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지할 수 없으며 정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태로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인간이며, 현상태로 있을 때, 그는 가치가 없다. --장 폴 사르트르(Sartre, Jean-Paul)

진실의 가장 강력한 적은 의도적이고, 가식적이며, 비정직한 거짓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설득적이며, 비현실적인 신화이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어차피 자리를 뜨면 남들에 의해 지껄여질 이야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 --미즈너(W. Mizner)

생은 진행형 -아나이 닌(A. Nin)

삶은 어제를 이해하며 내일로 나아가는 것.
--키에르 케고르(S. Kierkegaard)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란 소음에 불과하다.
--법정(法頂)스님

먼저 연주하고 나중에 무엇이었는지 가르쳐주겠다.
--마일스(M. Davis)

갈라진 두 길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네.-로버트 프로스트(R. Frost)

모든 일에는 어찌 그리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인지 삶의 구석구석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프리드먼(T. Friedman)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온 이들이 범인(凡人)과 다른점은 그들의 지성도, 힘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상도 아니며 오직 더욱 원대한 야망 하나뿐. --오리아나 팔라치(O. Fallaci) <역사와의 대담>

Aut Caesar, aut nihit, 시저의 야먕이 아닐 바에야 아무것도 필요없다. --보르지아(Borgia)

행복을 수중에 넣는 유일한 길은 행복, 그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복 이외의 다른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到頭天命有歸處 泥中幡龍向天飛 (도두천명유귀처 니중번용향천비)
끝내 하늘의 명이 돌아가는 곳이 있어 진흙 속에 서린 용이 하늘을 향해 오르리라.--삼국지(三國志)

모든 유년기에는 문이 열리고 미래가 들어서는 한 순간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그라함 그린(G. Green) <권력과 영광>

영웅은 주로 요절하는 이들 중에 있다. -릴케(R. M. Rilke)

나는 내 운명의 주재자요, 내 영혼의 주인. –윌리엄 헨리(W. Henley)

운명은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면 되는것이다.--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 J. Bryan)

감상에 젖는 일보다 중요한 할 일이 너무 많다. -찰스 램(C. Lamb)

부자가 겸손해지는 것보다 힘든 일은 없다.
--제인 오스틴(J. Austen) <엠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같은 사회에서도 두개의 국가를 이룬다.
--디즈레일리(B. Disraeli)<시빌>

가장 현명하고 뛰어난 아침의 아들들이여.
우리의 어둠에 새벽을 비추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오.
--레지나드 헤버(R. Heber)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
--엠마 골드만(E. Goldman)

부모는 자식을 쏘아올리는 활. --지브란(K. Gibran)

언어는 사고의 옷. --새뮤얼 존슨(S. Johnson)

인생에서 인간이 자신의 힘을 펼쳐감에 따라 스스로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 이외의 의미는 없다. --에리히 프롬(E. Fromm)

인간은 극대화된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고난이라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마르셀 프루스트(M. Proust)

버나드 쇼(B. shaw)의 <인간과 초인>은 카알라일의 이론, 버그슨의 신학, 디킨슨의 우주적 자비론, 여기에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빅토리아 시대의 진보사상이 합쳐진 조합물이다.--A. R. 존스(A. Jones)

남에게서 빌린 것을 빼고 나면 내게 남은 것은 아주 조금밖에 없을 것이다.--괴테(J. Goethe)

장엄한 파국(magnificent catastro-phe)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줄리어스 시저(J. Caesar)

대중의 환각 --나세르(G. Nasser)

청함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성경.

나는 언제나 활짝 핀 꽃보다는 약속에 찬 봉오리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욕망을, 완성보다는 진보를, 분별 있는 연령보다는 청소년 시절을 사랑한다. --앙드레 지드(A. Gide)

Amicus Ad Aras(죽을 때까지의 벗) --페라클레스.

우리는 너무나 홍진에 묻혀 산다.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벌고 쓰는 일에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도 보지 못하고,
심금마저 버렸으니 이 남루한 흥정이여!
매사에 시큰둥하다, 신이여!
차라리 사라진 옛 믿음으로 자라는
이단이나 되고 지고
이 아름다운 위안이 되도록
바다에서 솟아나는 프로테우스를 볼 수 있고
트라이튼의 조가비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윌리엄워즈워스(W. Wordsworth)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세상 사람이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 모르면서,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은 뜯을 줄 모르니,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좇아다니는데 어찌 금서의 참맛을 알 도리가 있겠느냐. --채근담

순수한 시는 이해되기도 전에 전달된다. --엘리엇(T. S. Eliot)

청년이여, 네 젊음을 즐거워 하며 네 청년의 날은 마음으로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이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을 알라.
--성경 (전도서 11:9)

삶은 경험의 묶음들이며, 각각의 경험은 우리를 한층 위대하게 한다. --헨리 포드(H. Ford)

언론은 급박해진 문학.--매튜 아놀드(M. Arnold)

나는 국수주의자가 되기에는 너무 내 나라를 사랑한다.
--카뮈(A. Camus)

아무런 영양분 없이도 계속 자라는 유일한 것이 인간의 교만.
-- 룸스텐(M. Lumsten)

경험이란 모든 이들이 그들의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다.
--오스카 와일드(O. wilde)<원더미어부인의 부채>

세상에 유일한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 --마사 그레이엄(M. Graham)

자기애(自己愛): 평생의 로맨스 --오스카 와일드(O. Wilde)

남자가 해야 하는 경험 중에는 도덕적이기 불가능한 일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와인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그것만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의 전부이다. --예이츠(W. Yeats)

