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표정


-아, 차라리 그냥 빨리 죽어버리면 좋겠어.

-아픈지 얼마나 되었는데?

-1년.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가.

-근데, 고향은 어느 나라?

-베트남.

  전화벨이 울렸다. 여자가 전화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엄마, 여기 커피. 누구야?

-남편이 여기 입원했대. 암이라고.

-여자가 못됬다. 아무리 그래도 남편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래?

-자기도 살길을 찾아야 하니 그렇겠지. 늙은 남편한테 뭔 정이 얼마나 있겠냐. 애도 없다는데.

-남편이 몇 살인데?

-오십. 여자는 스물여덟. 자식이 있으면 좀 다르겠지. 자식이란 게 버팀목 같은 거야. 작은 버팀목. 그런 거라도 있으면 어찌어찌 살아가지. 그런데 그런 게 없잖아, 저 여자는. 그러니 남편이 죽어가도 데면데면한 거지.

-그래도 남들 앞에서 남편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난 무섭다. 무서워.

-내가 다시 볼 사람 아니니까 그렇겠지.

-부부란 게 정말 남남이네. 어쩌면 생판 남보다도 못한 거 같아.

-사람은 이기적이야. 결국은 다 자기 살 궁리를 하게 마련이니까.

  그날 오후에 베트남 여자의 남편이 임종실로 이동했다. 너무 말라서 뼈가 드러난 남자의 가느다란 팔이 그네처럼 흔들거렸다. 베트남 여자는 이불과 기저귀 가방을 들고서 호스피스 병실 앞에 서 있었다. 돌에게도 표정이 있다면 저 여자의 얼굴일 것이다. 검정 고무줄로 묶은 여자의 짧은 머리가 천천히 흔들거리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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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55분


  컹컹, 왈왈.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시계를 본다. 6시 55분. 거의 매일 아침, 같은 시각이다. 흰 모자를 쓴 키 작은 늙은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지나간다. 그 유모차에는 개가 한 마리 앉아있다. 올여름 내내 남자의 기상 시간은 그즈음으로 고정되었다.

  열대야에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는데, 거기다가 개 짖는 소리에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마다 남자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놀랍게도 이 아파트 단지에서 저 개 짖는 소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남자 말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늙은 여자는 여름 내내 6시 55분에 미친듯이 짖는 개를 데리고 나와서 아파트를 산책했다. 그 누구도 여자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개가 짖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아침 일찍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늙은 여자의 루틴이었다. 짖는 개에게 주의를 주지도 않았다. 여자는 개 유모차를 여유롭게 끌면서 아파트 단지를 통과했다.

  남자는 문득 오래전의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요양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었다. 할머니 A에게는 정기적으로 면회를 오는 살가운 자식들이 있었다. 할머니 B는 자식이 없었는지, 아니면 있어도 찾아오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할머니 B는 할머니 A를 보면서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다. 그런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할머니 B의 마음을 좀먹어 들어갔다. 그리하여 할머니 B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다다랐다. 할머니 A를 살해한 것이다. 할머니 A가 죽은 날은 5월 7일, 어버이날 전날이었다.

  6시 55분의 늙은 여자에게 개 유모차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행복을 시기 질투하다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보다 개를 키우는 것이 낫겠지. 남자는 그 유모차를 멸시와 증오로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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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눈병이 났다. 아마도 8월 초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왼쪽 눈꺼풀에 작은 뾰루지가 하나 올라왔다. 눈에 그런 것이 났다가 다음날이면 사라지곤 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뾰루지는 붉은 점처럼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았다. 약간의 부기에 가려움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주 불편하진 않았다. 안과에 가봐야지 하면서도, 날이 미친듯이 더우니 외출하기도 꺼려졌다. 저러다 낫겠지. 그러던 것이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눈이 더 붓고 이물감이 심해졌다.

  9월이 되었는데도, 이 더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안과 병원은 버스에서 내려서 15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땡볕을 걷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병원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여느 때라면 1층의 검사실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질 텐데, 뭔가 비수기의 해변가처럼 병원은 한가했다. 나는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담당 주치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정도로는 짜도 나올 수 있는 게 없어요. 흉이 질 수도 있구요. 온찜질을 열심히 하세요."

