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은 격렬하지 않았고, 오히려 덤덤한 채로 나의 일부가 되었다. 모든 열정의 정체성 역시 격렬함보다는 지독하고 끈덕진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냥, 내 나이에 맞는 사랑의 아이디어인지도 모르겠다.
- 가출은 짜릿하다. 바람 속을 걷는 것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다. 그러나 돌아올 때의 기분은 죽을 맛이다. 다섯번째 가출에서 돌아오며 다짐했다. 영원히 안 돌아올 수 있다면 몰라도 다시는 가출을 하지 말자고 말이다.
- 나는 낯 모르는 도시 변두리에 나를 데려다 놓고 무책임하게 앓아 누워버린 어머니가 못 마땅했을 뿐 아니라 간혹은 너무 이기적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 소라는 처녀 선생을 두려워한 만큼이나 신뢰했고 때로는 비굴한 태도마저 보였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당당함을 무조건 신뢰해 버리는 소극적 파괴본능을 갖기 때문이었다.
- 내 인생은 내 선택이 아니라 나에게 호의를 가진 적극적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런 호의는 지속되지 않았다.
- 인생은 반복되나봐. 한 번 치친 덫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어른이 되어서도 늘 비슷한 일들이 닥쳐오거든. 그때마다 어린 시절 학습한 바대로 반응하게 되고, 결과는 똑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