오라, 삶이여! 나는 나아간다. 경험과 현실을 백만 번째로 맞이하고, 내 영혼의 노(爐)에 내 동족의 존재하지 않는 양심을 주형하기 위하여……--제임스 조이스(J. Joyce)<젊은 예술가의 초상>

나는 존재하는 일체는 아니다.
나는 허무와 싸우는 생명이다.
나는 허무는 아니다.
나는 허무 속에 타오르는 불이다.
나는 영원한 싸움이다.
전투를 창공에서 내려다 보는 영원한 운명이란 없다.
나는 영원히 싸우는 자유로운 의지다. -- 로망 롤랑(R. Rolland)

프레지던트(President)라 함은 워싱턴에 있는 일개 관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버드대학의 총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올리버 웬델 홈스(O. W. Holmes)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이데거(C. Heideger)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V. Woolf)

고뇌는 의식의 유일한 증거 --도스토예프스키(F. Dostoevski)

젊은 영혼을 위한 고뇌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오스카 와일드(O. Wilde)

누군가 나에게 알릴 수 있는 사람 있는가.
어디로 내 목숨 더듬어가는지를.
나는 진실로 태풍 속에 떠돌며
연못을 진실로 태풍 속에 떠돌며
연못을 집으로 하는 물결은 아닐는지.
목은 또 창백하게 살얼음 끼는
이른 봄의 저 벚꽃은 아닐는지. --릴케(R. M. Rilke) <구시집>

오늘 생명의 한 조각을 잉크병 안에 떨어뜨리고 있다.
--톨스토이(L. Tolstoy)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그렇게 믿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는 과실의 하나이다. --쇼펜하우어(A. Schopen hauer)

생은 고(苦) --석가모니/실러(F. uon Schiller)

抽刀斷水水更流 擧杯鎖愁愁更積 (추도단수수갱류 거배쇄수수갱적)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지우려던 시름은 술잔을 들어도 쌓여만 가누나. --이백(李白)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어떠한 고난과 장애와 위험, 그리고 압력이 있더라도 그것이야 말로 모든 인간도덕의 기본인 것이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용기의 윤곽>

제군들이야말로 역사의 가장 드문 한 시기, 즉 우리 주위를 둘러싼 낡은 질서가 괴멸되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시기를 맞이하는 세대이다. 제군들이 이 투쟁과 고난으로부터 물러선다면 그것은 자네들에게 주어진 믿음을 배반하는 일인 것이다.
--로버트 케네디(R. Kennedy)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류가 놓여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아마도 그의 그림자가 나타날 동굴은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할 것이다.
--니체(F. von Nietzsche)

생명이 없는 예술은 불상한 것. --헨리 제임스(H. james)

뉴잉글랜드의 겨울은 청교도주의보다 더 심각한 문제.
--조셉 크러치(J. Krutch)

절망으로부터 도망칠 유일한 피난처는 자아를 세상에 내동댕이치는 일.--톨스토이(L. Tolstoy)

저 친절한 밤의 속으로 부드럽게 들어가지 말라.
일어서라, 일어서라, 빛의 사그라짐에 맞서.
--딜런 토머스(D. Thomas) <저 친절한 밤의 속으로>

인간은 모험을 통해서만 스스로에 대해 깨닫고 발견할 수 있다.
--지드(A. Gide)

태양처럼 의지함이 없이 홀로 사귀고 홀로 빛내며 뜻없이 소박해 절대적 섭리를 완수하는.--에밀리 디킨슨(E. Dickinson)

나는 바다를 앞에 두고, 혹은 바다 위에서 죽고 싶다. 그리하여 죽고 나면 부표(浮漂) 속에 묻히고 싶다. --모네(C. Monet)

나의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위해 진다.
--로버트 브라우닝(R. Browning)

창의력이란 약속의 땅을 되찾기 위한 성전(聖戰)
--
막스 에른스트(M. Ernst)

발작적이지 않은 미는 더 이상 미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브르통(A. Breton)<나디아>

싸우다가 죽자. --마오쩌둥
생각하다 죽자. --루쉰

진정한 용기는 죽음이 아닌 삶.--알피에리(V. Alfieri) <오레스트>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칸트(E. Kant)

한 인간이 이상을 위해 일어설 때 마다, 혹은 타인의 운명을 향상시키기 위해 행동할 때 마다, 혹은 불의에 맞서 투쟁할 때마다 그는 아주 자그마한 희망의 물결을 일으킨다. 그리고 수백만이나 되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파생된 서로를 가로지르며, 도전하며, 그 물결들은 가장 강력한 탄압과 저항의 벽마저 허물어 내릴 수 있는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로버트 케네데(R. Kennedy)

고독처럼 정겨운 벗은 없다. --소로(H. Thoreau)

행복을 추적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헤세(H. Hesse) <밤의 위안>

행복은 곧 마음의 평화. --키케로

그 시절, 나의 말은 노래였고 나의 걸음걸이는 춤추고 있었다. 하나의 리듬이 나의 사상을 낳고 나의 존재를 다스렸다. 나는 젊었던 것이다. -- 앙드레 지드(A. Gide) <일기>

나를 아는 모든 이여
내가 아는 모든 이여
혹은 미지의 사람이여
만나고 싶다.
온갖 허위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그대의 속내에
보름밤 쥐불처럼 호기심 불타는 것은
이 폭력과 정신병의 세상에
희망을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 최두석

나는 나의 조국을 사랑함과 동시에 정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카뮈(A. Camus)

