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나토노트 2>
♣ 카발라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네. 죽음은 단지 내적인 발전 단계의 하나일 뿐이네. 그 단계를 거쳐 우리 삶의 다음 지평이 열리는 것이지. 말하자면 죽음은 하나의 문턱인 셈이네. 그 문턱을 넘어서면 또 다른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우리는 되도록 냉철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맞아야 하네. 죽는 다는 걸 두려워하고, 그 때문에 마음이 혼란에 빠지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은 가장 나쁜 태도일세. 평정으 FDLFG지 않아야 순조롭게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거지. ‘조하르’에 이르기를, 청정한 의식을 지닌 채 죽는 사람은 행복하다. 죽음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것일 뿐이다. 슬기로운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다음에 살 집을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라고 했네. 또, 언제나 쾌활했던 라비, 엘리멜렉 드 리젠스크는 이렇게 말했지. ’곧 이 세상을 떠나 더 높은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라고 말일세.
♣ 산스크리트 어로 보디사트바, 흔히 보살이라고 부르 사람들이 그들이에요. 그들 역시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었음에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승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에요. 카르마의 사슬에 묶여 있는 중생들을 향한 지순한 사랑 하나로 이승에 돌아온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자비행이지요.
........ 환생을 거듭하는 동안 고통스런 삶을 숱하게 경험했음에도 이승으로 돌아오는 그런 성자들은 어느 종교에나 있을 테지. 우리 종교의 하시디즘적인 전통에서는 그런 이들을 라메드 바브라고 부르는 게야. 한 세대마다 그런 소수의 의인들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려고 남 모르게 자기를 바친다네. 그들은 오만함을 모르고 명성을 구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권능을 기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를 찬양하지. 나는 가끔 예수 그리스도 역시 라메드 바브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네.
♣ 그대들은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구나! 하지만 그대들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밤눈 밝은 올빼미는 낮엔 눈이 멀기에 결코 빛의 신비를 벗길 수 없을지니. 그대들 진실로 죽음의 참모습을 관조하고자 한다면 삶을 향하여 육신을 활짝 열라. 강과 바다가 하나이듯 삶과 죽음도 하나일 터이니. 그대들 희망과 욕망의 깊은 곳에 피안에 대한 무언의 깨달음이 잠자고 있구나. 그러니 꿈을 믿을진저. 꿈속에야말로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 숨겨져 있을지니. - 칼리지브란 <예언자>
♣ 죽음에 대한 그대들의 두려움이란, 친히 손길으 FSOFU 영광을 베푸려는 왕 앞에서 양치기가 느끼는 전율에 지나지 않을 터, 떨고 있으면서도 양치기는 임금이 하사하실 휘장을 달게 되리라 생각하며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떨림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그저 바람 속에 벌거숭이인 채로 있는 것. 햇빛 속에서 녹아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숨이 멎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그저 숨결을 높이 들어 올려 자유로이 신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밀고 써는 조수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들은 오직 침묵의 강에 다다라 그 물을 마실 때라야 진실로 노래하게 되리라. 또 그대들은 산마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오르기 시작하리라. 그리하여 대지가 그대들의 사지를 요구하는 날. 그 날이 오면 그대들 진실로 춤추게 될지라. -칼리지브란 <예언자>
♣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가 여기에 있나니, 욕망을 끊어버리고 욕망에서 벗어나 거기에 물들지 않음으로써 집착을 완전히 없애 버리면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가 여기에 있나니,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즉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바르게 생활하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르게 정신을 모으고,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그것이니라.
♣ 나는 사람들을 평가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가져야 할 야심은 오로지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 영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적어도 한 가지 깨달음은 분명히 얻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감상벽의 소지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깨달음이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가장 이롭게 하는 행위이고,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 사람은 하나의 베갯잇에 비유할 수 있다. 베갯잇의 빛깔은 빨간색, 검은색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천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모든 사람의 내부에는 똑같은 신이 머물고 있다.
♣ 누가 나에게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야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자기 영혼을 천사의 영혼처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간단한 일이고, 천사들의 역할 분담은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천사가 개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비로소 기도의 위력과 유용성을 깨달았다. 기도란 아주 구체적으로 천사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 카르마, 즉 업으로 보상하지요. 일종의 거래에요.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려면 내면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히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소원이 이루어진 대가로 자기 능력의 일부를 포기해야 돼요.
♣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화를 낼 때, 그는 사실은 당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 인생은 한바탕의 꿈과 같다. 형체가 바뀌는 것에 불과한 죽음 때문에 근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단 하루를 머물 집에 어찌 그리 미련을 두는가? -노자
♣ 본디 영혼은 깨끗하게 되고 바르게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승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혼의 정화는 뒤따르는 내생에서 이루어집니다.
♣ 세계는 그 자체로만 보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자연이나 신, 또는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제하는 어떤 원리는 우리에게 보상도 벌도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잘못은 오직 하나, 무지뿐입니다.
♣ 지구는 경험의 장소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시간에 여러분이 심판 받는 것은 여러분의 모든 경험에 대해서입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웃에게 주었던 모든 즐거움과 모든 고통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승에서 행한 모든 행위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순간에 그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순간에 대천사들은 여러분에게 저지른 행동 가운데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대천사들은 여러분에게 화를 내거나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여러분의 어리석음만을 비웃을 것입니다.
♣ 그대 길가메슈여
언제나 배가 가득하도록 먹고
밤낮으로 즐겁게 지낼지라.
그대 인생의 하루하루를
열락에 찬 축제로 만들라.
의복을 정결하게 화사케 하고
얼굴과 몸을 깨끗하게 씻을지라.
그대 손을 잡는 아이를 어루만져 주고
품에 안긴 아내에게 기쁨을 주라.
인간이 지닌 권리란 그저 그런 것뿐일지니.
♣ 카발라에 따르면, 태아는 위대한 현인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그는 이미 세계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에 천사 하나가 내려와 그가 비밀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한다. 천사는 태아의 입 위에 손가락을 대고 ‘쉬’하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태아는 모든 것을 잊는다. ‘위대한 비밀’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무의식뿐이다. 우리가 ‘인중’이라고 부르는 곳, 즉 코와 윗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은 바로 그 천사와 접촉했을 때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