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는 어떤 사람이죠?"
  "그가 누군지 넌 잘 알고 있잖아?"
  "난 아직도 정말 모르겠어서 그래요."

  인터뷰를 위해 엄마의 집을 찾은 아들 Bing Liu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다. 데니스는 그의 계부였다. 그는 계부가 자신을 자주 때린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엄마에게 묻는다. 이젠 다 지난 일이잖니, 엄마는 이야기를 돌리려 애쓴다. 이 다큐, 시작은 스케이트보드 신나게 타는 어린 친구들을 보여주더니 어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심각해진다. 중국계 미국인 Bing, 백인 하층민 Zack, 흑인 Keire, 이 세 친구는 나이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스케이트 보드 하나로 친구가 되었다. 다큐 'Minding the Gap(2018)'은 세 친구가 어른의 삶에 진입하면서 일어난 변화를 담는다.   

  스케이트보드로 자유롭게 거리를 질주하는 일은 즐겁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Zack은 여자친구 니나의 갑작스런 임신으로 덜컥 애아빠가 된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전전하는 Zack,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영 쉽지 않다. Keire는 음식점 서빙일을 하며 진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Bing은 14살 때부터 만져온 카메라로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 그 과정에서 Bing은 친구들의 상처와 마주한다. 성장 과정에서 계부의 폭력을 경험했던 Bing처럼 Zack도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고 고백한다. Keire도 마찬가지. 그들이 살고 있는 일리노이주의 도시 Rockford는 오랜 경기 침체로 낙후된 곳이다. 또한 높은 범죄율로 늘 불안과 폭력이 공존한다. 그곳에서 세 친구가 경험한 가정 폭력과 가난.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도 스케이트보드는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세 친구는 '남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거멀못과 같이 내면을 옥죄고 있는 어그러진 남성성과 마주한다. Zack은 아이 아빠, 남편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 심지어 니나에게 폭력을 휘두른 정황도 포착된다. Keire는 세상을 뜬 아버지가 남긴 학대의 상처와 함께 흑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것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Bing은 모친을 인터뷰하면서 가정 폭력이 남긴 어둡고 긴 그림자와 대면한다. 다큐는 마치 그 세 친구들을 위한 영상 치료 같다. 그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치유와 독립의 여정이 시작된다.

  다큐 'Minding the Gap'은 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하층 계급 내에서 순환되는 폭력과 상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인종 문제도 살짝 접혀져 있다. Keire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대부분의 백인 친구들과 흑인인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얼핏 내비친다. 물론 백인이라고 해서 미국 사회 주류에 모두 다 들어가는 건 아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디제이가 'Asian Niggers, White Niggers'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그들은 함께 웃는다. 감독 Bing Liu는 다큐를 만들고 나서 Zack이 트럼프 지지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chicagotribune.com과의 인터뷰 참조). 백인 하층민,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가진 Zack과 같은 이들에게 트럼프의 정치적 수사학은 잘 먹혀들었다. 하층 백인들에게 유색 인종들과의 연대나 동일시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Bing Liu는 비주류 청소년들의 성장담에 '스케이트보드'라는 독특한 소재를 결합시켰다. 그 자신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촬영한 영상은 Parkour(도시의 지형 지물을 이용한 신체적 이동 기술) Skateboarding의 속도감과 질주감을 선사한다. 그러한 배경 화면 속에 다큐는 제목처럼 인종과 계층, 폭력과 가난이라는 사회적 간극을 성찰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다큐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비로소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아기가 제법 의젓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Zack은 니나와 아이를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린다. Keire는 덴버에서 일자리와 프로 스케이트보더로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찾았다. 그리고 Bing은 스케이트보드 말고 또 다른 곳에서 자신의 소질을 발견했다. 'Minding the Gap'은 그런 그가 카메라로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들려주는 목소리인 셈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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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on Zürcher의 영화적 수수께끼, The Strange Little Cat(2013)
 