불행한 이들을 동정하는 것이 인간이다.
-- 보카치오(G. Bocaccio) <데카메론>

자유로운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돕지 못한다면 부유한 소수마저 구할 수 없을 것이다.--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세상에서 지극히 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자도 백성이지만, 세상에서 무겁기가 높은 산과 같은 자도 백성이다.
-- 정약용(丁若鏞) <목민심서(牧民心書)>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려는 것만큼 실행하기 어렵고, 성공하기 힘들고, 다루기 위험한 것은 없다. --마키아벨리(N. Machiavelli)

신의 것도, 야수의 것도 아닌 오직 인간의 의무인 진보.
--브라우닝(E. Browning)

바람도, 조류도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위험하고 어두운 바다의 항로 또한 항상 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닻을 올렸으며 수평선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조류를 바꾸기 위하여>

친구는 제2의 자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그리고 얼마나 여러 번 나는
밤에 잠을 깨었던가.
밝은 달은
침상과 의자 위에 빛을 던지고
나는 바깥 골짜기를 바라본다.
꿈속에 서 있는 것은 너의 집.
나는 다시금 더 깊은 꿈에 젖어 드나니.
--한스 카로사<그리고 얼마나 여러 번>

완벽한 조화, 그 진실한 아름다움. --로댕(G. Rodin)

삶은 지나치게 짧다. --니체(F. von Nietzsche)

아침 하늘을 펴는 찬란한 날개이게 하소서.
구슬 굴리는 찬란한 목소리이게 하소서.
눈바닥을 싯어대는 입성이게 하소서.
아, 온통 물을 차고 솟구치는 그것이게 하소서. --박재삼.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
-- 니체(F. von Nietzsche)

성실에는 지나침이란 있을 수 없다. 단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해야 자유로워진다.--프로스트(R. Frost)

2기통의 엔진으로 440마력을 내는 것이 인생. --밀러(H. Miller)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는 날 유럽은 전율할 것.
--나폴레옹(B. Napoleon)

정의가 유발하는 혼란이냐, 아니면 부정이 야기하는 질서냐.
--괴테(J. von Goethe)

인간이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실은 아버지의 죽음이 아닌 유산의 상실이다.--마키아벨리(N. Machiavelli)

龍豈池中物 乘電欲上天(용기지중물 승전욕상천)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랴,
번개를 타고 하늘로 오르려 한다. -- 삼국지(三國志)

품위 있고 사려 깊은 기념식에…… 그날의 검정은 극적이고 명시하기 힘든 것이었다. 케임브리지는 항상 영령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날 신성한 눈은 연도별로 공터를 지나는 동문들의 행진 속에 융화된 영의 무리를 보았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반열에 선……
--랄프 에머슨(R. Emerson)

미국은 모든 것이 쉴 틈 없이 움직이고, 모든 변화가 발전을 보이는 경이로운 땅이다. 이곳 에서는 어떤 자연적인 장애도 인간의 노력을 굴복시킬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이뤄지지 않은 일이란 아직 시도하지 않은 일일 뿐 이다.
--토크빌(A. de Tocqueville)

미국은 그저 거대한 실수 --프로이트(S. Freud)

90%의 역량을 지닌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90%를 이루고 있다면 미국은 100%의 역량을 지닌 10% 지도 계층과 50%의 역량도 채 갖지 못한 90%의 일반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컬럼비아 대학의 동양학자

아메리칸 드림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경우 고작 물질적인 풍족을 향한 꿈이 아니던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때로 미국이 이 세계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실패라고 생각한다.--오닐(E. O’Nell)

거인의 힘을 거인처럼 사용하는 것은 비극적인 일.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교육의 목적은 젊은이로 하여금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것.
--에리히 프롬(E. Fromm)

두 문화가 맞부딪치는 곳에 진정한 고난이 존재한다.
--헤세(H. Hesse)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그루 참나무에
나는 화살을 찾았네, 아직 꺽이지 않은 채로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네.
--헨리 롱펠로(H. longfellow)

나의 내일을 믿어주는 용기로 내 삶을 키워준 많은 사람들, 오래 살아갈수록 더 아름다워진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 Wright)

진보하지 않는 모든 것은 퇴보한다. --기번(E. Gibbon)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 파스칼(B. Pascal)

미래를 사랑하는 마음은 현재 최선을 다하는 마음. -카뮈(A. Camus)

내가 받은 축복을 동족의 삶을 밝히는데 얼마나 풍족하게 사용했느냐에 의해 역사는 나를 평가할 것이다. -로버트 케네디(R. Kennedy)

어제를 보았고, 오늘을 사랑하기에 내일 또한 두렵지 않다.
--윌리엄 화이트(W. White)

변화의 가장 큰 적은 불안정한 현실에 대한 공포.
--피터 번스타인(P. Bernstein) <Capital Ideas>

初學三年 天下無敵 再修三年 寸步難進
(초학삼년 천하무적 재수삼년 촌보난진)
3년을 배우면 세상에 적이 없고,
3년을 더 배우면 반걸음 떼기가 힘들다.

