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수재’ 홍정욱
미국 국적 포기하고
입국해 언론사 인수에 나선 배경과 요즘 생활
본지 독점 인터뷰


1993년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현대판 왕자’로
관심을 모았던 홍정욱 씨가 돌아왔다. 최고의 학벌과
준수한 외모, 배우 남궁원의 아들 등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던 그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청년에서
M&A 전문가로 변신했다. 특히 그의 곁에는
명문가의 딸로 주목을 받았던 아내 손정희 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세 살 된 딸이 있다.
이제 사업가로, 가장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홍정욱 씨를 만났다.
●취재/정연진 기자 ●사진/Sa Vie 정보자료팀

현대판 백마를 타고 온 왕자’ 사람들은 홍정욱 씨를 이렇게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홍 사장은 1993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7막 7장≫이 출간되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잘생긴 외모와 최고의 학벌, 여기에 원로 배우 남궁원의 아들이라는 ‘후광’까지 더해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혼기가 찬 딸을 둔 어머니는 최고의 사윗감으로, 젊은 여성들은 1등 신랑감으로 여겼다.
홍씨는 1999년 1월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았다. 그가 신부로 맞이한 손정희 씨는 손원일 전 국방부장관의 친손녀이자 당시 맥슨전자 손명원 씨의 딸이다. 손씨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이고, 정몽준 의원은 그녀의 이모부가 된다.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돌아갔던 홍정욱 씨가 귀국함에 따라 다시 한 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가 국내로 돌아오면서 갖게 된 직함은 카리아 IKR 대표. 카리아는 M&A(기업 인수, 합병) 전문 회사로, 그의 전공을 살려 지난해 11월경에 설립됐다.
이 회사는 현재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이하 내외경제)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2일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홍 사장은 ≪내외경제≫ 인수 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사업가로 변신 후 첫 작품은 신문사 인수
“아직 실사 작업이 끝나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최종 결정이 나기 전에는 실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 게 M&A 시장의 불문율입니다. 오는 9월 24일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가 되면 제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리아는 지난해 12월부터 매각을 위해 공개 입찰이 진행되고 있는 ≪내외경제≫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실사에 들어가 최종 결정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카리아는 현재 ≪내외경제≫의 대주주인 대한종금과 인수 대금이나 시기 등 구체적인 인수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내외경제≫의 한 관계자는 “도장 찍을 일만 남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협상이란 게 계약이 확정된 서류를 주고받아야 끝나는 것 아니냐”며 여운을 남겼다.
≪내외경제≫는 (주)신동방이 최대 주주로 있으면서 보유 지분을 담보로 대한종금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신동방이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가고 대한종금마저 청산 절차를 밟자 M&A 시장의 매물로 나오게 되었다. 올해 초까지 ≪파이낸셜데일리≫의 조성효 사장이 우선 인수협상 대상자였으나, 매각 대금을 치르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었다. 이 시점에서 카리아의 홍씨가 새로운 인수 대상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홍씨의 인수에 대해 ≪내외경제≫ 내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신문사의 주인이 없어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인수한다니 기대가 크다”는 의견이다. 반면 ≪내외경제≫ 노조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협상자가 나타나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대주주가 된다는 것은 어딘지 미덥지 않다”고 말했다. ≪내외경제≫ 직원들의 의견은 엇갈리지만, 일단 새로운 대주주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로 모아지고 있다. ≪내외경제≫는 요즘 노사간의 갈등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귀국한 다음 한국 국적 취득, 병역 문제 해결
홍씨는 M&A 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매물 중에서 왜 언론사를 택했을까? 그의 한 측근은 “평소 언론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지분 인수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많다”고 언론사를 선택한 배경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자서전 ≪7막 7장≫에서 학창 시절 신문사 편집장 경력과 NBC 수습 기자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취재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출간과 함께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적 야망의 일단을 내비쳤다.
“한국에서는 정치에 대한 야망을 감추는 것이 관행인 걸로 압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포부를 숨기는 게 꼭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꿈과 야망이 있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삶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길 원했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의 학창 시절, 자신보다 앞서가는 친구가 있으면 이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집념과 야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어쨌든 나는 꿈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간다. 즉, 나는 내가 꾸는 꿈에 의해 존재한다. 스스로 남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지만, 남보다 뛰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야망이다.’
한때 그의 국적과 병역 문제가 논란이 됐었다. 두 문제는 총리서리 인준과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언론의 집중 취재 대상이 됐다. 홍 사장은 지난해 말 귀국하면서 국적과 병역 문제를 함께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리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들어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해 지금은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언론사 몇 군데서 문의 전화가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귀국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공익근무 요원으로 병역을 마쳤습니다. 언론의 표현대로라면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걸림돌이 될 만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겠어요? 사장님은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거기에 맞춰 한발 한발 목표를 향해 가는 스타일의 사업가입니다. 앞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일은 사전에 차단할 겁니다.”
홍씨는 지난해 11월 조용히 귀국해 카리아를 설립했다. 하지만 곧이어 군 복무 관계로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6개월 동안 공익 요원으로 근무하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4개월여밖에 되지 않는다. 회사 설립 당시 남궁원·양춘자 부부가 이사로 등재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내외경제≫ 인수 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아내의 내조가 최고” 애처가임을 자처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는 미국에서 인터넷 벤처 회사를 운영했다. ‘스트럭스아이콘’이란 이 회사는 건축 관련 프로젝트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분야를 담당했다. 그는 벤처 회사를 설립하기 전만 해도 뉴욕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에서 M&A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M&A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때 뉴욕의 뱅커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한계를 느꼈죠.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 분야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홍씨와 부모인 남궁원 부부는 자신의 모습이 흥미 위주로 다뤄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다른 연예인처럼 사생활까지 언론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제는 하버드대 졸업생이나 명문가와 혼인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사업가로 인정받길 원하고 있다. 그는 여느 사람처럼 자신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3년 동안 언론에 거의 나서지 않았어요. 특별히 뉴스가 될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다 할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또 이제 막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알려지는 게 싫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아주 특별한 사람처럼 보는데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즐거움을 느끼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에 있어서는 로맨틱한 남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아내 앞에 서면 경상도 사나이처럼 무뚝뚝한 편이다. 가끔 집에까지 일을 가져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고 투정을 받아줄 때도 있다. 마음은 로맨틱한 남편이고 싶지만, 행동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야 할지 몰라서 못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내와의 연애 때 첫 키스를 시도하려고 와인을 마셨는데, 기회를 잡지 못해 와인을 다섯 병까지 마시고는 잠이 들어버렸다. 짜릿한 첫 키스는 둘째치고 아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 정도로 취했다.
그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언제나 최고의 선물을 주려고 한다. 예를 들어 5백 달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싸구려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기보다 최고의 스카프를 건네준다. 그는 평소에 “아내는 저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는 물론이고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라고 말하면서 애처가임을 자랑(?)스럽게 밝혔다.


