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공부 - 똑바로 볼수록 더 환해지는 삶에 대하여
박광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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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을 자주 마주하는 이의 일상은 어떨까,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쓰이던 책 <죽음 공부>.
건강한 삶도 있지만, 아픈 삶도 있다. 박광우 의사는 신경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로 말기암과 파킨스병에 관심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암과 파킨스병을 가진 사람이다. 똑같은 암이라도 증상과 징후는 모두 달랐다. 일상도 다르고, 가족들이나 환자의 건강상태나 성향에 따라 마지막도, 암을 맞딱드리는 상황도 다 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기암, 암, 유방암, 위암, 폐암으로 치환되는 게 얼마나 납작한 말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암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했다. 고통이 느껴질만큼 끔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이러한 통과의례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이겨낼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힌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도 치유되지 않는 고통이라면, 끊임 없이 나를 쫓아오고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럽다면 존엄사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생의 집착과 간절함은 병을 만나고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나 살것처럼 굴다가, 병을 만나고 죽음을 마주하게 되어서야 더 간절해지는 생. 어떻게 죽는 게 나은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방법을 찾는 생. 그런 이야기들을 만나고 나면 더 생각이 많아졌다.

집으로 가서 죽고 싶은 사람, 살고 싶어서 가족을 괴롭히며 악다구니를 쓰고 막대한 빚을 남겨두고 가는 사람, 삶의 의지를 찾게 하려고 임종이 다가온 것을 숨기는 가족, 어떻게든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간호에 전념하는 남편, 종교적 신념 때문에 초기에 암을 치료하지 않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30대 여성, 일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사람, 병으로 고통에 지쳐가던 동거인이 죽여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친구, 엄마가 낫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믿지 않는 가족.

이 책에는 병과 죽음을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가이자 의사가 만나온 죽음에 문턱에 있거나, 죽음으로 가는 환자들의 가족들, 당사자, 주변 사람들. 큰 병 앞에서 남은 일상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통증이 자주 찾아올 때, 일상을 조금 더 버텨보려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버텨나갈 때, 다가올 고통이 두려워 치료조차 거부하다 더 큰 고통을 마주할 때, 등을 굽히지도 못하고, 몸을 펴지도 못하고 누워서 잠을 자지도 못하는 통증에 시달려야 할 때. 이러한 때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갑자기 찾아온 고통 앞에서, 통증 앞에서 나는 의연할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쓰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죽음까지 가는 길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다. 병을 막고, 수명을 늘리고, 길고 길어지는 기대수명에 죽음도 두려움이 된다. 고통 없이, 너무 길지 않게, 병에 걸려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마음일 테지.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그런 기대를 하며 살아가지만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다.

시간이 있을 때, 지금, 현재를 잘 누리고, 불가항력적으로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상상해보고 고민하며 읽었던 책. 다양한 돌봄에 대해 논의되고, 주변에 부모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지면서, 죽음에 대한 결정도 생각을 해두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느낀다.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도 죽음과 병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무도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진실을 자주 잊고 산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가는 것부터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죽음 공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순간이 닥쳤을 때, 이만하면 잘 살아서 괜찮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일상을 살아내고 싶다. 생과 좋은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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