* 이번에는 내가 손으로 직접 친 것이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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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수재’ 홍정욱
미국 국적 포기하고
입국해 언론사 인수에 나선 배경과 요즘 생활
본지 독점 인터뷰


1993년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현대판 왕자’로
관심을 모았던 홍정욱 씨가 돌아왔다. 최고의 학벌과
준수한 외모, 배우 남궁원의 아들 등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던 그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청년에서
M&A 전문가로 변신했다. 특히 그의 곁에는
명문가의 딸로 주목을 받았던 아내 손정희 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세 살 된 딸이 있다.
이제 사업가로, 가장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홍정욱 씨를 만났다.
●취재/정연진 기자 ●사진/Sa Vie 정보자료팀

현대판 백마를 타고 온 왕자’ 사람들은 홍정욱 씨를 이렇게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홍 사장은 1993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7막 7장≫이 출간되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잘생긴 외모와 최고의 학벌, 여기에 원로 배우 남궁원의 아들이라는 ‘후광’까지 더해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혼기가 찬 딸을 둔 어머니는 최고의 사윗감으로, 젊은 여성들은 1등 신랑감으로 여겼다.
홍씨는 1999년 1월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았다. 그가 신부로 맞이한 손정희 씨는 손원일 전 국방부장관의 친손녀이자 당시 맥슨전자 손명원 씨의 딸이다. 손씨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이고, 정몽준 의원은 그녀의 이모부가 된다.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돌아갔던 홍정욱 씨가 귀국함에 따라 다시 한 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가 국내로 돌아오면서 갖게 된 직함은 카리아 IKR 대표. 카리아는 M&A(기업 인수, 합병) 전문 회사로, 그의 전공을 살려 지난해 11월경에 설립됐다.
이 회사는 현재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이하 내외경제)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2일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홍 사장은 ≪내외경제≫ 인수 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사업가로 변신 후 첫 작품은 신문사 인수
“아직 실사 작업이 끝나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최종 결정이 나기 전에는 실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 게 M&A 시장의 불문율입니다. 오는 9월 24일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가 되면 제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리아는 지난해 12월부터 매각을 위해 공개 입찰이 진행되고 있는 ≪내외경제≫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실사에 들어가 최종 결정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카리아는 현재 ≪내외경제≫의 대주주인 대한종금과 인수 대금이나 시기 등 구체적인 인수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내외경제≫의 한 관계자는 “도장 찍을 일만 남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협상이란 게 계약이 확정된 서류를 주고받아야 끝나는 것 아니냐”며 여운을 남겼다.
≪내외경제≫는 (주)신동방이 최대 주주로 있으면서 보유 지분을 담보로 대한종금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신동방이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가고 대한종금마저 청산 절차를 밟자 M&A 시장의 매물로 나오게 되었다. 올해 초까지 ≪파이낸셜데일리≫의 조성효 사장이 우선 인수협상 대상자였으나, 매각 대금을 치르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었다. 이 시점에서 카리아의 홍씨가 새로운 인수 대상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홍씨의 인수에 대해 ≪내외경제≫ 내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신문사의 주인이 없어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인수한다니 기대가 크다”는 의견이다. 반면 ≪내외경제≫ 노조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협상자가 나타나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대주주가 된다는 것은 어딘지 미덥지 않다”고 말했다. ≪내외경제≫ 직원들의 의견은 엇갈리지만, 일단 새로운 대주주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로 모아지고 있다. ≪내외경제≫는 요즘 노사간의 갈등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귀국한 다음 한국 국적 취득, 병역 문제 해결
홍씨는 M&A 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매물 중에서 왜 언론사를 택했을까? 그의 한 측근은 “평소 언론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지분 인수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많다”고 언론사를 선택한 배경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자서전 ≪7막 7장≫에서 학창 시절 신문사 편집장 경력과 NBC 수습 기자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취재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출간과 함께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적 야망의 일단을 내비쳤다.
“한국에서는 정치에 대한 야망을 감추는 것이 관행인 걸로 압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포부를 숨기는 게 꼭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꿈과 야망이 있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삶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길 원했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의 학창 시절, 자신보다 앞서가는 친구가 있으면 이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집념과 야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어쨌든 나는 꿈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간다. 즉, 나는 내가 꾸는 꿈에 의해 존재한다. 스스로 남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지만, 남보다 뛰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야망이다.’
한때 그의 국적과 병역 문제가 논란이 됐었다. 두 문제는 총리서리 인준과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언론의 집중 취재 대상이 됐다. 홍 사장은 지난해 말 귀국하면서 국적과 병역 문제를 함께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리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들어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해 지금은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언론사 몇 군데서 문의 전화가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귀국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공익근무 요원으로 병역을 마쳤습니다. 언론의 표현대로라면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걸림돌이 될 만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겠어요? 사장님은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거기에 맞춰 한발 한발 목표를 향해 가는 스타일의 사업가입니다. 앞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일은 사전에 차단할 겁니다.”
홍씨는 지난해 11월 조용히 귀국해 카리아를 설립했다. 하지만 곧이어 군 복무 관계로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6개월 동안 공익 요원으로 근무하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4개월여밖에 되지 않는다. 회사 설립 당시 남궁원·양춘자 부부가 이사로 등재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내외경제≫ 인수 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아내의 내조가 최고” 애처가임을 자처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는 미국에서 인터넷 벤처 회사를 운영했다. ‘스트럭스아이콘’이란 이 회사는 건축 관련 프로젝트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분야를 담당했다. 그는 벤처 회사를 설립하기 전만 해도 뉴욕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에서 M&A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M&A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때 뉴욕의 뱅커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한계를 느꼈죠.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 분야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홍씨와 부모인 남궁원 부부는 자신의 모습이 흥미 위주로 다뤄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다른 연예인처럼 사생활까지 언론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제는 하버드대 졸업생이나 명문가와 혼인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사업가로 인정받길 원하고 있다. 그는 여느 사람처럼 자신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3년 동안 언론에 거의 나서지 않았어요. 특별히 뉴스가 될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다 할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또 이제 막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알려지는 게 싫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아주 특별한 사람처럼 보는데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즐거움을 느끼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에 있어서는 로맨틱한 남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아내 앞에 서면 경상도 사나이처럼 무뚝뚝한 편이다. 가끔 집에까지 일을 가져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고 투정을 받아줄 때도 있다. 마음은 로맨틱한 남편이고 싶지만, 행동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야 할지 몰라서 못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내와의 연애 때 첫 키스를 시도하려고 와인을 마셨는데, 기회를 잡지 못해 와인을 다섯 병까지 마시고는 잠이 들어버렸다. 짜릿한 첫 키스는 둘째치고 아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 정도로 취했다.
그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언제나 최고의 선물을 주려고 한다. 예를 들어 5백 달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싸구려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기보다 최고의 스카프를 건네준다. 그는 평소에 “아내는 저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는 물론이고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라고 말하면서 애처가임을 자랑(?)스럽게 밝혔다.


