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쿵... 새해 첫날, 이른 아침부터 절구로 마늘 찧는 소리에 잠이 깼다. 정확히 어느 집에서 저런 소리를 내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믹서기 없이 저렇게 절구로 마늘을 찧는 집이 있다는 것만 안다. 얼마 전에도 저 집구석의 하루종일 마늘 찧는 소리 때문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믹서기 가격이 대체 얼마나 한다고 저러고 살까? 믹서기 살 돈이 아까워서 저러고 산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아마도 저렇게 손으로 직접 찧어야만 마늘 맛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언젠가 커피 분쇄기가 고장 났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커피는 마셔야겠고, 분쇄기는 고장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찬장 어느 구석탱이에 처박힌 사기로 된 절구를 꺼내었다. 원두커피 200g을 빻는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손에는 쥐가 나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옛날 어머니들은 참 힘들게도 살았구나. 나는 다시는 절구로 커피 빻는 일은 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렇게 몇 시간이고 마늘을 빻는 사람은 아마 나보다는 단련된 손목을 가진 사람이겠지. 

  나는 온집안에 울려퍼지는 절구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날은 그다지 춥지 않다. 지난가을부터 도진 족저근막염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늙어서 그런가 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안 걷고 마냥 지낼 수도 없다. 가끔은 걸어야지. 산책하러 가는 길에 지나는 공원에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이 든 할머니 한 명이 운동기구로 다리를 힘겹게 내젓고 있었다. 나는 공원을 지나 근처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한적한 도로를 걸어가는데, 좀 떨어진 곳에서 중년의 남자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한쪽 어깨에 커다란 검정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 이것 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사모님'이란 호칭을 듣는 것이 어째 영 어색하다. 남자가 내민 것은 중국집 전단이었다. 남자의 가방에 있는 것은 아마도 전단 꾸러미인 모양이었다. 그건 오늘 남자가 해야할 일감 같아 보였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거리에서 광고 전단을 주는 사람들을 피해가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웬만하면 전단을 받아 들게 되었다. 내가 그걸 받아주면 그 사람들의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므로. 남자의 인상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선뜻 손을 내밀어서 남자가 건넨 중국집 광고지를 받았다. 내가 건네받은 광고지는 무게조차 느낄 수 없는 한낱 가벼운 종이이다. 그건 그 남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 아파트의 분리수거장이 있다. 걸어가다가 나는 그 전단을 그곳에 던져놓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 도로 하나를 건너면 다른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거기에는 1층 화단에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은 차고 넘치나, 그것을 조화롭게 키워내는 재주는 없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지나가면서 보니, 그 화단을 가꾸는 이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것저것 심어놓았던 화단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봄이 되어야 그곳에 화초들이 채워질 터였다. 흔하고 별 볼 일 없는 꽃이라 해도 그곳에 심어지면, 지나가면서 보는 이들에게는 나름의 즐거움을 준다. 나는 올해 봄에는 거기에 어떤 꽃들이 필지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도 키우는 화초 세 가지가 있기는 하다.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고 불리는 게발선인장, 천리향, 비파나무. 게발선인장은 해마다 이맘때쯤에 꽃을 피운다. 이건 키운지 15년도 넘은 것 같다. 이 선인장의 화분은 윗부분의 절반이 깨졌다. 베란다에서 발로 밀다가 그리 되었는데, 분갈이를 해주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두고 있다. 화분의 모양새도 참 그런데, 몇 년 전에는 선인장 절반이 갑자기 뚝 하고 떨어져서 죽어버렸다. 절반 남은 선인장이 매해 꽃을 피웠다. 꽃송이를 세어보니 6송이이다. 참으로 고맙다. 내가 하는 거라곤 좀 시든 기운이 보일 때, 물을 주는 것뿐이다.

