독일인 벡 씨의 도움으로 그의 집 지하에 다른 유태인들과 숨어 살 수 있었던 그녀는 하루하루 공포에 시달린다. 머리카락이라도 들켰다가는 어디로 끌려가 죽을지 모른다. 히틀러 친위대는 그들의 독재자 히틀러의 뜻을 받들어, 유태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했다. 같은 인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린 아이의 일기장에는 '사는 게 완전히 지옥이다', '요즘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다.', '어서 빨리 자유의 몸이 되게 해 달라고. 이 고통이 막을 내리게 해 달라고. 모두 울었다.', '사람들이 백 살까지 산다 해도 결코 우리가 하루에 겪은 시련을 경험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글들이 적혀 있다. 아이의 절망이 뼛속까지 사묻힌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지하실에 숨어 살며 겪어야 했던 것들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에게는 미래를 꿈꿀 여유도 미래를 설계할 생각도 없다. 단지, 그곳에서 탈출해 나가기만을, 전쟁이 끝나서 맑은 공기만을 마실 수 있기만을 바란다.

전쟁은 많은 이에게 고통을 낳는다.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어 있다. 아이들은 길을 걷다 죽기도 하고, 물을 마시다가 죽기도 한다. 공부하다가도 죽는다. 아무렇지 않게 죽음이 예정되었다는 듯이. 우리는 안다. 알면서도 또 전쟁을 시작한다. 그 웃기지도 않은 평화의 이유로 말이다. 평화롭게 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은 겪어본 자만이 안다. 제3자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꿈꿀 수 있는 내일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이 아이들의 일기 속에는, 전쟁을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며 이미 일어난 전쟁은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의 죽음도 슬퍼하는 아이들의 눈이 있다. 결국, 적은 적이 아니어도 될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모두가 적을 만들 뿐이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일기가 왜 세상에 퍼지고 있는가? 그것은 전쟁을 막으려는 그들의 바람이며,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들의 아우성이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전쟁 속에 사는 많은 이들에게 온전히 행복할 내일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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