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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였던가?
알록달록 화려한 서양화보다 먹 끝에 담긴 이야기를 찾는 게 더 좋아진 것이. 하지만, 확실히 나에게 동양화는 어렵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없으며, 알려 해도 어렵고, 보고 있어도 어렵다. 하지만, 선과 먹, 여백, 공간, 해학이 느껴지는 그림 앞에서는 감동이 느껴진다.
같은 그림도 누가 설명하느냐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이해하는 것이 달라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무리 김홍도의 그림을 누군가에게 설명해도, 내가 아는 지식은 짧고 깊지 못하다.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내공은 한순간 쌓이는 것은 아니다.
획 하나를 잘 그으면 열 획, 백 획이 다 뛰어나다.
그 일 획속에 바람이 있고 계절이 있고 말로는 다 못 할 사람의 진정이 있다.
글도 그렇다. 첫 문장을 잘 써내면 두 번째 문장, 세 번째 문장 다 뛰어나다. 그 문장 속에는 말로는 다 못 할 사람의 진정이 있다. 오주석 선생님이 바로 그런 글을 쓰신 것 같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은 오주석 선생의 유고 간행위원회에서 발간한 것이다. 동아일보와 잡지 북새통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정리하에 발간한 책이다. 그의 글을 그리워하는 이가 많나 보다. 그가 죽고도, 그의 책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의 대부분은 알고 있는 그림이었고, 어디에선가 다른 칼럼니스트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 그림들이었다. 알던 그림도 그의 설명을 읽으니 또 다른 눈으로 찬찬히 보게 된다. A4 한 장 분량은 되는 글들일까? 짧은 글 속에 할 이야기만 한다. 그렇다고, 빼거나 쓸데없이 더하는 이야기는 없다. 게다가 자신의 상상력까지 동원한다.

변상벽, <모계영자도>
이 그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이다. 나도 어미여서일까? 암탉과 병아리들의 모습이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여쁘기만 하다. 그림에 나타난 병아리들에 대한 설명이나, 암탉에 대한 이야기, 불쑥 솟은 괴석에 숨겨진 장치 등을 이야기하다가 오주석 선생은 그림에 대한 속내를 드러낸다.
세상에 닭 그림이 많아도 이렇듯 정감 어린 작품이 또 어디 있으랴? 화가 변상벽은 어쩌면 이토록 살갑게 어머니 사랑을 그렸을까? 나는 상상한다. 이것은 닭 그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느 집 정 많은 친정 부모가 시집 간 딸을 위해 정성껏 주문해 보낸 그림이라면……. 그 딸아이가 늘 건강하고 병아리처럼 예쁜 자손도 많기를 기원하였다면…….
이런 따뜻한 견해를 덧붙이는 것이 그의 글의 묘미다. 그가 받은 감동이, 애잔함이 나에게도 전해져온다. 좋은 작품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고 말하는 오주석 선생. 그의 글에서도 영혼의 울림이 느껴진다.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그림을 설명해야 했으니, 대충대충 빨리빨리 쓸 수 없었을 터. 온 힘을 다해 영혼을 설명하고자 안간힘을 쓴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해박하고 폭 넓은 설명은 <금강전도>나 <송하맹호도>에서 크게 다가온다. 그림을 그림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림을 숨겨진 지식의 장으로 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설명한다는 것은 크나큰 책임이 뒤따른다. 그 설명은 누군가에게 하나의 진리가 될 수도 있고, 그 정보가 여기저기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 선생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글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많이 고민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의 성품과 무게가 느껴지는 책. 우리의 동양화를 맛깔나게 설명한 책.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