  천리향은 꽃봉오리가 맺히고 있다. 천리향은 꽃은 참 볼품없는데, 향이 정말 좋다. 아마 보름쯤 지나면 꽃이 필 것 같다. 어느 해인가, 겨울에 추울 것 같아서 천리향을 집안에 들여놓았다. 그랬더니 그해에 천리향이 꽃을 피우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한성(耐寒性) 식물을 따뜻한 곳에 두는 것은 독과 같다는 것을. 그래서 겨울에는 몹시 추운 날을 빼고는 천리향을 그냥 밖에 두었다. 얼마 전 강추위가 엄습했을 때, 천리향을 잠깐 집안에 들여놓기는 했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화분을 밖에 두어도 된다.

  "그래, 강하게 살아야지."

  나는 꽃이 핀 게발선인장만 저녁에 집안에 들여놓고, 천리향과 비파나무는 베란다에 놔두었다. 비파나무는 원래 밖에서 자라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면서도, 천리향은 겨울밤 추위에 두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천리향에게 변명하듯 나는 그렇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어떨까? 아마도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하하, 웃기시네. 나는 식물이 말을 못 하는 것에 새삼 안도한다.

  언젠가 사주 공부를 해보려고 한 적이 있다. 사주책을 사서 좀 보려고 했더니, 죄다 한자투성이였다. 이건 좀 힘들겠네. 그냥 내 사주나 좀 풀어서 들여다보다 말았다. 내 사주에는 오행 가운데 '木'이 참 많이 없었다. 물론 사람마다 부족한 오행의 기운이 있기는 하다. 木은 생기와 친화력, 뭐 그런 거에 해당하는데 그게 내게는 부족했다. 그럼 그걸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하는 걸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식물을 키우던가 하는.

  그런데 나는 식물 키우는 재주는 정말이지 눈꼽만큼도 없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글쓰기가 있다. 이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木이 부족한 나에게 글쓰기는 그러니까 화초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날마다 써내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좀 써보려고 노력은 한다. 작년에는 내내 글이 써지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도 글쓰기를 놓을 수는 없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화초들이 해마다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내 글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그런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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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Gauntlet(1977)'이라는 영화가 있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피닉스시의 경찰 쇼클리(Clint Eastwood 분)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증인을 호송해 오라는 임무를 떠맡는다. 쇼클리가 호송해야 할 증인은 '몰리'라는 이름의 창녀(Sondra Locke 분)이다. 쇼클리는 그냥 몰리를 차에 태워서 피닉스시에 데리고 오면 되는 가벼운 임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몰리를 죽이려는 어떤 이들이 있다. 몰리가 고위 관료의 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리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여정에 나선 쇼클리. 과연 몰리는 재판정에서 무사히 증인 선서를 할 수 있을까?

  영화 'The Gautlet'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쳐 보여준다. 영화는 당시 그와 실제 연인 사이이기도 했던 산드라 로크와의 관계도 일정 부분 겹친다. 영화의 마지막, 죽음의 위협을 뚫고 쇼클리와 몰리는 피닉스시에 도착한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시가지 양쪽에 도열한 무장 경찰차들이다. 쇼클리가 운전하는 버스가 들어서자, 버스는 엄청난 총알 세례를 받는다. 이 영화의 제목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형벌에서 따온 것이다. 벌을 받는 사람이 양쪽으로 도열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곤봉이나 채찍, 창과 같은 무기로 얻어맞는 형벌을 'Gauntlet'이라고 한다.

  나는 배우 이선균이 비극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서, 그것이 Gautlet과 같다고 생각했다. 유명 배우는 마약을 투약했다는 추문에 휩싸여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빛나던 배우는 초췌한 모습으로 수사 기관의 포토 라인 앞에 섰다. 거듭된 마약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음에도, 이선균에 대한 경찰의 조사는 집요하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온갖 소문과 대중의 비난, 수사 과정에서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배우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만약 이선균이 유명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경찰은 그를 포토 라인에 세웠을까? 경찰 수사를 받는 동안 이선균은 포토 라인에 3번이나 섰다. 수사와 관련된 소식은 마치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떡밥처럼 언론에 제공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이선균은 마약 투약자이고, 유흥업소에 출입한 문란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배우가 그러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비치는 자체가 엄청난 추락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피의자도 피의 사실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피의사실공표죄(被疑事實公表罪)'는 형법 126조에 따라 검찰·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감독, 또는 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는 죄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한 것으로, 수사 중이거나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부당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출처: ko.wikipedia.org). 피의사실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사실공표죄는 대중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는 믿음에 의해 거의 사문법으로 전락했다.