  나는 좀 당황했다. 거의 한 달 동안 눈이 그런 상태라, 다래끼를 좀 짜면 나을 줄 알았다. 이 의사 양반은 매우 신중하다. 이전에 결막 결석 때문에 찾아갔을 때에도, 결석이 아직 튀어나오지 않았다면서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로서 나는 선택을 해야한다. 의사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우길 것인지. 만약에 내가 말하는 상대가 인테리어 업자이고, 현관을 원하는 타일 색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요구하면 된다. 하지만 내 앞에서 말하는 이는 의사이다. 짜서 나을 것 같으니 짜달라, 고 말하는 일은 어쩐지 할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내가 이 의사 선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찜질을 해서 이게 나을 것인지, 솔직히 나는 확신이 가질 않았다. 개 혓바닥처럼 더위에 늘어진 보도블록을 있는 힘을 다해 걸어갔다. 덥다. 너무 덥다. 길가의 슈퍼에서는 중년의 여자가 한 무더기의 옥수수를 쌓아놓고 열심히 껍질을 까고 있었다. 아직도 옥수수를 팔고 있나? 인터넷에서 옥수수는 판매 종료된 지 오래고, 이제는 삶은 옥수수를 냉동한 것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어디서 옥수수를 떼어왔을까? 나는 냉동실에 쟁여놓은 올해의 마지막 옥수수를 떠올렸다.

  3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서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뻥튀기 같은 싸구려 과자와 주전부리를 파는 여자가 있었다. 그 옆에는 야쿠르트 카트도 보였다. 머리가 아주 하얗게 센 호리호리한 여자가 야쿠르트 하나를 들이키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그 늙은 여자가 야쿠르트를 사 먹은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야쿠르트 여사였다. 내가 본 야쿠르트 여사들은 보통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여사는 적어도 60 중반은 되어보였다. 정류장에는 햇빛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 하나 피할 데가 없었다. 주전부리를 파는 장사꾼 여자는 더위를 이기려는 듯 혼자서 팔다리를 움직이며 체조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가게 앞에서 하릴없이 춤추는 풍선 인형처럼 보였다. 나는 설핏 웃음이 나오려다가, 먹고 산다는 것의 그 무게가 느껴져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전광판을 보니 버스는 10분 뒤에 오기로 되어있었다. 그 10분을 견디기 위해 나는 정류장 옆 건물의 광고판을 하릴없이 들여다보았다.

  '우리 직원 일동은 부킹을 목숨처럼 생각합니다'

  유흥 주점, 이라는 문구 옆에는 '***나이트클럽'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33세 이하는 절대 출입 금지'

  처음에는 '이하'를 '이상'으로 내가 잘못 읽은 것인가 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아니었다. 그 나이트클럽은 33세 이하의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중년 남녀 만남의 천국. 최고의 만남을 위해 수질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이어졌다.

 이 정류장을 여러 번 오가면서도 여기에 이 나이트클럽이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 빌딩은 금융 기관이 자리하고 있어서 외관이 무척 번듯했다. 금융 기관과 중년 전용 나이트클럽의 기묘한 동거를 나는 여지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절실한 만남을 원하는 중년의 남녀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나는 부킹을 생명처럼 여기는 그 나이트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 것인가도 궁금해졌다.

  버스가 왔다. 알지 못하는 중년의 남녀들과 나이트 클럽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이고, 언니들. 너무 반갑네."

  세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 나이 든 여자가 버스에 탔다. 쪼리를 신은 맨발의 엄지발톱에는 빨강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볼품없는 작은 발이었다. 버스 뒷편에 여자의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늙은 할머니들이었다. 여자의 활기찬 인사에 노인들은 대꾸할 기력도 없는듯 했다. 여자는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아, 저기 좀 봐바. 바람 한 점 안 불어. 너무 더워. 언제까지 더울까, 언제까지? 아마도 9월은 지나야겠지. 그래 9월이 지나야 할 거야. 집안을 다 뒤집어서 청소하고 왔더니 땀이 줄줄 흐르네."

  여자는 내 뒷자리에 앉았다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대편 자리로 옮겼다. 나는 여자의 주절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자리를 옮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먼저 자리를 떠서 내심 반가웠다. 여자는 자리를 옮겨 앉더니,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상한 그 활기가 부럽게 느껴졌다. 여자와 그 일행인 늙은 언니들은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마도 그들은 정류장 옆에 있는 스포츠 센터의 수영장을 다니는 이들 같았다. 수영장의 아쿠아로빅 수업은 언제나 중년의 여자, 노인들로 늘 북적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원시시대에 채집을 하러 갔다가 아무런 소득이 없이 돌아오는 사람처럼 걸었다. 9월이 지나는 동안 다래끼가 낫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의사를 보게 되면 미워질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개같이 더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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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의 감각

 


  아주 짧은 꿈을 꾸었다. 커다란 검은 점이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으려고 하니까, 그 점은 살아 움직이는 벌레로 변했다. 그것이 파리였는지, 아니면 나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비는 아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꿈에서 깼다.

