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티타는 고개를 떨구었다. 식탁 위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처럼 그녀의 운명 역시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때부터 티타와 식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식탁은 티타가 태어나면서부터 흘린 슬픈 눈물을 받아내며 그녀와 운명을 함께해야 했으며, 티타는 이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 티타가 다음 날 먹을 파이들을 천에 싸고 있는데 마마 엘레나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페드로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신부는 로사우라라는 얘기를 전하러 왔던 것이다.
그 얘기가 사실로 확인된 순간 티타는 순식간에 한겨울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싸늘하고 매서운 추위라 양 볼까지 그녀 앞에 놓여 있던 새빨간 사과처럼 꽁꽁 얼어붙어 시뻘게졌다. 온몸을 꽁꽁 얼어붙게 한 이 추위는 오랫동안 티타 곁을 EJ나지 않았다. 그 무엇도 추위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티타는 모두 생생하게 기억했다. 웅성거리는 소리, 음식 냄새, 새로 왁스를 칠한 마룻바닥 위를 사각거리며 스치던 자신의 새 드레스, 어깨 위로 느껴지던 페드로의 눈빛.... 그 눈빛! 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뜨겁고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을 때 티타는 달걀노른자로 만든 젤리를 쟁반에 담아 식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페드로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티타는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이 후끈 달아올랐다. 티타는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페드로의 눈길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의 대답이 절실해요. 사랑은 생각하는 게 아니예요. 느낌으로 오는 거지요. 나는 말이 없는 편이지만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당신은, 당신도 나를 사랑하나요?”
♡ 티타의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티타는 눈물이 마른 채로 계속 울었다. 마른 눈물은 양수 없이 출산할 때처럼 아프다는 말도 있다.
♡ 케이크 표면에 입힐 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 티타는 그때처럼 또 눈앞이 하얘질까 봐 두려웠다. 하얀 설탕조차도 두려웠다. 하얀색이 어린 시절의 하얀 풍경 속으로 그녀를 잡아끌고 들어가면서, 어떻게 손 쓸 수도 없이 한순간에 그녀를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5월이면 티타는 하얀 옷을 차려입고 성모 마리아께 하얀 꽃을 바치러 갔다. 그녀는 하얀 옷을 입고 나란히 줄 서 있는 계집아이들 사이를 지나 하얀 초와 하얀 꽃들이 가득한 제단까지 걸어갔다. 제단은 하얀 예배당의 창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희뿌연 빛으로 하얀 광채를 발했다. 티타는 성당에 들어서면서 언젠가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이곳에 들어올 거라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늘 꿈꾸어 왔었다. 티타는 이 기억뿐만 아니라 그녀를 아프게 하는 기억은 모두 지워야 했다. 언니의 웨딩 케이크에 입힐 크림을 끝내야 했다. 티타는 혼신을 다해 크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뭔가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헤르트루디스는 티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티타는 그곳에 없었다. 물론 티타의 몸은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멍하니 넋이 나가 있었다. 연금술 같은 묘한 작용이 일어나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 하나 속으로 스며들어 녹아내린 것 같았다. 티타는 그렇게 달아오른 체취를 풍기며 유감적이고 섹시하게 페드로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티타와 페드로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견한 듯했다. 그 안에서 티타는 발신자, 페드로는 수신자였으며, 불쌍한 헤르트루디스의 몸은 그들의 성적인 메시지가 지나가는 매개체였다.
♡ 그때 순간적으로 무슨 생각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티타는 몸을 일으켜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몸소 느껴보았기 때문에 티타는 불타는 눈길이 얼마나 강렬한지 잘 알았다.
그것은 태양까지도 녹일 정도로 강렬했다. 티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일 헤르트루디스가 별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틀림없이 그녀의 몸에 붙은 사랑의 불이 그 열기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은 채로 무한대의 우주를 지나서 그녀의 시선이 머물렀던 샛별에 다다랐을 것이다. 커다란 별들은 세계 곳곳에서 연인들이 밤마다 보내는 강렬한 시선을 한번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수백만 년을 지탱할 수 있었으리라. 만일 한 번이라도 받았더라면 그 시선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열기 때문에 벌써 수천 조각으로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별들은 사랑하는 연인의 시선을 받으면 그 즉시 돌려보냈다. 거울로 장난치듯 지구를 향해 빛을 반사했다. 그래서 밤마다 별들이 그렇게 반짝거렸던 것이다.
♡ 페드로의 눈길이 티타의 가슴에 머무를 때까지 두 사람은 황홀경에 빠진 채 서로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티타는 맷돌질을 멈추고는 페드로가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꼿꼿하게 세워서 자랑스럽게 가슴을 펼쳤다. 이 뜨거운 탐색전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영원히 바뀌었다. 옷을 뚫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나눈 후로는 모든 게 전과 같지 않았다.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페드로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서도 티타의 가슴을 순수한 소녀의 가슴에서 관능적인 여인의 가슴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 “그래서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강렬한 불길이 꺼질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는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입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답니다.”
♡ “물론 성냥을 하나씩 켜도록 주의해야 해요. 아주 강렬한 흥부을 느껴서 우리 몸 안에 있던 성냥들이 모두 한꺼번에 타오르면 강렬한 광채가 일면서 평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이 보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잊어버렸던 길과 연결된 찬란한 터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거고요. 그곳은 우리가 잃어버린 신성한 근본을 다시 찾으라고 손짓할 겁니다. 영혼은 축 늘어진 육체를 남겨둔 채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할 테고요.”
♡ 어떤 얘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누군가가 그 얘기를 진정으로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었다.
♡ 티타는 페드로의 곁에서 느꼈던 불안과 고통이 아니라, 존에게서 느끼는 이 평화와 안정감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햇살이 이슬 방울을 반짝이며 비추네
이슬 방울이 사라졌네
당신은 내 눈 안에서 빛나네
나는, 나는 살아가네......
♡ 삶은 그녀에게 모든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삶은 그녀에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그것도 몇 가지밖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싸움은 그녀 혼자서 해야만 하는 싸움이었으며, 티타에게 삶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