  배우 이선균을 둘러싼 수사 기관의 행태는 대놓고 망신 주기와 조리돌림일 뿐이다. 결국 수치심과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 배우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났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견뎠어야지. 비슷한 시기에 마약 투약 혐의로 소환되어 조사받은 '지드래곤'은 멀쩡히 잘살고 있지 않냐고.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한 사람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심리적 압박감과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선균의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일은 과연 공공의 이익에 부합했는가? 왜 그 시점에서 유명 배우와 인기 가수의 마약 혐의 사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었을까? 어떤 정치적 사건과 논란으로부터 대중의 눈길을 돌리게 하기 위해 눈요깃감 기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레드 헤링(Red Herring). 이 영어 단어의 관용적 의미는 주요한 논점과 관심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장치를 뜻한다. 격변의 한국 정치사에서 레드 헤링은 선거철만 되면 터지곤 했던 북한과 간첩 관련 소식이었다.

  배우 이선균은 그렇게 레드 헤링이 되었다. 수사 기관은 그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인간적 존엄성은 막장 언론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발가벗겨졌고, 무참하게 뜯어먹혔다. 그는 강요된 Gauntlet을 치러내야만 했다. 그가 그 형벌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Gautlet의 당사자는 죽음을 택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재능있는 배우를 더는 볼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을 잃었고, 두 아이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한 배우의 죽음은 지금 이 나라의 법과 상식이 망가졌음을 입증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배우 이선균의 명복을 빈다. 

    

    
*영화 'The Gauntlet(1977)'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gauntlet1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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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진이 다 빠지네."

  여자는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군. 병원이란 곳은 사람들의 기를 쏙 빼가는 곳인가 보다. 성탄절 다음 날의 종합병원 대기실은 북새통 같다. 나의 진료 예약 시간은 오전 11시 50분. 나는 11시 20분에 도착해서 내가 진료받는 과의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진이 빠진다고 혼잣말하던 여자는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목도리를 떨어뜨리고 갔다. 나는 여자가 진료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목도리를 가져가라고 알려주었다. 여자는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여자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여자는 목도리를 주워 들고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여자의 옆에 남자가 앉으면서 말한다. 여자의 남편 같았다. 남자는 자신이 들은 어떤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고독사한 사람인 모양이다. 남자는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발견되었다는 시신의 모습을 흉내 낸다. 양쪽 팔을 개구리처럼 발딱 들어보인다. 참으로 생경스러운 광경이었다. 대기실이 혼잡해서 남자의 이야기가 더는 나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체온계를 귀에다 대고 체온을 측정한다. 내 주치의의 진료실에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는 저 할아버지 다음이 내 차례라고 알려주었다. 그 할아버지는 전동 휠체어에 계속 앉아있었다. 보호자는 보이지 않았다. 몸도 불편한데, 어떻게 혼자서 병원에 온 것일까? 그 영감님은 진료실에서 좀 오래 있었다. 노인 양반이 이야기하다 보면 좀 길어질 수도 있지.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짜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치의 선생은 환자들이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저 할아버지에게 싫은 티를 냈을까? 마침내 할아버지 환자가 나왔다. 간호사는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 가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영감님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간호사에게 되물었던 것 같다. 나는 보호자 없이 병원에 온 저 할아버지를 보며 뭔가 짠한 생각이 들었다.

