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리라’는 의미의 ‘인샬라’는 바로 우리들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목숨이 자연의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힘을 다스리는 것은 알라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매일 밤 집으로 돌아와 동물들을 우리에 넣으면 다시 우유를 짤 시간이다. 낙타의 목에는 나무로 만든 종을 걸어놓는데 해질녘에 우유를 짜면서 듣는 은은한 나무 종소리는 유목민들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다름없다. 종소리는 어둠이 내린 후 집을 찾아야 하는 나그네에게 늘 등대 같은 역할을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일을 하다보면 크고 둥근 사막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밝은 별이 떠오른다. 양을 우리에 몰아넣을 시간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 별을 사랑의 별(금성)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감추는 별이라고 부른다.
◎ 유목민의 삶은 비록 고역이지만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고 자연과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다. 엄마가 지어 준 내 이름은 신비로운 자연 현상에서 따 온 것이다. ‘와리스’는 사막의 꽃이라는 뜻이다. 사막의 꽃은 그 어떤 생물도 살아남기 힘든 메마른 땅에서 피어난ㄷ. 우리나라에는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비가 내려 먼지 자욱한 땅을 씻어 내리면 기적처럼 꽃이 피어난다. 사막의 꽃은 붉은 빛이 도는 화사한 노랑인데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늘 노랑이다.
◎ 소말리아에서는 여자의 다리 사이에 나쁜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에 따르면 여성의 성기는 태어날 때부터 있지만 청결하지 않다. 그래서 제거해야 한다. 음핵과 소음순. 대부분의 대음순이 잘려나간다. 남은 부분은 꿰매어 봉한다. 그러면 여성의 성기가 있던 부분에는 흉터만 남게 된다. 그러나 할례 의식의 자세한 부분은 비밀로 남아 있다. 의식을 받게 되는 소녀들도 모른다. 단지 때가 되면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고 싶어!’ 나는 자꾸 시끄럽게 소리쳤다. 순전히 동물적인 본능이었다. 원숭이의 본능과 다를 것 없었다. 동물들은 그렇게 한다. 걷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쪼그리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다가 아기를 낳는 것이다. 그냥 누워 있지는 않는다.
◎ 알리크가 태어난 순간, 내 인생은 달라졌다. 이제는 알리크가 주는 즐거움이 나의 전부다. 사소한 불만과 걱정도 이제는 뒷전이다. 그런 건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생명이라는 하늘의 선물이며, 나는 아들을 낳고 비로소 그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 아프리카 사막에는 생리통이 너무 심해 똑바로 서지도 못하면서도 염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소녀가 있다. 그리고 아기를 낳자마자 천 조각처럼 바늘과 실로 봉해져야 하는 여자가 있다. 남편을 위해 질 입구를 단단히 조이고자 하는 것이다. 굶고 있는 열한 명의 자식들을 위하여 임신 9개월의 몸으로 먹을 걸 찾아 사막을 누비는 여자도 있다.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었지만 여전히 질 입구가 막혀 있는 여자는 어떻게 helf 것인가? 우리 엄마처럼 홀로 사막으로 나가 아기를 낳으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불행히도, 나는 질문의 답변을 안다. 많은 여자들이 홀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운이 좋으면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오기 전에 남편에게 발견될 것이다.
◎ 살아오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순전히 우연적으로 일어났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사실, 나는 순전한 우연이라는게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우리 인생에는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내가 집을 나와 사자와 맞닥뜨렸을 때 나를 구해 준 알라 신에게는 계획이 있는 듯했다. 날 살려둔 이유가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내가 할례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할례의 경험은 아직도 나를 못 견디게 괴롭힌다.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는 건강상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나는 나에게 금지된 섹스의 즐거움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몸이 온전치 못한 불구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얼 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절망적이다. 데이나를 만났을 때, 나는 마침내 사랑에 빠졌고 남자와의 섹스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섹스가 즐거우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즐긴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데이나와 육체적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걸 즐기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할례를 받게 된 이유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낸다면, 내가 당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유는 찾지 못하고 분노만 더해갔다. 나는 평생 담아두고만 있던 나의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주변엔 가족이 없었다. 엄마도 언니도 없었기에 슬픔을 나눌 사람도 없었다. 나는 ‘피해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너무 무력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집시 여인이 날 난도질했을 때 나는 바로 피해자였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그리고 반대 운동에 앞장설 수도 있다. 인터뷰를 통해, 나는 이 가혹한 고통을 장려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한 여자의 경험담을 듣길 바랬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모두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비밀을 안 사람들이 길에서 나를 보면 이상한 눈빛을 보낼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날에도 할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나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것이 인터뷰를 내보내기로 한 두 번째 이유이다.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을 전 세계 수많은 어린 여성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수백 명도 아니고 수천 명도 아닌, 수백만 명의 소녀들이 할례를 받았고, 그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이미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라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부족간의 전쟁은 남성들의 자존심과 이기주의, 공격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여성 할례와 다름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두 가지 다 남자들이 자신의 영역과 소유물에 집착해서 생긴 결과다. 여자는 관습적으로, 법적으로 남자의 소유물에 속한다. 남자들의 성기를 잘라버리면,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남자들이 진정하고 세상을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분비되던 테스토스테론이 없어지면 전쟁도, 죽음도, 도둑질도, 강간도 사라질 것이다. 남자들의 은밀한 부분을 잘라놓고, 피를 흘리다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이 여성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