 시작은 'www.lecinemaclub.com'에서 본 이번 주 상영작 'Reinhardtstrasse(2009)'에서부터 였다. lecinemaclub은 단편을 위주로 다양한 영화들을 일주일에 한 편씩 선정해서 무료로 상영한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젊은 영화 창작자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꼭 챙겨 본다. 상영작들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라인하르트 거리'도 그러했다. 러닝타임 34분 동안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드는 희한한 영화였다. 그러고 나서 어쩌다 고른 영화가 'The Strange Little Cat(2013)'. 이 영화도 기이했다. 그런데 기막힌 우연으로 그 두 작품을 만든 이는 '라몬 취르허'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고양이가 식당 밖에서 닫힌 문을 긁고 있다. 그런데 여자 아이의 괴성이 들린다. 이 집의 막내딸 클라라가 내는 소리이다. 아무도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관심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엄마 제니는 식탁에 앉아있는 클라라를 바라본다. 이 가족, 정말 뭔가 이상하다. 엄마 제니는 얼마 전 영화관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을 이야기한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이야기에서 제니는 옆자리의 낯선 남자가 자신의 발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 제니의 말에 남편을 비롯해 큰딸 카린도 무덤덤하다. 제니는 밥먹는 고양이 머리를 눌러버리려는 것처럼 천천히 발을 내리려다가 큰딸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다. 도대체 이 영화, 장르는 무얼까...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관객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가 '소리'임을 알아챈다. 개수대 옆에서 혼자 저절로 돌아가는 빈병이 내는 기괴한 소리, 커피 머신의 굉음, 그 소리에 반응하는 클라라의 괴성,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소리,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모형 전동 비행기가 작동하는 소리... 그런 사물들이 내는 소리는 인물들의 대화에 계속해서 틈입하며 때론 대화를 중단시킨다. 사실 이 가족이 나누는 이야기는 대화라기 보다는 '독백'에 가깝다. 제니의 영화관 이야기처럼 가족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있었던 경험을 말하지만 그 누구도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 엄마 제니는 감독자 내지는 방관자처럼 가족을 바라본다.

  집에는 방문자들이 계속 들어온다. 고장난 세탁기를 고치러 제니의 오빠와 조카가 온다. 나중에는 제니의 노부모가 식사를 하기 위해 집에 온다. 그렇다면 가족 영화인가? 이 특이한 가족 영화에는 따뜻한 관심, 애정, 소통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라몬 취르허는 프레임 안에 인물을 가두고 대화와 소리가 프레임 밖에서 흐르도록 만든다. 이 영화에서 소리가 내러티브의 주요한 요소인 것처럼 사물도 그러하다. 티백이 넣어진 찻잔, 주방의 흰벽에 붙어있는 나방, 플라스틱 병들이 담겨진 천가방,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세탁물, 담배곽, 노란공... 그렇게 사물들을 비추는 싱글 쇼트들이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간다. 인물, 대화, 소리, 사물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이 영화는 마치 정교하게 구성된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 든다.   

  'The Strange Little Cat'은 결코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영화가 아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기괴하고 난해한 실험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많은 비평가들에게도 이 영화는 다소 골치아픈 숙제처럼 여겨졌다. 취르허가 첫 장편으로 내놓은 이 영화를 분석하기 위해 카프카를 비롯해 영국의 현대 극작가 해롤드 핀터(
Harold Pinter, 1930-2008)까지 동원되었다. 확실히 영화의 분위기로 본다면 핀터의 'Dumb Waiter'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취르허 자신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짧게 언급했다. 우리는 커다랗고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를 기억한다. 가족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무시하고 외면했다. 카프카의 부조리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소설 속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소외된 존재이다.

  취르허가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족들도 식당과 비좁은 복도, 방들을 오가며 이야기를 하고 시선을 맞추지만 결코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소통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닫혀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억압된 분노와 적대감이 느껴진다. 그러한 단절 속에서 검정색 개, 그리고 영화의 제목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노랑색 고양이도 분투한다. 개와 고양이는 닫힌 문을 긁고, 비우호적인 가족들 사이를 오가며, 때로 내쫓김을 당한다. 이 집에서 파생되는 관계의 불협화음은 수시로 제시되는 짧은 테마곡 'Pulchritude'의 분위기와 일치한다. 

  취르허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첫 관람에서 놓친 부분을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출처 cineuropa.org와의 인터뷰). 아니, 이 괴상한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보라고? 그런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때, 이 감독이 세밀하게 설계한 이미지와 소리의 세계가 나의 눈에 비로소 들어왔다. 심지어 단편 'Reinhardtstrasse(2009)'를 한 번 더 보았다. 이 단편에는 '이상한 작은 고양이'로 나아가기 위한 취르허의 청사진이 들어있다. 떠나는 룸메이트(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음)를 위해 세 명의 친구들은 작별 파티를 준비한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들은 계속 끊기고, 다양한 소리와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이상한 작은 고양이'를 보고 나면 이 단편은 더 쉽게 이해된다.