  한 달분씩 타던 약을, 이번에는 두 달분을 처방받았다. 병원에 가는 것은 매번 싫고 귀찮다. 여자의 말대로 병원에 갔다 오면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기력이 강한 사람들일까에 대해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병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며칠만 있어도 골병이 들 것 같다. 올해는 이래저래 몸이 아파서 병원을 자주 왔다 갔다 했다. 병은 쉽게 낫질 않는다. 아마도 내년에도 이렇게 병원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내가 아파서 힘들게 지내게 될 날들과, 지출해야 할 병원비에 대해 가늠해 본다. 누군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주거 환경은 큰 병원이 근처에 있는 곳이라고. 병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병원에 갈 수 있는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종합 병원급의 대형 병원이 근처에 있고, 거기에 갈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곳. 그런 곳은 집값이 비싸지 않을까? 결국 노년에 겪게 될 병고의 문제는, 삶의 많은 문제의 해법이 그러하듯 '돈'으로 귀결된다. 아프지 말아야지. 내년에는 좀 안 아팠으면 좋겠다. 늙어감과 병에 대한 우울한 상상을 더는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에 다녀온 날 저녁, 나는 진이 빠진 마음이 덜그럭거리며 내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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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발레극 '백조의 호수'를 처음으로 본 것은 중학교 무용 시간이었다. 무용 선생은 그 긴 발레극을 3번의 수업 시간에 나누어서 비디오테이프로 틀어주었다. 발레극의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다지 화질이 좋지 않은 비디오테이프에, 조금 큰 TV 화면으로 보는 발레극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놀란 것은 그 발레극의 결말 부분이었다. 사악한 마법사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왕자와 불운한 오데트는 결국 높은 파도에 휘말려 죽는다. 파도를 묘사한 장면에서 넘실대던 푸르죽죽한 천이 기억난다. 오직 마법사만이 기쁨에 취해 무대를 날아다니듯 뛰어다녔다. 아니, 저 발레극이 저렇게 끝난단 말인가? 어떻게 주인공들이 죽을 수 있지?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서 본 '백조의 호수'는 결말이 좀 달랐다. 왕자는 마법사를 응징하고, 주인공인 왕자와 오데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 발레극의 진짜 결말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에, 나는 발레극 '백조의 호수(Swan Lake)'가 생각나서 영상으로 찾아서 보았다. 내가 본 것은 2015년 Bolshoi Ballet의 모스크바 공연 실황이었다. 안무와 연기, 오케스트라의 연주까지, 정말이지 오리지널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는 좋은 공연이었다. 다만 중간에 '옥에 티' 같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백조들의 군무를 카메라가 위에서 찍는 부감 쇼트가 있었다. 그 부분에서 발레리나 한 명이 실수를 했다. 그야말로 '콰당'하고 큰 소리를 내며 무대에서 미끄러졌는데, 어디 다치지 않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 발레리나는 얼른 일어나서 군무를 이어갔다. 라이브 공연 실황을 녹화한 영상이라 뭐 어떻게 편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중에 그 발레리나는 무대 단장한테 불려 가서 꽤나 질책받았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공연의 결말은 왕자와 오데트가 죽는 결말이었다. 이제 이 발레극은 그런 비극적 엔딩으로 공연되는 것이 일반적인듯 하다. 하지만 스탈린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그렇게 공연되지 않았다. '스탈린의 시대에 비극은 없다'는 예술적 신조가 발레극의 결말을 바꾸어 놓았다. 왕자와 오데트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승리했고, 마법사는 죽었다. 원작의 결말이 비극이었음에도, 철권통치 시기에는 그러한 결말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독재자 스탈린의 입맛에도, 그 발레극을 보는 대다수 민중에게도 선량한 주인공들이 죽고 마는 결말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 발레극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그 부분에 흐르는 정서가 고통과 슬픔임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건 나만이 느끼는 정서가 아니라, 이 음악을 듣는 대다수 많은 이들도 그렇게 느꼈다. 흥미로운 것은 스탈린 시대에 표백된 결말로 공연되었던 '백조의 호수'가 소련 사람들, 그러니까 러시아인들에게 불길하고 암울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서기장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1982년 사망), 안드로포프(Yuri Andropov, 1984년 사망), 체르넨코(Konstantin Chernenko, 1985년 사망)가 사망했을 당시에 소련의 TV에서는 '백조의 호수'가 방영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조의 호수'는 구소련의 전환점이 되는 극적인 사건에서도 등장했다. 1991년 8월, 소련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그 기간에 TV에서는 '백조의 호수'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불길한 전조와도 같았다. 소련 사람들은 나라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몰락했고,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한 옐친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백조의 호수'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에는 이 부분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백조의 호수'는 단순한 발레 음악극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시대적 상황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변형되는 과정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백조의 호수'가 가진 상징적 의미는 무엇보다 러시아인들에게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암울한 독재 시대를 거쳐 탈색된 발레 비극은 격변의 현대 러시아사와 기이하게 조우한다.

