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 조용미

오늘밤은 그믐달이 나무 아래

귀고리처럼 낮게 걸렸습니다

은사시나무 껍질을 만지며 당신을 생각했죠

아그배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면서도

당신을 그렸죠 기다림도 지치면 노여움이 될까요

저물녘, 지친 마음에 꽃 다 떨구어버린 저 나무는

제 마음 다스리지 못한 벌로

껍질 더 파래집니다

멍든 푸른 수피를 두르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벽오동은 당신이 그 아래 지날 때,

꽃 떨군 자리에 다시 제 넓은 잎사귀를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당신의 어깨를 만지며 떨어져내린 잎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

당신이 지금 와서 안다고 한들,

그리움도 지치면 서러움이 될까요

하늘이 우물 속 같이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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