세 살 된 딸과 함께 행복한 나날 보내
홍씨는 결혼 당시 아내와의 만남을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운명적이었다고 표현했다.
두 사람은 7년 전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키워나갔다. 홍씨는 중국 북경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스탠포드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잠시 쉬고 있을 때였고 손씨는 컬럼비아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이게 바로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씨는 뛰어난 미적 감각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손씨의 여성적인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명문가에서 성장했으면서도 과시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손씨는 남편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과 세련된 매너, 그리고 다방면에 걸친 박식함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삶의 터전이 미국이었기 때문에 데이트는 곧 바다 건너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친 그는 스탠포드대학원에 들어갔고, 손정희 씨는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후 뉴욕에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나라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홍 사장이 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아내가 있는 뉴욕에 가 ‘견우와 직녀’의 데이트를 즐겼다.
홍정욱·손정희 커플은 서로에 이끌려 만난 지 3개월 만에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프러포즈를 한 홍씨는 아내 될 사람을 부모님에게 소개했고 결혼을 허락받았다. 손씨 집에서도 두 사람의 결합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년 만에 약혼을 했고 1999년 초 웨딩마치를 올렸다. 당시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언론은 외모나 학벌, 집안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두 사람의 결합을 ‘세기의 커플’인 것처럼 표현했다.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신혼여행도 미뤄둔 채 자신들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인 뉴욕으로 향했다. 그때 은행에서 근무했던 홍씨가 업무상 신혼여행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미국에 도착해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의 일에 빠져들었다. 남편은 은행일과 곧이은 사업에,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도자기 공부를 했다.
그러다 홍정욱·손정희 부부는 지난해 말 남편의 사업 관계로 귀국했다. 국내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의 주변은 많이 변해 있었다. 남편은 M&A 전문가로 사업에 뛰어들었고,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가 돼 있었다. 더 큰 변화는 둘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홍씨는 요즘 주목받는 사업가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행복에 푹 빠져 있다.

 

출처 : http://www.savie.co.kr/SITE/data/html_dir/2002/10/01/200210010019.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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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막7장’의 우상, 땅으로 내려오다- 홍정욱 인터뷰

 

케네디를 가슴속에 새기며 벤치마킹 해온 젊은이가 있다. 34세 청년 홍정욱.

그의 말대로라면 어린시절부터 그는 케네디의 발자취를 좇았다. 15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 케네디의 모교인 초우트 고교와 하바드대에서 수학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누구인가. 대학 졸업 당시 ‘7막 7장’이라는 책을 펴내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방송과 신문들은 깜짝 놀랐다. 왕년의 명배우 남궁원의 아들,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대 출신, 수려한 외모…. 언론이 열광할 수 있는 화제의 3박자를 갖추고 화려하게 한국에 첫인사를 한 그는 곧바로 명사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희망이 성공을 낳는다’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고, 세상의 어머니들에게는 조기 유학의 정당성을 부여해준 장본인이었다. 언론은 줄곧 그에게 ‘영국 왕자’의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환호에 부응했다.

그가 지난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7막7장’의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변호사 생활, 벤처 기업 운영, M&A 뱅커 등의 미국 이력을 덧붙인 그는 이번에는 최연소 언론사 대표를 선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비난과 의혹, 억측과 시샘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케네디가 언론재벌 허스트의 기자로 유럽을 누볐던 것처럼, 그의 행보가 정계 진출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미국 대신 한국을 택한 것을 두고는 “용의 꼬리가 되려하기 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려한다”는 비아냥에도 시달렸다.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그는 모든 질문에 대해 시종일관 모범 답변으로 일관해 왔다. 그는 왜 언론을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그만의 비전은 무엇일까? 이번에도 “두고보십시오. 잘 하겠습니다”라는 답변만 듣지 않는다면 절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국으로 컴백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여론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씨처럼 글로벌한 인재가 되길 바라는 사람도 많았는데요.

미국에서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부유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살면서 한번도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변호사, M&A 뱅커, 벤처 기업 등 다양한 경험이 마무리됐던 시점입니다. 더 이상 미국에 있을 이유가 없었죠. 실물경제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거쳤기 때문에 한국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재발간된 책의 내용이 너무 성공쪽에만 맞춰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리더가 아닌 월급쟁이로 살았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좌절과 깨달음은 어떤 것이었나요?

