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나의 선생님>
★ 어느 책에서 읽은 이런 글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돈이 많고, 지위와 명예가 높은 사람이 아니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참 옳은 말이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행복한 추억 쌓기를 늦추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서로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이처럼 서로 알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을 때 보다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바로 그런 믿음들이 나를 지탱시켜준 원천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앞으로도 그런 믿음 속에서 보다 나은 가르침을 위해 애쓸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교육은 어쩌면 올바른 만남의 의미를 깨닫고 서로 알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왕이면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원한보다는 고마움과 그리움의 존재로 기억되는 것이 짧은 인생을 값지게 장식하는 일이 될테니까.
★ ‘너의 삶은 너를 박해해 온 사람들과 같지 않다. 너는 죽더라도 우리 역사와 우리가 올바로 평가를 해 줄 것이다. 너는 죽음으로써 너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이기는 것이다. 그들은 너의 육신을 죽일 수 있지만 네가 역사와 우리 앞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와 같이 가는 자에게 패배는 없다. 역사는 너와 같은 사람들이 반드시 승자로 부활한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않느나?’
★ 우리는 역경과 순탄한 경우를 마음대로 선택하여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슬기롭게 대처하며 역경ㅇ르 순조롭게 만들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또 좋은 환경의 유혹에 끌려 자기 자신이 타락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세는 항상 이러한 마음 자세와 최선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 치열한 생활과 그리고 인생을 깨달아 가면서 나는 주위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옳지 않은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인간의 길이, 환한 사람의 길과 교사의 길이 내 앞에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나는 어떻게 사느냐가 늘 중요했다. 내가 세상에 흔들리고 절망하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해도 나는 언제나 인간의 길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알려 주며 힘을 얻고 때론 울었다. 나는 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일들을 피했다. 늘 아이들에게 공명정대하고 싶었다.
★ 아이들과의 생활은 꼭 연애하는 일과 비슷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내게 서서히 다가오곤 했다. 학년 초 내 안중에도 없던 아이들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서서히 어떤 식으로든 접근을 시도하면, 그리고 그 접근이 진심이다 싶으면 아이들도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 나는 선생님이 좋다. 나는 지금 머리칼이 희어지고 있다. 내 처음 생각대로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열 두어살 먹은 아이들 앞에서 떠들고 공차고 싸우고 혼내고 혼나고 끝없이 내 인생을 배우고 고쳐가며 살 것이다.
★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가 느끼는 불안과 그 불안을 남에게 털어놓지 않으려는 조심성, 땅 위로 솟아오르려는 위대함에 대한 욕망과 고귀함에 대한 동경.
★ 교직은 신성하다는 전통적 관념은 이제 선생님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겁고 받기 벅찬 명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선생님들은 견뎌낼 수가 있다. 선생님을 학부모로부터 촌지나 긁어내는 부도덕한 사람들로 보는 사회의 편견은, 그렇지 않아도 허전함을 가눌 길 없는 선생님들의 텅 빈 가슴에 굵고 긴 대못을 박는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의 다정한 선물교환마저 촌지라는 이름으로 지탄받는다. 받지 않겠다는 선물과 돈을 억지로 떠맡기고는 자식 뒷바라지는 그것으로 다했다는 듯 선생님을 은근히 궁지로 모는 경우조차 있다.
★ 사회와 부모가 존경하지 않는 선생님을 아이들이 존경할 리가 없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곳에서 교육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 교육은 본래 가르치는 것이고 어떤 처벌도 그 교육적 효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교과목에 관련된 지식으로 말하면 오늘의 젊은 교사들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생님’으로서의 의젓한 태도는 오늘의 젊은 교사들이 크게 뒤떨어질 것이다. 오늘의 교사들에게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 같은 것을 느끼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그 사람의 몸가짐을 보고 사람을 평가했으나 요즈음은 옷차림이나 재산을 보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별로 신통치 않은 직업처럼 생각하는 풍조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자녀들을 귀중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교육을 맡은 선생님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뭔가 잘못된 현상이다.
