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전성진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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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에게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를 보여줬더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말을 했을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상상했다. 아마도 숭진을(작가님 이름은 성진이지만, 요나스는 발음을 잘 하지 못해 숭진이라고 불렀다) 꼭 안아주며 너무 멋지다고 말해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겠지. 자신과의 추억을 써준 걸 무척 기뻐하며 요나스다운 음식을 차려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작가의 독일 정착기인 줄 알았다가, 집구하기 대작전인가? 지저분한 룸메이트와의 파란만장한 독일 생활기로 이동하더니, 눈물 찍 콧물 찍 우정기로 느껴졌다. 팔딱팔딱거리는 생동감 넘치는 우정기. 누구하나 평범한 사람은 없고(특히 요나스가 제일 괴짜지만, 뭔가 사랑스럽다, 작가가 사랑스럽게 쓴 것 같기도), 요나스와 숭진이 함께 사는 일상도 내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였다.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던 전성진 작가에게 나타난, 아니 찾게 된 요나스. 29살 여자와 53살 남자와의 동거는 읽자마자 불길했다. 한국적 사고에 갇혀 있는 나로서는 무슨 큰일 날 일이라도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이 아저씨가 뭔 나쁜 짓을 해서 탈출기가 되는 거 아닌가 불안불안해 하며 읽었지만. 웃기고, 더럽고, 종종 성가시게 하는 아저씨일 뿐 어쩐지 순수한 매력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전 절대 같이 못 살았을 것 같아요, 작가님 최고…. 2년이나….)

팬티만 입고 거실을 돌아다니고, 함께 사는 집이니 방문을 열어 놓자고 하고, 청소는 거의 하지 않고, 부엌은 엉망이고, 시도 때도 없이 노크하고 문을 열어 뭐하냐고 묻고, 이런 요나스와 2년을 함께한 요나스와 최장 룸메트. 그 오랜 시간을 함께 살며 나눈 이야기,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다. 특히 맛깔스러운 것은 전직이 요리잡지 기자였던 작가가 음식과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엮어줘 군침을 흘리게 한다는 것.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추억이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함께 먹은 음식들 속에 곁들인 이야기가 새록새록 생각날 테니, 정말 특별하고 즐겁지 않을까? 전성진 작가가 음식과 함께 부려놓은 이야기는 멋지고 유쾌한 성찬 같다. 누구나 먹어도 탈나지 않고, 함께 웃을 법한. 그래서 기분이 좋아질 법한.

요나스의 아들 일리아스와 나눈 이야기와 함께 간 클럽에서 경험한 에피소드, 요나스의 캠핑장 초대를 애써 미뤄두다가 한국 친구들과 함께 가서 생각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에피소드, 요나스가 쓰러져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가 만난 놀라운 병원식, 작가가 겪은 인종차별 이야기.

산문집은 맛있는 음식이 잔뜩 있는 메뉴판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새 집을 찾아서 결국 함께 사는 것은 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숭진을 그리워하는 요나스의 짧은 메일은 눈물이 핑돌게 한다.

생활은 생활이기 때문에 내가 읽은 이야기는 단편적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국적과 나이도 다르고, 문화와 생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요나스가 숭진을 괴롭히는 괴팍한 중년 아저씨에 불과했다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함께 사는 게 어렵고 고단하기도 했겠지맞 함께 한 다정한 시간들, 서로를 살핀 순간들, 그렇게 쌓인 우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탄생한 게 아닐까.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한 요나스. 지금 삶을 잘 사는 게,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준 요나스가 있었기에 숭진의 독일 생활이 많이 외롭지만은 않았을 거다. 이런 관계들은 늘 부럽다. 어디서라도 만나지 못할 것한 관계들이 우정을 나누게 되는 시간들은 더 특별하니 말이다.

”나는 오늘 너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얘기를 하는 일이 즐거워. 그게 전부야.“
….
”무엇보다 나는 그저 지금의 삶이 행복하고 즐거워. 내가 지금 살아 있으면 됐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잦아진 작가가 죽음에 대해 물으면, 현재를 살라고 말해주는 요나스.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채우라는 요나스의 조언은 눈물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제목에 육개장이 왜 등장하는지는, 책을 끝까지 읽는 독자만이 알게 되는 보물찾기. 나조차 조금 갑작스럽고, 당황했지만. 그와 함께한 이야기를 이렇게 남겨두었으니, 요나스가 어디에선가 말하고 있지 않을까?
“알레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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