  때로 어떤 영화는 '좋거나/나쁘거나'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라몬 취르허의 영화는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 기이한 매혹을 선사한다. 그것을 느끼려면 다소 번거로운 탐색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취르허가 낸 수수께끼들을 푼 관객들은 영화적 발견의 기쁨 누린다. 나는 그의 2021년작 '소녀와 거미(The Girl and the Spider)'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단편 'Reinhardtstrasse(2009)'는 이번 주 동안 lecinemaclub.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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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Burnham: Inside(2021) 1시간 27분
Eighth Grade(2018) 1시간 34분
Make Happy(2016)  1시간 



1. 시작, 'Bo Burnham: Inside'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단편 소설 '여학생'. 서른 살의 남성 작가는 십 대 여학생에 빙의한 것처럼 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여학생의 내면 풍경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읽는 이들을 놀라게 만든다. 미국의 스탠드 업 코미디언 Bo Burnham의 2018년작 영화 'Eighth Grade'를 보면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렸다. 27살의 청년은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 3학년에 해당) 여학생 케일라의 내면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그려낸다. 코미디언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처음엔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을 곧게 펴고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이 젊은 친구의 진정한 재능은 코미디가 아니라 영화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작은 'Bo Burnham: Inside(2021)'였다. Covid-19 전염병이 휩쓰는 시기에 번햄은 LA 집 작업실에서 자기 혼자 공연한 영상들을 그러모았다. 이 작품의 구성 방식은 간명하다. 각각의 소주제가 있고, 번햄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을 부른다. 때로 독백과 해설도 들어간다. 단순한 틀 안에서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매우 다양하다. 번햄이 주의깊게 다루는 부분은 인터넷 문화이다. 백인 여성이 올리는 흔한 인스타그램에 대한 뒤틀린 유머, sexting을 비롯한 SNS의 일그러진 단면, 아마존의 수장 제프 베이조스에 대한 신랄한 풍자... 물론 그 비판과 풍자의 중심 소재는 자기 자신이다. 번햄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자조적 성찰, 고립된 상황에서 겪는 불안과 우울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젊은 친구가 혼자서도 잘 노는구만!'하고 큭큭거리며 'Bo Burnham: Inside'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좀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인사이드'에서 그가 부른 자전적 노래 'Problematic'과 '30'에 짤막하게 드러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었는데 공황 장애가 왔고, 그 때문에 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Make Happy(2016)'는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찍은 1시간짜리 스탠드 업 코디미 공연 영상물이다. 거기에는 '인사이드'를 만들어낸 번햄의 창작 원리랄지, 주요 관심사가 들어있다. 인종과 성을 주제로 하는 거침없는 유머, 자신에 대한 자학적인 풍자, 직접 창작한 랩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는 가창력. 'Make Happy'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으로 16살에 스타덤에 오른 번햄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그 작품은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다. 'Welcome to Burnham World!'


2. Bo Burnham, 8학년 케일라가 되다!

  쉬는 기간에 만든 'Eighth Grade(2018)'는 번햄의 첫 영화 연출작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8학년 여학생 케일라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동영상을 찍는 것을 보게 된다. 차분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케일라. 또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물에서 케일라는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나 말에 신경쓰지 말고 의연하게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정작 케일라 자신은 학교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신세이다. 말수가 거의 없어서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애'로 뽑히기까지 한 케일라. 한마디로 존재감 없는 주변부 청소년의 전형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떡하면 나도 애들의 관심을 받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케일라의 '자신감 동영상'은 현실 은따의 이상화된 가상 캐릭터가 펼치는 공연인지도 모른다. 케일라는 틈만 나면 자신의 동영상을 올리고 조회수를 확인한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도 케일라는 쩌리 신세이며, 그 누구도 케일라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케일라는 강박적으로 인스타에 매달린다. 인기있는 애들을 팔로우하고 끊임없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이 아이가 애정과 소통을 갈구하는지를 입증한다.