  어젯밤 늦게, 나는 ChatGPT에게 '백조의 호수'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ChatGPT는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에서 전광석화처럼 관련 지식을 인출한다. 백조의 호수는 언제 초연되었고, 음악은 누가 작곡했고, 기타 등등... 줄줄이 사탕처럼 자기가 아는 것을 늘어놓던 ChatGPT는 결국 왕자와 오데트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며 끝난다고 말해주었다.

  "어이, 이봐. 그건 사실이 아니야. 원래 그 작품의 결말은 비극이었다고. 너 말이야, 공부 좀 해야겠는걸."

  나의 그런 반응에 ChatGPT는 약간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얼른 평정을 되찾은 인공지능은 나에게 되묻는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사실이네요. 좀 더 알려 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백조의 호수'는 스탈린 시대에 네가 아는 결말로 바뀌어서 공연된 거야. 원래는 그게 아니었거든."

  "아, 그렇군요. 예술 작품은 종종 시대의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니까요."

  ChatGPT는 사용자에게 자신이 축적해 놓은 지식을 알려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사용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결코 공짜로 막 써먹을 수 있는 혜자 프로그램이 아니다. 나는 새삼, 제작사 OpenAI가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본주의적 첨단 기업임을 떠올린다. 아마도, 나에게서 들은 '백조의 호수' 결말에 대해 ChatGPT는 다음 사용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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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의 소감을 읽은 기억이 난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기차여행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이었다. 와, 여행 중에 저런 기쁜 소식을 들으면 정말 좋겠네. 나는 언젠가 내가 당선 소식을 들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난달, 정말 오랜만에 신춘문예에 응모를 해보았다. 문예창작과 애들이 목숨 걸고 달려드는 전장에 나 같은 신참은 구경이나 하는 거지. 신춘문예는 뭔가 문운(文運)의 끝판왕 같다고 생각해서, 그래도 나에게 문운이 있는가를 시험해 보는 마음이었다.

  언제쯤 심사를 하고 통보를 하는지 궁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문학 관련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서, 그쪽에서 신춘문예 관련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 내가 신춘문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이러하다.

1. 예심은 마감 후 5일에서 7일 이후에, 본심은 그로부터 일주일 되는 시점에 이루어진다.
2. 당선작 선정은 심사위원들이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을 논의하는 그날 저녁에 결정된다. 본심은 주말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3. 본심 현장에 있는 해당 신문사의 문화부 담당 기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당선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므로 당선 통보 전화는 010 번호로 뜬다.
4. 당선자가 타 신문사에 중복 투고를 했는지, 또는 이전에 수상 경력이 있는지, 기존 작품의 표절 시비가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 있다.
5. 신문사에 따라 다르지만, 당선 통보 후 당선자들 모이게 해놓고 사진 찍는 곳도 있다. 1월 1일 신문에 내보낼 기삿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6. 신문사는 당선자들에게 추후 작품을 게재할 지면을 할당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신춘문예의 한계이기도 하다. 메이저 일간지 당선자들의 작품집이 4월경에 나오기는 한다.
7. 당선자들의 출신 학과는 문예창작과가 주를 이룬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춘문예 당선자들 가운데, 문인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8. 등단 작가로서 자기 작품을 실어줄 출판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신춘문예보다 문예지 공모를 통해 등단하는 것이 더 낫다.

