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오면 어르신네 시는 어떤 것입니까?”
“제 값어치로 홀로 우뚝한 시. 치자에게 빌붙지 않아도 되고 학문에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 가진 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고 못 가진 자의 증오를 겁낼 필요도 없다. 옳음의 자로써만 재려 해서도 안 되고 참의 저울로만 달려 해서도 안 된다. 홀로 갖추었고, 홀로 넉넉하다. ”
“하지만 사람은 모여 살아야 하고 제도며 문물에 얽매이게 마련입니다. 무언가로 가려 주고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될 몸도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난 자다. 그 모든 것을 떨쳐 버린 뒤에야 참다운 시인이 난다.”
“그래서 무얼 얻습니까?”
“시다. 그걸로는 벼슬도 생기지 않고 공명도 오지 않고 재물도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그 한 구절로 셋 모두를 갈음할 수 있는 게 시다.”
“그런 시가 있습니까?”
“있지.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것들이 못나고 덤벙대는 것들을 꼬드겨 위와 아래를 만들고 제도니 법이니 예의니 하는 것으로 세상을 옭기 전에는 모든 시가 바로 그랬다. 못나고 덤벙대는 시인들이 스스로 코를 꿰고 제 코뚜레를 우쭐대기 좋아하는 것들에게 넘겨주기 전에는.”
★ “사람들은 그 시를 어디에 씁니까?”
“작은 쓰임은 언제나 뚜렷하지만 큰 쓰임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송곳을 만드는 것은 무얼 뚫기 위해서이고, 노끈을 꼬는 것은 무얼 묶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조화옹이 천지 만물을 지어 낸 까닭은 한 마디로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천지 만물이 아무 쓸모없는 것인가.”
“그 같은 큰 쓰임은 쓰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물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천지는 갖가지 쓰임을 가졌을 것인바, 어느 것은 맞고 어느 것은 아니라 하겠습니까? 결국 천지의 큰 쓰임이란 것은 없고, 거기 깃들인 만물의 작은 쓰임이 있을 뿐입니다.”
“없다는 것과 일일이 다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르네. 천지의 큰 쓰임이란 만물의 작은 쓰임을 다 합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혹시 어르신께서는 작은 것을 너무 키워 못쓰게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바늘을 절구공이만 하게 만들어서는 바늘로도 절구공이로도 쓰지 못합니다. 장자는 새를 너무 키워 이 세상에는 살 수 없는 새를 만들었고, 부처는 인을 너무 키워 사람의 몸둘 바를 어렵게 했습니다. 어르신네는 시를 너무 키워 시를 없이하고 게시는 것은 아닌지요...”
“원래 큰 시를 오늘날 보는 것처럼 작게 줄인 것은 요순과 공맹을 이은 썩은 선비였다. 그로부터 수천 년, 혹은 인으로 가두고 혹은 예로 얽매고, 혹은 의로 옭죄고 혹은 지로 억누르니 뒤에 온 사람이 어찌 시가 가졌던 그 원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작은 것을 키워 못쓰게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줄여 놔서 못쓰게 된 걸 이제 원래대로 키워 쓰려는 것뿐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가 그토록 큰 쓰임이라면 그 쓰임을 지어 낸 이에게는 큰 얻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시 그 자체밖에 얻지 못합니까?‘
“시를 얻음이 바로 큰 얻음일 수 있지.”
“그 큰 얻음은 어떤 것입니까?”
“스스로를 자유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남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유하게 된다는 것은 무얼 말함입니까?”
“마음과 몸이 그 얽매임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마음이 그 얽매임에서 벗어난다 함은....”
“만상이 품은 바 그 원래의 뜻을 바라봄이다. 세상은 온갖 뜻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스스로 꾸미고 지어 낸 온갖 거짓과 헛것에 얽매여 그 아름다움도 착함도 참됨도 거룩함도 보지 못한다. 오직 자유하진 마음만이 그것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봄은 또한 만듦이기도 하다. 원래 거기 있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함은 없음과도 같으니, 그 없음은 그런 봄을 얻어서야 비로서 온전한 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원래 시하는 것은 그러한 봄이지만 본다 하지 않고 짓는다 하는 뜻은 실로 거기에 있다.”
“몸은 시를 얻어 어떻게 자유하게 됩니까?”
“그 그윽한 경지에 이르면 몸은 사로잡혀 있는 형체에서 벗어나고 갇혀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며 묶여있는 공간에서도 벗어난다.”
“그럼 결국 시는 도입니까?”
“시는 도가 아니야. 도도 틀림없이 만상의 원뜻을 보기는 하되 그걸 무언가 다른 하나로 바꾸어 보지. 그러나 시는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보네. 또 도는 궁극으로 이 세계를 뛰어넘으려 하지만 시는 남아 있어 이 세계와 하나가 되려 하는 그 무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