  번햄은 십 대 시절에 이미 유튜브로 스타가 된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인터넷과 대중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이로서 '가상 공간'에 대한 탐구는 그의 주요한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다. 'Eighth Grade'의 케일라는 어떤 면에서는 번햄의 열화(劣化)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정점에 올랐던 코미디언은 칩거의 시간에 들어갔고,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인사이드'는 다시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필사적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8학년이 된 번햄 '케일라'의 일상에 신나고 재미난 일은 하나도 없다. 싱글 파더인 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하고, 학급의 퀸인 케네디에게 늘 무시당하고, 좋아하는 남자애 에이든은 케일라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인터넷과 SNS는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케일라의 실질적 조언자, 전자 스승이 된다. 번햄은 십 대 청소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 무시무시한 매체를 집요하고 깊이있게 탐구한다. 가상 공간에서의 소통과 관심에 대한 강박적 열망은 오히려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를 차단시켜 버린다. 케일라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소통을 바라는 아버지의 대화 시도를 번번이 거부한다.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케일라의 힘겨운 투쟁은 고등학생 라일리와의 만남에서 위기를 맞는다. 라일리는 '진실 게임(truth or dare)'을 빙자해 케일라에게 성적인 요구를 한다. '싫다'는 감정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사이에서 케일라의 내면은 극렬하게 요동친다. 이 영화에서 케일라가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표현하는 그 장면에서 케일라는 소리친다. 'No!'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도 케일라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그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통해 케일라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번햄은 청소년기의 주요한 특징인 '자기 중심성(Adolescent egocentrism)'이 인터넷이라는 매체와 긴밀히 결합한 현시대의 초상을 그려낸다. 전자 음악 작곡가 Anna Meredith가 담당한 음악은 그러한 주제를 잘 부각시킨다. 음악과 사운드는 케일라의 내면과 계속해서 공명한다. 케일라가 가슴이 뛰거나 놀라움을 느낄 때, 배경에 깔리는 음악 또한 과도하게 음량이 커진다. 그런가 하면 케일라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사운드는 꺼진다. 라일리의 차에서 내린 케일라는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집에 들어온다. 놀란 아빠가 케일라를 진정시키는 동안 관객은 무음으로 처리된 화면 속의 두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Middle school wasn't so great for me, but I'm past it now. And I'm moving forward, and you can do that too with high school if it didn't go great."
  (중학교 시절은 사실 좀 별로였죠.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갔어요. 난 계속 나아갈 거고, 여러분도 고등학교에서 그럴 거에요. 때로 힘들겠지만요.)


  케일라는 더이상 '자신감 동영상'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그렇게 덧붙인다. 진짜 자신, 현실 세계와 만나기로 한 케일라처럼 번햄도 이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Inside'에서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내내 1인극을 펼쳤던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멀끔하게 단장한 외모로 작업실 문밖으로 나간다. 조명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어색하고, 약간은 두려운 표정으로 그는 서있다. 번햄이 창작자로서 가지는 매우 중요한 재능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적 관점, 그리고 영상물을 다루는 본능적 감각이다. 케일라와 번햄의 힘들었던 8학년은 지나갔다. 그가 'Eighth Grade'에서 보여준 청소년 세대와 사회 탐구, 'Bo Burnham: Inside'의 치열한 자기 성찰과 매체 통찰력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 친구야말로 진짜 영화를 해야한다, 고 나는 외치고 싶어졌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ighth Grade(2018)'에서 케일라 역으로 열연을 펼친 Elsie Fisher. 이 배우의 직관적인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Bo Burnham: Inside(2021)'의 한 장면. 이렇게 망가졌던 번햄은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원래 이런 외모의 청년이었다.



****Social Media의 어두운 면을 조망한 다큐 The Social Dilemma(202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social-dilemma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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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비디오 여행'의 인기 코너인 '영화 대 영화'. 김경식의 맛깔나는 해설은 언제 들어도 즐겁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전창걸의 구수한 입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 'CODA'를 보면서 그 코너에 딱 맞는 영화네, 싶었다. 이 영화는 2014년에 만들어진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élier)'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과연 'CODA'는 원작 영화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이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 편이 낫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지는 범작이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 마을, 루비에게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오빠가 있다. 아빠와 오빠를 따라 뱃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 씩씩한 아가씨는 가족의 대변인 노릇도 하고 있다. 루비의 부모가 병원에 가는 일, 어촌의 조합 일을 비롯해 집안의 대소사는 말을 할 줄 아는 루비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일들이 버겁기는 해도 루비는 묵묵히 해낼 뿐이다. 학교의 동급생들은 루비가 CODA(Child of deaf adult, 청각 장애인을 부모로 둔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리며 무시한다. 그런 상황에서 별 생각없이 들어가게 된 합창반. 지도 교사 베르나르도는 루비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 진학을 권유한다. 하지만 집안의 생계가 걸린 뱃일은 루비의 도움이 없으면 해나가기 어렵다. 자신의 진로와 가족 사이에서 루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루비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원작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주인공 폴라의 가족이 사는 농촌 마을은 어촌으로, 남동생은 오빠로, 파리의 음악 대학은 버클리 음대로 바뀐다. 내가 놀란 것은 등장인물들의 분장과 스타일링까지도 판박이처럼 베꼈다는 사실이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긴 수염을 기른 폴라의 아빠, 금발 머리를 늘어뜨린 엄마의 모습은 배우만 바뀌었을 뿐 '코다'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된다. 정말이지 감독 Sian Heder(본인이 시나리오도 썼다)는 배알도 없네, 하고 혀를 찼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 관객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은 따로 있다. 루비는 합창반의 마일스와 집에서 듀엣곡을 연습하는데, 부모의 침실에서 나는 소리에 방해를 받는다. 화가 치밀고 당황한 루비는 침실문을 거칠게 열어제낀다. 아무리 그래도 딸이 부모의 동침 장면을 보게 만드는 건 영 곤혹스럽다.

