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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때 이 책을 읽고 아주 많이 울었다. 그때는 마음속에 어린 새를 기르던 제제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잘 모르는 어른들이 참 많이 안타까웠다.
어른이 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역시나 몇 번 눈물을 흘렸다. 특히 제제가 잔디라 누나와 아빠에게 매 맞는 장면 이후의 모든 내용들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뽀루뚜가에게 아빠를 마음속으로 죽이고(사랑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 반면에 뽀루뚜가를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말을 하며 자기를 양자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부분. 제제가 가장 사랑하는 좋은 친구인 뽀루뚜가가 망가라치바에 치여 죽고 나서 제제가 삶의 모든 의욕을 잃고 뽀루뚜가를 따라 죽으려는 마음을 가지는 부분이 줄곧 내 마음을 적셨다.
뽀루뚜가의 죽음으로 인해 제제는 누구를 위해 착해져야겠다고 마음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과 더불어 삶의 의미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그만큼 이 여린 아이는 조숙하고 예민했던 것이다. 이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그런 조숙함이 왠지 너무 안타까웠다. 게다가 이제는 밍기뉴를 단지 어린 라임 오렌지 나무일뿐이라고 현실만을 직시하려는 그의 모습이 나를 더없이 슬프게 했다.
뽀루뚜가의 죽음 이전에 벌어진 일련의 매 맞는 사건들이 제제로 하여금 자신을 ‘아주 망나니같은 못된 아이이며 악마의 새끼’라고 믿게 한 것이 너무 속상했다. 이처럼 착한 아이에게 화가 난다고 해서 나쁜 말을 해대는 어른들이 미웠다.
이 예민하고 착한 꼬마인 제제는 뽀루뚜가의 죽음 이후 정말로 철이 들어버리고 만다. 아픔이란 ‘매를 맞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죽어야하는, 팔과 머리의 기운을 앗아가고, 베개 위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깨달아 버린 것이다.
나는 철드는 것이 이렇게 슬픈 것인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고 나서는 철드는 것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역시 철드는 과정은 아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제제에게는 너무 큰 슬픔이 어린 나이에 한꺼번에 닥쳐와서 그렇게 빨리 철이 든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조금씩 나누어서 천천히 철드는 것에 비해 제제는 다섯 해라는 엄청난 속도로 철이 들어버렸으니.....
되돌아보면 나에게도 커간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은 조금씩의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 슬픔을 우리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우리들이 이토록 제제와 함께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닐까. 제제가 사랑을 받고 우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아이로 남은 까닭은 그가 어린 아이였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조숙한 어린아이가 겪은 슬픈 사건에 관해 또 그것을 겪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그 힘겨움에 관해 우리가 동정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조금만 더 철없는 어린아이로 있어주길 바라는 나의 마음은 그 철없음이 얼마나 우리 어른들이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행복한 순간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을 떠올렸다. 나의 어린 제제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일까? 나의 제제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끔씩 말썽을 부려 내 속을 썩여도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 빨리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화가 나도 참고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칭찬과 이해와 사랑 속에서 여전히 자신들만의 꿈과 환상을 키워가며 행복해할 철없는 내 제제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미소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