세 살 된 딸과 함께 행복한 나날 보내
홍씨는 결혼 당시 아내와의 만남을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운명적이었다고 표현했다.
두 사람은 7년 전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키워나갔다. 홍씨는 중국 북경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스탠포드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잠시 쉬고 있을 때였고 손씨는 컬럼비아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이게 바로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씨는 뛰어난 미적 감각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손씨의 여성적인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명문가에서 성장했으면서도 과시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손씨는 남편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과 세련된 매너, 그리고 다방면에 걸친 박식함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삶의 터전이 미국이었기 때문에 데이트는 곧 바다 건너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친 그는 스탠포드대학원에 들어갔고, 손정희 씨는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후 뉴욕에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나라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홍 사장이 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아내가 있는 뉴욕에 가 ‘견우와 직녀’의 데이트를 즐겼다.
홍정욱·손정희 커플은 서로에 이끌려 만난 지 3개월 만에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프러포즈를 한 홍씨는 아내 될 사람을 부모님에게 소개했고 결혼을 허락받았다. 손씨 집에서도 두 사람의 결합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년 만에 약혼을 했고 1999년 초 웨딩마치를 올렸다. 당시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언론은 외모나 학벌, 집안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두 사람의 결합을 ‘세기의 커플’인 것처럼 표현했다.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신혼여행도 미뤄둔 채 자신들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인 뉴욕으로 향했다. 그때 은행에서 근무했던 홍씨가 업무상 신혼여행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미국에 도착해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의 일에 빠져들었다. 남편은 은행일과 곧이은 사업에,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도자기 공부를 했다.
그러다 홍정욱·손정희 부부는 지난해 말 남편의 사업 관계로 귀국했다. 국내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의 주변은 많이 변해 있었다. 남편은 M&A 전문가로 사업에 뛰어들었고,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가 돼 있었다. 더 큰 변화는 둘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홍씨는 요즘 주목받는 사업가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행복에 푹 빠져 있다.

 

출처 : http://www.savie.co.kr/SITE/data/html_dir/2002/10/01/200210010019.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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