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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당신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맛보았습니다.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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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내리고 - 편지 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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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셕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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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이 땅의 가장 순박한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나룻배 타고 강 건너며

      강물 위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 만지며 오는 아이

      등교길에 들꽃 여러 송이 꺽어와 교탁에 꽂는 아이

      논둑밭둑 땅을 적시고 풀잎냄새 풍기며 일하는 아이

      과일냄새 흙냄새가 단내로 몸에 배어 달려오는

      그런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파도를 가르며 이 땅의 가장 궁벽진 섬으로 갑시다.

      어젯밤 갱도에 아버지를 묻고 검은 눈물자국

      아직 지워지지 않은 아이들 곁

      지게마다 가득가득 빈곤을 지고 한평생 땅을 파다

      얼굴빛 흙빛이 된 아버지를 둔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그들이 삼킨 눈물

      그들이 귀에 못박이도록 들은 신음소리 곁으로 갑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거짓이 없는 학교로 갑시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 속이지 않는 학교로 갑시다.

      올 곧은 말씀 진실한 언어로 가득 찬 교과서 들고

      교실문 들어설 수 있는 학교로 갑시다.

      끝종소리 들으며 진리를 바르게 가르친 보람으로

      가슴 뿌듯해 오는 그런 학교로 갑시다.

      가서 티끌만한 거짓도 걷어내는 선생님이 됩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휴전선 철조망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까지 갑시다.

      바람 부는 중강진, 개마고원 그곳까지 갑시다.

      가서 우리가 새로이 하나 되기 위해 몸 던지는 선생님이 됩시다.

      어떻게 이 나라 이 민족 역사가 그릇되었으며

      어떻게 진정으로 하나 되는 젊은이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다

      청정하던 젊은 백발이 될때까지 가르치다 쓰러져

      그곳에 뼈를 묻는 선생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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