  그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청각장애인인 루비의 부모와 오빠가 루비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보이는 데에 있다. 가족은 작은 어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데, 루비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마저도 어렵게 된다. 이는 오리지널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벨리에 가족은 나름대로 먹고 살만한 부농이며, 폴라의 아버지는 시장 선거에 출마까지 한다. 'CODA'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좀 더 현실에 천착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도입부에서 루비가 배를 타고 가족과 조업을 함께 하는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다. 실제로 주인공 에밀리아 존스는 수화는 물론 연기를 위해 뱃일을 익혔다. 영화 속 루비의 책임은 꽤 무겁다. 가족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짐짝'이 된다.

  '미라클 벨리에'의 폴라가 고민하는 것은 끈끈한 애정으로 묶인 가족과의 이별이지,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다. 루비는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가족과 집안의 생계를 내팽개쳐야 한다. 루비에게 그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비가 실기곡으로 선택한 'Both Sides, Now'는 한 소녀의 성장과 독립이라는 주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노래에는 이제껏 잘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양면성을 바라보는 이의 심정이 담겨있다. 그처럼 루비도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차분하게 보고 싶어한다. 'Je vole(나는 날아올라요)'을 부르는 원작 영화의 폴라와는 달리 루비는 가족과 자신의 미래라는 양쪽(Both Sides)을 두고 고민한다.

  나는 아카데미가 이 영화에 작품상을 안겨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었다. 다양성을 수용하라는 요구에 뜨뜻미지근하게 움직였던 아카데미가 올해는 정치적 판단을 과도하게 했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상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CODA'에게 덥썩 상을 안긴 것을 보면 그렇다. 청각장애인 배우들의 열연, 제작 과정에서 여러 명의 통역사를 두고 비장애인 스태프와의 협업을 이루어낸 점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정치적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엄밀한 공정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CODA'가 3관왕(각색, 남우조연, 작품)을 차지한 일은 상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다.

  어설픈 짝퉁 같은 영화. 'CODA'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가?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 어떤 품격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루비는 대학에 합격해서 보스턴을 향해 떠난다. 남은 가족은 루비의 새출발을 격려한다. 이 가족이 루비 없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 결말 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제목 'CODA'에는 악장, 악곡의 끝부분을 일컫는 뜻도 있다. 이제 막 루비와 가족의 작은 이야기 악장이 끝났을 뿐이다. 산다는 건 그렇게 불확실하고 모호한 가운데에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아이의 인공와우 수술을 두고 벌어진 청각 장애인 가정의 갈등, 다큐 Sound and Fury(200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sound-and-fury2000.html

***캐나다 시골 마을 두 친구의 성장과 독립, 다큐 Passage(202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assage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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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The 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포한다. 링컨의 선언문은 선포 당시 실질적 효력을 갖지는 못했다. 1865년에 수정 헌법 13조가 비준되고 나서야 흑인 노예들은 진정한 자유민이 될 수 있었다. 그 선언문은 남부 연맹에 대한 일종의 심리전술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이 선언문이 절실히 필요한 쪽은 링컨과 북부 연합이었다. 북부의 초기 전황은 불리했다.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야만 했다. 흑인 군대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다. 1월의 선언문 발표에 이어 3월에 흑인 병사로 구성된 연대가 조직되었다. 에드워즈 즈윅 감독의 1989년작 'Glory'는 매사추세츠 54 지원병 연대(54th Massachusetts Infantry Regiment)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소심하고, 무언가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은 젊은 장교를 보게 된다. 로버트 쇼(매튜 브로데릭 분)는 전투에서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가를 받는다. 그런 그에게 매사추세츠 54 연대를 지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군 역사상 흑인 병사들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부대였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지만, 등장하는 흑인 병사 캐릭터들과 그 이야기는 거의 허구에 가깝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류의 전쟁 영화를 만나면 무언가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영화가 실제와는 또 얼마나 다르게 조미료를 치고 가공했는지, 그걸 다 찾아보고 나면 허망해질 때가 많다. '영광의 깃발'도 그런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않다.

