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한 사람도 있고, 내가 더 좋아한 사람도 있고, 지금의 필립처럼 서로 좋아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이란의 반정보 지도자 오마르를 포함해서 그 사랑이 아쉽게 끝났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열기에 데일 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사이라도 지금 그 사람하고 여행을 같이 한다면 계속해서 좋을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방랑자의 사랑, 유목민의 사랑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만날 때부터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의 사랑은 더 안타깝고 애틋하고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행에 늘 따르게 마련인 외로움 대문에 사랑이라는 것이 실제보다 훨씬 과장되고 근사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그런 과장과 환상을 현실과 진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낭족들의 필독서 - 호주에서 간행되는 <론니 플래넛(lonely planet)>
배낭족들의 외적인 특징이 배낭과 전대라면 내적인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생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배낭을 메고 나서는 동안만만큼은 그렇다. 간혹 쉬어가는 해도 멈추지는 않는다. 이들은 머무는 곳에서 최대한의 것을 얻고 누리지만,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옮긴 곳이 별로 좋지 않은 환경이라도 잘 참아낸다. 오히려 힘든 일과 어려운 상황을 피해 가지 않고 정면돌파하면서 힘을 얻는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잘 알기때문이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에 생겨나 21세기에 맹위를 떨칠 새로운 시대의 유목민이다.
여행은 절대로 인생의 사치나 한가한 사람들만 즐기는 낭비가 아니다. 여행은 각 개인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사회와 나아가서 인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국적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우연한 교차점에서 만나 인연만큼 함께 어울리다 인연이 다하면 헤어진다. 이별은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다. 그들은 인연이 닿으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없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주소록과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앙코르는 그야말로 캄보디아의 심벌이며 최대의 돈줄이다. 앙코르는 크메르어로 '수도'라는 뜻이다. 우리가 보통 부르는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지의 1천여 개 되는 건물 중에서 제일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사원의 이름이다.
소위 태국, 라오스, 미얀마로 이어지는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아편이 재배되고 있다. 평균 표고 1,000미터 이상의 아열대 밀림 산악지대에서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양귀비를 길러 전세계 마약 수요의 3분의 2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것이며, 좋아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기 스타일이 아니거나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인간관계 밖으로 생각하며 살겠는가. 그것이 혈연이든, 지연이든, 학연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인연으로 만난 관계든 참을성 없고 이해와 양보와 절충이 없는 관계는 이미 시작부터 죽은 관계다. 사람의 인연과 관계란 가꾸기 까다로운 꽃과 같아서 인연이라는 꽃씨가 있다고 저저로 크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한다는 말이 그 밤, 내 가슴 안으로 아프게 파고 든다.
길은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가. 이제 죽음의 사막이라는 타클라마칸 사막 어저리 길을 따라간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사막. 앞서 간 사람들의 해골을 이정표삼아 간다는 길. 그 낯선 길에는 무슨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