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자연은 어떤 분별도 사심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무심히 드러낼 뿐이다.
▣ 위대한 창조는 무심에서 나온다. 그것은 침묵의 세계이고 텅 빈 충만인 공의 경지다.
▣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너무나 막연하다. 구체적인 삶의 내용은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이다. 따라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현 존재다. 자, 그러면 나 자신은 오늘 어떤 삶을 이루고 있는가 한 번 되돌아보자.
▣ 땅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제 발로 걷지 않고 자동차에 의존하면서 건강을 잃어간다. 제 발로 걷는다는 것은 곧 땅에 의지해 그 기운을 받아들임이다. 그리고 걸어야 대지에 뿌리를 둔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땅을 등지고는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없다.
▣ 언젠가, 스님의 건강 비결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냉수 많이 마시고 많이 걷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살아있는 생수를 멀리한 채 끓여서 죽은 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커피를 비롯해서 각종 음료들은 살아 있는 냉수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라면 즐겨 마실 것이 못 된다. 목이 마를 때는 수시로 생수를 마신다.
▣ 내 경험에 의하면 먹는 것만으로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안팎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생활 습관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평생 자신을 위해 수고해주는 소화기를 너무 혹사하지 말고 쉴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출출한 공복 상태일 때 정신은 가장 투명하고 평온하다.
▣ 말은 들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입을 닫은 침묵을 통해서 말의 의미가 목젖에 차오른다. 참으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간단명료하다. 그밖에는 습관적인 또 하나의 소음일 것이다.
▣ 당신은 오늘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무엇을 먹었는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현재의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이 쌓은 업이다. 이와 같이 순간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 간다. 명심하라.
▣ 어떤 사물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그 사물을 닮아간다. 꽃을 가까이 하면 꽃 같은 인생이 된다. 이것이 신비로운 우주의 조화다.
누구나 바라는 그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우러난다. 오늘 내가 겪는 불행이나 불운을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가 곧 불행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순간 그가 지닌 생각대로 되어간다. 이것이 업의 흐름이요, 그 법칙이다.
사람에게는 그 자신만이 지닌 특성이 있다. 그것은 우주가 그에게 준 선물이며 그 자신의 보물이다. 그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사고가 받쳐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마다 잘 풀린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되고 일마다 꼬인다.
이 세상은 공평무사하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스물네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진다. 이 귀중한 우주의 선물을 우리는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밝은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어두운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시시로 물어야 한다.
▣ 아마도 당신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도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의해 내 인간 가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이다.
▣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순례자란 무엇보다 먼저 발로 걷는 사람, 나그네를 뜻한다. 순례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털어낸다.
▣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와 같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홀로일 때 비로소 세상에 살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을 때 완벽한 생동과 협동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전체적이기 때문이다. - 크리슈나무르티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지 혼자 지낸다고 해서 과연 ‘홀로 있음’인가.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가르침은 홀로 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킨다. 즉, 개체의 사회성을 말한다.
▣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
▣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인디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배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 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는 나날이 커져 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다. - 다코타 족 인디언 오히예사
▣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그 인생은 추해지게 마련이다.
▣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혼자 살 수 밖에 없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는 이런 순간에 맞닥뜨릴 것에 대비하여 미리 연습하면서 살아간다.
▣ 명심하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순간순간 자각하라. 한눈팔지 말고, 딴 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피라. 이와 같이 하는 내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대의 길을 가라.
이 순간을 헛되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 너무 긴장하지 말아라. 너무 긴장하면 탄력을 잃게 되고 한결같이 꾸준히 나아가기도 어렵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 누구나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기도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이 필요 없다. 오로지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순간순간 간절한 소망을 담은 진지한 기도가 당신의 영혼을 다스려 줄 것이다.
그리고 기도에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말은 생각을 일으키고 정신을 흐트려 놓는다. 우주의 언어인 거룩한 그 침묵은 안과 밖이 하나가 되게 한다.
▣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 마하트마 간디
▣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 식물은 인간이 이 지구에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와 꽃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무한한 우주의 생명 앞에 마주 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산목숨을 소홀히 여겨 무자비하게 허물고 살해하는 이 막된 세상에서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나무와 꽃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전하는 우주 생명의 신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나이 칠십에도 어떤 직위에 있는 것은 통행금지 시간이 되었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다니는 것과 같아서 그 허물이 적지 않다.
▣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에 들어가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된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음식물이 지닌 업까지도 함께 먹어 그 사람의 체질과 성격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이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하게 다루어질 때의 억울함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 달걀 제조공장에서는 병아리가 부화되자마자 병아리 감별사들에 의해 수컷은 필요가 없다고 산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좁은 공간에 갇힌 닭들은 서로 쪼지 못하게 부리가 잘려지고 알을 많이 낳게 하기 위해 첫 2주 동안은 하루 24시간 내내 눈부신 전등불 아래서 잠을 잘 수 없게 한다. 그 다음은 2시간 마다 불을 켰다 껐다 반복한다. 이렇게 6주쯤 지나면 닭들은 거의 미쳐버린다는 것이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 이 몸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너무 편하고 안락하면 게으름에 빠지기 쉽다. 잠들 때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숙면이 되도록 무심해져야 한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담백하게 먹고 겹겹으로 껴입지 말라는 것이다. 간소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는다면 지구 환경은 그만큼 오염과 훼손이 줄어들 것이다.
▣ 아무리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지만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앉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하루하루의 삶에 탄력이 생길 것이다.
▣ 우리가 참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침묵 속에 울려오는 자기 내면의 소리다.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그는 느리게 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느리게 사는 지혜는 첫째 빈둥거릴 것. 즉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둘째 들을 것. 신뢰할 만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셋째 권태, 무의미할 때까지 반복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취미를 가지는 것이다. 넷째. 꿈을 꿀 것. 자기 안에 희미하지만 예민한 하나의 의식을 자리잡아 두는 것이다. 다섯째. 기다릴 것. 가장 넓고 큰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것이다. 여섯째 마음의 고향. 즉 존재의 퇴색한 부분을 간직해 두라고 그는 말한다.
한가로이 거니는 것,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행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 살짝 스치기만 할 것이지 움켜잡지 말라. 움켜잡는 순간 그대는 복잡한 삶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둘레의 흐름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아야 한다. 시류에 헛눈 팔거나 들뜨지 않고 차분히 자기 자신의 의지로 순간순간 밝고 맑은 업을 익혀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걸치고, 적게 갖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이 폭력과 인간 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하다는 생각에서다.
▣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종이 1톤을 만드는 데에 30년생 나무 열일곱 그루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무를 베어낸 그 빈 자리를 다시 채우려면 또 3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거릴것이다. 그것도 산불이나 병충해의 재해가 없을 경우다.
나무를 베어서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는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유해 화학물질이 많이 배출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소비되는 종이는 7, 8백 만 톤 수준. 한 해 동안 소비되는 온갖 종이를 순전히 나무로만 만든다면 30년 생 나무 1억 1천~ 1억 3천 그루의 나무가 필요하다. 다행히 전체 종이 소비량 중 3분의 2 가량이 한 번 쓴 종이를 재활용해서 만든 재생지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손으로 매년 4천만 그루의 나무를 종이 소비를 위해 벌목하고 있는 셈이다.
▣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 마하트마 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