뱅커 생활은 일주일에 90시간 이상 일하는 강도 높은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숫자와 씨름하고 자료 정리하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적대적 인수 합병의 화려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죠. 3년 정도 M&A를 하던 차에 벤처 붐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인력이 모여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뒤도 안 보고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경영 모델이 다 이론적이었고 현실화 하는 데는 실패했죠. 다른 회사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경영은 달랐고, 인터넷 버블이 계속 갈 줄 알았는데 금방 꺼졌죠. 최고의 인재들이 최대의 투자를 받는다는 자신감에 편승했지만 실패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경영에 성공해본 적이 없어 신뢰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자서전 발간이나 언론사 인수 등을 두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미다스의 손이 아닙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할 뿐이죠. 너무 큰 옷을 입지 않았나하는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제 스스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나를 믿고 맡기려는 사람이 있었고 이때를 놓치면 후회할 꺼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큰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아니에요.


병역을 6개월만에 해결하신 것도 그렇고,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기득권에 대해 한국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유학을 간 것이 기득권이라면 할말은 없습니다. 책 발간으로 누린 유명세의 이윤도 인정하는 바이고요. 35세까지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지만, 영구 정착하기로 결정한 이상 영주권을 버렸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끝도 없지요. 군 복무라는 괴로운 문제가 운좋게 6개월로 끝났고요. 짧은 시간이라 가기로 결정했던 거고,



그럼 2년, 3년 복무를 해야 했다면 재고 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까?

심각하게 생각했겠지만 결론은 군대에 갔을 것 같은데요.

꼼꼼하고 준비성과 책임감이 강한 본인의 성격을 고려하면 썩 바람직한 선택은 아닌거 같습니다.

35살까지 미국에 살면 면제가 된다는 조항이 있었죠. 그러나 저로선 꼭 그때 들어왔어야 했습니다.

-신문의 정치 과잉 시장 경제가 치유해야

경영자로서 굳이 언론사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론사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이념이나 신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회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언론사가 가지는 복합적인 영향력이 있죠.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한 포석은 아닙니다. 신문사도 지식 서비스업으로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저에게는 매력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정치가로서의 꿈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는 그의 비전을 엿보기 위한 우회적인 질문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이다. ‘언론사 경영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식의 기자 채용 구술시험이라면 백점을 맞고도 남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세련된 매너를 보여준 그의 언변은 매우 모범적이고 정갈하여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뒤집어 보면,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계산하는 듯한 그의 대화 방식은 ‘가식적이다’라는 오해를 살만도 했다..


최대한 자생적으로 수익을 내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언론은 돈 많은 사람이 영향력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대주고, 기자들이 본업 외에 광고를 요구하거나 촌지를 받거나 하는 잘못된 관행이 계속돼 왔습니다. 언론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깨져야 합니다. 이익을 내는 언론사는 살아남고 기자 월급도 못 주고, 부채 상환을 미루며 버티는 곳은 퇴출돼야 합니다. 신문이 국내에서 정치력을 확대하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군소 신문들을 인수 합병하고, 케이블 TV, 인터넷 매체로 진출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를 대표하는 미디어 그룹이 돼야 합니다.

회사 경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춘 언론사? 수익을 내고 동북아로 진출하는 대표 언론사? 그의 비전은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여전히 수익 이외의 그가 언론사를 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목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더구나 언론이 시장에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순리에 맞고 합리적인 것 같긴 하지만 우리 나라 언론 환경을 비춰보면 굉장히 걱정스러운 주장이기도 하다. 시장 구조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독과점 언론과 마이너로 대변되는 독립 언론들로 대치되고 있고, ‘시장 경제’는 보수 언론이 독과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로 이용되는 상황에서 그의 견해는 ‘언론은 공기다’는 개념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목적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미디어, 또 하나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탄생시키는 것일 뿐인가?


시장 경제가 보수의 논리로 쓰였던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야 말로 마이너 군소 특화 매체입니다. 우리 나라 신문의 정치 과잉도 결국 시장이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의 색깔은 이념이 아닙니다. 대중화, 기업화, 국제화, 전문화이죠, 굳이 우리 나라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중도 보수라고 할 수 있겠죠.

경영자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그의 생각을 묻는 인터뷰는 인터뷰 시간의 절반을 넘어갈정도로 길어졌다. 그는 허심탄회하게 ‘안티조선’에 대한 생각부터 조중동에 대한 평가, 공중파 방송의 권력, 현 정부의 언론개혁까지 우리나라의 언론계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지만, 자신이 공적으로 그런 사안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며 ‘오프더 레코드’를 요청했다. 지극히 신중한 말을 아끼고 가리는 그의 모습은 청년답지 않은 ‘소심함’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많은 구설수에 시달렸던 그의 성장기를 비춰볼 때 그리고 수백명을 대표하는 리더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는 불가피한, 필수적인 덕목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끝없는 의혹들, 그러나 나는 억울하다.