  오합지졸과 같은 초짜 흑인 병사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점차 진짜 군인이 되어간다.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병사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곁들여진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러하다. 쇼의 어린 시절 친구로 기꺼이 부대원이 되는 토마스, 노예 출신으로 거칠고 반항적인 트립(덴젤 워싱턴 분), 부대원 가운데 연장자로 온화한 성품을 지닌 롤린스 상사(모건 프리먼 분), 쇼의 친구로 함께 부대를 이끄는 부하 장교 포브스가 있다. 군복과 군화 같은 보급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에 시달리는 연대의 모습, 흑인들을 향해 내뱉는 백인 병사들의 인종차별적인 언사, 무차별적인 방화와 약탈을 지시하는 폭압적 지휘관... 영화는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와 모순을 조각조각 이어붙인다. 거기에 극적인 장면도 있다.

  트립은 탈영을 시도했다가 형벌로 공개 채찍질을 받게 된다. 트립의 벗겨진 등에는 그의 노예 시절을 암시하는 험한 흉터 자국이 보인다. 영화는 트립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통해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처지를 부각시킨다. 그런데 당시 군대에서의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흑인 병사들이 정해진 급여 13달러(백인 병사에게만 해당)가 아닌 10달러의 차별적 급여에 반발하며 파업하는 사건은? 영화는 쇼가 부대원들의 파업에 동참해 자신의 급여 통지서를 찢어버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버트 쇼가 그걸 찢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부대원들의 급여 파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부모는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로 그 자신도 인본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화는 허구와 사실을 섞어 괜찮은 그림으로 직조해 나간다. 에드워드 즈윅은 드라마적 요소에 더해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이 영화가 갖는 미덕은 이렇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로서 적당한 선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가공의 인물들을 통해 관객을 미시사적 진실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롤린스 상사는 행군 도중에 마을의 흑인 아이들을 만난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한다. 그 장면은 그가 속한 흑인 연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매사추세츠 54연대의 그 누구도 죽음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남부 연맹은 흑인 병사는 물론이고 백인 지휘관까지 처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남군에 포로로 잡힌 흑인 병사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그러므로 흑인 병사들은 입대할 때부터 목숨을 내놓고 전장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원 입대해서 싸운 이유는 어떤 면에서 그들 자신 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있었다. 자신들은 비록 죽을지라도 어린 세대들은 노예가 아닌 미합중국의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롤린스가 어린 꼬마들에게 건네는 인사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마침내 영화는 부대원들이 비극적으로 전사하는 Fort Wagner 전투에 이른다. 난공불락의, 패배가 예견된 이 무모한 전투에서 쇼를 비롯해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스러진다. 영화는 포연이 남아있는 새벽의 풍경 속에 끝난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이후의 일은 이러하다. 관례대로라면 장교인 로버트 쇼의 시신은 북군에게 인도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남군은 그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쇼는 부대원들과 함께 묻혔다. 장렬하게 전사한 매사추세츠 54연대의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이야기는 당시 북부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로버트 쇼와 흑인 연대의 존재는 남북 전쟁에서 북부인들이 왜 싸우는가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감독 에드워드 즈윅에게 이 영화는 2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드라마와 액션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1994년에 내놓은 '가을의 전설'에서 즈윅은 'Glory'의 음악을 담당했던 제임스 호너와 또 한 번 같이 작업하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흥행 면에서 높은 성적을 낸 '가을의 전설'과는 달리 'Glory'는 제작비를 겨우 상회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 역사적 사실과 몇몇 부분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광의 깃발'은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물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성찰하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일. 영화 'Glory'는 비참한 노예의 신분에 있던 흑인들이 인간, 그리고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해 치루어야 했던 희생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남북 전쟁을 다룬 이안 감독의 영화 'Ride with the Devil(1999)'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ride-with-devil1999.html
 

***역사학자 Kevin M. Levin은 Smithsonian Magazine에 영화 'Glory'가 실제 역사와 어떤 부분이 다른지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썼다.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why-glory-still-resonates-more-three-decades-later-180975794/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매사추세츠 54연대를 이끌었던 Robert Gould Shaw. 그는 25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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