이 잘못된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 함께 반성해야 할 것이며, ‘교사’라는 직업이 자랑스러운 직업으로서의 옛 모습을 다시 찾게 되도록 우리 모두가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은 훌륭하시다. 한 분 한 분 장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은 조건 없이 훌륭하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선생님들께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지식의 출중하심은 물론 그 이외의 모든 면에서도 훌륭하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세상에서 성인군자를 찾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네 세상사에서 선생님들이 모두 성인군자이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우리는 그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더 많은 훌륭하신 점들을 발견해 본받고 배우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우선 지식을 가르쳐 주신다. 선생님들은 그 점에서 먼저 고마우신 분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머리 숙여 감사드려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세대는 썩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지식은 돈주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곧 수심(獸心)이나 다름이 없다. 인심(人心)이라면 곧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 선생님들은 지식만을 전수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살의 훌륭한 방식, 타고난 재능과 적성, 아름다운 인간성과 세상사, 끝없는 의지와 노력을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우리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끝이 없어야 한다.
★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인격적으로 모두 훌륭하셔서가 아니다. 그분들의 그 어느 부분에는 반드시 훌륭하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제자는 선생님의 훌륭하신 점을 찾아 본 받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경하고 받드는 일이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 가르치는 사람은 한 학생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포부가 다른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한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로 다르게 얘기를 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하게 관심을 자극시켜야 한다. 과학자가 되라는 얘기에 감명 받아 과학자의 길을 밟으려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에 자극 받아 문학 수업에 들어설 학생도 있을 것이며, 달가스가 되라는 얘기에 고무되어 농촌 지도자가 될 학생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신(믿음이 가는 선생님), 망(바람직한 선생님), 애(정이 가는 선생님)
★ 학생들의 교육은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에 못지 않게 사회교육 또한 중요합니다. 매일같이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어른들의 파렴치한 범죄를 보면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학교 선생님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어른들 모두가 그들의 선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선생님ㅇ르 존경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우리 어른들의 몫입니다. 학부모들은 먼저 자신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서 아이들로 하여금 은연중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느끼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 젊은 부모나 교사들은 이해를 못 하겠지만, 나의 어린 학창시절에는 선생님들이 수신제가를 위해 채찍 교육도 하셨다. 요즈음 학부모들은 스승의 채찍을 체벌이나 폭행이라고 매도하교 규탄한다. 오늘의 교육자들이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늘의 학생들이 제자로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옛날의 부모들은 스승이 제자에게 드는 채찍을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학생들이 폭군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교사들은 섭섭해하지 않고, 스승으로서의 고귀한 책무라 생각하고 사랑의 채찍을 들었다.
어린 학창시절에 선생님들이 내게 주신 채찍의 아픔은 이미 잊었지만 매일 아침 회초리에 경계를 시키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 말씀이 “가르칠 교자는 효에 문을 합성한 것으로 원래 글월 문 변은 때린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즉 교는 채찍으로 효와 도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신기하게도 ‘자식이 귀여우면 매로 키워라’는 한국의 속담과 매질을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 영국의 속담은 일맥상통한다 교권과 스승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 제자들을 위해 사랑의 채찍을 아끼지 않으셨던 옛 스승들의 사랑과 권위를 되살려 놓아야 이 땅의 교육이 제대로 될 것 같다.
★ ‘대관세찰(大觀細察)’
★ 공부는 아무리 해도 체하지 않아 좋고, 공부 잘해야 효자지. 나중에 부모님 세계일주 시켜드린다고 효자 되는 거 아니다. 학교 때 착해야 사회에 나가서도 착하 s일을 할 수 있는 거야.
★ 존경스런 스승을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고 큰 행운이다.
★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도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 돌이켜보면 나는 그러한 선생님의 참 가르침에 순종하고 감사하며 반드시 배운 대로 행하는 자세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에 대하여 절대로 남에게 원망을 해서는 안 되며, 다가오는 고통과 역경을 인내하고 잘 활용하면 더 큰 힘과 용기를 얻어 승리의 삶으로 바꾸어 놓게 됨을 나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참교육은 사랑의 실천임을 이제 조금은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