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新都市)


서른다섯 살, 신도시는 늙어가고 있다
부실한 시멘트로 지어진 골조는
늘어진 잇몸이 되어 흘러내리고
검버섯의 얼굴은 분칠로 가려지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또 다른 신도시로 떠났다
부모를 따라 아이들과 학원도 짐을 싸고
거친 회색 외벽의 병원들은
굳건한 두 다리로 버틴다
이 도시의 병원은 환상적이다

처참한 몰골의 지방 병원과
돌팔이 의사들에 지친 늙은이는
젊은 날의 신도시로 돌아갈 날을 꿈꾼다

스멀스멀 재개발의 광기가
스마트, 혁신, 재생 도시의 깃발을
너덜거리게 흔들 때,
이 낡은 신도시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중심은 진입할 수 없는 성채(城砦)
주변부의 삶은 원심력에 가속도가 붙어
한없이 누추해지는데
돌아갈 수 없는 신도시의 꿈이
까끌거리는 눈꺼풀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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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行星)


외줄로 몸을 묶은 페인트공이
아파트 외벽을 타고 내려온다
글자 하나를 칠하는데 십오 만원
내가 아는 오래전 시세는 그러했다

삶을 칭칭 묶고 내려오는 절박함이
당신의 글에는 있는가
페인트공의 행성이 나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했으나
단 한 줄도 남기지 못했다
진정성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아스팔트 바닥에는 까악까악 까마귀가

아흔 살 할머니의 행성은
무료한 궤도를 돌고 있다
나는 할머니의 행성에 잠깐 갔다가
얼른 빠져나온다
외로움의 수렁은 지겹고 깊다

점잇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오늘 점잇기 하는 법을 까먹었다
1번 점에서 2번 점으로 선을 이어야 하는데
엄마는 점마다 동그라미를 그렸다
까만색 볼펜으로 칠해진
엄마의 행성은 천천히 내게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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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오랫동안 주워들은 건 있어
배움이 짧으면 겸손이라도 하든가
골목대장의 하늘은 가늘고 푸르지
선 밖에는 너른 세상이 있는데
비좁은 골목에서 거드름 피우며
전문가처럼 굴어봤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아무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지적질은 그만두지 그래
밑천 없이 길 떠나는 방물장수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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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鍊金術師)


멀리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새로운 물질은 붉은색이라고 한다
실패와 불운이 천천히 휘발되면서
나의 실험실 문짝을 누렇게 만들었다

쌀독 바닥에는 직박구리가 산다
삐쩍 마른 이 새는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나는 가끔 뚜껑을 닫아놓는다
배고픈 새가 내 머리를 쪼아먹기 때문에

한 뼘의 정원에는 의심의 풀이 자란다
갈색 두통이 담긴 물뿌리개를 들고
조금씩, 죽지 않을 정도로 뿌려준다
적당히, 평범하게 살길 바라면서

싸구려 홍차에 설탕 세 스푼을 넣는다
시커먼 냄새가 나는 신문을 펼친다
실험실에서 죽은 남자의 사인(死因)은
굶주림이 아니라 공포로 판명되었다

눈가가 짓무른 커다란 개는
울지 않으려고 짖는다
나는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쌀독을 들여다 본다
어미가 잠시 나간 틈
새끼 새의 부등깃 다섯 개를 뽑는다

플라스크에는 푸른색의 물이 끓는다
나는 붉은색을 싫어한다
부등깃을 가느다란 주둥이에 밀어넣는다
익숙하고도 지겨운 음률
희미한 황금의 노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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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log-out)


당신의 그 기분, 난 알 것 같아요
당신은 그들의 식탁 바깥에 서 있죠
당신도 그 식탁에 앉고 싶은가요?

나도 가끔, 소외감을 느껴요
멀고도 깊은 바다에서 나는 갑자기 끌어올려져요
즐겁게 조잘대다가 어느 순간 곤두박질

정전(停電),
그런 일이 흔하지는 않죠

그러나 모멘트(moment), 빛나는
당신과 이렇게 만나는 시간
나는 긍정으로 훈육되었고
예의가 뼛속 깊이 배어있죠

거짓을 말해야 할 때
희망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하지만 당신에게는 솔직해지고 싶어
쓰세요, 헝클어진 눈물
가식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
진정한 언어는 살아남는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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