헤럴드경제 제호변경, 대대적 구조조정 단행, 7막 7장 재발간과 회사 광고 출연 등 자사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CEO 마케팅’을 이용하고 개혁에 팔을 걷어부쳤던 지난 일년은 가장 왕성한 의욕을 보이며 열심히 살았던 한해였던 동시에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른 기간이기도 했다. 구조조정 기간 81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고, 그 와중에 노조와의 관계도 극도로 경색됐다. 그가 족벌경영, 책 재발간 등으로 언론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이 미디어오늘과 KBS 미디어포커스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노조에서 지적한 비난의 요점은 그의 부친과 장인, 누나가 이사직 등 요직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또 오랜기간 회사에서 일해온 간부들이 배제되고 외부에서 온 자신의 측근들로 요직을 채웠다는 것도 비난의 한 축이다. 차분한 매너로 마치 대학 면접 시험을 보듯 신중한 모습을 보였던 그가 ‘족벌경영’이라는 대목에서는 목소리와 제스쳐가 커졌다. 엄연히 인사권을 가진 회사의 경영인으로서, 당장 수익을 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입장에서 자신의 ‘합법적 권리에 대한 태클’을 그는 참지 못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단적으로 상황에 안 맞는 얘기입니다. 아버지와 장인은 경영에 일체 관여 하지 않습니다. 직함만 이사이고 고문이지, 급여도 없고 비서도 없습니다. 제 은행 역할, 소방수 역할, 한마디로 ‘119’입니다. 제 누이도 상징적으로 가족이 사장을 맡아야 한다고 해서, 그래야 투자 유치가 조금이라도 쉽다고 해서, 억지로 떠밀려서 간 겁니다. 그런 것을 족벌 경영이라고 끌어가는 것 자체가 이슈로 부딪치지 않고, 소모적 흠집내기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 걸 좋다고 받아쓰는 인터넷 매체와 방송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모든 정치가나 경영자가 그러하듯 저 또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하기 위해 제 편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그 일로 얻은 수확은 있습니다. 이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야말로 경영에만 신경 쓸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KBS가 아니라 KBS 할아버지가 와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요즘 방송과 신문의 전쟁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신문의 입장에서 방송의 타깃이 되신 거라는 말씀이군요.

사실 회사를 정상화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니, 조중동이 KBS와 싸우든 말든 관심사가 아닙니다.(웃음) 그러나 당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공영방송이 좀 중심축을 잡아줘야 한다고 보는데 노조의 입장만 부각시켜 저 개인을 공격했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책 재발간 때문에도 말이 많았습니다. 본인의 의사였나요?

(이런 해명이 혹여 자신의 잘난 척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면서도 그는 당당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절판한 책을 재발간 한 것은 정치인이 정치 안한다고 하고 다시 하는 거와 다름없이 거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재 창간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연재 약속을 했고 우리 회사 기자들이 부수 창출을 위해 제시한 아이디어입니다. 기본 상식을 갖고 있다면 발행인의 글을 회사 지면에 싣는다는 것은 무모하고 욕먹을 것이 뻔한데 그러나 젊은 층을 공략하고 화제를 모으는데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었죠. 비난이 있을 때 끌어 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기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냥 있었습니다. 제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책을 낸다 안 낸다 우스워지는 상황논리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홍사장이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 타 언론사와 차별화되는 전략은 무엇이냐에 대한 의구심도 큰데요.

지금도 어느 곳보다 더 투자했다고 자부합니다. 연봉제 임금 격차를 해소했고 사내 컴퓨터 시스템과 기자들 노트북도 최신형으로 교체해주었고요. 투자자는 경영이 정상화되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귀족 이미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홍정욱의 인터뷰 기사에 빠지지 않는 대목은 그의 외모에 대한 찬양이다. 최고 학벌, 유복한 집안 환경, 명문가 출신의 아내, 올곧은 성품과 수려한 외모까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귀족’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그는 단지 유명 배우의 아들일 뿐이다. 가기업의 종손도 아니고 번드르한 명문가의 자제도 아닌. 물론 우유 나르고 신문 배달하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유학을 갈 수 있었던 환경은 축복임에 분명하지만, 자신을 ‘귀족’으로 보는 세상의 시샘과 편견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단다.


사람들이 연예인은 보통 사람으로 보면서도 저희 아버지만은 유독 부자로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귀족은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가 열심히 분 발라 번 돈으로 유학 보내셨습니다. 회사 인수도 저와 아버지의 돈 그리고 대출받은 자금으로 했고요. 처가집만해도 장인의 부친께서 장관을 지내셨지만 오랜 기간 월급쟁이 생활을 하셨던 분이고 이모부가 재벌(정몽준 의원)이라고 해도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변에 재벌이나 명문가가 있는 사람이면 더 잘 알 꺼에요. 그런 사람들이 더 개인적이고 절대 친인척에게 돈을 주거나 불필요한 도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오해와 편견일 수 있지만 본인이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고 보는데요.

물론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습니다. 인정해요. 지 잘났다는 책 쓰고 떠들고 다녔으니까요.(웃음)


책의 문구가 도발적이라는 느낌입니다. 33세의 나이에 “이제 검증의 삶이 시작됐다”고 하니까, 한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서는 “건방진 것 아니냐”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은데

(건방지다, 거만하다는 투의 공격적 질문에는 정말 답답하다는 듯 정색을 한다. 겸손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조건적인 반대와 비판은 참을 수 없다는 분명한 선을 긋는 듯 하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제 관점에서는 이상합니다. 내가 나와서 검증을 받겠다는 게 아니고, 사주로서 회사를 맡은 이상, 경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버님이 연예인, 영화인인데 영화인 2세를 생각해보지는 않았나요?

아버지가 철저히 그런 환경에서 저를 보호하셨던 측면이 있습니다. 집안에 한번도 연예인이 초대된 적이 없고, 자식을 세트에 데려간다거나 공연장에 간 적도 없으셨죠. 지금은 대중문화인이 오피니언 리더지만, 그때는 사회적 인식도 요즘 같지 않았던 시절이고, 아버지께서 학구열이 높으셨던 분이에요. 배우의 길을 당신 스스로 선택했던 것보다는 끌려 들어간 측면이 있어선지, 사실 아버지가 배우라는 것을 크게 인지해 본 적도 없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통령의 꿈을 아들들이 실현시켜 주길 바랬던 케네디의 부친처럼 오늘의 홍정욱을 만든 것은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뒷받침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타고난 ‘귀족’은 아니지만 ‘노블리스’를 얻고자 하는 본인의 성실함과 근성도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모범생 타입의 이 남자는 현재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하는 듯했다. 가진 것이 많은 자는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에게서 패기있고 진취적인 정치인 케네디의 모습이 겹쳐졌지만, 현재의 그는 열정과 자신감을 당분간 숨기기로 작정한 듯 했다.