  신춘문예 당선을 간절히 바라는 문학도들의 글을 보면서, 문학을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나는 새삼 놀랐다. 그걸 보면서 내 마음속에 떠오른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글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들의 유일한 통로가 '등단'이라는 방식밖에 없는 것일까? 신춘문예든 문예지든 당선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당선이 되려면 심사위원들의 취향과 시대의 조류에 맞춰서 글을 써내야 한다. 무슨 족집게 과외 공부를 하듯 특정 창작 교실, 어느 서점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교수와 제자, 선배와 후배, 이리저리 알음알음 그 세계는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 세계의 생태계에 진입하기 위해 그 글쓰기 틀에 맞추어서 잘 써내는 것이 당선의 지름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신춘문예 당선작과 심사위원들의 선정 이유를 읽었다. 내 기준으로는 도대체 이런 작품을 왜 뽑았을까 싶은 것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평도 납득이 가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현학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걸 읽고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이 시대의 한국 문학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늙었구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낼 수 없겠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서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메이저 문학 출판사에서 투고를 받는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름도 없는 신인 작가의 작품이 출판되는 일은 복권 당첨과도 같다. 기성 작가들의 글도 실어주기 어려운 판에 등단도 안 한 사람의 글을 받아줄 리가 없다. 최근 들어 새롭게 뜨고 있는 웹소설은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이질적인 것으로 비친다. 물론 웹소설 작가들을 폄하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웹소설 작가는 글로써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순문학 작가보다 크다. 순문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문학을 부업으로 하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삶은 사실 환상에 가깝다. 

  나는 지금의 한국 문학에 별다른 애착도 갖고 있지 않다. 중견작가로 주요하게 언급되는 한강의 소설은 나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 늘어지는 만연체의 흐느적거리는 문체는 참아내기 어렵다. 한강의 소설들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부풀려 있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한강의 소설들이 인정받는 이유는 '번역'이라는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의 '외딴방'이 과거에 해외에 번역되어 누렸던 영광은 한강에게로 갔다.

  2021년에 신경숙은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내놓았다. 얼마 전에 나는 그 책을 읽으려다, 첫 페이지에서 책을 그냥 덮었다. 나는 더이상 신경숙의 문체를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경숙은 과거 자기 작품을 둘러싼 표절 시비에 대해 명확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신경숙에 대해 그 어떤 평론가도 대놓고 비판한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다들 얼굴 아는 사이니까 그랬겠지. 나는 명색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저리도 부끄러움이 없고 자존감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신춘문예에 관한 글에서 길게 돌아 여기까지 왔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에 대한 통보는 거의 다 끝났다. 내년 봄에는 문예지 공모가 있다. 한국에서 작가가 되려면 어쨌든 '등단'이라는 바늘귀를 거쳐야 한다. 어쨌든 글은 계속 써야지. 나는 올 한 해 동안 써지지 않는 글을 부여잡고 고군분투했다. 영화 글은 거의 써낼 수가 없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습작이라고 끄적거린 글들은 무슨 넝마쪼가리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지?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라는 무한도전을 멈출 수가 없다. 미래의 어느 날, 내가 나의 글과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그저 그곳의 풍광이 너무 쓸쓸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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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12-23 08:10   좋아요 0 | URL
올 한 해 푸른별님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어왔어요. 감사드립니다.

푸른별 2023-12-23 12:40   좋아요 0 | URL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hnine님과 같은 독자가 있어서 저도 힘을 내어 글을 쓴 것 같네요. hnine님을 비롯해 여러 독자분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새해 맞이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