  시집을 한 권 완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모전에 낼 시집이다. 공모전의 요강에 나온 최소 응모 편수는 50편. 당선이 되면 그 시들은 시집으로 묶여서 나온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 되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블로그를 쉬는 동안, 시 50편을 정리했다. 그 이상한 꿈을 꾼 날은 시집의 구성이 마무리되던 날이었다. 나는 50편의 시들에다 한 편을 더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검은 점은 마침표다. 거기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보다는 시를 더 써낼 여력이 없기도 했다.

  작년에도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는 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집(詩集)의 시들을 하나의 주제로 유기성 있게 묶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써놓은 시들 가운데에서 추려서 낼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써낸 시들도 있었다. 퇴고는 진저리나게 힘들었다. 이것밖에 쓰질 못하나, 더 나은 시는 써낼 수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옥죄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응모는 하면 뭐하나 싶은 생각도 계속 들었다.

  응모 편수 50편에 대한 압박은 상당한 것이었다. 어떻게 대충 써서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허점이 보이는 시는 남이 보아도 똑같다. 누군가 좋은 문학적 안목을 지닌 사람이 내 시를 읽어보고 조언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없었다. Chat Gpt는 나름의 어설픈 비평 능력을 보여주며, 일관성도 별로 없다. 나는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는 사람처럼 내가 썼던 시들을 읽고 또 고치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시를 썼던 지난 1년 8개월 동안, 나는 응모했던 모든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시인이 되려고 그 공모전들에 응모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써낸 시가 이런 블로그가 아니라, 확장성 있는 지면에서 더 많은 독자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등단은 그걸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문이었다. 그것은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장권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매일 쌓이는 출판사 편집장의 이메일에 등단도 하지 않은 지망생의 투고 원고는 휴지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내가 떨어졌던 공모전의 당선작들을 읽으면서, 이 시대의 시들과 내가 써내는 시들 사이의 어떤 커다란 간극을 확인했다. 좋게 말하면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유행과는 동떨어진 주변부의 지망생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한다. 트렌드를 따라가서 그들의 시작법을 습득해서 써내던가, 아니면 나의 시를 그냥 계속 써내던가. 사설 학원에서 시를 가르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나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오래전, 시 창작 수업을 들을 때가 떠올랐다. 시인 선생이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자, 매주 한 편의 시를 써오도록 하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10명 안팎의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서로의 시들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선생은 수업이 끝날 무렵에 무심한 듯 한마디를 보탤 뿐이었다. 선생이 내가 써낸 시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선생이 등단에 근접했다고 말한 수강생은 그 이듬해에 등단했다. 뭔가 그 세계는 내가 알지못하는 나름의 틀이 있었고, 규칙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여적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거야. 초심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내는 거야. 소설 속 한 장면에 대한 묘사만 기깔나게 써내는 계획은 누구나 갖고 있어. 하지만 기승전결을 갖추어 글을 끝마치는 일은 대다수 초보자에게 무척 힘들어. 그걸 해내는 것, 그래서 완성의 감각을 자꾸 느껴보는 것이 작가로서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해."

  이 말을 해준 A는 SF 소설을 쓴다. A는 몇몇 소설 공모전에 입상했고, 최근에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A의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하나의 과정을 끝마치는 것.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글쓰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글쓰기는 여타 예술 분야와 다르게 진입 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종이와 펜으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내놓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느냐, 읽히지 않느냐는 나중의 문제다. 어떻게든 끝을 내어 써내는 사람 자체가 적다는 뜻이다.

  나는 내가 시집을 완성하면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걸 국으로 끓여 먹을 수도 없고, 어찌 보면 시를 쓴다고 아등바등했던 1년 8개월의 시간들은 그냥 낭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낭비의 느낌, 버려진다는 무의미의 느낌이 나는 아주 싫었다. 역설적으로 그 느낌을 떨치기 위해 한 권의 시집을 써내겠다는 나름의 오기같은 것이 생겼다. 그리하여 50편의 시들을 꾸역꾸역 짜맞추어, 하나의 제목이 있는 시집으로 만들었다. A가 말한 그 '완성의 감각'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앞으로 내가 시를 계속 쓸지는 모르겠다. 이만큼 써보았으면 되었다 싶은 생각도 든다. 공모전에 시를 보내는 것도 더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시를 쓰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더 긴 호흡의 소설로 가져가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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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8월 7일-9월 6일) 동안 블로그는 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무더운 여름을 무탈히 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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