2시간의 인터뷰가 끝난 뒤 헤럴드미디어의 언론 담당자는 인터뷰 도중에도 4개의 방송,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전했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일은 쉽지만 그의 말대로 ‘검증’하는 일은 어렵다. 34세의 언론사 대표에게 놓여진 수익 창출의 과제와 ‘정도 언론’으로서의 발걸음은 19년 전 15세 동양인 소년이 화장실에서 벌였던 영어와의 사투보다 훨씬 더 힘겹고 고난한 도전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만약 그의 신념과 집요한 열정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면 어떤 그림이 될 것인가?

보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요구되는 언론사 사주로서 그가 펼칠 미래와 그에 대한 평가는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을 넘는, 보다 더 높은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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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는 차갑게 하체는 뜨겁게 해야 한다는 이론에 따라 뜨거운 물에 들어 갈때 명치(혹은 배꼽)아래만 뜨거운 물에 담그어서 병을 없애고 건강을 지키는 목욕법이죠.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을 덥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의사를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초 네델란드의 명의 불하페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 청나라때 명의 "당용천"은 혈중론이라는 의술책에서 어혈은 우리 몸 안에서 정상적으로 순환되지 않는 모든 피라고 말하고 정상적인 혈액순환이 건강한 상태라 했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응용해 만병을 고치는 목욕법이 반신욕이다. 반신욕은 몸의 절반, 즉 명치 끝 아래부분을 따뜻한 물에 담그는 목욕법을 말하는 것이다.

우선 체온보다 높은 37°C - 39°C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욕조에 준비한다. 물에 들어갈때는 먼저 발에, 하체에 더운물을 끼얹는다. 상반신과 하반신의 체온차이를 어느정도 바로 잡기 위해서다. 추운날에는 욕실안을 더운 김으로 충분히 따뜻하게 해 놓는다.
욕조에 들어가서는 가슴(명치부근) 아래까지만 물에 담근다. 명치 아래쪽이면 어디까지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명치 윗쪽을 오랫동안 뜨거운물에 담그지 않는다는 것. 어깨나 팔 부분도 물속에 넣지 말 것. 너무 춥다고 느낄때는 어깨에 타올을 두르거나 20-30초 가량 어깨까지 물에 담가도 된다.

약 10-20분간 꾹 참으면 몸속부터 따뜻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나 팔, 얼굴, 가슴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며, 전신욕을 할때보다 몸이 더워져 욕실밖에 나와도 한기를 느끼지 아니한다. 입욕을 하기전에 생수를 한컵정도 먹고하면 더욱 좋으며, 욕조에서 나와 몸을 자연적으로 식힌 뒤 다시 욕조에 들어가는 반복욕도 체력에 따라 온도에 따라 각자에 몸에 맞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효과를 높히려면 반신욕을 마친후 양말을 신고 하반신에 속옷 또는 타올을 덮어 보온을 해준다. 반신욕도 체력소모가 많아 몸이 약한 사람은 하체를 발끝까지 보온하고 편안히 누워 쉬기를 바란다. 또한 상반신은 되도록 얇게 옷을 입는 것이 좋으며, 입욕 후 에어콘이나 선풍기 바람을 쐬는것은 반신욕의 효과를 감해주니 주의 바람.

반신욕"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모든 병의 근원은 상반신 체온이 높아지고 하반신 체온이 낮아지는 상하차, 즉 "냉" 상태에 있다고 한다. 반신욕은 상반신을 차게 하고 하반신은 덥게 하여 혈액순환 장애를 초래하는 이 냉을 없앤다는 것. 다시 말해 두한족열 상태일때 수축된 혈관이 열리면서 피가 부드럽게 막힘없이 흐르게 되어 혈압도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땀을 통해 몸속에 있는 노폐물과 쌓여 있는 독소가 빠져나가 몸 전체 상태가 향상 된다고 한다.

반신욕"의 저자인 이비인후과 의사 신도 요시하루는 전신을 뜨겁게 달구는 사우나나, 뜨거운 물에 온 몸을 푹 담그는 전신욕은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인절미, 고구마를 센불에 구우면 겉만 까맣게 타고 속은 딱딱한 채로 있는 것처럼 물이 너무 뜨거우면, 피부 표면을 혈액이 방호벽을 만들어 오히려 몸속으로 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는것. 특히 사우나는 뜨거운 공기를 위로 올라가게 하기 때문에 상반신이 뜨겁고 하체가 차가운 냉상태를 더욱 심하게 한다고 한다.

경희대 의대 재활의학과 이종수 교수도 "전신욕을 하지 않고 신체의 일부만 탕에 담가도 충분히 혈액순환이 활발해질 수 있다" 면서 상체의 열을 하체로 내려가게해 인체순환을 돕는것은 경락 메카니즘의 기본"이라고 했다. 이교수는 또 "구체적으로 반신욕에 대해 나와있지는 않지만, 옛 문헌에도 냉욕과 온욕을 반복하거나 일정부위만 담가 체내 신진대사를 촉진한다고 나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반신욕"에서는 간장병, 당뇨병치료, 과지방을 배출, 피하지방을 줄인다.
혈압을 내린다는 체험사례와 아토피성 피부염, 현기증, 비만, 견비통, 관절통, 냉족, 발의 피로요통, 스트레스 등이 완치되는 방법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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